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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 코헬로
노인 아파트을 주민들을 위해 수고한 분을 추모하며.
 매리 코헬로(Mrs. Mary C. Coehlo)
 
우리 부부가 2012년 12월 지금 사는 노인 아파트에 왔을 때에, A동 201호에 이사 왔느냐고 밝에 웃으면서 묻고는 자기를 소개한 백인 할머니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들어간 아파트에 바이올라 화이트(Mrs, Viola White)라는 할머니가 살았는데, 아리조나에 사는 아들이 모시고 갔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할머니가 약 100세 가까이 되셨는데, 이 지역에서 사시는 80여세 되신 따님이 어머니를 돌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드님이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리가 이 노인 아파트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분을 볼 때면, 어떤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예감이 들지만 늘 밝게 웃고 명랑하게 생활을 하신 분이다. 알고보니 암으로 수술을 하고 힘든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셨다. 그런 가운데서도 잔잔하게 웃고 격려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월요일 아침 9시에 아파트 회의실에서 주민들을 위하여 커피와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는 일도 매리가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건강을 가지고서도 아무 내색을 하지 않고… .
 
가끔 지나면서 만나면 늘 오늘 하루가 자기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했다. 점차 야위어 가는 모습이지만, 삶의 마지막 구간을 아름답게 가꾼 분임이 눈에 띄었다. 자연히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자기도 교회를 다녔는데 암이 걸려 치료를 받으면서 출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인상적인 것은 자기에 대하여 숨김 없이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해서 세 딸을 낳았는데 그 중에 뉴욕에 살고 있는 막내 딸은 시각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첫째 딸은 이 지역에 사는데, 고등학교 영어 선생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증손자가 예정일보다 일찍 출생을 해서 걱정이 된다고 하면서 기도를 부탁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말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맏 딸의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에 특별이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다. 한 두어 달 후에 딸이 다 낳아서 매리를 방문하러 왔을 때에, “너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분”이라고 정중히 소개해 주었다.
 
매리는 주민들을 위한 월간 계획표와 뉴스레터를 편집해서 나누는 일도 했다. 콤퓨터 크라스를 만들어서 중국분들과 한국분들을 도우셨다. 이 지역 고등학교에 연락하여 중국어를 하는 학생, 한국어를 하는 학생들 가우데서 자원 봉사자를 찾아서 이곳  도서관에서 가르치게 하였다.  또한 주민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위원회의 회장으로 여러 해를 섬겼다고 한다. 주민들 가운데 매리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헌신적인 섬김에 대하여, 그의 부지런함과 바른 태도에 대해서 입술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자기 몸이 불편하지만, 가능한 한 주민 대표 회의에 참석해서 자기의 경험을 나누고, 협력할 것을 찾아서 따뜻한 손길을 주었다.
 
지난해(2014년) 가을, 내가 사는 노인 아파트에서 매년 실시해 온 그라지 세일(Grage Sale)을 하였다.  매리는 그 때에도 준비 시작부터 끝까지 수고를 많이 하셨다. 특히 신경이 쓰이는 일인 돈을 받는 일을 아주 기쁨으로 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그라지 세일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을 얻게 되어 이곳 주민 활동에 쓰이게 되었다고 환히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라지 세일이 끝나고 몇 개월 안 된 어느 월요일, 늘 웃음으로 맞으면서 커피를 대접하던 매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사무실 직원이 커피를 준비하면서, 매리가 건강상의 문제로 병원에 입원해서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다.
 
 
늘 밝게 웃고 격려의 말을 하던 매리는 그후 여러 달 동안 암으로 인한 합병증 치료
때문에 병원에서 힘든 나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5월 중순에 몸은 많이 야위고 약해졌지만, 다시 매리의 밝고 환한 미소를 볼 수 있게 되어 참 반가웠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조금 낳은 것 같아서 퇴원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밝은 햇볕을 받으면서 걸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그 분이 타고 다니는 빨간 승용차가 바로 눈 앞에 보인다. 여러 달 동안 서있던 차가 가끔씩 안 보이니 참으로 기뻤다. 왜냐하면 매리가 볼 일을 보러 다닌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전에는 없었던 장애 운전자들을 위한 표시를 걸게 되었지만….  그런데 한 3주 정도 지나서 매리가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7월 1일 새벽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시신은 화장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주민회 대표가 긴급이 주민 대표회의를 소집했고, 가족과 의논해서 매리의 추모회를 아파트에 있는 큰 홀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위원회의 경비로 매리의 가족들과 조문객들을 위한 점심을 마련해서 대덥하기로 했다. 바로 7월 11일 오전 10시 30여명의 가족과 매리를 기억하고 아끼던 주민들 함께 모였다. 내가 놀란 것은 영어로 진행되는 추모회에 주민 약 170여명 이상이 참석한 것이다. 이 아파트의 역사에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주민이었던 사람을 위하여 주민 회의가 추모식을 해 주는 것과 주민의 2/3 정도가 모여 애도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매리를 추모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매우 인상적인 사람의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중국 할머니였는데, 떠듬떠듬 영어로 매리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많지만, 한 가지를 말하겠다고 하면서, 14년 전에 자기가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서툴게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게 적발되어 티켓을 받았다고 한다. 법원에 갈 것이 걱정도 되고 영어도 안 되는 것은 물론, 법원 출두일이 자기가 부득이 자기 나라를 방문해야 하는 기간과 겹쳐있으니 난감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매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영장을 보고 법원에 전화를 걸어서 자기가 귀국한 후로 연기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귀국 후에 법원에 가야하는데,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도 안통할테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매리가 “내가 너와 함께 법원에 가줄께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힘을 얻었다는 말을 하면서 울먹였다.
 
그렇다! 매리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매리의 따뜻했던 표정과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매리의 추모식에는 영정도 없이 기념되는 사진들이 전시 되어 있을 뿐이었다.
 
매리는 만 81살을 일기로 뉴욕에서 나서 캘리포니아 사라토가시에 위치한 휄로십 프라자A동 305호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 아름다운 미소를 세계 곳곳에서 온 주민들의 가슴에 남기고서… .
 
 
(주후 2015년 7월 14일)
Number Title Reference
35 누렇게 변한 잔디밭 캘리포니아의 심각한 가뭄 현상.
34 매리 코헬로 노인 아파트을 주민들을 위해 수고한 분을 추모하며.
33 신기록
32 붉은 선인장 꽃 한 송이
31 영웅 외손녀 나오미의 작문
29 봄이 보여주는 향연을 보면서
28 기분이 이상해요. 외손녀인 캐리스와 함께하며...
27 천정에 드리워진 십자가
26 성탄절 즈음에 있었던 일들
25 그라지 세일
24 웬 새둥지가!
23 할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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