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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14)
영락교회 청년회 요일별 성경공부 모임의 시작
영락교회 청년회 요일 별 성경공부 모임의 시작.

1970년대 유류 파동이 일어나서 공장 생산라인도 가동하기 힘든 때가 있었다.
그런 환경일지라도 영락교회 청년회로서는 오히려 흥왕 해 가는 것을 경험한 귀한 계기가 되었다. 그 해 겨울은 교회도 난방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더라도, 청년 임원회에서는 동계 임원 수련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몇 년 전에 봉사부와 전도부 부장을 하고는 임원직을 갖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평신도부 지도 목사님이신 이 성재 목사님이 부르셔서 사무실로 갔다. 목사님 말씀이 “청년 임원 동기 수련회가 있는데, 아직 강사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이 집사님을 추천했으니 준배 해 주세요.”라는 부탁의 말씀이셨다. 내가 청년 임원회 동기 수련회 강의를 한다니! 청년회장님이 나와 한 동갑 정도인데… . 
내가 임원들에게 말할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나를 강사로 맞을 것같지 않아서 극구 사양을 했다. 그러나 목사님 말씀은 기일이 촉박해서 강사를 찾지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한 번 섬겨보라는 권고를 재차 하셨다.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요사이 교인들이 목사님에 대하여 갖는 존경심에 비하면 그때는 매우 다른 차원이었다. 나로서는 목사님께서 재차 말씀하시면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라고 말씀 드리고 나왔지만 남감 하기 그지 없었다.
한 가지 할 수 있는 것은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때 상담요원으로 훈련 받으면서 그 과정 중에 하나가 ‘수레바퀴 생활’인데, 네비게이토 선교회 간사님이 강의 하실 때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그 생생함을 집회가 끝나고 여러 달이 지났어도 간직할 정도였다.

‘이판사판’이란 말이 있듯이, 급하고 실력은 없고, 목사님은 하라고 하시니 아주 단순하지만 ‘수레바퀴’생활을 주제로 하기로 결정했다. 모임은 잠시 내가 강의 한 후에, 준비된 문제지로 그룹 공부를 하고 나서, 임원들이 나와서 신앙 간증을 짧게 한 후에 그룹 기도회로 마치는 것으로 했다. 그러나 막상
처음 임원들을 만난다는 것이 왠지 자신이 없었다. 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분들이요, 지성인들이요, 교회에 남다른 섬김의 은사를 가지고 모인 임원들이기 때문이었다. 

예정된 시간 이전에 냉방인 선교관 3층으로 가서 기도하고 있으니 임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강의를 시작할 때, “나 자신이 매우 부족한 사람인데 목사님이 여러분을 섬기라고 해서 왔다는 말과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 주시도록 서로 기도하고 저를 위해서 기도 부탁한다.”는 인사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강사를 찾지 못해서 할 수 없이 평신도 부 지도 목사님이 정해준 몇 년 전 선배가 강사가 되었으니 표정이 별로 만족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은 시작되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일할 수 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첫 시간에 수레바퀴 생활의 중심 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다. 점차 임원들도 말씀 안에서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며칠을 저녁마다 모여서 한 2시간씩 해서 수레바퀴 생활을 마쳤다.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임원들의 마음을 겸허하게 해 주셨다.

수련회 마지막 날에 참석했던 모든 임원들이 평가서를 쓰게 했고, 한 사람씩 나와서 참가 소감을 발표하게 했다. 나는 도저히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발표 내용은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신앙의 핵심적인 것을 배워서 참 좋았다.” “그냥 오래 교회는 다녔지만 단순한 ‘수레바퀴 생활’을 통해 큰 깨달음이 있었다.“ “다시 한번 더 하고 나서 우리들이 청년회원들에게 가르쳤으면 좋겠다.” “다시 할 때는 우리만이 아니라, 한 사람씩 더 데리고 와서 하자.”는 것이었다. 분명히 임원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은혜를 받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영락교회 청년회를 통해 영광 받으시게 된 것이다.

한 주 동안 한 사람씩 찾고 나서 그 다음주에 다시 그 방에서 모이게 되었다. 정말 임원들이 힘을 모아 한 회원들 씩 더 모집해서 모이니 약 30여명이 모였다. 위에서 기술한 대로 그대로 했지만, 가능한 한 임원들이 주도하도록 했다. 5일간 그렇게 모였는데, 마지막 소감 발표 시간에 이 모임을 영락교회에 오는 모든 청년들에게 확대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 일부터 추운 겨울 날씨임에도 회원들과 임원들이 교회 뜰에서 교회에 나오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청년 겨울 수련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드디어 모임 첫날 약 300여명의 청년들이 선교관 상층에 있던 강당에 가득 찼다. 나는 아주 간단한 순서만 하고, 교회 어른이며, 성서반 강사님들이신 이 영헌 목사님, 주 선애 교수님 등을 모시고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운동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시도록 부탁했다. 그 후에 전에 나와 함께 공부했던 30여명이 그룹 리더가 되어 약 한 시간 씩 그룹 공부를 한 후 기도회로 마쳤다. 난방이 안되어 차갑던 방은 젊은 신앙인들의 열기로 훈훈했다. 모든 모임을 마친 후에 리더들이 모여 평가회와 기도회를 했다. 그들의 모습 속에 말을 나눔으로써 받은 충만한 은혜의 빛을 볼 수 있었다. 5일간의 모임을 끝내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요일 별 모임을 갖기 원하는 분들은 지원해 달라고 했다. 즉 자기가 원하는 요일 저녁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모임을 말한다. 약 120여명이 모임을 갖기 원한다고 했다.

