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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벌 옷 갖기의 어려움
우리 주님께서 전도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에,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마가 6:9)고 하셨다. 내가 매우 존경하는 목사님은 이 말씀을 그대로 따르시기 위하여 애쓰신 분이시다. 내가 청년 때에 목사님을 모시고 청년 모임을 가진 후에, 벗어 놓으신 외투를 다시 입으실 때에 거든적이 있다. 그 때에 매우 놀란 것은 외투가 매우 오래 되어 옷깃이 흐늘흐늘한 젓이 아닌가? 장갑도 손녀 따님이 짜준 털실 장갑을 끼시고 추운 겨울을 지내셨고, 모자는 오래 된 털 모자를 쓰시고 교회 학교로 가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격려하셨다.
나는 목사님의 그 깨끗하고 단순한 삶, 청빈한 삶을 배우고 싶었다. 그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 많은 분들이 추억하며 보낸 글들을 모아 출판된 책의 이름은 ‘아름다운 빈손’ 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내가 그 목사님과 비교될 만한 인간은 아니지만, 나도 세상을 떠나면, 나의 삶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삼십 여년 이상 이민 목회를 하면서 경제적 여유를 가진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고 밥을 굶은 것은 아니다. 일하는 소에 망을 씌우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일꾼인 나에게도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거처를 주셨음에 머리 숙여 감사한다.
그런데, 존경하는 목사님의 뒤를 따라 두 벌 옷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교인들 가운데, 자기가 신사복을 살 때에 나를 기억하고 나의 체형에 맞는 옷을 아예 사서 선물을 하시는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한사코 사양해도, 안 맞으면 반품하면 된다고 하시면서 놓고 가신다. 집 사람과 반품을 의논해 보면 성의로 가져 오신 것을 반품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충고를 듣곤 했다. 그래서 목회에서 은퇴한지 여러 해 된 지금까지 입는 옷들 가운데 두어 벌이 남아 있다.
한 20여년 전에 교인 가운데, 아버지가 미국에 사실 때에 입으셨던 옷인데, 고국에 가셔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면서 나와 체격이 거의 같다고 하면서 입으셨던 옷이며, 구두를 가져온 분도 계셨다. 지난 해 까지도 그 분이 주신 옷을 잘 입었다. 그러니 두 벌 옷을 가지고 살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 해 가을 오래 전에 세례를 집례해 준 집사님이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식에 참석해서 순서 중 하나를 맡은 적이 있었다. 오십 세가 넘으셔서 예수님을 영접하셨고, 내가 교단 사역을 위해 개척한 교회를 떠난 후에도신앙 생활을 잘 하셔서 집사가 되신 분이시다. 따님 또한 아버지 보더 조금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여 내가 세례를 집례한 귀한 분이다. 돌아가신 분의 부인은 새벽 기도회에 목사님보다 먼저 교회당에 오셔서 문을 여시는 집사님되셨다.
어느 날 집에 가니, 집 사람이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돌아가신 박 집사님의 부인이신 집사님이 다녀가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상을 떠나신 집사님이 입으시던 신사복이 여러 벌인데, 구입하신 후에 건강이 악화되여 안 입으신 옷들과 조금 밖에 입지 않으셔서 거의 새것 같은 신사복을 여러 벌 세탁을 해서 가져 오셨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분도 나와 비슷한 체격이셨기 때문에 따님이 이야기 하기를 “ 이 목사님이 입으셨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면서, “목사님께서 아버지에게 세례를 베푸신 분이시기에 기쁘게 받아 입으실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신 집사님이 일본식당의 ‘스시 맨’이셔서 생선 비린내를 손에서 제거하기 위하여 좋은 향수를 사용하신 것 같다. 신사복들과 함께 값비싼 향수도 여러 병을 받았다. 나로서는 한 번도 향수를 산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늙은 목사가 고급 향수 냄새를 풍기고 다니게 되었으니…. 옷을 주고 가신 집사님 덕분에 두 벌 옷 입기가 또 뒷 날로 연기 되었지만, 주일이면 주신 옷을 입고 교회를 가면서 주신 향수를 조금 뿌리고 아파트를 나선다.
(주후 2014년 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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