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뵙고싶은 K형에게 -1-
요한복음 6:22-65
K형!
그간 안녕하신지요?
누구보다도 진실하게 살면서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하여 다단히 노력 하시던 형의 진지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형의 삶에 비하면 허술하기 그지없던 제가 용기를 내어 제가 믿는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힘주어 이야기했던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진지하게 들을신 후에 주신 짦은 답변의 말씀에 저는 매우 당황했었습니다. 저의 지금의 기억으로는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진실하게 살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정말 그럴수가 있는가 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지."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도 그 때에는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습니다. 형이 말씀하신 사람들 가운데 나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서였고, 사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K형!
형의 말씀대로 예수의 이름을 팔아 치부하는 사람도 있고, 명예와 권력을 잡는 한 방편으로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습니다. 사랑의 실천보다는 저주와 싸움으로 진탕물을 튀기는 사람도 있고, 종교적 확신이라는 이름 아래 비 도덕적, 비 윤리적, 비 도덕적 행위를 했던 부끄러운 역사적 사건들도 있었음을 부인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요사이 읽은 책 가운데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 관심사를 연결짓는 최종적 문제는
첫째, "나는 무엇을 알수 있는가?"-진리의 문제-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규범의 문제-
셋째, "나는 무엇을 바라도 좋은가?" - 의미의 문제- 라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들처럼 정리된 것은 아닐지라고,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된 동기 가운데 하나가 이상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성서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삶의 불안정성, 앎의 불확실성, 온갖 두려움, 죄책감, 미래의 불투명성 그리고 삶의 방향 상실 앞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존재와 비 존재 사이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벼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돛 없는 배처럼 살아야 할 앞날들을 생각할 때에 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형, 이제 제가 왜 예수님을 그렇게도 존경하며, 또 저의 삶을 맡길 수 있었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신학자도, 제사장도, 더욱이 혁명가도 아니셨습니다. 그는 집권자 편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 시대 사람들 편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틀에 박힌 율율법주의(바리새 파)를 경책하셨고, 그 당시 거룩하게 살기 위하여 세숙을 떠나 살던 수도자 공동생활(엣세네 파) 의 생활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정치적 혁명으로 로마의 지배를 벗어나려던 혁명 당원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그분이 하신 일은 사회 개혁을 위한 윤리적 제시나 새로운 전통의 수립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삶의 촛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느 신학자는 말하기를 "예수의 일은 세상 안에서의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의 발전(기술적, 정신적)이나 혁명에 의해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해서만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물질만이 아닌 영적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차원 즉, 초월성만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초월서성의 차원은 인간의 노력, 교육, 선행으로 열려지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존재로서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라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이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의 교훈을 받는 사람들에게 궁극적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실재와 그의 일에 헌신하라고 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회개'라는 단어를 매우 익숙하게 사용합니다. 회개란 궁극적인 선택, 즉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삶은 재 해석하여 평가하고, 새로운 삶의 자세를, 전혀 새로운 삶이 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것입니다. 제가 요한 복음 3장 16절을 중심으로한 설교의 말씀응 받았을 때, 저는 이 회개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야 "제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39)는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K형,
저의 간절한 바래임은 형이 당하고 계신 시련이 도리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에의 일에 참여를 결단하시는 전화뮈복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곳 그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치뤄야 할 댓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으로 난 이상 한 번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차일 피일하며 무한한 영광의 선택을 뒤로 미루는 분들을 저도 여러번 보았습니다.

K형,
이제 그리스도께서 형의 마음에 들어오시도록 기도하심으로 주님의 자녀가 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삶의 목적과 힘과 평화와 소망을 풍성히 얻으실 수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주 예수님,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초청합니다.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 인도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혹시 제가 드린 글 가운데서 예의를 잃었거나 내용이 불분명한 것들이 있으면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의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계십시오.

1990년 2월 18일
먼 이국 땅에서 이 흥구 올림.
Number Title Reference
47 성도의 기쁨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46 건강한 교회란? 마태복음 28:19,20
45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빌립보서 1:1,2
44 예수님은 어떤 교회를 원하셨을까? 마태복은 16장 18절
43 열린 문
42 뵙고싶은 K 형에게 -2-
41 뵙고싶은 K형에게 -1- 요한복음 6:22-65
40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THE BETWEEN PAST AND FUTURE) 빌립보서 3:12
39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1절
38 뵙고싶은 K형에게 -3-
37 문 밖과 문 안 사이에서 누가복음 13장 24절
36 행복에 대하여 요한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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