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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37)
목사님 댁에서 하룻밤 묶고싶습니다.
목사님 댁에서 하룻밤 묶고싶습니다.

산호세에 있던 젊은 선교회에는 대학생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갓 직장을 잡은 청년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따라 나오는 고등학생들도 몇 명 있었다. 동생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 데리고 오는 회원들도 있었고, 같은 교회 다니는 학생에게 주님을 좀 더 분명히 알고 믿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데려오는 회원도 있었다. 어느 토요일 남 가주에서 차를 타고 올라와서 말씀을 증거하는 데, 부부인듯한 두 분이 뒷자리에 앉으셔서 관심을 갖고 모임을 보시고 계셨다. 특히 내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매우 큰 관심을 가지시고 들으셨다. 나중에 인사를 나누면서 안 것은 모임에 나오는 고등학교 여학생의 부모님이셨다.

딸이 가는 곳에 오신 이유는 혹시 딸아이가 잘못된 이단 집단에 속하는 모임에 가는 것이 아닌가 하여 알아보려고 오신 것이다. 그 후에도 이 경석 집사님이 말씀을 증거하실 때도 오셨고, 내가 말씀을 증거 할 때도 두어 번 더 오신 것으로 기억된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마음이 놓이셨는지 그 후에는 더 이상 오시지 않으셨다. 그런데 남 가주에 있는 나에게 그 부부가 방문 하시겠다고 전화를 주셨다. 그렇게 하시라고 대답했다. 약속한 날에 오셨는데 내가 사는 1 Bed Room 아파트에서 주무시겠다고 하셨다. 난감했다. 일 가족을 어떻게 Living Room 에서 주무시게 할 수 있는가? Hotel 비가 없으신 분들이 아니시다. 그러면 왜 굳이 아파트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다시 가시겠다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룻밤을 지내시고 식사를 하신 후, 한 분을 낮에 더 만나고 올라 가신다고 하시면서 떠나셨다.

여러 날이 지난 후에 그 부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산호세에 다시 올라와서 함께 교회를 개척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분들은 미국 교회를 다니고 계셨지만, 복음적인 교회를 꼭 한번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의 거룩한 부담을 갖고 기도해 오셨던 것이다. 딸아이가 나오는 Youth Born Again Mission에 참석해 보신 후, 내가 남 가주에서 오고 가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도 깊이 해 보신 것이다. 젊은 청년들을 가까이 있으면서 세워가며, 동시에 교회를 통해서 내 삶의 필요를 공급하면 더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을 확신 하시기 때문에 전화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중대한 말씀을 나에게 하시기 전에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집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직접 한 아파트에 짧지만 함께 지내면서 알아보고자 하신 것이다. 나의 실 생활을 보러 오신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중에, 마침 남미 선교사로 가셨던 형님 목사님이 귀국을 하셨다. 아직 몇 년은 사역하실 수 있는 연세셨다. 그리고 교회를 L.A로 옮겼는데 학생 중심의 교회가 되는 것보다는 어른과 학생들이 함께 하는 교회가 건강하기 때문에, 나보다는 그 지역에 불신자들이나 교회를 다니다가 떠난 분들을 형님이 더 많이 아시기 때문에 형님과 의논하고 성도들과도 의논한 후에 교회를 사임했다. 나의 짧은 삶에 가장 강한 신앙적 훈련을 받았던 교회였다.

이 부부가 실리콘 밸리 열린 문 교회 설립자인 박 영철, 박 혜숙 집사님이시다. 주님께 헌신된 분들이었으며, 매우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였다. 내가 올라가기 전에 집사님이 사시는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 부부가 살수 있는 캐빈을 얻어 놓으셨다. 교회가 개척되기 전, 우리 부부와 집사님 가족만 모일 때에도 우리들의 생활을 책임져 주셨다. 그 당시 남편 되시는 집사님은 직장을 사임 하고, 새 사업을 시작하실 때라 자금이 많이 필요하신 때였다. 가족처럼 따뜻한 사랑과 돌봄을 받으면서 집사님 댁에서 새벽 기도회도 모이고, 수요일과 주일 모임을 갖고 시작했다. 남 가주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지만, 이곳에는 이미 우리 부부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한 가족이 있으니 참으로 기뻤다.

봄이 되면, 공원에서 불고기 파티를 하면서 교회 안 나가는 분들을 초청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적으로 불신자들과 교회를 떠난 분들을 찾았다. 대개 아는 분들 가운데서 힘을 모을 것 같지만, 교회를 개척해 보면, 그 상상에서 빨리 깨어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한 번 가 볼께.”라는 대답 정도다. 집사님의 따님을 통해서 학생들을 모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 학생들이 모일 공간과 뛰놀 수 있는 체육관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때 학생들을 위해서 수고해 준 분은 유 성현 형제였다(현재 상항 장로교회 부목사) 그래서 내가 속한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교회들을 찾아보았다. 산호세 중앙 부분에 위치한 큰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만나서 교회를 얻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감사 헌금 정도를 내라고 하시면서, 교실 세 개와 가끔 친교실로 사용하는 농구를 할 수 있는 체육관을 쓰라고 선뜻 내 주셨다. 우리가 사용하기 전에는 일부분은 창고로, 다른 한 부분은 멕시코 형제들이 사용하다가 나간 곳이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곳을 예비하셨다니!

