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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 타워 57호(9)
성조기를 들고
이곳 노인 아파트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생일 당한 분들을 위해서 특별 메뉴를 갖춘 식사를 한다.
생일 당한 사람들을 한 식탁에 모아 식사하게 한다. 생일을 기념하여 장미 꽃도 한송이씩 준다. 축하러 온 가족들도 와서 함께 식사를 한다. 외래 손님은 식사비를 내야 한다. 오늘은 닭고기와 생선이 주를 이룬 식사였다. 다른 날은 5시부터 식사를 시작하지만,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는 4시 부터 6시 까지가 식사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4시 30분경에 내려가서 저녁 식사를 해서 5시 15분경에 방으로 올라왔다. 걷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라 TV를 시청했다.

생일 기념 식사를 하고 올라왔는데, TV에서는 죽음에 관한 것을 다룬 것이었다. 호흡이 멈추면 죽은 것인가, 뇌가 기능을 하지 않으면 죽은 것인가로 부터 시작해서 죽은 사람에 대한 보상에 관한 것과 잠시 죽었다가 산 사람들의 증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죽음에 대한 것을 다룬 것이었다. 방송 해설자는 현대인들은 죽음에 접하는 기회가 적으며, 죽음을 매우 두려워 한다고 설명하면서, 때로는 죽음을 잊고 산다는 말을 하면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과 같이 죽음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은 단절이요, 암흑이며, 광명이 아닌 어두움이므로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해가 거의 너머갈 무렵인 7시 조금 전에 아파트를 나와서 매일 걷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에서한 불록 떨어진 곳에 산타 클라라 재향군인 회관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나오는 데 각 자마다 성조기와 각 군을 대표하는 기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었다. 비록 내가 미군으로 월남 전에 간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연합군이었던 고국의 백마 부대 소속으로 1967년에 월남전에 참전했었고, 아들은 현역 군인이며, 2년 전까지는 며느리도 군인이었기 때문에 아파트 앞 재향 군인 회관을 한 두 주일 전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건물을 끼고 매일 걷기 때문에 오늘도 그 길에 접어든 것이다. 모여있는 분들은 대개가 50세 이상 된 군대 출신 민간인들이었다. 그래도 재향 군인 모자를 쓰고 각자가 성조기를 손에 들고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 지역 출신 군인 중에 한 명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전사를 했는데 얼마 후에 운구가 이 앞을 지나기 때문에 도열해서 경의를 표한다.”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에 2번, 이락에 2번 파병되었었고, 며느리는 2살된 맏 손자를 떼어놓고 이락에 파병되었던 경험이 있는 나는 그 자녀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아들아이가 공군 사관학교를 입학 한 후, 매일 군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특히 전쟁 터에 나가 있는 군인들의 생명과 남겨둔 가족들, 그 중에 특히 그들의 자녀들과 배우자들을 위해서 기도 할 수 밖에 없는 부담감이 늘 있다.

나와 집 사람도 나누어 주는 성조기를 왼쪽 손에 꼿꼿이 들고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길 양편에 서 있었다. 20 여대의 경찰차가 비상등을 반짝이면서 운구 행렬이 시작 되었다. 도열해 선 모든 분들은장례 행렬을 향해서 거수 경례로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나와 집 사람도 정말로 오래간만에 거수 경례를 했다. 아마 우리 집 사람은 평생 처음의 거수 경례였을 것 같다. 그 후에 경찰 모터 사이클 두 대가 운구차 앞을 호위하고 갔다. 그 뒤에 가족들이 탄 차가 여러대 지나가는데, 동양인들이었다. 어쩌면 한국 동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열해서 경례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손을 흔드는 가족도 있었고, 우리들처럼 거수 경례로 답례 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그 뒤에 아마도 군인 출신들인 듯한 모터 싸이클을 탄 민간인 행렬이 수 십대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후에 또 경찰차가 20여대 비상등을 번쩍이면서 뒤 따랐다.

나라의 명을 받고 전사한 한 젊은이에 대한 국민의 태도에 많은 것을 느꼈다. 물론 서로 연락할 수 있는 통신망이 발전되었지만, 서로 연락해서 육,해, 공군과 해병대 출신 군인들이 하나되어 자기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후배의 죽음을 애도하며 경의를 표하는데 시간을 내서 모인 것이 참으로 귀하게 보였다. 전사한 군인은 해병대였다. 운구 행렬에 해병대 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아침에 사무실에 가니, 윤 집사님이 내 자리로 오시더니, 최 영환 목사님이 소천하셨다고 하셨다. 내가 아는 연세가 높으신 최 명환 목사님인가 하고 다시 알아보니 최 영환 목사님이라고 하신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목사님이시지만, 그분이 목회하신 교회 옆을 자주 지나간 적이 있다. 목사님의 연세는 69세였다고 한다. 오늘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생일을 기념하여 ‘태양절’이라는 북한 최대의 명절을 지킨다고 한다. 이곳 아파트에서도 노인들을 위한 생일 잔치가 있었다. 저녁에는TV에서는 죽음에 대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운동하기 위하여 걸러 나가서는 전사한 군인의 운구 행렬에 참가했다.

성경의 말씀처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다. 이 죽음은 언제인가 나에게도 온다. 하나님 품으로 부름을 받는 시간이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꼭 안타깝고 슬프게 여길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있다가 부르실 때, “예. 감사합니다” 라고 기쁨으로 대답할 그 날이 되도록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주후 2011년 4월 15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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