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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으나 죽은 교회
요한 계시록 3:1-6
어떤 사냥꾼이 있었는데, 그 사냥꾼이 독수리를 잡으려고 화살을 겨누면서 독수리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자신이 곧 죽을 줄도 모르고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았더니, 독수리는 뱀을 잡아 먹으려고 뱀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냥꾼은 또 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뱀도 어딘가를 노려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꼼짝도 하지 않고 개구리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또 개구리도 마찬 가지로 꿈쩍 않고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데, 개구리는 무당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무당벌레를 노려보았습니다. 무당벌레도 꼼짝 않고 있었는데,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으려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이 먹이 사슬을 보다가 슬그머니 활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혹시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노려보는 것이 없을까 살핀 것입니다. 사냥꾼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냥꾼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류의 최대의 적을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세상 역사상 예수님을 제외하고 누구나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인간이 영원한 멸망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 죽음은 죄로 인하여 들어왔습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죄를 제하여 버리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데,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권세에서 벋어날 수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죽으시고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으니 주님의 자녀 된 우리들도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의 영광으로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제자들의 복음전도의 핵심은 고전 15장 3,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것이 우리들이 가진 복음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한 결과 아시아에 대표적인 7교회가 설립된 것을 기초로 기록된 것입니다. 2장 1절 이하를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아시아의 7교회를 불 꽃 같은 눈으로 살펴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돌아보시며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실 줄 압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아시아의 7 교회를 보시면서 칭찬도 하시고 경고도 하셨습니다. 니골라 당이라는 이단과 이세벨을 쫓아 교회의 순수성을 잃는 문제 또는 무기력과 사랑을 잊어버린 교회들로 전락하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사도들이 또는 부활의 증인들과 그들의 전도를 받아서 세워진지 수십 년밖에 안된 교회들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분명한 것은 교회가 늘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의 권능을 강조하지 않으면 어느 사이엔가 변질되어 교회 본연의 자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데 교회는 지금의 터키 지방에 있었습니다. 양털 생산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점령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곽이 견고했습니다. 전쟁이 많은 그 시대에 단 2번만 점령당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조건들이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빈사상태에 이르게 된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예배의 의식은 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있었겠지만 참된 신앙의 열매들이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갈증이나 생동감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교회가 어떻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1. 깨어있기를 원하셨습니다.

2절에서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여기서 ”일깨워라“는 말은 현재형입니다. 즉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즉 그들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깊이 깨닫고 경각심을 가지라는 엄중한 명령의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믿는 자라도 미혹하려고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 기억하십시다. 형식적인 교회 생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면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보실 때 외형적인 신앙은 있었지만 행위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입으로 만 주여! 주여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앙 생활은 입과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조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신 것처럼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 하시도록 모셔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모셔들여 사는 성도들에게 나타는 2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 계명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마태복음 22장 37절 이하의 말씀을 잘 아시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로 사는 것입니다. 아멘! 사랑은 관심입니다. 사랑은 삶의 의미와 초점을 그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 사명’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언제인가 재림하셔서 이 명령에 대한 우리들의 순종에 대해서 평가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얻고, 가르치고 양육하여 세우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준비시켜서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키우는 일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이상의 ‘대 계명’과 ‘대 사명’을 기억하고 삶에 적용해 나가는 분들은 분명히 깨어 행함이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모여야 건강한 교회 비젼이 있는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뉴저지 임마누엘 선교 교회의 꿈이 무엇입니까?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이 어떤 칭찬을 해 주시기를 기대하십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사데 교회가 깨어나기 위해서 할 일은 무엇일까요?


2. 회개해야 합니다(3).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들었는지‘라는 말씀은 어느 한 시점에 명확히 들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언제인가 과거에 구원의 복음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받았으며”라는 말씀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받아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지키어”라는 말씀은 현재 명령형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에 다시 한 번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즉 확실한 회개를 하라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회개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교회 나오는 분들도 점차 그렇게되는 것 같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를 싫어했습니다. 세례 요한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래도 선지자들과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첫 메시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 하셨습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과 같은데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한번 깊이 우리를 살펴보십시다. 우리들이 어느 사이엔가 형식적이고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영혼 구원과 영적 성장의 욕구가 사라져버리지는 않았습니까? 회개 합시다. 어디서부터 그렇게 되었는가를 점검하십시다. 바쁘기 때문입니까? 명예와 부 때문입니까? 아니면 게으름 대문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보시기에 내가 회개할 부분은 어느 것이라고 하실까요?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도적같이 즉 불시에 심판하러 오십니다. 사실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모릅니다.

언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지 압니까? 3. 바른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약속은 무엇입니까? 사데 교회와 같은 분위기에 있는 교인들 가운데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데 에서는 그 의보기 더러운 자는 시민 명부에서 삭제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더럽다”는 것은 그 당시 이교도의 생활과 혼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순결성을 잃어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는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살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성도들이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흰 옷이란 “하나님의 의” ‘생명“ ”승리“ ”영광“을 의미합니다. 이 흰 옷은 순전히 예수님의 피의 공로에 의해 신실한 성도들이 입을 것입니다. 더욱이 흰 옷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새 사람 된 표시입니다(엡 4:24). 흰 옷 입을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감사하며 살고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며 동행한 성도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 번째로 주신 약속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어 영생을 소유한 자는 그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죽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생명으로부터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믿으십니까?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영원한 보증이십니다(출 32:32). 주님의 다른 또 하나의 약속은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시인 한다”는 말은 법정에서 진술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법적 구속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그 천사들 앞에서 우리의 이름은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인정받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들이 시민권 선서를 할 때 우리의 이름을 법원 서기가 부르지 않습니까? 이것은 즉 미국이 나를 시민권자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얼마나 좋은 약속입니까? 누가 약속하셨습니까? 이 세상의 날이 짧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이 주님과 흰 옷을 입고 천국을 거닐 그 날이 있을 것입니다. 생명책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기록된 분들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시인할 영광스런 그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십니까?

그러시다면, 몇 가지 점검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지금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합니까? 만일에 아니라면 이 부활절에 영육이 깨어나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마땅히 회개 할 것은 없습니까? 만일에 아니라면 ---. 요한 1서 1장 9절을 기억하시지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대 사명과 대 계명을 머리로만 아니라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생활 가운데 순종하십니까?

내가 미워하는 원수진 사람은 없습니까? 돌아보아야 하는 데 무관심한 사람은 없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어느 사이에 희미해 진 분은 안계십니까? 만일에 계시다면 이 부활절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살아나는 가슴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세상의 삶에 유혹과 시험이 많습니다. 마귀의 궤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힘으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받아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승리의 생활을 살다가 영광의 하늘나라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영원히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환난과 질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길 수 있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노라.”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임마누엘 교회에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25 힘을 내십시오.
234 너희 인생이 무엇이뇨? 야고보서 4:14
233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11:17-37
232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6:21-28
231 노년기와 신앙생활 디도서 2:1-4
230 살았으나 죽은 교회 요한 계시록 3:1-6
229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 마태복음 16:21-28
228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영적 책임 신명기 65:1-9
227 에벤에셀 사무엘 상 7:2-14
22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태복음 6:5-15
224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3) 에베소서 3:1-13
223 일어나라 전하라 이사야 59:16-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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