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감사, 또 감사 !
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16)
청년아! 네가 어디 있느냐?
청년아! 네가 어디 있느냐?

영락 교회 청년 요일 별 성경 성경공부 모임은 그룹별로 활기를 띠고 모였다. 
한 가족의 형제 자매 같은 모습이었다. 리더들은 미리 와서 꽃 병을 놓기도 하고 책상을 준비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우리들만의 공부와 친교를 넘어서 점차 국내 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다.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와 선교단체인 IVF를 통해서 세계 선교와 세계 청년 운동에 대한 책자와 정보를 수집했다.

각 그룹별로 선교 기금을 모으는 운동이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그 기금으로 처음 한 일은 극동 방송을 통해서 ‘영락 청년의 시간’을 방송하는 기금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박 조준 목사님이 담임 목사일 때이다. 청년들이 기금을 모아 극동 방송 시간을 사용하게 된 것을 기뻐하신 목사님은 “이 프로그램을 청년들이 하면 신선하겠다.”고 하셨다. 나에게 방송을 하도록 말씀하셨다. 이 일도 불가능한 일을 또 하게 된 것을 순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의 말씀이심으로 순종했다. 처음에는 내가 방송국에 가서 녹음을 했다. 한 15분 정도였는데, 내용은 경건의 시간에 은혜 받은 말씀이나 한 경직 목사님이 주신 말씀 가운데서 은혜 받은 말씀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녹음했다. 그러나 담임 목사님이 하시는 것이 무게도 있고, 북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담임 목사님이 하시도록 부탁 드렸다. 

청년들이 방송 선교에 마음을 두게 된 것은, 그 당시 군사 정부의 이 후락 정보부장이 방북 해서 북한측과 협정한 항목 중에 남북한이 상오 방송 전파를 방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영락교회는 대부분 북한에서 피란해온 성도들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이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방송전도 운동을 첫 사역으로 택했다. 지금도 그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기금을 모아 방송에 사용하니 세계 선교를 위한 기금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 당시 나는 평신도 부 청년회 지도위원으로 있으면서 모임을 섬겼다. 청년 임원들과 모여 기도한 결과 세계 선교 기금을 위한 바자회를 열기로 했다. 청년회 임원들은 매주 화요일 새벽기도회 이후에 모여서 임원회 기도회를 가졌다. 성경공부에 모이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힘을 모았다. 여러 종류의 수공예품은 물론, 참 기름등과 다양한 공예품이 준비되었다. 그 중에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은 한 경직 목사님이 친히 써 주신 글이다. 한 목사님을 뵙고 취지를 말씀 드리고 ‘청년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글을 부탁 드리면서 싸인 펜을 드리니 그 자리에서 써 주셨다. 연세가 드셔서 떨리시는 손으로 쓰셨다. 이 글을 사진관에 가서 크게 확대해서 모임에 나오는 자매들이 자원하여 비단에 수를 놓았다. 이 글의 원본은 내가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비단에 글자를 수놓은 액자 2개를 만들어 바자회에 내놓았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바자회를 보러 오신 장로님이 액자 2개를 거금을 주시고 사셨다. 한 목사님을 기념할 만한 액자가 그 당시까지 없으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중에 하나는 한 경직 목사님 기념 도서관에 기증하셨고, 다른 하나는 장로님께서 댁에 두시기 위해서 가져 가셨다. 나중에 청년회 회가를 작사한 자매님이 힘든 일이 있어서 교회 도서관으로 들어가면서 바라본 액자의 글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간증을 들었다. “청년아, 네가 어디 있느냐?” 는 글에서 자신이 누구며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미국으로 오기 이전에 이런 바자회를 더 했는데, 그 기금이 영락교회가 다시 세계 선교의 불길을 올리는 기폭제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성탄절 때는 우리들이 디자인한 성탄절 카드를 인쇄해서 판매한 그 이익금을 선교 기금으로 보탰다. 그 기금은 청년회에 두지 아니하고 당회장님의 동의 없이는 사용할 수 없도록 교회에 맡겼다. 처음 선교사로 나간 분들 가운데는 모임에 참석하셨던 영어 성경반 회원들이 있다.

영락교회는 6.25사변 때, 서울이 수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교사 2 가정을 태국에 파송 했다. 언제인가는 알 수 없으나, 두 선교사님은 영락교회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선교사님이 고국에 오시면 그 분들이 설교를 하셨는데 그런 시간이 여러 해 동안 없었다. 물론 선교 보고도 없었다. 한 경직 목사님은 세계 각국을 다니시면서 교역자 수련회와 전도집회를 인도하셨고,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에도 강사셨다. 누구보다도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앞장 서신 목사님이셨는데 더 이상 영락 교회가 총회와 협력하여 파송 한 선교사가 없다는 것은 청년이 우리들이 생각할 때도 해결해야 할 일로 생각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영락교회 청년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서로 아끼며 그 하나됨을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앞장서신 목사님과 일 방향 정렬하여 갈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글을 써 주셨던 한 경직 목사님과 힘을 모아 기금을 모으신 청년회 임원들과 요일 별 성경공부 모임 회원들의 헌신과 기도 그리고 진실한 사랑에 감사를 드린다. 

(2011년 1월 씀)
Number Title Reference
17 감사, 또 감사! (17) 영락 청년의 민족 복음화 운동
16 감사, 또 감사! (16) 청년아! 네가 어디 있느냐?
15 감사, 또 감사! (15) 전도요원 훈련반과 박진찬 할머니
14 감사, 또 감사! (14) 영락교회 청년회 요일별 성경공부 모임의 시작
13 감사, 또 감사! (13) 한 명으로 시작된 반
12 감사, 또 감사! (12) 큰 일 났어요.
11 감사, 또 감사! (11) 꿀송이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
9 감사, 또 감사! (9) 배워야 가르친다
8 감사, 또 감사! (8) 먼저 들어가, 나는 안 죽어!
7 감사, 또 감사! (7) 무덤을 다녀오시지요.
6 감사, 또 감사! (6) 오늘이 청년의 일생에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오!
5 감사, 또 감사! (5) 이 흥구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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