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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계, 새 가정
창세기 9장 1-10:32

온 세계가 홍수로 멸망해서 숨쉬는 동물과 사람이 자취를 감춘 광활한 땅 위에 노아의 8식구가 배에서 내려와 새롭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가정과 꼭 같지는 않지만, 미국에 이민 와서 낮 설고 물 설은 따에서, 문화 충격과 언어의 문제를 가지고 새 일들을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국에서 다니던 직장이 아닙니다. 고국에서 다니던 학교도 아닙니다. 고국에서처럼 남편이 나가서 일하고 부인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사에 전념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이민 가정은 맛 벌이를 해야 겨우 삽니다. 이런 모든 상황이 닥칠 것을 예견하면서도 우리는 새 세계에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미국에 왔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다음의 몇 가지를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로, 새 세계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노아와 그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격려에 대한 것입니다.
둘째로, 노아의 가정에 주신 새 언약에 대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셋째로, 노아의 가정에 있었던 가정문제에 대하여 상고하고자 합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새 땅에서 새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에 이민오신 여러 성도님들 위에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첫째로, 노아는 새 세계에서 새 가정을 일구어 가게 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홍수로 인하여 멸망하는 심판 가운데서 어떻게 노아의 가정만 구원 받았습니까? 그것은 노아와 그의 가정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8절을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민 생활이 비록 힘들고 생소하지만 이 곳에 와서 새 꿈을 일구어 가게 하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그들이 새 세계에 발을 딛을 수 있었든 것은 하나님을 믿는 순수한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9절 하반 절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는 마음과 뜻과 생각이 항상 악한 시대, 하나님 앞에서 패괴하며 강포가 땅에 충만하던 시대에도 그 시대를 본받지 않았습니다. 진리의 하나님. 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동행했습니다.

노아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순종이 있는 믿음의 생활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에게 나오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새 땅에 발을 딛게 하시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한 믿음, 말씀을 따르는 순종하는 단순한 믿음,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나님이 주신 사역을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22절이나 7장 5절 말씀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잘 부르는 찬송가
377장 의 한 절처럼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어두운 세상에서 주님과 동행하십니까?
혹시 이 세상의 향락과 즐거움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하루의 첫 시간이 있으십니까?

노아의 가정이 어떻게 새 세상에 발을 딛고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노아의 가정이 새 세상에 발을 딛을 수 있었던 것은 노아 한 사람만의 순종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온 가정이 협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배를 짓는 일에서나, 배에 들어갈 식량을 저장하는 일에 있어서나, 배 안에서 동물들을 돌보는 인내력을 요구하는 일에서나, 배에서 나와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도 그들은 함께 일 했고, 함께 자리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가정에서 사랑과 단합과 진실한 협동을 매우 귀하게 보십니다. 맡겨주신 큰 일을 이루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권위를 인정하고 기꺼이 순종하여 힘을 모으는 태도를 기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새 땅 미국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진실한 삶은 사십시오. 온 가정이 주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십시오. 복된 미래, 하나님의 영광 돌릴 미래를 위해 오늘 서로 힘을 모으십시오. 단결하십시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겸손과 자제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노아의 가정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넘어서 광활한 새 땅에 발을 딛게 되었는가를 살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새로 출발하는 노아의 가정에 두신 관심과 기대에 대한 말씀을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의 미래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 가정에 복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9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미국 땅에 이민 와서 삽니다.
대개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인 부유를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열망합니다. 이상의 것 위에 다른 것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복입니다. 우리들 당대만이 아닌 자자손손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창대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의 가정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9장 2절과 1장 28절은 그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그 이외의 모든 피조물들이 인간의 지배아래 있는 것이지 예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새 가정의 사명은 하나님만 섬기고 피조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질서를 잘 감당하는 청지기들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들은 짐승을 예배하지는 안지만, 돈은 숭배합니다.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십계명의 제일 처음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말찌어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받은 바 사명을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로마서 1장 25절을 보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우상화 하고, 소유를 우상화 하고, 때로는 정욕의 충족이 우상처럼 번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미국에 살면서, 우리들의 가정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하나님만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순간적인 성취와 기쁨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노아의 가정에 피 흘림이 없기를 바라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지으신 피조물들간에 특히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존중하는 가운데서 서로 보살펴 주는 사람들이 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3장 34절을 보면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가정에는 서로서로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합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합니다.

