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뵙고싶은 K 형에게 -2-
K형!
벌써 4월이군요.
봄이 되면, 소리없이 내 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산과 들을 거닐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 납니다. 어럼풋한 신천 초목들을 무심히 이리저리 둘러보며 질퍽한 시골 길을 걷다가 잠시 발길을 멈추고 터질듯한 꽃망울들을 메만지던 생명의 환의를 느끼던 계절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절 '4월의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콧노래를 부르면서 기억나는대로 가사를 적어 보았습니다.

K 형,
자금 제가 형의 편지를 몇번이고 다시 읽는 이곳은 낭만을 느낄 수 있는 항구도 아닙니다. 세계의 첨단 과학 문명의 온갖 소음과 속도 그리고 욕망과 메마른 감정이 엉긴 도시의 한 귀퉁이 입니다. 생명의 등불을 높이 드는 봄의 향연이 언제 지나가는 것도 감지하지 못하고, 대 자연의 합창 소리도 듣지 못한채 이 봄을 보내야만 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K형!
이런 삶의 정황 가운데서도 해마다 제게 생명의 등불을 밝히는 우주적인 한 축제에 초대되는 하루가 있음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고난과 절망도, 죽음일지라도 이길 수 없는 생명의 승리를 이룬 예수 구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말입니다.
형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셨다는 소식을 받은 저는 마치 천하를 얻은듯한 기쁨을 갖고 있답니다.

주님의 자녀가 되신 후 처음 맞으시는 부활절을 축하 하면서 제가 신항 생활 초기에 가졌던 예수 구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생각들을 전해 드림으로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의 귀함을 되새개 보았으면 합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주님으로 믿고 다르는 길에 있어서 거침돌이 된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하기야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그런 분이 있었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었을까?
그분의 부활을 기독교에서는 왜 그렇게 중효시하는 것일까?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처럼 죽음으로 끝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말하듯이 제자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또한 성경을 보면, 빈 무덤을 보고 개켜진 수의는 보았어도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더욱이 부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기뻐했던 증인들의 고백을 기록한 성서의 기록들이 서로 딱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짓과 허위로 시작된 종교가 어떻게 진리를 전할 수 있을까? 거짓을 지어내고 그것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바보들이 세상에 있을까?
성경을 읽어보니 이상하게도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비참히 죽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묻히신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 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죄수가 메시야라고 하면서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한 공동체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제쳐두고는 기독교 진리를 이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K 형!
그런데 제가 어떵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이요, 나의 신앙의 내용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고백이 되었는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무리들을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다니던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이유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어있던 제자들이 겁없는 전파자가 된 것도 부활하신 주님을 그들이 직접 목격한 이후였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던 주후 55년경 까지도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500여명이나 되는데 그중에 반 정도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면 결코 죽음으로 끝날 수도, 그렇게 되어서도 않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살아 계실 때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고, 또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최소한 성서는 허위 문서요,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한 거짓말쟁이에게 홀려버린 정신 빠진 무리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뿐일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가 되신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는 하나의 허구가 되고 말것입니다. 저는 성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제자들의 진실성에 감동했습니다. 성서를 기록한 분들의 인격과 삶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똑 같이 기록하지 않은 것이 오리려 사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왜냐구요? 우리들의 인생 경험 가운데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한 사건을 보는 시각과 기술하는 방법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K 형!
저는온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면 2000여년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이 증명할 만한 사진과 녹음이 없어도, 과학적으로 그 부활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있다는 확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증명 되어야 믿는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입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포되었기 때문에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살아나셨기 때문에 선포 되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계신다."라고 기
뻐하며 담대히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K 형!
언젠가는 저도, 형도 미련없이 이 땅을 떠나야 할 날이 있겠지요? 우리들의 삶이 허무로 끝날가요?
형과 저는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경험도, 아름다웠던 우정도 끝이나는 것일까요? 결코 그럴수도 없고 그래서도 않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는 것이 다 헛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으리들은 죽음을 두려워 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약속하신 부활은 우리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완성해 주실 우주적 사건일 것입니다.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유와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살거나 죽거나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모든 한계를 뒤어넘어 역사하신- 그 능력이 내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고,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한, 부활의 신앙은 결코 저의 신앙 고백에서 제외될 수 없고, 나의 증거에서 삭제 될 수없음을 밝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K형!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는 듯 합니다. 보슬비를 통하여 보이는 물체들 처럼 말입니다. 육체를 입고 사는 우리의 영적 시야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느낌과 관계없이 산과 들이 있는 것처럼, 가냘픈 가랑비의 촉촉함으로 꽃망울이 터져 활짝 꽃피우듯이 오늘의 많은 불확실성들이 오히려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을 더욱 키워줄 것입니다.

4월!
나무 가지마다 반짝이는 신록의 잎이 수즙은 듯 고개를 내미는 소생하는 이 계절에 형에게도 부활 신앙의 새싹들이 힘치게 자라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후 1990년 4월 29일
먼 타향에서, 이 흥구 올림.
Number Title Reference
47 성도의 기쁨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46 건강한 교회란? 마태복음 28:19,20
45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빌립보서 1:1,2
44 예수님은 어떤 교회를 원하셨을까? 마태복은 16장 18절
43 열린 문
42 뵙고싶은 K 형에게 -2-
41 뵙고싶은 K형에게 -1- 요한복음 6:22-65
40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THE BETWEEN PAST AND FUTURE) 빌립보서 3:12
39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1절
38 뵙고싶은 K형에게 -3-
37 문 밖과 문 안 사이에서 누가복음 13장 24절
36 행복에 대하여 요한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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