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감사, 또 감사 !
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5)
이 흥구 일어나!
이 흥구 일어나!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있었던 좋은 추억이다.
국어를 담임하셨던 분의 존함은 동 원영 선생님이었다.
연세가 50대 후반이셨던 것 같다. 아주 인자하셨고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많으신 분이셨다.
선생님을 국어 시간이 되면 번호대로 한 단원씩 읽히시는 분들이셨다. 나도 차례가 되어 지정하신 부분을 읽었다. 그런데 책에 시가 나오면, “이흥구 일어나!”라고 하셨다. 장난기 있었던 나는 “선생님! 왜요?”라고 하면, “일어나서 시를 읽어라.”고 하셨다. 그래서 김 소월의 ‘진달래’를 비롯하여 교과서에 나온 시를 읽는 기회를 여러 번 가졌다. 어떤 때는 국어 시간이 시작 될 때, 일어나서 시를 한편 읽도록 하신 적도 있다. 

내가 지금 찬송 시를 쓰게 된 것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인자하신 국어 선생님을 통하여 시에 대하여 친숙하게 되도록 하신 것으로 믿고 감사 드린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겠지만, 한 학생에게 기회를 주셔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 주신 분으로 하나님은 동 원영 선생님을 통하여 동기를 부여해 주셨다. 

고등학교 때, 음악 시간을 좋아했다. 특히 가곡을 좋아했고, 가끔 들을 수 있는 유명한 음악가들의 교향곡이나 합창곡들을 매우 좋아했다. 섬세함과 웅장함, 작은 샘물 같기도 하고 폭포수 같기도 했다. 봄이 되면 산에 올라가서 학교에서 배운 가곡을 목청을 높여 불러보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서울 합창단’이 라는 곳에 같이 가자고 해서 길지는 않지만 다닌 적이 있다. 그 당시 지휘자는 경희 대학교 음대 교수님이 셨든 서 수준 교수님이셨다. 나중에 안 것은 서울 새 문안 교회 찬양대 지휘자셨다. 고등학교 때 마포에서 살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서울 합창단 단원이셨던 이화여자 대학을 다니시는 분과 함께 같은 차를 타고 집으로 오곤 했다.

참으로 친절하신 누님이셨다. 아버님은 목사님이셨는데, 6.25 사변에 납치되어 생사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내가 살던 집에서 몇 정거장 더 가면 되기 때문에 누님 댁에 방문도 하고, 찬양대로 섬기시는 교회에 방문한 적도 있다.
늘 친절하게 말을 들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따뜻이 대해 주신 귀한 분이셨다. 대학을 졸업하신 후 KBS 외국어 방송국에서 일하셨다. 내가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 왔을 때, 찾아 뵈면 바쁜 시간을 내서 반갑게 맞아 주시던 귀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중에 외교관의 부인이 되셔서 많은 생활을 외국에서 보내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신 대사님과 함께 고국에 계신 것으로 안다.

이 누님에 대하여 기록하는 이유가 있다.
아마 1961년 성탄절이었으리라고 기억된다. 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합창단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성탄 계절인 어느 날 누님이 보내 주신 성탄절 카드를 받았다. 그 안에 “흥구야! 너와 나 위해 주님이 나시었단다.”로 시작되는 성탄 시를 지으셔서 예쁜 글씨로 보내 주셨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문제는 좋은 선물을 살 돈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수도 없어서 나도 시를 써서 답장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내용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에 대하여 느낀 바를 쓴 ‘졸작’을 보내 드렸다.

동 원영 선생님과 합창단에서 만난 누님이 주신 기회가 저의 삶에 밑거름이 되어 주셨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된 후에 저의 일생의 은인이신 한 경직 목사님도 해방 후 혼란과 격변기에 지리산 주변에 다니시며 전도하실 때,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하신 일꾼들과 함께 부르시기 위하여 복음 ‘전도 운동가’를 작사하셨고, 강 신명 목사님이 작곡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은 존경하는 분을 닮기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그래서 나도 한 목사님처럼 복음 전도 운동에 대한 시를 쓰고 싶었다. 

(주후 2011년 1월 씀)
Number Title Reference
17 감사, 또 감사! (17) 영락 청년의 민족 복음화 운동
16 감사, 또 감사! (16) 청년아! 네가 어디 있느냐?
15 감사, 또 감사! (15) 전도요원 훈련반과 박진찬 할머니
14 감사, 또 감사! (14) 영락교회 청년회 요일별 성경공부 모임의 시작
13 감사, 또 감사! (13) 한 명으로 시작된 반
12 감사, 또 감사! (12) 큰 일 났어요.
11 감사, 또 감사! (11) 꿀송이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
9 감사, 또 감사! (9) 배워야 가르친다
8 감사, 또 감사! (8) 먼저 들어가, 나는 안 죽어!
7 감사, 또 감사! (7) 무덤을 다녀오시지요.
6 감사, 또 감사! (6) 오늘이 청년의 일생에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오!
5 감사, 또 감사! (5) 이 흥구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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