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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36)
사역을 접으실 뻔 하셨습니다!
“사역을 접으실 뻔 하셨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는 일, 산호세에 있는 젊은 선교회에 다녀 오는 일 등으로 몸이 많이 약해졌다. 계속 몸에 열이 나고 정신이 없었다. 식은 땀이 많이 났다. 어떤 주일 설교 시간에는 몸이 너무 아파서 설교를 하다가 그만 울어버렸다. 결국 다 마치지 못하고 예배를 마무리 해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개척교회니 어떤 목사님을 청빙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잠을 자면, 온 몸이 땀에 흠뻑 젖고 오한이 나서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듯 했다. 
집 사람은 어떤 회사의 구내 식당에서 일하던 때였다. 아픈 몸으로 땀을 흘리고 누워 있는데 박 승배 형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형제는 내가 산호세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첫 번 찬양대 지휘를 맡아 주었었다. 그 후에도 신학교를 가기 전까지 젊은 선교회의 사역에 이모저모로 협력해 준 일꾼이다. 수화기를 대고 겨우 대답을 하니 “목사님! 목사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예감이 이상합니다. 제가 지금 곧 가겠습니다.”라고 전화를 끊었다.

미국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나에게 오려면 최소한 한 시간 반을 운전해 와야 하는 거리에 있는 학교였다. 아파트에 온 형제는 집에 있는 수건을 찾아서 흘린 땀을 씻어 주면서 물었다. “목사님, 아시는 의사가 있으세요?” 사실 매년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보험을 사지 못해서 검진을 받지 못한 채 여러 해가 지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는 의사가 없었다. 남 가주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첫 번 사무실과 모일 장소를 주셨던 김 순식 목사님께 전화를 걸고 사정을 이야기 했다. 목사님께서 그 당시는 서점 운영을 하시는 관계로 목회를 하지 않으시고 아는 분의 교회에 출석하시던 때였다. 목사님께서 “우리교회에 김 홍식 선생님이 계신다.”고 하시면서, 주소를 불러 주셨다.

박 승배 형제의 부축을 받으면서 차에 탔지만, 세상이 노랗고 힘이 쭉 빠져 있었다. 땀은 비 오듯 하고…. . 한 20분 걸려서 의사 선생님을 찾아 갔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 주소로 또 찾아 갈 수 밖에 없어서 달려 갔다. 들어가서 사정을 말하니 간호사가 진료하는 방으로 가서 뉘어 주었다. 잠시 후 김 홍식 선생님이 들어 오셨다. 진단을 하는 모습이 심각하셨다. 그러시면서 피도 빼고 각종 검사를 하셨다. 얼마 후에 의사 선생님이 “목사님, 잘 오셨습니다. 만일 저에게 오시지 않고 보험이 없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가는 Community Hospital로 가셨다면, 목회를 접으셔야 하셨을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목사님, 염려 하지 마십시오. 저의 아버님도 목사님이십니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하와이에 사십니다. 목사님, 제가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 의대에서 신장 전문의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은 내과 의사지만, 신장 전문의다. 그러시면서 내 신장의 염증이 심해서 이제 신장을 회복하기 위해서 백혈구가 싸울 수 있는 힘이 ‘0’에 이르렀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여러 시간에 걸쳐서 이런 저런 주사를 놓아 주셨다. 다른 환자들도 많이 있으셨을 텐데, 쉴 시간도 없이 간간이 오셔서 점검해 주셨다. 일단 급한 것을 해결하신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제가 오직 검사한 것 외에는 일체 다른 것을 받지 않겠습니다. 그것도 부담 되시면 나누어 내시면 됩니다.” 이 말을 들으니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때는 의사 선생님도 퇴근하실 시간이 지난 저녁 무렵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서 15일에 걸쳐서 통원 치료를 받았다. 그래서 완쾌된 것이다. 신장의 기능이 없어지면 투석을 해야 하고, 몸이 약해지고 힘이 없기 때문에 힘든 개척 교회며 젊은 선교회를 돌볼 길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교회 개척과 젊은 청년들을 위해 헌신한 나에게 건강의 어려움을 허락하셨을까? 이것은 내가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런 환경을 통해서 어떤 위대한 일을 이루셨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나의 생명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박 승배 형제님(지금은 선교사)과 김 홍식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박 승배 선교사님과는 2주 전에 만나서 식사를 했다. 지금도 가끔 남 가주에서 개업 중이신 선생님께 감사의 글을 전한다.

