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휄로십 플라자 A202
누룽지 잔치
노인 아파트에서 누룽지를 나누는 기쁨
누룽지 잔치
 
미국에 이민을 와서 사는 우리는 수 많은 음료수 종류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커피에도 종류가 많고, 커피 점마다 특유의 맛으로 고객을 끌고 있다. 전에 고국에서는 여름에 귀한 손님이 오시면 커피나 코카 콜라를 대접하는 것이 상례였다. 내가 미국에 올 때에는 고국에 커피로는 맥스웰 하우스 커피 선전이 한탕이었고,음료로는 코카 콜라가 유일했었다. 지금 미국에 시판되는 탄산음료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나는 모른다. 여하튼 수 없이 많다. 게다가 에너지 음료나 음료수에 첨가제를 넣은 변종 음료등 헤아릴 수 없다.
 
고국에서 차를 대접할 때에 수입된 립톤 티를 내놓는 가정은 비교적 부유한 편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워낙 외화 보유고가 없다보니,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을1980년 초기까지 많이 제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기야 1980년 봄에, 우리 네 식구가 미국으로 이민 가는데 정부에서 각자에게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 허락한 금액이 200불이었다. 우리 가족 전부가 이민 가면서 800불만 가지고 나가서 새 삶을 살아야 했다. 그 돈도 없어서 235불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미국 비행기 회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에게 비행기 삯을 외상으로 해 주었고, 미국에 도착해서 일을 해서 갚도록 해 주는 회사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냉혹한 자본주의가 아닌 인정이 서린 제도였다. 그 덕에 우리 가족은 미국에 왔고, 열심히 일해서 다 갚았다.
 
지금 나는 일선 목회에서 은퇴를 했어도, 목사님들을 만나서 교제도 하고, 때로는 멘토링도 하며, 목사님들이나 지역 교회 신자들을 위한 성경 세미나를 하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초청을 받아서 설교로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매 월 마지막 주일에 설교하는 교회는, 30여년 전에 교회를 다니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교회를 떠나신 분들이 주일에 모이던 그룹에서 시작된 교회이다. 그 당시 내가 인도하던 젊은이들의 모임에 참석하던 대학생이,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모이는 그룹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아버님이 그 그룹에서 말씀을 증거해 주기를 부탁한다는 말을 전해 왔다. 산호세 한인 성서교회를 개척하기 전이었으므로, 주일 아침 시간에 창세기 말씀으로 그 그릅을 몇 달 섬긴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이룰 만하게 되자, 내게 계속해서 교회를 맡아줄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있었다.
 
그 당시에 모이신 분들의 교단적인 배경은 순복음 교단이었다. 내가 교단에 대한 어떤 특정한 입장을 가져서가 아니라, 장로교 배경을 가진 나로서는 낮선 감이 있어서 사양했다.
10년 전에 내가 뉴 저지에서 이곳으로 온 후에 그 교회에 세미나를 부탁해서 ‘로마서 12장 그리스도인’과 ‘구약의 파노라마’를 통하여 섬긴 적이 있다. 그러나 3년 전에 목사님이 떠나신 후에는 담임 목사를 모시지 못하고 있다. 교세도 많이 약해졌고, 목회자를 모시는 일에 대하여 매우 힘들어 하고 있는 교회이다. 30여년 전에 내게 그룹을 소개했던 그 대학생이 이제는 그 교회의 중진으로 섬기시는 분이 되었다.
 
이 교회를 약 3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 설교로 섬겨왔다. 몇 달 전부터 그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돌아올 때에는 한 보따리 들고 오는 것이 생겼다. 이 교회의 초창기에 자기의 집을 여시어 모임을 가지도록 주선 하셨던 분은 장로님이 되셔서 섬기시다가 약 3년 전에 돌아가셨고, 부인 되시는 분은 권사님이 되셔서 지금도 교회를 섬기시고 계신다. 그 권사님의 아드님이 일본 식당을 하는데, 식당에서 남은 밥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누룽지를 만들어서 우리 부부에게 주신다. 교인들과도 나누시지만, 우리 부부에게 주시려고 2주 정도 누룽지를 만들어서 큰 봉투 몇 개나 가져다 주신다. 하기야 이민 온 어르신들의 누룽지에 대한 애착이 있어서인지, 집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한국 마켓에 가면 비닐 봉지에 넣어 판다고도 한다.
 
