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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와 신앙생활
디도서 2:1-4
디도서 2:1-4            노년기와 신앙생활
 
 
이 자리에 모이신 성도 여러분!
요한 3서 2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 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 장로교회에서 연세 높으신 분들을 위해서 이렇게 수요일 오전 시간을 정해 예배 드리시는 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으로 교제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교회에 연령별로 여러 계층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를 보면 장년부, 중고등부, 청년부 등에 많이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노년기에 이른 분들이 중요함에서 제외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미 읽으신 분문은 사도 바울이 그레데라는 섬에서 사역하고 있는 디도라는 동역자에게 보낸 목회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이 많은 분들이 얼마나 중요한 분들이며, 영향력을 주는 분인지를 디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건전한 교훈에 맞는 진리를 전할 대상으로 제일 먼저 연세 드신 어른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연세 드신 분들이 교회에서 중요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을 인생의 새벽과 같습니다. 청년시절은 인생의 아침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중,장년이 한낮과 같아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러면 노년기는 하루 중 어떤 시간이겠습니까? 저녁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아침 햇살이 아름답고 힘찹니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시작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잘 마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채근담’ 이라는 책에는 “인생을 보는 데는 그 전반의 생을 보지 말고 그 후반생을 보라.”고 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이나 교회사를 보면, 꼭 젊은 사람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만이 훌륭한 삶을 산 것이 아닙니다. 한 예로 아브라함을 기억하시지요? 나이 75에 부름 받아서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의 나이가 어떻습니까? 갈렙이 아말렉 족속이 있는 헤브론 성을 치겠다고 할 때,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할 때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때를 학자들은 주후 64년 경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도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복음 전도자 가운데 한 분이 디.엘 무디라는 분입니다. 그분이 영국에 복음전도 운동을 가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의 나이도 있지만, 그가 생각할 때 영국사람들에게 전도하기에는 자가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분은
중학교 졸업이 그의 학력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수년에 걸쳐서 병상에 계신 할머니가 디. 엘. 무디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영국에 오셔서 세상을 향하여 가는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자꾸 편지가 옵니다. 거룩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되었고, 큰 결심을 하고 그 당시 세계의 명문 대학인 캠브리지와 옥스포드 대학에 가서 복음 증거를 하여 많은 청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일생을 주님께 드려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영국의 부흥운동과 선교 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일게 사용된 사람이 누구예요. 현재는 그분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한 할머니였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에녹회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교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매우 중요하신 분들이십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누가 본 교회를 위하여 기도 제일 많이 하실까요?
누가 오늘 본 교회가 있기까지 순종의 발과 섬김의 손과 뜨거운 가슴과 눈물 어린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까? 주님은 아십니다! 연세 높으신 여러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지금도 변치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이 많은 성도님들이 계속해서 건전한 신앙 생활가운데 있게 하기 위하여 오늘 묵상할 본문을 기록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육체적인 면은 물론, 정신적, 영적으로 안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랄지니 그리스도 예수에게 까지 자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연령과 관계 없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생의 각 연령기에 주님과 가장 많이 동행하며 교제하고 은혜 받을 수 있을 때가 노년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노년기의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2절을 보면 나이 많으신 남자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 절제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절제란 무엇입니까?
균형 잡힌 삶을 말합니다. 나이가 드시면 다 이해해 주겠지 하면서 옛날에는 안 하시던 행동이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노여운 감정을 쉽게 표현하기 쉽습니다. 일방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상대편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 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삼가지 않습니다
 