그렇게 아플 때, 어느 날 밤에 이런 꿈을 꾸었다. 
아는 사람들 같은데, 동네 개구쟁이 같이 변한 아이들이 가만히 있는 나에게 검불을 뿌리고, 먼지를 날리며, 돌을 던지고 작대기를 흔들면서 다가 오는 것이었다. 꿈에지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들과 모습이 비슷했다.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손을 봐 주어야 하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하고 뒤 쫓아가니 그들이 도망 가는 것이었다. 도망가던 아이들이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벽이 막혀 있는 곳에 이르렀다. 
이 때다 싶어서 잡아서 혼내주려고 손을 뻗을 때였다. 누군가 엄청나게 큰 분이 나와 아이들 사에 갑자기 스셨다. 잘 보니 몸에서 눈부신 황금색이 찬연한 분이셨다. 놀라서 발 끝부터 점자 위로 눈을 올려 부니 인자하신 주님께서 나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꿈 속이었지만, 내 눈이 주님의 눈과 마주쳤다. 그런데 강한 고압선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이 되더니 나의 몸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빛난 몸으로 변하기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내가 아이들을 혼내주려던 마음이 간 곳이 없어졌다. 놀라운 꿈을 꾼 후에 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아주 메마른 사막에 땀을 뻘뻘 흘리며 외롭게 앉아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그 땅을 힘껏 파라.” 는 음성이 들렸다. 나는 맨손을 모래 땅을 힘껏 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판 자리에서 폭포수 같은 생수가 하늘로 뻗쳐 오르는 것이었다. 환호성을 쳤다. 기뻐 뛰었다. 다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조금 더 가서도 또 파라.”는 말씀이셨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또 가서 피기 시작하니 그곳에서도 또 생수가 솟구쳐 올랐다. 하나님은 내가 육체의 고통 중에 있을 때 찾아 오셔서 인간이 주지 못하는 새 힘과 비전을 주셨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 개척하던 교회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함께 개척하기 위해 모였던 중요한 가정들이 “작은 교회에서는 아이들의 교육이 힘들다. 그러니 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목회를 해 보면 알지만, 일단 떠나겠다고 말할 때는 많이 생각하고 말한 것이므로 다른 도리가 없다. 어느 날 저녁 식당에서 모임을 갖자고 해서 나갔더니, 미안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교회 경비가 몇 백 불이 남았는데, 이것을 쓰시고 교회를 닫던지, 계속하든지는 목사님이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분들은 주위에 있는 큰 교회로 옮겼다. 인간적으로 매우 낙심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돈이라야 한 달 교회 사용료를 내면 끝이다. 그렇다고 돈이 없다고 교회를 닫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마음 깊이에는 그 분들에 대한 섭섭함과 교회 개척에 대한 부담감이 깊이 피해의식으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분들이 떠나 가신지 며칠 되지 않아서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하나님은 이런 상태에 있던 나를 치유해 주셨다.

그 때 남은 교인은 U.C.L.A 에서 내려오는 학생들이 전부가 되었다. 빌려 보던 교회에 사정을 알리고고 나오니 모일 곳이 없었다. 남 가주는 따뜻하니 공원에서라도 임시로 모이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김 순식 목사님이 아시는 ‘물 댄 동산’이라는 단체가 사용하시는 사무실에 연락해 주셔서 임시로 모일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오래 모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미국 교회를 얼마간 빌려서 예배를 보았다. 그간 교인들이 다시 늘기 시작했기 때문에 교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약 한 시간 이상 걸려서 내려오는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에서 가까운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L.A로 다시 옮겼다. 이 교회가 지금은 L.A 지역에 자체 교회를 갖고 있다. 

이 글을 마치면서, 박 승배 선교사님과 김 홍식 의사 선생님 그리고 김 순식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삶의 여정에서 힘들고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늘 힘을 주시고 길을 열어 주셨다. 나의 건강만이 아니라, 환경도 사역을 접을 뻔한 때였었다.

(2011년 2월 씀)
Number Title Reference
41 ‘감사 , 또 감사!’ 후기
40 감사, 또 감사! (40)
39 감사, 또 감사! (39)
38 감사, 또 감사! (38)
37 감사, 또 감사! (37) 목사님 댁에서 하룻밤 묶고싶습니다.
36 감사, 또 감사! (36) 사역을 접으실 뻔 하셨습니다!
35 감사, 또 감사! (35) 또 다시 개척교회를
34 감사 , 또 감사! (34) 크레딧 카드 번호를 드릴께요.
33 감사, 또 감사! (33) 성경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32 감사, 또 감사! (32) Mrs. Ruth Brown과 김 재명 장로님.
31 감사, 또 감사 (31) '증인들의 고백' 뮤지컬
30 감사, 또 감사! (30) 언제부터 여기에서 예배 드리기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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