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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활, 새 법칙(III) / 빛의 열매를맺으라.
에베소서 5:3-9
어제 신문을 보니 마사츄세스의 하원의원의 집에 남창을 상주시킨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는 산프란시스코의 저명한 실업가가 부정한 삶을 살다가 법의 제제를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프리몬트의 교육 책임자는 잘 알려진 동성연애자 입니다.

오늘 날 미국의 어린이 성 학대 사건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10대의 성 윤리는 지극히 문란해져서 십대 소년 소녀들에 임신이 연간 300만명 정도이며 그 중에서 약 반이 낙태를 합니다. 그뿐입니까? 어느 가정에서는 자녀가 음란 전화를 몰래 써서 한달에 5천불을 지불하기도 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우리 고국은 어떠합니까? 동남아시아서 가장 유명한 음란물 수출국으로 자리매김으리 했습니다. 경찰들은 퇴폐 이발관을 적발하는 일로 분주합니다. .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진리의 등불을 밝히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미 봉독하신 말씀가운데서 3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을 묵상하고자합니다. 성 삼위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실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이 어두운 시대를 밝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빛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이니 되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은 옛 본성에 속한 것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것은 곧 어두움의 생활입니다.
벗어 버려야 할 첫번째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그것은 음행입니다. 성적 범죄를 말합니다. 음행이란, 하나님이 정해주신 결혼 제도 이외에서 일어나는 성적 방종을 말합니다. 성서는 결코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성과 여성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세기 첫 장부터 인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에덴 동산에 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당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물처럼 도덕과 윤리없이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10 계명을 보면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행위와 함께 탐욕을 더하고 있습니다. 탐욕이란, 물질에 대하여 끝 없이 갖고싶어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탐욕은 물질적인 것 만이 아니라, 자기의 이기적인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육체를 물건으로 취급하는 태도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신전은 물질적인 탐욕과 성적 욕구를 채우고자하는 인간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만든 신전이었습니다. 아데미는 풍요의 신이었고 여성신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벗어 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4절 말씀을 보면, 어리석은 말, 누추한 말 그리고 희롱하는 말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단순하게 말하면 부적절하고 부도덕한 언어를 사용하지 말하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도 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말을 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성서는 추잡한 말이나 값싸고 품위 없는 말을 경고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에 의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인격이 어떠한가를 나타내 줍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런 것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까?

2. 이런 것들을 성도의 마땅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너희중에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구절을 새 번역 성경에는 “그래야 성도들로서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런 것들이 성도들에게 마당치 않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런 자들을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상에 열거한 어둠의 생활을 청산치 않은채로 계속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런 일에서 떠났을 것입니다.
6절 말씀은 더 강한 경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업은 커녕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상의 말씀에 나타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쉽게 말하면,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정으로 마음 중심으로 영접하여 삶과 인격이 성령의 감화를 받고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삶과 인격에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육체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

오해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금세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이 단 한번의 부도덕한 언어, 생각 또는 행위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점차 성화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간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혹시 일시적으로 어둠의 길을 가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은혜를 받고 죄를 회개하고 빛으로 돌아 옵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부도덕한 언행을 일삽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혹 죄를 범하게 되더라도 부끄럽게 느끼고, 겸손히 하나님께 회개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살게 됩니다.
그 당시에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육체의 죄는 영혼에 아무런 죄를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그 후에는 어떤 죄를 저도 용서 받는다.”는 궤변을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용서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신 분이십니다. 이 자유는 육체의 욕심을 정당화 하는 자유가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유가 생긴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음행이나 탐욕, 누추한 말, 어리석은 말 그리고 희롱의 말은 성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을 받지 못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이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혹시 이런 어둠에 거하는 분은 안 계십니까?
주님을 중심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빛과 능력을 받아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이 어둠과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3. 이 세상의 어둠의 일들과 말에서 돌이키라고 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돌이켜 감사한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부도덕한 언어나 행동이 나옵니까?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옛 본성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만족과 감사는 어떤 상태입니까?
말씀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사는 성도의 삶의 모습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이성에 대하여 옛 본성에 따라 사는 삶들은 이기적 탐욕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서 귀하게 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값싸게 취급하거나 농락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한 가정을 이루어 부부로 살게 하신 그 자체를 매우 감사하고 귀하게 여기면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상의 말씀과 매우 거리가 먼 상황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환경에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까?

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자연히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삽니다. 사회 생활 가운데 벼라별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사람들과 만납니다. 회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함께 참여한다.”는 말의 뜻은 “어떤 일에 협동한다.”는 뜻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함으로써 복음의 빛을 발할 지언정, 저들의 음행과 추함과 부도덕한 일과 말에 가담하거나 부추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전서 5장 9절 이하를 보면 “내가 여러분에게 쓴 편지에서 음란한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했지만 음행이나 탐욕이나 약탈이나 우상숭배를 일 삼는 이교도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한 말은 만일 어떤 사람이 교인이라고 하면서 도 음행을 일삼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남을 중상하거나 술취하거나 약탈하거나 한다면 그런 자와는 상종하지도 말고 음식을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좀 더 내려가서 13절 하반절을 보면 “여러분은 여러분 가운데 있는 악한 자를 쫓아 내십시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중적인 삶을 살기 쉽습니다. 교회에서는 아주 정직하고 깨끗한 말을 쓰는 신자가, 세상에 나가서 사업을 하면서 적당히 불의와 타협하고, 음담 패설을 서슴없이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실 생활에서는 저들의 삶의 가치관에 함께 참여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즉 빛을 자녀들답게 살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빛을 받아 생각과 마음과 생활에서 하나님이 영광의 빛으로 어우움을 몰아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생활을 할 때 자연히 삶에 열매가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면, “빛의 열매는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빛을 받은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삽니다. 선하게 삽니다. 의롭게 삽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의 불의, 부정, 악함의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반대로 선한 열매, 의의 열매, 진실의 열매를 일생에 맺고 삽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우리 주님은 “너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될 것이 아니라, 이미 빛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빛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어두움은 무엇입니까?
음행하는 일은 없으십니까?
추잡한 말을 쉽게 하시는 않으십니까?
어리석을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을 더럽히고 다른 사람에게 악을 계속 행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죄를 고백하시고 죄 용서함을 받으시고 성령님의 빛 아래서 새롭게 사십시오.
우리는 성도로써 마땅치 않고 어울리지 않고, 심판을 자초하는 일들을 미워하고 떠나셨습니까? 우리들 가운데 그런 삶을 사는 분들을 아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만나서 권면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묵상한 말씀을 읽어 주십시오.

성도 여러붐!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빛의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신자로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Number Title Reference
211 노아 시대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 창세기 7장 1-24절
212 새 세계, 새 가정 창세기 9장 1-10:32
213 바벨탑의 비극 창세기 11:1-9
214 새 생활, 새 법칙(III) / 빛의 열매를맺으라. 에베소서 5:3-9
215 노년기와 신앙생활 디도서 2:1-4
216 새 생활, 새 법칙 (2) 에베소서 4:25-5:2
217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창세기 12장 1-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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