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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꺼진 창
어느 할아버지의 아파트의 창을 보면서
불꺼진 창
 
몇 달 전,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파킹 랏에 세운 차에서 힘 없이 내려 자기  아파트로 가는 80대 후반의 미국 할아버지가 있었다. 지난 해에 봄 즈음에, 가끔 같이 차를 함께 타고 나가시던 여자분이 계셨는데, 겨우 차고까지 나와서 문을 닫고 차의 문을 닫는 정도의 건강을 가지신 분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 남자분의 부인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 날인가 전혀 함께 차를 타시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분명히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나는 힘 없이 겨우 걸어가시던 그 노인은 돌아가신 부인으로 인하여 상심하셔서 건강이 빨리 쇠잔해지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자분은 부인이 아니라 노인 아파트 같은 건물에서 알고 지내는 여자분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꼭 나가야 되는 일이 있지만, 차편이 없어서 그 할머니에게 편의를 봐 주신 것일 것이다.
 
그 남자 분은 자기가 사는 건물에 있는 세탁기에서 자기의 빨래를 하지 않는 분이시다.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하고 깔끔한 용모를 가지셨고, 의복도 단정히 입고 다니시는 분이셨다. 가끔 차를 타고 나가실 때에, 세탁물을 싸가지고 가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자기 자녀들의 집을 방문하실 때에, 그곳에서 빨래를 해오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사는 노인 아파트에서 백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중국 사람, 러시아 사람, 그리고 한국 사람의 순위로 입주자가 많다. 아마도 그 다음이 히스패닉 사람, 미국 사람 그리고 중동지방에서 온 사람들 순위인 것 같다. 내 짐작으로 200여명의 노인 아파트 주민 가운데서 정작 순수 미국인 입주자는 15명 정도 될 것 같다.
 
내가 사는 아파트 건너편 건물에 마주 보이는 3층 아파트 방은 몇 달째 밤이 되어 어두워도 늘 불이 꺼져있었다. 어떤 분이 이사를 나가면, 다른 입주자가 올 때까지 두어 주 정도는 불이 꺼져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여러 달째 불이 꺼져 있어서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편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파킹 랏에 주차하시고서 힘 없이 걸어서 아프트로 들어 가셨던 그 분의 차가 몇 달째 정차해 있었다. 깔끔하게 세차를 하고 쓰셨던 차에 먼지가 많이 쌓여갔다. 게다가 비가 올 때에 빗줄기가 들이쳐서 보기에 아주 흉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1월 부터는 분명히 이 할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난 달 하순에는 저녁 때에 마주 보이는 3층 아파트에  몇 시간씩 불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 새로 들어온 분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지난 1월 28일(토) 먼지로 뒤덮인 차의 본넷을 열고 시동을 걸려고 노력하는 남자 분과 옆에서 보고 있는 60대의 여자 분이 있었다. 시동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점프케불을 가져와 도와주고자 하여 물어 보았더니, 시동만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문제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궁금하던 차에 차주인 되시는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어 보았다. 그 여자분은 자신이 그 분의 딸이라고 하면서 여러 달 노인 병원에서 치료을 받으셔서 조금 낳아지는 것 같았지만,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쓰시던 세간을 치워 왔고, 그 날 마지막 짐들을 가지고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불이 꺼졌던 그 아파트에 이틀 정도 저녁 시간에 불이 밝혀 있었던 이유는 자손들이 퇴근하고 와서 돌아가신 분의 물건들을 정리하느라고 켜 놓은 것이었다.
 
해질 녘까지 자동차를 가지고 실랑이를 하던 두 분이 못고치고 가셨다.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까지 있던 할아버지의 차는 내가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았더니 치워져 있었다. 집 사람에게 들으니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갔다는 것이다. 끝까지 엔진에 불이 붙지 않아서(점화가 안 되어서) 차고로 견인해 간 것이다. 그분의 용모처럼 아주 깨끗하게 쓰신 차였다. 그 파킹 랏에는 바로 그 다음 날 다른 사람이 배당 받아서 주차를 시작했다.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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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왕성하게 자라나는 선인장을 보며
58 비가 오든지, 안 오든지
57 120년만에 많음 비가 북가주의 마른 땅을 흠뻑적시고 넘침
56 불꺼진 창 어느 할아버지의 아파트의 창을 보면서
55 특이한 도토리 나무 한 구루
54 여주 한 그루에서.
53 “장하다! 잘했다!”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
52 우리도 부산사람.... '차바' 태풍이 휩쓰고 간 백사장에세
51 방송국 아나운서들 외모를 중요시 하는 고국의 문화
50 미스터 존 제롬(2) 섬기는 사람의 의 표상이 될만한 사람.
49 미스터 존 제롬(1) 참으로 좋은 공무원의 모습
48 리우 올림픽(4) / 문신 올림픽 경기를 참관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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