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감사, 또 감사 !
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4)
이놈, 푼돈에 목숨걸꺼냐!
이놈! 푼돈에 목숨 걸꺼냐?

어머님의 교육열은 대단하셨다. 아무리 없어서 빚을 내도 우리들을 고등학교까지는 공부 시키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앞날의 밥벌이를 위해서 공업 고등학교로 보낼 계획을 세우셨던 것 같다. 그래서 공고와 함께 있는 중학교에 형과 나를 입학시키셨다. 미래에 대한 어떤 목표도 없는 철없는 중학교 시절은 그럭저럭 다녔다. 그런데 큰 걱정은 입학비율이 매우 높은 공고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건축과에 지원했다. 수험표를 받아보니 464번이었다. 이 번호를 집에 가지고 오니 4자가 두 개가 있으니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고들 했다. 동네 사람들도 죽을 4자가 둘이니 힘들겠다는 말씀이셨다.

붙던지 떨어지든지 시험장에 가서 아는 것을 썼는데, 그래도 동생이 시험 잘 치라고 기다리던 형에게 시험 문제와 답을 말했더니 틀린 것이 많았다. 형이 사준 아현시장 뒤에 있던 길에서 튀기는 꽈배기 하나를 먹고 시험을 다 치렀다. 합격자 발표날에 식구들 누구도 함께 보러 가기를 원치 않았다. 합격학교 담에 붙인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가긴 했어도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꼭 감고서 용기를 내어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합격자 번호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게 어찌된 일까? 400번을 지나자 가슴이 멈추는 듯했다. 사실 듬성듬성 합격자들이 있는데, 464번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분명히 464는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확인해도 분명했다.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합격했다! 합격했어!” 소리를 지르며 한참 집으로 향해 뛰다가 아마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다시 그곳에 가서 살펴 보고 옆에 분들에게 464번이 있는가를 물어 확인하고 집으로 다시 달렸다. 참 우스운 일이지만, 공부를 잘 못했던 나에게는 기적이었다.

그 학교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실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학교 수리나 페인트칠을 하면 학비와 이발료를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목공 반에 들어가서 학교 방과후와 여름 방학, 겨울 방학에도 학교에 가서 일을 했다. 방학 동안에는 학교에서 밥을 주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학교 정책이 취직 반에 들어간 학생들이 학교 졸업 전에 취직을 할 수 있도록 했었기 때문에, 다른 공부는 몰라도 실기를 열심히 한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직장으로 나갔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3 학년은 다니지 않고 그냥 졸업하도록 해 주신 것이다. 

간 곳은 그 당시 홍익 대학교 건축과 교수셨던 ‘정인국 건축 연구소’였다. 직장이라고는 하지만 급사 같은 심부름 하는 학생이요, 설계하시는 기사님들의 연필을 깎고, 설계할 종이를 갈아 드리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그리고 추운 겨울 손을 호호 불며 청사진 집을 드나들어야 했다. 그리고 사무실 청소와 난로 관리, 전화 받기가 주 임무였다. 그때 나는 사회에 대하여, 살아나가기 위하여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철저하게 배웠다. 한참 후에나 설계도면에 한 부분을 그려 넣는 것을 맡겼다. 건축 모형도 먼지를 뒤집어 쓰고 만들곤 했다. 정인국 교수님은 사람을 신뢰하고 키우시는 인격자이셨다. 실력이 없는 나에게도 나중에는 조그만 일을 맡겨 주시고 지도해 주셨다. 

