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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보 장학생 선발
23년전 그 때의 일을 기억하며
킴보 장학생 선발.


오늘 아침 출근 길에 잠시 한국 수퍼마켓을 들렸다. 같은 사무실 내에서 다른 방을 쓰시면서 사업을 운영하시는 분의 연로하신 부모님께 드릴 과일을 사기 위해서였다.
 
고국에서 오신 부모님은 구십세가 가까우신 어른이시다. 지난 토요일 오래 전에 나와 함께 ‘풍요로운 삶’이라는 책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셨던 장로님 부부가 오래간만에 만나자고 해서, 식사를 대접 받았다. 집을 가려고 나섰을 때에, 잠시 자동차로 가자고 하시더니, 갖 출하한 신선한 참외 한 상자를 선물로 주셨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아주 잘 익고 신선한 참외가 황금 빛을 띠고 가즈런히 놓여 있었다.
너무 맛이 있을 것 같아서, 하나를 꺼내 반을 잘라서 깎아 먹었다. 과연 신선도가 뛰어났고, 당도도 적당해서 맛 있게 먹었다.
 
어르신께 드리기 위해서 나도 신선한 참외 한 상자를 사서 나오는데, 신문 가판대 옆에, 날자가 지난 신문을 바닥에 내려놓은 것을 보면서 지나치다가, 내 눈길이 멈춘 기사가 있어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신문 앞 면 알림 난에. ‘2016 킴보 장학생 선발’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올해에는 200명의 장학생에게 2000 달라씩 총 40만 달라의 장학금을 지급하게 된다고 하면서, 인종화합을 위해 흑인 커뮤니티와 히스패닉 커뮤니티에서도 각각 5명씩의 장학생을 선발한다고 하는 기사였다. 장학생 선발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뉴욕, 애틀란다 등지에서 이백 명을 선발하게 된다고 한다.
 
이 기사을 몇 번 읽게 된 동기는 내 딸아이가 대학을 간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때에 가졌던 감사한 마음 때문이다. 벌써 23년 전 일이지만, 대학을 가는 딸 아이에게 장학생 선발에 대한 기사를 읽고, 서류를 제출하게 했다. 신문사에서 심사를 한 후에 장학금 1000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 당시 1000불이면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산프란시스코 지역에서 20명,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2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장학금을 전달하신 신문사 사장님이 장학금 기여자이신 김 선생님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도 귀에 생생하다. 이 장학금을 지급하신 분은 그 당시에도 연세가 많다고 하셨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한 선한 일에 대한 과대 평가를 받는 것이 싫다고 하시면서, 자기 대신에 사장님께 장학금 전달을 부탁하신다고 하셨다. 사장님께서 김 선생님의 댁에 장학생 선발에 대하여 보고도 하고, 금액을 수령하기 위해서 댁을 방문할 때마다 큰 감동을 받고 오신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한 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변변한 가구 하나도 없게 사시면서 거금의 장학금을 기탁하신다고 하셨다. 금년이 29회이니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하신 귀한 분이심에, 마음 깊이 존경해 마지 않는다. 몇 푼 않되는 돈을 기증하면서 신문에 대문짝만한 사진을 실려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장학금을 주시는 김 선생님은 아주 오래 전에 미국에 오셔서 고생고생하시면서 공부를 하셨고, 사진업에 종사하시면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근검절약하시면서 돈을 모으셨다는 것이다. 그 어르신이 버신 모든 돈을 은행에 넣어서 매년 이자를 장학금으로 내어놓으신다는 것이다.
 
23년 전에 매 4만불의 장학금이 오늘 날에는 년 40만 달라를 지불하게 되셨다니!
참으로 놀랍다. 선한 일에 힘쓰신 선생님의 일에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 주신 것으로 믿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의 삶에 땀과 눈물로 젖은 귀한 재물을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아낌없이 다 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그 후손들이 계시다면 그들에게 더 큰 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한다.
 
내 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잘하다가 결혼해서 지금은 세 자녀의 어머니가 되었지만, 그 과정에는 아낌없이, 보이지 않게 장학금을 지급하신 귀한 어르신들의 격려와 사랑의 밑거름이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 당시 딸 아이를 멀리 떨어진 동부에 있는 대학으로 보내면서도 변변히 준비해서 보낼 수 없는 어려웠던 환경에서 1000불의 장하금은, 액수로 계산할 수 없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그 기사를 읽고나서, 기사가 기재된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내 딸아이가 23년전에 1000불의 장학금을 받았음에 대한 감사와 그런 어른의 꿈나무들을 위한 아낌없는 희생에 대한 감동을 전달하고자 함이었다. 신문사에 계신 분과 전화를 하다가 어느 사이엔가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고, 목소리는 떨려서 가까스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김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의 크신 희생과 사랑은 역사 위에,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는 세대들을 낳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런 역사가 이어질 것입니다!


(201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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