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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바람을 뚫고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 39년만에 가장 가문 겨울을 지내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가을 이후에 한 번 밖에 비가 온 적이 없다. 정말로 건조한 겨울을 지내고 있다. 날씨는 좋지만 비와 눈이 없는 겨울은 메마른 대지와 풀 죽은 나무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니 마음이 언잖다. 그래서 아침 저녁 걸으면서 하늘을 보면 “하나님 비를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23일 아침 7시 30분에 베다니 교회 교우이신 집사님이 몰고 오신 차로 그 분의 아버님이 계신 양로병원으로 갔다. 집사님의 아버님은 목사님이셨는데 금년에 만 91세가 되셨다. 약 7년전에 건강이 좋지않으셔서, 양로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약 1년 전 부터는 완전히 거동을 하실 수 없게 되셨고, 식사도 하실 수 없게 되셔서 배에 호스를 달아서 영양제로 된 음식을 공급하셔야 할 만큼 힘들어 지셨다. 아드님 되시는 집사님과 함께 심방항 때나, 때로는 집사님이 출타중이셔서 문병을 가시지 못할 경우에 나 혼자서 가보면, 그냥 누워만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안쓰러운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집사님의 어머님도 연세가 아주 높으신데 신장이 좋지 않으신데다가 치매 초기 증세가 오기 시작하여 약을 드시는 것이나, 식사하는 것등을 잊어 버리셔서 건강이 점차 악화가 되셨다. 하는 수 없이 사모님이 신장 수술을 받으시고 투석을 시작하셨다. 남가주에 따님들이 계시는데, 어머니를 남가주에 있는 양로병원으로 모시고자 하여 알아 보신 결과 시설이 좋고, 한국 노인들만 계시는 기독교 양로원으로 옮기셨다.
아드님 되시는 집사님과 내가 목사님을 방문할 때면, 일 주일에 한 두 번, 몇 시간씩 사모님과 함께 있으셨던 것을 기억하시는 목사님께서, 사모님이 남가주로 내려가신 후에는 사모님을 뵙지 못하시자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시기 시작하셨다. 아드님에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가를 묻곤 하시는 것을 내가 방문 할 때에 아드님에게 여러번 물으시는 것을 보았다. 옆에서 지켜 보다가, 나도 아드님을 거들어 주고 싶어서, 아주 먼 곳에 계셔서 오시지 못하시지만 건강하게 지내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래도 목사님은 믿지를 않으셨다.
아드님 형제들이 목사님의 일을 의논하여 사모님이 계신 곳에서 약 10여 분 떨어진 양로병원을 찾았다. 그곳은 목사님과 같이 상태가 중하신 분들을 받는 양로 병원인데, 입주 허락이 나서 목사님을 모시고 내려가게 되었다. 바로 23일 아버님이 지난 7년간 계셨던 곳을 떠나시게 된 것이다. 그 곳을 떠나면서 목사님에게 “사모님이 남가주에 있는 곳으로 내려가신다”는 말씀을 드리고 아버님을 차에 모셨다.
아버님을 혼자 모시고 차로 먼 길을 가시는 집사님에게 말 동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자원해서 집사님과 함께 남가주로 가겠다고 해서 집사님이 내가 사는 아파트로 오셨고, 양로병원을 들려서 남가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101 남쪽 방향을 티고 152번 동편 길을 타고 가다 보면 아주 큰 저수지가 있는데 거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말랐다. 산과 들이 지금쯤이면 녹색의 향연을 벌릴 때인데, 그냥 누렇게 마른 갈대만 날리고, 소나 말을 방목하는 산은 가축들이 뜯어 먹을 대로 뜯어 먹어서 민둥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네바다 주에 사는 아들네 집을 갈 때만 해도 살아 있던 참나무들이 메마른라 고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 땅을 고쳐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산호세에서5번 남향으로 약3 시간 정도를 내려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길을 재촉했다. 왜냐하면 목사님이 환자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한 양로 병원으로 빨리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그곳을 떠나서 30여 분 정도를 내려오니 점차 앞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차들이 거북이 기어가듯 하면서 비상등을 켜고 가야만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대낮에 짖은 안개가 낀 것은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 시야를 가리는가 궁금했다. 막상 닥치고 보니 양쪽 들판을 흝고 지나가는 바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황사가 날리는 것이다. 정말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황사 바람이 약 한 시간 동안이나 유리창을 때리고 지나갔다. 먼지와 모래가 세차게 날리면 자동차에 좋을리가 없다. 내가 5번 프리웨이로 남가주를 수 없이 많이 다녔지만 이런 현상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비가 오지 않아서 양 옆에 있는 넓디 넓은 황야에 습기가 없어 메마른 땅에 바람이 불자 이세한 토양이 먼지처럼 날리는 것이다. 자연히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인 양로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고 약 40분정도 늦었다. 목사님도 누우셔서 지루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워낙 남가주의 고속도로 체증과 황사먼지로 인한 이유 때문이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사무실에 전화를 거니 한국 간호사 한 분이 반갑게 나와서 맞아 주셨다. 조금 있다가 조이(JOY)라는 소시얼 워커가 반갑게 뛰어 나오면서 “먼 길에 오시느라 수고하셨다.”고 하면서 반기는 것이 아닌가. 이 분은 한국분이 아니신데 한국말을 잘하셨다. 아침에 떠나온 양로 병원은 인원이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일에 지쳐서인지 수고하시는 분들의 표정이 무뚝뚝했는데, 정말로 정 반대였다. 목사님을 휠체어에 모시는 일을 돕고자 건장하게 생긴 필립핀계 청년도 씩씩하고 친절했다. 무엇보다도 처음 만난 세 분이 쾌할했고 친절하게 웃으면서 맞아 주어서 기뻤다.