나이가 차서 군에 입대해서 휴가를 받아 인사를 드리러 가면, “이군, 시간이 있어, 이 일 좀 해줄 수 있겠나.” 하시면서 일을 맡기셨다. 휴가중에 용돈을 벌어 귀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다. 제대한 후에도 교수님 사무실에 가서 한 동안 일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무교동에 있는 설계사무실에서 잠시 일할 때에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졸업한 공고의 스승이신 이승우 선생님께 전화를 올렸다. 선생님은 인격이 출중하셨고, 박식하셨으며 질문할 때 성의껏 답변해 주셨고 아주 인자함과 권위를 함께 갖고 계신 영어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저 이 흥구 입니다. 제대하고 일하고 있는데, 선생님 생각이 나서 안부 전화 올립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다짜고짜로 “이놈!  너 어디에 있니?  빨리 학교로 와서 나를 만나라. 푼 돈에 목숨 걸꺼냐?” 라고 하셨다. 말씀에 압도 되어 버스를 타고 학교 교무실에 들어가서 책상 앞에 서서 인사를 드리니 선생님 말씀에 “흥구야, 지금도 늦지 않았다. 더 공부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말씀을 주셨다.

이 시점이 계기가 되어 대학 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교 입학 허가는 받았는데 입학금이 거의 없었다. 고졸 학력의 사원 월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 소위 말하는 '죄꼬리 만한 월급' 을 받아서 어머님께 드리면 차비와 용돈을 받아서 썼고, 어머니는 비록 작은 돈이지만 생활에 보태셨을 것이다.
오후 5시 까지 입학금을 내야 하는데 어머님께서 주위에 아는 분들에게 돈을 꾸시기 원하셨지만 여이치가 않으셨다. 어머니께서 최종적으로 찾아가신 분은 '영진이 어머님'이리고 불렀던 분이시다. 아주머님은 내가 중학교 시절 6.25 사변 때에 불탄 집터에 새 집을 지었을 때에 함께 사셨던 분이셨다. 마감일이 가까워 오지만 입학금을 마련할 길이 없으신 어머님은 아주머님께 가셔서 나의 사정을 말씀 드리셨다. 함께 사셨던 일이 계기가 되어 어머니와 아주머님 간에는 이사를 하신 후에도 가족처럼 매우 친하게 왕래하셨다. 지금까지 나의 머리에 확연히 기억되는 아주머님은 매우 부지런하신 분이셨다.; 엄격하셨지만 늘 사랑으로 대해 주신 자애로운 분이셨다. 무엇보다도 청렴결백한 공무원으로써 일하셨던 아저씨를 성실하게 내조하시기 위하여 집에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을 하셔서 자녀들의 학업을 도우신 분이셨다.

이제는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생각하고 마감일 오후를 지내고 있었다. 오후 3시쯤 되었을 때에,  영진이 어머님께서 땀을 흘리시면서 집으로 급히 들어오셨다. 어머니와 나를 보시면서, 입학금이 될 돈 봉투를 내어 놓으시면서 빨리 등록을 하러 가라고 하셨다. 내가 대학과정을 마칠 수 있음에는 일생동안 잊을 수 없는 은인이신 '영진이 어머님'이라고 불렀던 귀하신 아주머니가 계셨음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으로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의 빚을 아주머님께 지었다. 하나님은 내가 주님의 일꾼이 되어가는 인생의 길에서 손 놓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을 때에 아주머님 같으신 귀한 어른을 만나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어찌 아주머님과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학교에 입학해서 낮에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부득불 저녁에 일을 해야 학비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정인국 교수님께서 편의를 봐 주셔서 저녁에 혼자 가서 설계도를 그리면 수정할 부분이나 의견을 도면에 써 주셨다. 이런 저런 일로 교수님 댁을 방문하거나 심부름을 가면 사모님이 늘 따뜻하게 맞아 주셨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이 승우 선생님과 정인국 교수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제자를 사랑하신 한 마디 준엄하신 꾸중과 참아 주시면서 일할 기회를 주시고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주후 2011년 1월 씀)
Number Title Reference
4 감사, 또 감사! (4) 이놈, 푼돈에 목숨걸꺼냐!
3 감사, 또 감사! (3) 구사일생
2 감사, 또 감사! (2) 함께 죽자!
1 감사, 또 감사! (1) 출생과 어린 시절
Page: (4/4), Total: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