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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35)
또 다시 개척교회를
또 다시 개척교회를

내가 정들어 살던 곳을 뒤로하고 남 가주로 내려 간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연로하신 어머님은 막내인 내가 같은 어머님이 사시는 지역에 살기를 늘 원하셨다. 그 때마다 입버릇처럼 “한나가 대학교를 가면 내려 갈께요.”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기를 한 14년 정도를 하면서 뒤로 미뤄 왔는데, 그 동안 이곳에서 교회 개척과 젊은 선교회 사역을 했다. 그리고 내가 쉽게 남 가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자녀들을 위해서 지켜 주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한 교육구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아이나, 딸 아이가 다 한 학군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 이유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백인 학생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중간에 다른 학군으로 가면, 실력 평가를 다시 하야했고, 친구들을 다시 사귀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학업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기도 한다. 아니면 자꾸 건드리는 다른 학생들과 싸우면 문제아가 되고, 피해 다니면 소외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 고등학교를 다니니, 잘 아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무난하게 지나갔다.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대학으로 갔기 때문에 어머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고자 했다. 이 약속을 지켜 드리고자 한 것이 남 가주로 이유 중에 하나다. 다른 하나는 남 가주에 내려가서 L.A 일원에 사는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해 젊은 선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곳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간간히 연락했던 대학 후배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산호세에 잠시 머물다가 L.A에서 한 1년 반 살 때, 미국에 유학 오게 되어 반갑게 만났다. 그 당시는 교회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초신자였다. 내가 직장을 가지 않는 토요일 새벽에 함께 만나서 성경 공부를 했다. 내가 L.A를 떠나 다시 산호세로 올라온 후에 신학교에 입학해서 목사님이 되셨다. 내가 다시 남 가주로 내려 갔을 때는 약 200여명이 모이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 식사를 하자고 해서 나가니 교회 장로님과 함께 나왔다.

교회가 잘 성장하는데, 일꾼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서 ‘협동목사’로 교회 교사와 성경공부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제안에 대하여 나는 지금도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떤 근거지를 가져야 사람들을 만나고 청년들을 전도할 믿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교회에서 교사들과 장년반을 섬겼다. 그러면서 교육관을 빌려서 젊은 선교회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 모임을 간간히 가졌다. 그런데, 내가 1994년 겨울 고국 젊은 선교회를 다녀오면서 안양에 있는 교회에서 ‘야고보서 강해’를 하고 돌아오니 그 사이에 교회의 편제가 달라져서 내가 그 교회에서 할 일이 별로 없게 되었다. 아쉽지만 또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남 가주 지도를 펴놓고 내가 속한 교단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기 위해서 기도했다. L.A에서 45분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세리토스라는 도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L.A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면 함께 하겠다는 성도들도 있지만, 나는 다른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나와서 나와 일한 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의 주관은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다가 낙심해서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 먼 곳에서 이사해 온 사람들을 찾아서 교회를 하고자 했다. 말이 그렇지 결코 쉬운 방법은 아니다.

아는 목사님의 친구이신 안 주동 전도사님이 세리토스 근처에 사셨다. 안 전도사님은 고국에서 신학교를 나오셨지만, 한의학을 하셔서 한의사로 일하셨다. 안 주동 전도사님이 수고해 주셔서 세리토스에 있는 김 순식 목사님이 경영하시는 서점 안에 있는 작은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사무도 보고 소개 받은 분들과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회도 했다. 그 가운데 소개 받은 한 가정은 미국에 갓 이민 오신 들이었다.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사셨다. 그분의 집에 찾아 가서 뜻을 모아 한 공동체가 되었고, 한 두 가정과 함께 그 집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또 다른 가정들을 돌면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안정되게 모일 장소가 필요해서 세리토스 근처에 있는 미국교회를 빌려서 오후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초기에 다른 교회를 다니시면서 개척교회 반주를 도와 주신 분은 김 상희 자매였다. 그 후에는 김 혜숙 권사님이 수고해 주셨다. 이분들의 수고와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사실 내가 협동 목사직을 L.A 에서 계속 했다면, 젊은 선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버거워하는 교회 개척의 역사로 인도하셨다.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장소를 찾기 위해 수고해 주신 안 주동 전도사님과 김 순식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주후 2011년 2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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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감사 , 또 감사!’ 후기
40 감사, 또 감사!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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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감사, 또 감사! (36) 사역을 접으실 뻔 하셨습니다!
35 감사, 또 감사! (35) 또 다시 개척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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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감사, 또 감사! (30) 언제부터 여기에서 예배 드리기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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