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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잘했다!”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
“장하다! 잘했다!”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
 
지난 9월 9일 새벽 4시쯤 여자 친구의 이별 통보에 분노한 한 20대 남성이 여자 친구의 집에 불을 질렀다. 안치범씨가 살던 곳은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원룸(스튜디오) 21개가 있는 5층 건물이었다.
 
불이 나자 가장 먼저 건물 밖으로 탈출한 안치범씨는 119에 신고한 뒤에,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고 각 방의 초인종을 누르고 대문을 두두리면서 “나오세요! 나오세요!”라고 크게 소리치면서 각 층을 뛰면서 주민들을 깨웠다. 그의 삶을 던진 희생 덕분에 21개의 원룸에 있는 이 건물에서 안치범씨 외에는 추가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대원이 5층 계단에서 연기에 질식해서 쓰러진채 있는 안치범씨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뇌사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불길과 독한 매연이 계단 공간에 가득차 올라오자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다가 질식한 것 같다. 뇌사상태로 사경을 헤메던 그는 화재 11일 만인 9월 20일 새벽 끝내 세상을 떠났다.
 
TV 방송국에서는 건물 주위에 있는 CCTV에 잡힌 안치범씨의 동영상을 계속 보여주었다. 화재를 피해서 건물 밖으로 나왔던 안치범씨가 즉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치범씨의 불에 데여 그을음 투성이가 되고, 뭉그러지고 부어 오른 손의 모습도 보여 주었다. 화재로 인하여 뜨거워진 초인종을 누르고, 딸궈진 손잡이를 흔들고 대문을 힘껐 두두리다가 그렇게 되었으리라.
 
안치범씨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였지만, 2년 전부터 그가 타고난 좋은 목소리를 사용하여 아나운서가 되고자 성우 아카데미 인근 원룸으로 이사 와서 성우 시험을 준비하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입주한 지는 두 달 정도밖에 안 되었고 한다. 그의 한 친구는 안치범씨에 대하여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면, 늦은 밤에도 택시를 타고 달려와서 도와주곤 했다. 늘 주변에 귀 기울줄 아는 속 깊은 친구였다.”고 돌아 보았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장애학생을 돕는 공익근무 요원으로 복무했던 치범씨는 제대 후에도 학교를 찿아 장애학생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꾸준히 장애학생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남모르게 해왔다. 장애자로서 연세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휠체어를 타고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장례식에 와서 “안 선생님은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대신해 시험 때마다 대필을 해주던 고마운 분”이가고 했다. 그가 봉사하던 상암 고등학교에서는 안치범씨를 추모하는 묵념을 했다. 자신의 땀과 수고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잘 되고 기뻐하는 것을 보람으로 살아온 젊은이였음을 볼 수 있다.
 
어머니 장혜경씨가 안치범씨에게 남을 위해서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네 몸부터 챙기라”고 하면 “엄마,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도리어 화를 내곤 했다고 한다. 장례식에 오신 치범씨의 할머니는 “처음에는 가족들 생각도 안하고 불길 속에 뛰어든 손자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보니 “장하다!잘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다. 9월 21일 서초구 성모병원에서 장례식장에서 만난 치법씨의 아버지 안광명씨는 그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늘 바라던 가치는 딱 하나 “정직하고 건강한 착한 아이였다.”아들의 그 굵직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하는 아버지는 “처음에는 죽은 아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잘했다! 아들아’라고 아들에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했다. 치범씨 덕분에 목숨을 건진 원룸 건물 이웃들도 조문을 와서 “아드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하며 머리를 숙였다. 아들의 장례식에 조문 온 아들의 친구들과 자신이 아는 지인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면 “괜찮다. 다 괜찮다”며 다둑였다. 그러나 주문객이 없을 때면 돌아서서 눈물을 흠쳤다.
 
28살에 세상을 떠난 안치범씨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진정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는 것이 보람 된 것인가를 깨우쳐준 계기가 되었다. 그의 희생적 헌신으로 인하여 생명을 구한 주민들은 물론, 국무총리와 정당 대표등, 정관계 인사들 뿐만 아니라, 고인과 아무 관계 없는 일반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한 조문객은 “안치범씨를 모르지만, 의로운 죽음이 안타까워 빈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내가 고국에 그냥 살고 있다면, 분명히 나도 안치범씨의 빈소를 찾아가서 조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살다 간 그의 귀한 희생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그는 젊은 나이에 이 땅을 떠났어도, 또 다른 20명의 주민을 살렸고, 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으며, 그들이 값진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가슴에도 ‘안치범’이라고 불리운 생명을 던진 귀한 청년의 이름은 길이길이 간직될 것이다.
  
 
(주후 2016.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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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왕성하게 자라나는 선인장을 보며
58 비가 오든지, 안 오든지
57 120년만에 많음 비가 북가주의 마른 땅을 흠뻑적시고 넘침
56 불꺼진 창 어느 할아버지의 아파트의 창을 보면서
55 특이한 도토리 나무 한 구루
54 여주 한 그루에서.
53 “장하다! 잘했다!”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
52 우리도 부산사람.... '차바' 태풍이 휩쓰고 간 백사장에세
51 방송국 아나운서들 외모를 중요시 하는 고국의 문화
50 미스터 존 제롬(2) 섬기는 사람의 의 표상이 될만한 사람.
49 미스터 존 제롬(1) 참으로 좋은 공무원의 모습
48 리우 올림픽(4) / 문신 올림픽 경기를 참관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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