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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머스 마켙에서
화머스 마켙에서
 
2주 전 토요일 낮, 따뜻한 햇살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포근하게 비추었다. 예년보다 기온이 낮아서 조금 추운 아침 날씨가 계속되어, 한 낮에도 쌀쌀하리라 예상했지만 화창한 날씨였다. 내가 이사 온 이곳 아파트 주위를 좀 더 알 겸해서 바로 옆에 있는 웨스트 밸리 칼레지에서 토요일 오전에 열린다는 화머스 마켙을 가기로 하고 우리 부부가 아파트를 나섰다.
 
다른 날에는 도로 옆으로 난 산책 길을 따라서 낮은 경사로 된 언덕 길을 따라서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산책 길을 따라 반 마일 정도를 내려갔다. 화머스 마켙은 농장에서, 또는 집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 과일, 꿀이나 꽃 또는 즉석에서 만든 간단한 음식이나 수공예품을  몇 시간동안만 파는 곳이다. 미국 상점의 규격화 된 모습과 다른 아주 소박한 농촌의 시장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으로 편하다.
 
사람들은 말끔하게 차려진 대형 마켙도 좋아하지만, 온 가족이 나와서 이것 저것 보면서 채소나 과일 또는 꽃을 사고나서 간이 음식을 사서 먹는 것을 또한 좋아한다. 그런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도 한껐 여유롭게 보인다. 그런데 이곳이 미국이지만, 이상한 것은 화머스 마켙에서 발견한 것은 백인들이 많지 않고 대신 동양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도시 주변이 학군이 좋은 곳이라는 소문 때문인지 중국이나 인도 사람들이 많다. 하기야 나도 한국인니니까 할 말이 없다. 나는 학군 때문에 이곳에 사는 것이 아니지만, 어떻든 좋은 환경이기에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분명하다.
 
화머스 마켙에 간 바로 전 날에 우리 부부가 딸네 집에 갔었다. 세 외손녀 가운데서 첫째 나오미는 지금 7살 9달의 나이이다. 우리 부부와 6살 정도까지 함께 살아서인지 우리들과 매우 친숙하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에 내게 동전으로 4달라 몇 십전을 주는 것이었다. “왜 나에게 돈을 주느냐?”고 물으니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주라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지만 참으로 인정이 많음에 감사하다. 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을까하고 나오미가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뉴저지에 살 때에, 뉴욕에 본부를 둔 ‘예꼬’-예수님의 꼬마들- 이라는 단체에서 만든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어린이용 기독교 뮤직 비데오와 이야기 비데오가 나와 있었다. 그것을 생일 선물로 사서 아주 많이 반복해서 보여 주었다. 어린이 찬송가는 물론, 성경의 인물 이야기와 함께, 아프리카나 어려운 나라에 선물을 보내는 어린 아이들의 정성등이 담긴 내용의 연극도 있었다. 나오미가 알던 모르던, “나오미야, 우리도 저런 일을 많이하고 살자!”라고 많이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한 네살 정도부터는 자기가 갖고 있는 크레용도 어디 보내야 된다고 싸기도 하고, 동전도 있으면 모으곤 했다. 어린 시절 보고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실감한다.
 
화머스 마켙에 가면서, 혹시 살 것이 있을지도 몰라서 돈을 조금 가지고 나갔다. 마켙이 열리는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높은 음성이지만 기타 반주에 맞춰서 부르는 경쾌한 노래 소리가 들렸다. 육십 살 정도는 되어 보이는 백인 아주머니가 앉아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분이 낸 CD도 몇 장 놓여 있었다. 그 분 앞에는 모금함이 놓여 있고 1 달라짜리 지폐가 여러 장 모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주머니가 눈은 뜨셨는데 못보시는 분이었다. 우리 말에 ‘눈 뜬 소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눈은 껌벅껌벅 하시는 데 전혀 못보시는 것 같았다.
 
옆에 세워놓은 한 판자의 부친 큰 푸른 색 종이에는 그 분 자신의 어린 시절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 발 자전거를 연습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과 함께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다. 자기가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격려하고 손을 잡고 걸어 주셨던 아버지의 따뜻하고 자상하셨던 추억, 그리고 비록 장애일지라도 용기를 갖고  일생을 살라는 격려와 사랑의 말씀들, 오늘까지 버팀목이 되었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을 쓴 것이다. 아마도 그 분이 불러준 것을 지인이 대신 써 주신 것이리라. 그 여자분은 비록 노래불러서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얼굴에는 운명적이라든지, 자신을 비하하고 남의 동정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의엿함이 있었다. 비록 장애자로써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지만, 가지고 있는 다른 천부적인 재능인 음악성을 살려서 사람들과 공유함을 통하여 수입을 얻는 떳떳함이 있어서 참 좋았다. 그렇다. 어린 시절에 비록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뛰놀 수는 없었어도 그 분에게는 일생을 살아갈 힘을 북돋아 준 아버지가 계셨다. 어린 시절에 좋은 영향을 받는 것이 참으로 귀한 것을 보았다.
 
집 사람과 함께 나오미가 준 돈을 이분에게 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5불짜리를 꺼내서 모금함에 넣었다. 외손녀 나오미가 자랄 수록 더욱 더 긍휼한 마음이 커져서 많은 사람을 돕고, 힘을 북돋아 주는 인물로 커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예수님께서 “주는 자가 받은 자 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파트로 돌아오기 위해서 단지로 들어오는데, 시니어 센터에서 제일 처음 지은 고색창연한 건물 첨탑에서 낮 12시를 알리는 챠임 벨 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2013.1.19)
Number Title Reference
10 현대 'ELENTRA'
9 까마귀와 호두 산책 길에서 본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
8 온 가족이 함께.
7 "영진이 어머님!"
6 2013년 6월 3일 오전 9시 30분
5 백세 시대
4 화머스 마켙에서
3 휄로십 프라자 A-202호
2 산책 길을 걸으며
1 이십 사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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