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에세이
뵙고싶은 K형에게 -3-
K 형!
그간도 평안하시다니 감사합니다.
담장넘어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미는 아가씨의 붉은 볼처럼 싱그러운 장미꽃 송이가 한창 볼만하겠군요.
6월 초에 받은 한 성도님의 편지를 통해서 어린시절 이후로 까맣게 잊어버렸던 고국의 초 여름의 한 모습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모처럼외출한 산행의 오솔길에서, 푸근한 아키시아 내음을 맡으며 6월이 왔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라고 시작된 편지였습니다.
벌써 6월 하순이니 금년도의 반을 보낸 셈이군요. 언덕을 넘어선 차에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40고개를 넘으니 세월이 걷잡을 사이 없이 내리닫는 것 같군요.

형이 보내 주신 답장 가운데서 교회 선택과 출석에 대한 글을 읽고나서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기에 형에게 드리고자 하는 저의 의견을 적어 올리고자 합니다. 먼저 형이 지적하신 현실 교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들이 참으로 예리함에 놀랐습니다. 먼저 저의 초기 교회생활을 알려 드리고 싶군요. 제가 약 30여년 전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처음 출석한 교회는 지금 돌이켜 보아도 정말로 복음적인 교회였습니다. 저는 주일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었습니다. 예배에 임하시는 성도님들의 잔지한 모습과 하나님의 말씀을 열정을 가지고 진실하게 전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놓칠까봐서 강대상 가장 가까운 자리를 앉으시려는 연세드신 성도님들의 열의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교실이 좁아서 걱정하던 성서반 분위기며,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기치 아래 모인 젊은이들의 열정적인 전도운동과 사회 봉사, 등등의 일들은 지금 생각만 해도 기쁘고 후회 없는 젊은 시절의 교회 생활이었습니다. 순수한 젊은 나이 탓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는 지금도 그런 교회를 신앙생활 초기에 다닐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과 이끌어 주신 여러 믿음의 선배님들께 감사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K 형,
형처럼 저도 그 당시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알고자 하는 결심을 가지고 많은 기독교 서적들을 탐독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감동을 받은 책은 C.S. LEWIS 가 쓴 "'내가 믿는 기독교'와 한 경직 목사님의 방송 설교를 엮은 소 책자 '기독교란 무엇인가?'와 그리고 누가 쓴 책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교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일깨워준 평신도 신학 총서 가운데 한 권인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책이었습니다.

형이 지적하신 "여러가지 현대 교회의 부조리 때문에 교회에 참석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신다."는 말은 형님에게서 만이 아니라,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해 보려는 지성인들이 공통으로 물어오는 질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별로 얻는 것도 없는데, 이제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하겟어."라고 말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곤 합니다.

형, 한 생명이 태어난 후 양육과 보호를 위한 가정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갖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듣도 양육받고 보호받아야 할 분위기와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 부모들이 완벽한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꼭 어린이에게는 필요한 존재인것처럼, 비록 교회가 완전하지도 못하고 허물도 많지만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꼭 필요한 조직체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의 몸인 교회와 연결 될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 되겟지요. 우리가 교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그리스도의 백성이요, 그의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보면 별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친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가지의 기간 동안 이 땅에 존재하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인간들이 그 영광을 가리므로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주님께서 친히 세우셨으므로 땅 위에 있는 어떤 조직체 보다도 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교회에는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함께 섞여 있다고 주님께서 비유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역사를 조금만 읽어 보면 각 시대마다 숫한 과오가 있었고, 또 갱신을 위한 처절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교회에 출석함으로 얻는 유익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군요.