쌀이 귀하던 시절, 불을 때서 밥을하면 자연히 솥 밑에 누런 황금 빛 누룽지가 눌어 붙어 있었다. 그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여 먹으면 그 구수한 맛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 있다. 밥을 먹은 후에 입가심으로 숭늉을 마셨던 기억이 새롭다. 때로는 누릉지가 많으면 긁어서 먹는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조금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그 누룽지에 설탕을 뿌려서 먹기도 하고, 기름에 튀겨 더욱 바작바작하게 만들어서 설탕을 뿌러 군것질을 대신했다. 지금이야 군것질 할 것이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지만, 육 이오 사변 때에는, 시골로 피난 갔었고, 수복 된 이후에도 살던 집이 불타서 움막을 짓고 살던 가난하던 시절에는 군것질을 한 기억이 안 난다. 지금 60대 아래의 세대는 아마도 이 글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누룽지 몇 봉다리를 가지고 아파트로 들어오면, 이내 집 사람은 20여개의 비닐 봉지에 나누어 담는다. 내가 사는 노인 아파트에 거주하시는 연세 드신 분들에게 나누고자 함이다. 거의 담는 양이 비슷하게 담으려니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방에 들어가서 열심히 담은 집사람이 “여보!”하고 부르면 다 담았다는 신호다. 남자 분들 가운데서 혼자 사는 아파트는 내가 가고 부부가 사시는 곳에는 집 사람이 가서 전해드린다. 그러니까, 주일 저녁과 월요일 오전은 누룽지 잔치를 치루기 위하여 우리 부부가 서로 떨어져 있는 4 동의 아파트를 방문해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3층으로 된 건물 4개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각 동마다 한국 어르신들이 사신다.
 
사실 누룽지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여기서는 인기가 대단하다.
연세가 드셔서 음식을 만드시기 귀찮으실 때에, 전자 렌지에 물 한 그릇 데워 누룽지를 넣어 드실 때에 밑반찬 하나면 거뜬하기 때문인 듯하다. 또는 어린 시절 경험하셨던 향수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어르신은 기름에 튀겨 설탕을 뿌려 잡수시는 맛이 참 좋다고 하시면서, 매 달 한 번씩 받으시는 기분이 참으로 좋다고 하신다.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배운다. 식당에서 귀한 쌀밥을 차마 버릴 수 없어서 시간과 정성을 드려서 누룽지를 만드는 데, 종업원들이 땀을 많이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해 주시는 분이 수고 또한 감사할 뿐이다. 우리 부부는 만들어서 주신 것을 받아서, 마켓에서 산 비닐 봉지를 가지로 20 여개로 나누어 담고, 그것을 나누러 다니는 것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어디를 나가셨는지 안 계시면, 두 세 번씩 가야하는 아파트도 있다. 그러나 즐겁게 하고 있다. 비록 누룽지 한두 봉투를 받으시지만, 기뻐하시니 즐겁다. 나눈다는 것이 즐겁다. 작은 것을 통하여 서로 만나니 즐겁다. 아직 걷기에 불편 없고, 계단을 오르내림에 힘들지 않으니 감사하다. 언젠가는 섬기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인생에는 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기회 있을 때에 섬기고 나누 삶을 살아야 하겠다.
 
                                                                  (2017.05.29)
Number Title Reference
71 약 삼천여 장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70 두 주일 동안이나.....
69 시리얼 12 박스 난데 없이 아파트 문 앞에 싸인 시리얼 박스들
68 '손에 손을 맞잡고' 캠페인 태풍 '하비' 피해 지역을 돕는 손길들에 대하여
67 신기록들
66 성령 강림 주일에
65 헛 수고
64 누룽지 잔치 노인 아파트에서 누룽지를 나누는 기쁨
63 10001 유 튜브 방문자들.
62 140여송이의 선인장 꽃
61 임종 체험 날마다 죽는 연습하기
60 괜챦아요! 집사람이 아파트 주위를 걷다가 넘어짐
Page: (2/7), Total: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