- 경건하며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번역에서는 위엄이 있고 신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위엄이란 권위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늘 동행함을 통하여 나타나는 삶의 모습에는 연세 드신 분 다운 권위가 있게 됩니다. 경거망동 하지 않습니다. 신중합니다. ‘신중하다’
는 말의 본문의 뜻은 특별히 욕심과 분노와 말을 잘 살펴서 사려
깊게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 내 나이 몇인데 욕심이 있겠나?”하고 반문합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발을 무덤에 들여 놓았을 때에 욕심이 제일 많아진다.”. 연세가 들면 정욕이나 허영 등의 욕심은 적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권세, 물질, 명예에 대한 욕심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이집트에서 일어난 사태가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무바락이라는 대통령이 젊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노년이 될수록 권세욕, 물요, 명예욕 등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이름처럼 무턱대고 발악을 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믿음과 소망 과 사랑”을 일컬어 믿음의 삼 요소라고 합니다.
믿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다 알사람은 세상 천지에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 뵈올 그날 까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과 함께 건전한 교훈을 배우고 실천하는 믿음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배움에는 연령의 제한이 없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해야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너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경험한 성도들의 삶에 나타나는 덕목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인생의 경륜이 많으신 분들입니다. 현실 앞에서 절망하거나 자포자기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인내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연세 높으신 남자 성도님들이 이런 신앙을 갖고 사실 때 여러분은 물론 후손들은 물론 섬기시는 교회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크게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절제하는 신앙 생활을 합니까? 행동과 말이 어떻습니까?
나는 위엄이 있고 신중한 삶을 추구합니까? 그냥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분별없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나의 믿음은 성장해갑니까? 실천되는 사랑입니까? 사랑은 하지 않고 받기만 바라는 것은 아닙니까?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내 포기하거나 절망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나이 많이 드신 여 성도님 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3절에서 다음 몇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행실을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행실이 존경 받을만한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참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참소한다는 말은 ‘남을 헐뜯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덕이 되고 상대를 세워주고 힘을 주는 말이 아닙니다. 쏘아 붙이고, 비웃고, 헐뜯어서, 본인은 물론 주위에 해를 끼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디모데 후서 2장 16절을 보면 “속된 잡담’을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그레데 섬에 사는 나이 많은 여자분들이 아마도 술에 인 박힌 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이 교회에 와서 신자가 된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 다 자라고, 시간이 있으니 자연히 사람들과 만나면 옛 날로 돌아가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교인들 흉을 보고 주님의 일꾼들을 흉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술은 끊었지만 그 세상의 습관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는 천사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집에서나 세상 친구들 만나면, 세상 사람과 별 다르지 않게 옛 본성대로 살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3초의 말로 한 사람의 일생을 황폐하게 하기도 하고 기름지게도 합니다.
반대로 선한 것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가르치는 일에는 물론 지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민 교육 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신명기 6장을 보면, 먼저 부모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가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날에는 모범을 보이는 실제적인 기독교 교육이 그 어느 시대보다 시급한 때입니다. 이런 때에 연세 드신 여 성도님들이 주님 사랑과 삶의 언어와 행실을 보여 줌으로써 다음 세대가 주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성도님 여러분!
이런 결심을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주님의 딸로서 행실이 거룩한 삶을 살겠다.
나는 주님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고, 이웃에 덕을 세우며 힘을 주는 언어 행실을 하겠다. 내게 술처럼 인박힌 습관을 발견하고 옛 것을 벗어 던지겠다. 그리고 나의 언어 행실로 다음 세대에게 본을 보여 주겠다.고 말입니다.
주여!
이런 결심을 하시는 성도님들을 도와 주셔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나이 많으신 남자 성도님들, 여자 성도님들이 이상의 교훈을 받아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하시면서 하실 일은 무엇입니까?
 
셋째로,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요즈음 연세 드신 분들이 젊은 남자나 여자 성도님들을 만날 기회가 적습니다. 젊은이들이 연세 드신 분들의 믿음과 정절과 말을 보고 배울 기회가 적습니다 .
 
제가 청년 시절에 청년회 임원을 할 때의 일을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청년회 봉사부장을 할 때인데, 교회 봉사부 모임이 있니 꼭 참석해서 청년들의 의견을 달라는 연락이 옵니다. 참석해서 회의를 진행하시면서 교회의 일을 서로 나누어 감당하시고, 때로는 청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는가를 물으셨습니다. 제가 전도부장을 할 때도 똑같이 전도부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는 교회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을 통해서 신앙 생활의 진면목을 많이 목격하고 옷깃을 여미었습니다. 저가 신학교에 가기 전에 고등분 반사를 하고, 집 사람은 유년부 반사를 했습니다. 사실 지도 목사님 못지 않게 30년 40년을 근속하시면서 가르치시는 머리가 하얀 어르신네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분과 같이 주님을 사랑하면서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많이 다짐했습니다.
 
5,6절을 보면, 이런 어른들을 통해서 젊은 남녀들이 ‘신중한 사람’이 됩니다. 순간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분별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은 전파됩니다.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주 안에서 사랑하도록 훈련하고, 자녀들은 주 안에서 사랑하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름다운 가정, 이런 건강한 가정들이 모인 교회를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중대한 일은 한 목회자만의 사역이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연세 드신 성도님들이 하실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5절 하반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들 때문에 영광 받지 못하십니까? 세상사람들이 우리들이 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경멸합니다. “예수 믿는 것들이” “입만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얼마나 더 들어야 합니까?
 
이 시간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도록 마음을 모읍시다. 남자 성도님들은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이 흔들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연세 높으신 여성도님들도 행실이 거룩하기를 바랍니다. 험담이 없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임마누엘 장로교회 에녹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편 71편 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 저자의 소원이 저와 여러분들의 소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시편 92편 12-14절을 읽을 때에 자세히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라.”
 
주 안에 심기신 백향목 같으신 에녹회 여러분!
주님이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게 됩니다. “어떻게 입니다.”
“주여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기도가 각자마다 이 에녹회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25 힘을 내십시오.
234 너희 인생이 무엇이뇨? 야고보서 4:14
233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11:17-37
232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6:21-28
231 노년기와 신앙생활 디도서 2:1-4
230 살았으나 죽은 교회 요한 계시록 3:1-6
229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 마태복음 16:21-28
228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영적 책임 신명기 65:1-9
227 에벤에셀 사무엘 상 7:2-14
22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태복음 6:5-15
224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3) 에베소서 3:1-13
223 일어나라 전하라 이사야 59:16-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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