목사님을 침대에 뉘이시니, 첫 말씀이 사모님이 왜 없으시냐는 것이었다. 이 병원이 아닌 다른 곳이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못오시고 다음에 오신다고 하시니 목사님이 매우 서운해 하셨다. 목사님은 자꾸 사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속이고 있다고 하셔서, 나도 그렇지 않으니 하루만 참으시면 된다고 간곡히 말씀드렸지만 믿으려하지 않으셨다.
집사님께어 아버지 목사님에 관한 모든 서류들에 서명하시고 아버님에 대한 모든 사항을 인계하는 동안에 잠시 목사님과 함께 있을 때에, 목사님의 옷을 갈아 입히실 분, 침대를 바꾸러 오실 분들, 간단한 상태 점검을 하실 분들이 참으로 환자에게 친절하셨다. 그 양로병원에 계신 분들 가운데 한국분들이 많으셔서 한국 사람이 아닌 간호사나 일하시는 분들도 왼만한 한국 말을 하시면서 환자들을 돌보시는 모습이 이채로왔다. 언어가 부자유하신 목사님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사님의 몸무계를 다는 일등은 내가 있지 않는 것이 좋을 것같아서 로비로 가서 앉아 있었는데, 일하는 분들은 지나가면서 가벼운 인사도 하고, 리셉션을 하시는 미국 아주머니는 나에게 커피를 권하셨다. 사실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이지만, 친절에 감사해서 한 잔을 따라 마시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일 새벽 3시 경에나 집에 갈 것을 생각하고 집사님과 장거리를 번갈아 가면서 운전하려면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기도 해서였다. 집사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셨을 때쯤에 누이 동생되시는 분이 오셔서 목사님을 뵙고 인사를 나누신 후에 누워 계신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나오면서 처음 마중 나와 주셨던 한국 간호사와 쇼셜 워커인 자매님이 잘 가라고 또 인사를 하기 위해서 나와 악수를 청해서 인사를 나누고 문으로 가는데 JOY 자매가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음료수 물병 두 개를 가지고 뚸어나오면서 먼 길에 가시면서 마시라는 것이었다. 소자에게 ‘냉수를 대접하는 것’까지도 하늘에서 상이 있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이름 그대로 친절과 기쁨이 몸에 밴 자매님의 선한 영향이 주위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 번져 가는 것 같았다.
사모님이 계신 곳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므로, 계신 양로 병원으로 향하였다. 정말로 잘 정리된 양로 병원이었다. 그 곳에 계시는 분 전체가 한국 분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자연히 음식도 우리 음식을 드시고 언어 소통이 참 잘 되어서 좋다고 하신다. 투석을 받으신 후에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사모님을 뵙자 마자 혈색이 많이 좋아지신 것을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치매가 시작되셨지만, 나를 알아 보시고 매우 반가워 하셨다. 함께 간 누이동생과 남편 그리고 집사님과 내가 사모님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에 작별 인사를 드리고 방을 나서니 사모님께서 휠체어를 타시고 문까지 나오셔서 우리들이 탄 차가 떠나기까지 손을 흔드시고 계셨다.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아주 좋은 시설과 친절하신 분들이 일하는 곳에 계시게 인도하시고, 두 따님이 가까이 사시는 곳으로 목사님과 사모님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 곳을 떠나 집사님의 두 따님이 있는 L.A를 들려서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 후에 떠난 시간은 오후 8시 반이었다.
(주후 2014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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