영락교회 청년 요일 별 성경공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월, 화, 목, 금 4일로 30 여명씩 배정해서 모이기 시작했다. 전에도 기술한 바와 같이 나는 배 사라 선교사님을 통하여 ‘경건의 시간’ 갖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가는 곳마다 입버릇처럼 ‘경건의 시간’을 강조했다. 각자가 경건의 시간을 갖도록 격려했다. 교재는 복음서나 서신서에서 문제를 만들어서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번은 골로새서 ‘매일 성경’을 하다가 큰 은혜를 받아서 교재를 작성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것은 문제지만이 아니라 강의안까지 만들어서 작은 소 책자 교재를 만드는 것이다. 모든 모임의 내용과 진행 방법은 평신도 부 지도 목사님이신 이 성재 목사님의 지도를 받으며 긴밀히 연락하고 보고를 드리면서 일했다. 교재를 써서 목사님께 보여드리면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도해 주세요.”라고 말씀 드렸다. 목사님이 다음 주에 원고를 주시면서 ‘매우 좋으니 평신도 부에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간이 인쇄소에 가서 교재를 인쇄하게 되었다. 너무나 감사해서 지금도 그 교재를 보관하고 있다. 교재명은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골로새 2:7)이다. 각 모임은 약 20분간 말씀을 전한 후 그룹 공부를 했는데 매우 진지했다. 지금도 그 아름다움이 그립다. 그룹의 분위기는 친 형제와 자매들처럼 다정한 성도들의 모임이었다.

점차 각 요일 모임이 성장해서 매 요일 마다 약 100여명에 이르렀다. 중복해서 오는 사람은 없다. 소문이 나서 다른 교회 청년들도 와서 배우고 교제하고 교재를 가지고 교회 청년들과 나누기 위해서 오는 분도 여럿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저녁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무보수 섬김이다. 이렇게 요일 별로 모이는 청년들이 교회 수요 예배에 나오는 분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예배 후에 청년들이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군사 정권 하에 있던 청년들은 암담한 사회 현실가운데서 빈번하게 발표되는 계엄령에 찌들려 있었다. 그 여파로 영락교회 청년회나 대학생 회가 일시 스스로 해산한 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회원들이 모여 기도하기 한 1년 전부터 나는 뜻을 같이 하는 몇명의 청년회원들과 수요 예배가 끝난 후 본당 2층에 잠시 남아서 함께 국가와 교회와 청년회를 위해서 기도를 계속해 왔었다. 하나님께서 몇 명이 모여 드린 기도의 불씨를 백 여명 이상이 수요 예배 후에 다시 청년들에게 옮겨 붙게 하신 것이다.

부족한 한 젊은이, 열정을 있지만 내용이 빈약한 나를 키우시기 위해서 청년회 임원 동기 수련회를 섬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이 성재 목사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 와서 뉴저지에 잠시 살 때 이 성재 목사님을 뵙고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그 당시 청년회 임원님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겸손하신 분들이었다.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꿈을 가진 분들이었다.
주일 오후에 그룹 정, 부 리더들이 모여서 다음 주간 중 모임을 준비할 때, 교실 뒷자리에는 교회 권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참여하셔서 앉아 계셨다. 이른 아침부터 교회에 오셔서 섬기신 어르신네들이 아닌가. “우리 교회를 이어갈 젊은이들이 이렇게 힘써 모이고 말씀을 배우는 것이 너무나 귀해서 그냥 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격려해 주셨다. 또한 이런 모임이 가능하게 함에는 보이지 않는 수고의 손길이 있게 마련이다. 평신도 부 간사님이셨던, 홍 인숙 님이시다. 늘 웃으시면서 친절하게 부탁 드리는 교재들을 준비해 주셨다. 그 후에는 교회 사무실에서 오래 근무 하시다가 사임하셨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영락교회 청년회를 사용하셔서 격변기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복음 전파의 기수로 사용해 주셨음에 감사 드립니다!

(2011년 1월 씀)
Number Title Reference
17 감사, 또 감사! (17) 영락 청년의 민족 복음화 운동
16 감사, 또 감사! (16) 청년아! 네가 어디 있느냐?
15 감사, 또 감사! (15) 전도요원 훈련반과 박진찬 할머니
14 감사, 또 감사! (14) 영락교회 청년회 요일별 성경공부 모임의 시작
13 감사, 또 감사! (13) 한 명으로 시작된 반
12 감사, 또 감사! (12) 큰 일 났어요.
11 감사, 또 감사! (11) 꿀송이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
9 감사, 또 감사! (9) 배워야 가르친다
8 감사, 또 감사! (8) 먼저 들어가, 나는 안 죽어!
7 감사, 또 감사! (7) 무덤을 다녀오시지요.
6 감사, 또 감사! (6) 오늘이 청년의 일생에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오!
5 감사, 또 감사! (5) 이 흥구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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