새 땅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 노아의 가정에 주신 다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둘째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무지개를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창세기 9장을 읽으신 후에 보시는 무지개는 주님을 모르시던 때 무심코 바라보시던 무지개와는 매우 다른 느낌을 가지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을 보면, 무지개는 자연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는 하나님의 언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과 약속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홍수의 아픔을 지워주시고자 하시는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9장 8절부터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새와 짐승들과 사람들 사이에 세우신 새 언약 즉 “다시는 홍수로 이 땅을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모든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한 가지 언약도 주셨습니다.

우주의 종말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그 빛을 잃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보은 천체가 흔들리는(마태 24:29)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2장 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그리고 물에 잠겨서 옛날의 세계는 멸망해 버렸습니다.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나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그때 주님께서 권능을 떨치시며 영광 중에 오시는데, 주님께서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가 뽑은 사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을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 재림하실 지 모릅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심판으로 하나님은 지구 위의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멸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의 심판 때에는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는 우주적인 심판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그의 자녀들을 구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무서운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 얻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는 길 뿐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정이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노아의 가정도 그런 면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완전하지 않고, 완전한 가정도 없다는 것을 노아의 가정을 통해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노아의 가정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나 모세 그리고 다윗의 가정도 그러했습니다.

셋째로, 노아는 술취함으로 실수 했습니다.

창세기 8장 21절을 보면,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육체를 입고 있는 한, 실패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가 쓴 편지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생활 편을 길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에도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문제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노아가 술에 취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가나안이라는 아들을 낳은 것을 볼 때, 심판 후 세월이 지난 것 같습니다. 노아는 홍수 이후에 350년이나 더 살았습니다. 노아는 포도원을 일구었습니다. 하루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로 천막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함이 밖으로 나가 형과 아우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셈과 야벳은 겉옷을 집어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질로 들어가 아버지의 몸을 덮어 드렸습니다. 그들은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안 보았습니다. 노아가 술이 깬 뒤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히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적극적인 권면을 합니다. “붉어진 눈은 일을 그르친다.”고 잠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남 왕국 유다 왕국의 말기적 현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새벽부터 독한 술을 찾아서 나서고 밤 늦게까지 술독에 빠져있는 자들아! 수금과 거문고, 소고와 피리 소리를 들으며 술이나 마시고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에는 관심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술은 노아의 위신을 추락시켰습니다.
술은 노아의 가정에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술은 노아의 후손들을 저주하게 되는 일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술로 인하여 파괴됩니까? 얼마나 많은 국가 예산이 알코올 중독자 치료에 낭비됩니까? 음주 운전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습니까?

다른 한 편으로 어떤 그리스도인이 실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보는 성도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성서적인가를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노아는 아마도 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에 술 중독이 되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노아는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인 노아에게도 실수는 있었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게 그냥 무심코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추측하건대, 그는 의인이라는 아버지도 별수 없구나 하면서 냉소적인 웃음을 흘리며 밖으로 나와서 형제들에게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도 알려진 사람, 존경 받는 사람이 실수를 하면 가혹하게 몰아 부칩니다. 자기의 실수나 죄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 비판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7장 1절을 보면, 남을 판단하거나 저울질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못보고 다른 사람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겠다고 하겠느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를 했을 때, 먼저 우리 자신을 살피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나는 어떤가?”라고 자문하십시오.
-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소문을 퍼뜨리지 마십시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지옥에 가는 자들의 인격적 특징들의 나열에서 “수근수근 하는 자, 훼방하는 자, 속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 대신 형제 자매들의 약점과 부족함을 덮어주고,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충고해 주십시오. 그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얻은 괴로움의 짐을 함께
져 주십시오.

이렇게 될 때 성도의 교제가 계속 성숙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가정은 홍수의 심판 후에 새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노아와 그의 가족이 힘을 모아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정에 복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를 흘리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무지개를 주셔서 하나님이 다시는 물로 심판 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의인 노아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 실수를 통쾌하게 여기기 보다는 덮어주고 말 거리를 만들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이 순종과 언약과 실패를 대처하는 건강한 개인 가정이 되어 새로운 미국 땅에서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기원합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11 노아 시대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 창세기 7장 1-24절
212 새 세계, 새 가정 창세기 9장 1-10:32
213 바벨탑의 비극 창세기 11:1-9
214 새 생활, 새 법칙(III) / 빛의 열매를맺으라. 에베소서 5:3-9
215 노년기와 신앙생활 디도서 2:1-4
216 새 생활, 새 법칙 (2) 에베소서 4:25-5:2
217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창세기 12장 1-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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