너무나 감사해서, 박 집사님 내외분과 함께 의논해서 팔을 걷어 붙이고 세 교실을 새로 페인트 칠을 했고, 카펫을 하는 회사에 부탁해서 바닥을 깔았다. 이것을 본 미국 교인들이 새로 단장한 교실들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면서 예배 후에 새롭게 단장한 교실을 보면서 기뻐하면서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자기 집처럼 단장한 것에 매우 고마워한 것이다. 교실 중에 중간에 있는 곳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좁아지니 미국교회에서는 그분들이 사용하는 친교실 중의 하나인 Fire Side Room 이라는 곳을 빌려 주어서 모였다. 그곳도 좁아지자 미국 교회에서는 농구 코트가 있는 강당을 쓰라고 하셨다. 그래서 미국 교회가 의자를 바꿀 때 내 놓은 의자를 수리해서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인종을 넘어선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푼 미국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어느 하루, 온 교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그 강당 겸 체육관 내부를 깔끔하게 청소도 하고 커튼도 달고, 내부를 새로 페인트 칠을 하니 300여명이 편히 앉아서 예배 할 수 있는 처소가 되었다. 의자 수리며, 커튼이며, 페인트 칠 등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실리콘 밸리 열린 문 교회를 개척한지 3년이 되어 부흥해 갈 때, 내가 속한 교단의 감독으로 부름 받고 2000년 12월을 끝으로 정든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초를 놓는 교회를 이루고자 교단에서 권장하는 T,E.E 로 기초부터 양육하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신 분들이 많으시다. 약 2년 반에 걸친 ‘작은 목자의 삶’은 세 반이 운영되었다.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셨고 사역에 동참해 주셨다. 교인들이 힘을 모아서 전도해 주셨고, 섬기고 나누는 일에 앞장 스셨다. 심지어는 학생들 가운데 악기를 다루는 학생들이 모아서 자선 음악회를 열어 후원금 500불을 모금해서 적십자사로 보냈다. 제 1 회 이 흥구 작사. 권 길상 작곡 ‘감사와 찬양의 밤’ 자선 성가의 밤을 열어 모금된 3,500불을 교단 선교 기금으로 헌금하기도 한 나누는 교회였다. 한 번은 교단 신학교 학생 가운데 구 쏘련 연방에 있는 나라에 고려인 학생이 유학을 왔는데 병들어 큰 고생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와서 광고를 했더니 교인들이 다 협력하셨다. 어떤 교회학교 학생은 돼지 저금통을 가지고 와서 다 비워 연보를 했다. 중, 고등부를 섬겨 주셨던 유 성현 선생님이 교단 신학교인 A.T.S로 가신 후에도 계속 장학금을 지원하신 분들이 계신다.

참으로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열린 기회를 가진 교회였다. 비록 짧지만 박 집사님 내외분과 이 교회를 개척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내 일생에 첫 번째 ‘감사와 찬양의 밤’을 열어 주셨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는 가정들이 건강한 가정이 되어야 함을 절감할 때, 내가 만들어서 사용해 왔던 교재를 ‘그리스도인의 결혼 청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 주신 박 집사님 내외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미국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릴 수 밖에 없다. 그 밖에도 교회학교 교사님들, 반주자님들, 제직들, 온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더 있고 싶은 교회였지만, 하나님은 나를 더 훈련 하시고자 교단에 소속된 60여 한국 교회와 100여명의 목사님들을 섬기는 일로 부르셨다. 또 다른 사역의 현장으로 아쉬움과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떠나야 했다.

(2011년 2월 씀)
Number Title Reference
41 ‘감사 , 또 감사!’ 후기
40 감사, 또 감사! (40)
39 감사, 또 감사! (39)
38 감사, 또 감사! (38)
37 감사, 또 감사! (37) 목사님 댁에서 하룻밤 묶고싶습니다.
36 감사, 또 감사! (36) 사역을 접으실 뻔 하셨습니다!
35 감사, 또 감사! (35) 또 다시 개척교회를
34 감사 , 또 감사! (34) 크레딧 카드 번호를 드릴께요.
33 감사, 또 감사! (33) 성경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32 감사, 또 감사! (32) Mrs. Ruth Brown과 김 재명 장로님.
31 감사, 또 감사 (31) '증인들의 고백' 뮤지컬
30 감사, 또 감사! (30) 언제부터 여기에서 예배 드리기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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