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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든지, 안 오든지
비가 오든지, 안 오든지
 
내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끔 받는 질문은 “어떻게 건강을 관리하느냐?” “몇 살이냐?” “먹는 약은 없느냐?”는 등등의 질문을 받는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것일까?
 
나는 만 62세때에 실제적으로 목회를 은퇴했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원하는 동역자들을 도와서 교회 리더십을 세우는 일, 영적 건강을 위한 강의와 세미나 또는 멘토링과 TEE 성경공부 인도를 은퇴 이후에도 해오고 있다. 이런 저런 사역으로 활동에서 만난 분들은 잘 하지는 못해도 열정을 가지고 해 보려는 나에 대하여, 아직 60대 초반 정도로 나이를 예측 하시는 분들이 많다.
 
오늘이 내가 만으로 73살이 되는 날이다.
지금까지 그런대로 내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는 어머니가 만 43세에 막내로 낳아주신 분이다. 어머님이 일제시대에 낳으셨기 때문에 오늘날 처럼 영양가 있는 음식이나 임산부가 태아를 위한 관리와 휴식을 하실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고된 일을 하시느라고 육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약골로 태어나 자라났다. 게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에 6,25 사변이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리 형제들은 삼촌 댁에 또는 다른 일가 집에 뿔뿔이 흩어져서 피난 생활을 했다. 전쟁통에 자기 자식들도 먹을 것이 없는데, 얹혀서 지내는 우리들까지 신경을 쓰시기 힘드셨을 것이다. 참으로 배곺은 유년 시절을 지냈다.
 
서울이 수복 되어서 한 교실에 90여명 정도인 초등학교 4학년에 들어갔다(학교가 전쟁중레에 불탄 교실이 많아서 한 학급에 이렇게 많은 학생이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던 집은 불에 타서 재만 남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땅을 파시고 레이션 박스를 뜻어서 지붕을 얹은 지하 공간에서 몇식구가 약 3년을 지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 학교에서 몸무게를 재는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나의 체중은 초등학교 1학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새벽에 노동 시장에 나가셔서 일하시고 받은 돈으로 사오신 식량과 부식으로는 나의 형제들의 건강을 유지 할 수 없는 열악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많이 군대에 입대할 때까지 매년 일주일 정도는 매우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누워있는 때가 한 두 번씩있었다. 몸에 영양분의 부족으로 인해서인지, 몸에는 뾰루지가 계속 나서 곳곳에 고름이 터졌다. 머리는 도장부스럼이 나서 그 당시의 치료약으로 알려진 인주를 발라 군데군데 빨간 색의 머리를 들고 다녔다, 겨울에는 난방이 없으므로 따뜻한 양지에 나와 쭈구리고 앉아 어머니가 언제 먹을 것을 가지고 오실까 하고 기다리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산 중턱에 있었는데, 집에서 그곳까지 약 1.5 마일 정도인데 열심히 걸어서 등교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서 중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집에서 약 4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학교였다.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매일 가방을 들고 걸어서 등교도 하고 하교도 했다. 중학교와 같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에 총 6년을 걸어서 다녔다. 기억나는 것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학급에서 키 순으로 2번 째를 넘은 적이 없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말기부터 갑자기 키가 자랐다. 그래서 졸업식 때에는 20번 정도에 서는 학우의 티를 훌쩍 넘어섰다! 아마도 많이 걷고,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열심히 야구를하고, 또 자주 뛴 것의 효과가 뒤 늦게 나탄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건강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하는 것은, 열악한 환경 때문인지, 군대에 입대할 때까지 일 년에 한 두 번 씩 심하게 아팠던 것이 다 나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에‘마른 멸치 같다’라는 별명이 나에게 붙어다녔다. 그러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비록 작아도 바다를 누빈 고기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 내 체중이 미국에 이민 올 때보다 약 5파운드가 적게 나간다. 지금은 ‘깡’자를  “마른 멸치같다”라고 하는 말 앞에 붙여도  할 말이 없겠다.
 
오늘까지 건강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을 섬기는 한 작은 종으로 불러주시고 사용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만 19살 때에 예수님을 주님을 믿고 산 이후에 나의 시간과 건강과 재물과 재능이 내 것이 아닌 것을 깨닫고, 제대로 하지는 못해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충성스럽게 관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민을 와서는 불규칙하게 걷거나 운동을 해오다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50세가 될 때 부터이다. 경건의 시간을 끝낸 이른 아침에 다른 생각 할 여유 없이 즉시 밖으로 나가 규칙적으로 왕복 3마일 이상의 거리를 속보로 걸었다. 저녁 때에도 그렇게 하다가 지난 해 부터는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서, 저녁에는 아파트에서 아령 들기와 팔 궆혀 펴기등의 가벼운 운동으로 대체했다. 그러니까 내가 만50세 이후에 하루에 줄잡아서 4마일 정도를 23년간 걸었으면, 얼마나 긴 거리일까?
 
지난 해 11월부터 2월 20일 경까지 이곳 북가주에 많은 비가 왔다. 2월에 온 강우량은 지난 120년의 강유량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정말로 비가 예년에 비하여 2 배 이상 왔다.
폭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릴 때에 우산을 받고 걸어도 바지 가랑이는 물에 흥건히 젖기가 일쑤였다. 내가 사는 노인 아파트에는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내가 걷는 이른 아침 시간에 걷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걷는 분이 거의 없다. 연세드신 분이라 힘드시리라 생각한다. 우리 부부가 걸을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일기에 관계없이 걷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마땅히 할 말이 없다. 그냥 걸을 시간이 되면 부부가 차려 입고 나가는 것이다. 습관이 되어 굳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 좋은 답일 것 같다. 계속 반복된 행동이 뇌에 박혀서, 비가 오나 안 오나, 바람불거나 말거나 그냥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매김이 된 것이다. 나만이 아니라 약하던 집 사람도 같이 걸어서 건강이 많이 호전 되었으니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안으랴!
 
나는 가능한 한 소식을 한다. 야채를 주로 섭취하고 일 주일에 한 두 번 고기나 생선을 먹는다. 탄수화물 계통의 음식은 가능한 한 절제한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영양 부족보다는, 과잉 섭취로 인한 부작용이 많다. 적당히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즐거움을 갖고 기쁘게 사는 것이 내가 건강을 보존해 가는 방법이다. 노인학을 연구한 조지 베일런트라는 학자는 행복한 노년의 조건 7 가지에서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그리고 알맞은 체중을 꼽았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에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주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인도하심에 감사하고, 또한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가능한 한 건강한 삶을 살다가 주님께로 가기를 원한다.
 
 
(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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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왕성하게 자라나는 선인장을 보며
58 비가 오든지, 안 오든지
57 120년만에 많음 비가 북가주의 마른 땅을 흠뻑적시고 넘침
56 불꺼진 창 어느 할아버지의 아파트의 창을 보면서
55 특이한 도토리 나무 한 구루
54 여주 한 그루에서.
53 “장하다! 잘했다!”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
52 우리도 부산사람.... '차바' 태풍이 휩쓰고 간 백사장에세
51 방송국 아나운서들 외모를 중요시 하는 고국의 문화
50 미스터 존 제롬(2) 섬기는 사람의 의 표상이 될만한 사람.
49 미스터 존 제롬(1) 참으로 좋은 공무원의 모습
48 리우 올림픽(4) / 문신 올림픽 경기를 참관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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