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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 타워 57호(8)
아침. 저녁 약 한 시간씩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부터 우리 부부는 아침과 저녁 약 한 시간씩 걸었다.
한 20여 년 가까이 하루에 한 번씩 걷기를 힘써왔다. 그렇게 해 오다가 한 2년 전부터 하루에 두 번씩 걷기 시작했다. 싫던 좋던 습관이 되도록 시간만 되면 그냥 나간다. 나는 5파운드 나가는 아령을 양손에 들고 팔을 흔들면서 걷는다. 양손에 들었으니 10파운드가 된다. 심하게 흔들면 가벼운 몸무게를 가진 탓에 몸까지 흔들린다. 어떻든 간에 집 사람과 내가 함께 걷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다.

아파트로 들어 온 후에 걷기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부쩍 더 들었다. 이곳에 입주하는 분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이신 것 같다. 처음 이곳으로 오실 때의 연령이 몇 세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 되는 것은 이곳에 들어 오신 후 계속적으로 운동을 하시지 않은 분들은 걷는 것을 비롯하여 거동이 많이 불편해 지셨을 것이라는 것이다. 밖에 나돌아 다닐 일이 없으신 노인들이다. 그러므로 저녁에 식사하시기 위하여 엘리베터를 타시고 식당에 오셨다가 가시는 일만을 반복하신 분들이 많았으리라고 생각된다. 거의 하루를 방에서 그냥 지내시다 보니 근육이 굳어지거나, 약화되어 걸음 걸이 조차 어색하고 불편해 진 분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전보다 더 큰 결심을 하고 열심히 걷고 있다.

처음에는 산타 크라라 대학 교정을 코스로 하여 걸었다. 여러 날을 걸어 보니 아무리 교정 이곳 저곳을 돌아 걸어도 약 40분 정도면 다 끝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네의 길들을 걸어 약 한 시간 되는 코스를 갖고자 이 길 저 길을 다녀 보았다. 그러다가 요즈음 걷고 있는 코스를 정해서 걷고 있다. 걸을면서 발견한 것은 성녀 크라라와 성녀 크레아의 이름을 딴 학교와 교회가 바로 인접해 있다. 산타 크라라는 대학교이다. 그러나 성 크레아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있다. 아들 삼열이와 딸 한나가 졸업한 북서 중학교에 인접해 있으며, 아파트와 인접한 공원 바로 앞에 있다. 산타 크라라 대학교안에는 유서 깊은 교회당이 있고, 바로 길 하나를 건너서 한 200야드 건너편에는 성 크레아 교회와 학교가 있다. 교회서는 성 크레아의 삶을 이어 받아서 매 화요일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에 저소득 가정을 위하여 신선한 각종 야채와 과일과 빵등을 나누어 준다. 교황에 의하여 13세기에 성녀로 지명된 크레아와 크라라는 둘 다 성 프란시스의 말씀과 그의 청빈한 생활에 감화를 받고, 수녀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본 여인들이다. 역사와 명성 때문인지 대학교와 초, 중등 학교는 학생 수가 많다. 학교에서 조례를 설 때 국기에 대한 맹세와 노래를 아파트에서 들을 수 있다. 아파트 정문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산타 크라라 법원이 있다. 조금 떨어져서는 우체국이 있다. 이 우체국 앞에서 토요일이면 농산물 장이 선다. 산타 크라라 대학교 담을 끼고 가다가 바른 쪽 첫 골목이 산타 크라라 스트리트이다. 건너서 마켓 스트리트를 오른 쪽으로 돌아서 걸어가면 오래된 집 한 채가 있다. 이 도시는 역사적 유적지들을 잘 관리하는 도시이다. 그런 유적지에는 동판으로 간단한 역사 소개가 있다. 한 집은 이 지역에 첫 비행 조종사가 짓고 살던 집이라는 내용의 글과 그의 이름 등이 적혀 있다. 조금 더 가면 길 양편에 1838년, 1890년 또는 1895년 1905년 등 지은 지 1세기 이상 되는 집이라는 지은 연대를 새긴 판을 집에 붙여 놓았다. 놀라운 것은 목조로 조각을 넣어서 지은 건물들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집은 참으로 작다. 그러나 어떤 집은 대 저택으로써 지금 Museum 으로 사용되고 있다.

약 100여 년 전에, 현재에도 별 불편함이 없는 도로 폭을 지정하여 집을 지은 것이 참으로 놀랍니다. 먼 앞날을 바라본 것 때문이리라. 100여 년을 지나오면서도 집을 잘 관리한 입주자였던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 결과 도시의 유적지로 남아 있는 것일 것이다. 다 정성이 들어가고 먼 장래를 바라본 도시 계획이 있었기에, 그러한 건물과 길이 아직도 그대로 있는 것이다. 아파트로 오는 길에 아파트에서 약 200 feet 떨어진 곳에는 이곳 최초의 개신교 교회였던 건물이 있다. 지금도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아주 작은 교회다. 노란 색의 건물의 유리창은 다 색 유라로 성경 인물들의 그림이 있는 것이다, 참 아름답다. 교회 건물과 주위에는 정성 들여 가꾼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다.

한 바퀴를 돌아서 아파트로 오기 위하여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가기 직전에 흰 색을 칠한 집이 있다. 늘 다니던 길 건너 편에 있는 집이라 건너가서 보니 그 집도 유적지였다. 이 지역에서 처음 의술을 펼친 최초의 의사가 짓고 살던 집이면서, 동시에 환자를 진료하던 곳이라는 내용의 동판이 있다. 그리고 공원으로 들어서면 도서관 앞에는 이 공원의 역사와 이곳에서 이전한 역사적 유적들 에 대한 기록들이 큰 동판에 새겨져 있다.

누군가가 역사를 만드는 것도 참 귀하다. 그러나 역사를 잘 보존 하는 것도 귀한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정리해서 뒤에 오는 세대가 기억하도록 만들고 알리는 것도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부부가 아침 저녁 유서 깊은 유적들을 보며 걷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리버티 타워 노인 아파트도 언젠가는 역사적 유적지가 될 것 같다. 건물 전체가 다 콘크리트로 지었다. 1970년대에 건축 시공에 획기적인 공법인 Exposed concrete 공법으로 외장을 했다. 아파트 각 동의 중간 벽도 콘트리트이다. 한 마디로 건축 경비가 많이 든 건물이다. 추측하건대 디자인도 잘 알려진 건축가가 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주 깨끗하다. 관리도 빈틈이 없이 하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기념 되어야 하는 것은, 감리교 교단에서 이 지역의 노인들을 위하여 이곳을 비롯하여, 윈체스터 부르버드에 이 아파트보다 더 큰 노인 아파트를 지어서 수 많은 노인들의 안식처를 만들어준 사회 공헌의 금자탑인 것이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노인 아파트는 정부나 시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힘쓴 세대인 노인들을 위한 감리교 재단의 배려에 대하여 언젠가는 이 도시가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후 2011년 4월 2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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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리버티 타워 57호(8) 아침. 저녁 약 한 시간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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