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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4:25-5:2 |
이 자리에 모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일원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 새 피조물이 되어야 함을 2장 8,절에서 묵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자녀로 만드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1:12,14).
우리들이 주님의 자녀고 부름 받았을 때, 한 개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은 하나님의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 3절을 보면 성령님의 은사가 각각 다르지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몸 된 교회가 하나가 되려면, 진리와 사랑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라고 하시면서 4장 17-24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순결한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오직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3,24)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4장 25절로부터 5장 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습니다.
묵상할 본문을 셋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구체적으로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모습과 입어야 할 새 사람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 하셨습니다(25-29).
둘째로,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30-32).
셋째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 받는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5:1-2).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소극적인 금지와 적극적인 권면을 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옛 생활이나 새 생활의 모습은 어떤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자신과 자신 그리고 자신과 이웃의 윤리적 관계의 문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1. 벗어버려야 할 것을 벗어 버리고, 입어야 할 새 옷이 있습니다(25-29).
1)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거짓을 버리고,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이웃이란, 주 안에서 한 가족된 성도들을 말합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거짓말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의 급소를 찌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긴밀한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공동적 노력에 금이 가게 하는 것은 서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될 때입니다. 성도들의 교제는 신뢰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 집니다. 그 신뢰는 진리에 기초해야 합니다. 참된 것, 진실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강화시키지만, 거짓은 몸 된 교회를 약하게 만듭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 상호간에 참된 것을 말하십시오. 진실을 주고 받으십시오. 속에는 딴 생각을 품고 겉으로는 다르게 표현한 후에, 자신의 속 마음대로 해서 다른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거짓으로 일관하는 생활을 한다면, 옛 아비 마귀를 실제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분을 내어도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분냄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거룩한 분노를 내셨습니다(신 9:8,20).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깨끗하게 하실 때(마태 21:12-13) 또는 외식하는 거짓된 사람들을 보시면서 화를 내신 적이 있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죄와 그 영향으로 인한 타락상을 볼 때 의분을 품는 것은 마땅합니다. 사도행전 17장 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아데네 시가 온통 우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시고 격분하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사도들이 품었던 울분은 자기의 이기심에 의한 격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록하신 역사에 비추어 본 인간의 죄에 대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경우에는 진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얄팍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함에서 오는 분냄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1장 19-20절에서”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성내기는 더디하라.”고 하셨습니다. “화를 내는 자는 하나님의 정의를이룰 수 없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분을 내되 분에 제한을 두셨습니다. 우리들의 분냄이 자존심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악의로, 원한과 복수심 때문이면 이 분냄은 잘못된 것으로써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이 났더라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해가 질때 까지는 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을 하루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때가 해질 떄 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다음날 까지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분을 빨리 없애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분냄이 우리의 죄와 이기적인 요소 때문이라면 빨리 사과하고 화해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27절에서 분이 났을 때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분을 내는 사람들의 증오심, 가눌 수 없는 감정을 이용해서 공동체를 깨뜨리려고 합니다.
3) 28절 말씀을 보면, “도적질 하지 말고 오히려 빈궁한 자를 도웁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일을 하라.” 고 권면 하셨습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는 말씀은 10계명 가운데 8번째 계명입니다. 초대 교회에는 많은 초신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회 구성은 로마 인구의 1/3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 가운데 노예 출신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빌레몬서를 보면 오네시모라는 종이 재산을 훔쳐서 로마로 도망왔다가 잡혔습니다. 다행히 옥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주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출옥한 후에 그의 옛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내용입니다. 에베소서 6장과 골로새서 3장에서도 종들과 상전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다룬 것을 볼 때, 종의 신분으로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디도서 2장 9,10절을 보면 “훔치는 일을 하지 말고’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 종의 신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종업원과 기업인의 사회구조는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용주로서 고용인의 임금을 주지 않는다거나, 또는 고용인으로서 고용주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손해를 입히는 태도들이 있다면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이기심에 근거한 부의 축적을 위한 부당 이득을 기대하기 보다는 오히려 수고함으로 생활비를 벌라고 하셨습니다. 떳떳하게 벌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물질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엣 정직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다 내것이라고 생각하지맙시다. 구제하고 도웁는 일에 부리런합시다.
다음으로 주님의 공동체의 일원으루서 꼭 실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4) 더러운 말을 하지 말고,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하여 듣는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러운 말”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사프로스’라는 말인데, 그 뜻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뜻합니다.
어떤 말일까요? 부패한 말, 타락한 말 등입니다. 골로새서 3장 8절 이하를 보면,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8절을 보면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14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의 입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하고.” 그렇습니다. 언어는 그의 사상과 인격을 반영합니다. 우리들이 자칫 잘못하면 우리들의 언어 생활이 세상 사람들과 별 다름이 없이 천박해 질 수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들을 사용하기가 쉽습니다. 잠언 15장23절에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일 때, 서로 친하다고 해서 막말을 한다던지, 얼굴 뜨거운 말을 자랑이나 하듯이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들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일까요?
2.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6,17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새 사람이 된 자녀들은 그 몸이 성령의 전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옛 사람의 옛 본성을 따라 살 때에 성령님께서 근심 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근심이라는 말의 헬라말의 뜻은 슬픔, 고통, 번민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때에 성령님이 근심하실까요?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신데, 거짓을 행하면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은 거룩하신 영이신데, 추한 생활을 하면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시는 영이신데, 분리하고 다트면 근심하십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성령께서 구속의 날까지 우리를 인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믿을 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구속의 날이란’ 우리가 죄의 세력을 완전히 벚어난 그 날을 말합니다. 여기서 구원의 마지막 과정까지 보장해 주시는 분, 확신시켜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신데, 우리가 그 날을 준비하지 못하면 성령님께서 근심 하실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31절 말씀은 25-29절의 말씀을 요약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하신 것입니다.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훼방)하는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성령에 충만해서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은 서로 인자하게, 친절하게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따뜻하게 대하며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교훈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용서와 따뜻한 마음과 친절이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에 충만함으로써만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용서와 따뜻함과 친절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딛어야 할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셋째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는 자가 되라(에베소서 5:1-2)고 하셨습니다.
요한 1서 4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을 보면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순결한 삶이 요청됩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요한 1서 5장 6절).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에 터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 받는 것입니까?
먼저 성서가 말씀하는 사랑을 알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입버릇처럼, 사랑 사랑하지만 고린도 전서에서 말씀하시는 사랑과는 매우 다른 피상적인 개념의 사랑을 추구합니다.
사랑에는 적극적인면이 싰읍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친절합니다.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믿고, 덮어주고, 바라고 견딥니다.
한편, 사랑은 소극적인 면도 있습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자랑하지도,교만하지도 않습니다.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성내지 않습니다.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사랑 사랑하면서 마구잡이로 사람을 대하고, 무례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챙기면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은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 많은 인간에 대한 무조건 적인 은혜와 용서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주님을 본 받는 생활이란, 옛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생활입니다. 주님을 본받는 생활이란, 자신은 죽고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사시도록 드리는 제사의 제물처럼 사는 생활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새 생활, 새 법칙의 생활을 인간의 힘 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로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죄 용서를 감사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본 받고자 하는 적극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죄 용서를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치셨듯이 우리들도 하나님께 우리를 바쳐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하게 됩니다.
나에게는 벗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이 문제를 생각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의 생활에 성령님을 근심시키는 습관이나 신앙적 태도는 없읍니까?
나의 신앙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그분을 통하여 무엇을 본받고 살아가고 있으십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자녀답게, 하나님을 본 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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