교회에 가서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위햐여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레위기 1:12).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중요한 제사는 경배와 찬양과 감사 안에서 우리의 생명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생명, 재능, 물질-을 주님께 들니는 태도로 예배에 참석할 때 큰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우리는 그 안에서 감격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자신을 헌신하는 태도로 나아갈 때입니다. "나는 예배에 참석해도 얻는 것이 없어"라고 말한다면 '나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어"라고 말하고 있는지고 모릅니다.
예배에서 우리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도 상호간에 서로를 향하여 나눕니다. 먼저 자신을 온전히 드린 성도는 서로를 줍니다.(고린도전서 8:5, 갈라디아 6:5, 로마서 12:10) 오늘 날처럼 개인주의적인 시대에서는 모든 것이 '나'로 집중됩니다. 그래서 신안생활도 나의 필요, 나의 평안, 나의 성장에 초점을 마추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통하여 얻는 유익은 그리스도의 삶을 배워서 자기 중심적인 개인주위를 억제하고 자신을 처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받게 되어 성숙한 성도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 상호간에 찬밀한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생기있는 성도의 생활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간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하고 교제함을 통하여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게 되고 서로 유익을 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림을 배우고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성도들의 교제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증거들을 볼 때, 예배드리고 싶은 감동을 얻습니다.
또한 예배 공동체인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을 해석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한 주간 동안에 세상에 사는 동안 에 세상의 시각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이해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예배를 통해서 형제 자매들과의 찬양과 교제를 통해서 유혹들과 독소들을 제거하여 영적 시야를 정립하고, 말씀의 도전을 통하여 교훈도 받고 진정한 회개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의 어려운 삶 속에 두신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드린 진실한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예배에 참석한 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은 바에 따라서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 반응이 찬송으로, 기도로, 간증으로, 회개로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현대 교회는 이 예배의 본질을 다시 찾는 일이 매우 시급한 문제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K 형,
이제 형이 계속해서 다니실 교회를 결정하시는 데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각 교파마다 예배의 형태가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 분위기가 엄숙하고 경건히 드리기를 힙씁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는 같은 교파이면서도 느슨한 형태를 취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한 편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강조된 예배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교인들이 자유롭게 예배하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사역에대한 태도도 각 교파, 교회마다 다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평신도와 교역자라는 두 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교역자에게 강한 통솔권을 부여하고 있는 반면에 평신도들을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 교회에서는 신자는 누구나 동일하게 사역을 분담 해서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교역자와 평신도가 할 일이 다르지만, 두 가지 기능이 교회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각 교파마다 여성의 교회적 임무에 대한 입장이 다릅니다. 그리고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판이한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의 내적 강조점에 있어어도 어떤 교회는 예배를, 교육을, 전도를, 봉사를 강조합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게씁니다만은, 어떤 교회에서는 성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두는 교회도 있고, 성경을 비평적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 정치에 있어서도 어떤 교회는 중앙집권적이고, 어떤 교회는 집단 정치체제도 있으며, 개 교회의 회중들에 의해 교회가 치리되어야 한다고 믿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상의 사실들이 형이 교회를 결정하시는데 참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바라기는 성경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설교를 통해서나 교육을 통해서 진리를 밝히는 교회를 찾아서 다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교회가 형의 영적 건강을 돕고, 양육을 받을 수 있고,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하기를 원하는 교회인가를 살펴 보십시오. 작은 그룹으로 조직된 성경공부 모임들이나 기도 모임들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형, 그 교회 담이 목사님을 만나 보시면 좋겠군요.
그분의 성경관이나 평신도에 대한 견해나 교회에 방향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아마도 형처럼 치밀하신 분은 그 교회가 소속한 교파의 신앙고백들이나 그 교회의 역사도 알아 보실줄 압니다.

K 형.
잔소리 같지만, 한 가지 만 더 말씀드리고 나서 끝을 맺을까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사숙고해서 교회를 정하신 후에는 비평적인 태도 보다는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성도의 교제를 힘써 주십시오. 시간과 정성과 눈물을 바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시는 교사들, 찬양대원들은 물론 집사님, 장로님, 그리고 목사님을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매일 기도 하실 때 그 교회를 통해 구원 받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아져서 부흥의 불길이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타오르도록 기도하고 전도해 주십시오. 이런 일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의논할 한 명 이상의 동지를 찾으십시오.

K 형!
형에 대한 간절한 바람은 그리스도를 중심한 생활, 말씀 공부, 진실한 기도, 그리고 성도들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서 설영 충만한 삶을 사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신 일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후 1990년 6월 17일

미국, 산호세에서 이 흥구 올림
Number Title Reference
47 성도의 기쁨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46 건강한 교회란? 마태복음 28:19,20
45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빌립보서 1:1,2
44 예수님은 어떤 교회를 원하셨을까? 마태복은 16장 18절
43 열린 문
42 뵙고싶은 K 형에게 -2-
41 뵙고싶은 K형에게 -1- 요한복음 6:22-65
40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THE BETWEEN PAST AND FUTURE) 빌립보서 3:12
39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1절
38 뵙고싶은 K형에게 -3-
37 문 밖과 문 안 사이에서 누가복음 13장 24절
36 행복에 대하여 요한 10:10
Page: (4/8), Total: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