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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적 편지나 카드를 자주 쓰는 나로서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주소를 쓰는 것만 해결되어도 시간이 절약된다. 여러 통의 편지에 수신자의 주소를 쓰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데, 작은 글씨로 내 주소를 반복해서 쓰지 않기 위해서 전에는 스티커로 된 저렴한 네임 레이블을 주문해서 썼다.
   아들이 이락 전투에 파병 되었을 때라고 기억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면 우연히 연결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즈음에 DAV 라는 미국 상이군경 단체에서 후원을 요청하는 인쇄물과 함께, 친절하게도 내 이름과 그 당시 내가 살던 곳의 주소로 인쇄 된 네임 레이블이 동봉되어 왔다. 외국에 파병된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 때부터 얼마 전까지 정기적으로 후원을 했다. 아들에 대한 마음 때문만이 아니라, 나도 젊은 시절에 한국군으로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경험이 있어서 적은 금액이라도 상이용사들을 돕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DAV를 후원한지 약 2년 후부터 다른 여러 전상자들을 돕는 단체들에서 우편물이 오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물건과 함께 보내는 편지에는 거의 예외 없이 네임 레이블이 약방의 감초처럼 꼭 같이 왔다. 그 후에는 미국의 이곳 저 곳에 있는 여러 원주민 학교들에서도 오고, 병원에서도 오고, 지역 사회에 있는 여러 구호단체며, 빈곤한 사람들에게 식품을 공급하는 Second Harvest, 구세군, HABITAT, KQED 공영 방송국, 미국 성서 공회에서 군인들에게 성경 보내기 운동 홍보, 미국 치매 협회, 미국 심장 협회 등 약 30 여 군데서 쉴 사이 없이 오는 홍보물들을 하루에도 몇 통을 받는 날이 많다.
   이런 단체에서 보낸 네임 레이블은 이제 너무나 많아서 여러 큰 봉투에 가득가득 모아두고 있다. 나의 남은 날들이 얼마일지는 몰라도 같은 주소에서만 산다면 수 십 년을 쓰고도 남을 것 같다. 그 외에 작은 메모지, 달력 또는 수건, 양말, 볼펜 등등의 선물도 함께 오기도 한다. 이런 물건을 받으면 마음이 약해져서 적은 액수라도 후원금을 보내왔다. 그러나 머지 않아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난 해에는 한 달에 한 곳을 정해서 후원을 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못 보내는 다른 단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단체들을 다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 나로서는 돕는 단체들을 정리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년부터는 내가 사는 도시의 구호 단체인 City Team, 구세군, 내가 속한교단의 구호사업, Compassion, Second Harvest 같이 재정 사용이 투명하고 또 확인할 수 있는 단체와 연결하여 적은 금액이라도 계속 후원하고자 한다. 공교롭게도 이상에 열거한 단체는 네임 레이블이나 선물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정확한 보고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재정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도표들도 보낸다. 내가 잘 결정한 것인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내게 오는 모든 단체들을 다 도울만한 여유가 있지도 않고, 내가 보낸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른 체, 네임 레이블이나 다른 선물들이 온다고 해서 미안한 마음에 할 수 없이 한다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내게 계속해서 후원금을 요청하는 단체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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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한 번도 못본 국군 전사자 유해
87 ​한 번도 듣지 못했던 한국 전쟁에
86 ​대기의 강 (Atmospheric River)
85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84 이름 없는 비석
83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의 끝자락에서
82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OOO.
81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올림픽
80 내가 겪은COVID-19으로 인한 변화
79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뜻 깊은 생일
78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휄로십 프라자의 겨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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