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감사, 또 감사 !
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21)
열악한 조건에서나, 최상의 조건에서나
열악한 조건에서나, 최상의 조건에서나.

한 사람의 삶에서 지속적인 열정을 갖고 받은 바 사명을 추구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쉽지 않다. 환경과 연령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한 경직 목사님을 존경하면서 감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작은 일에 지속적으로 충성하시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은퇴 하신 후에도 교회에 출석 하실 때면 예배를 드리신 후 성도들과 인사하시기 위하여 본당 정문에 서시지 않으셨다. 어디 계실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교회 마당을 지나가면서 목사님이 서 계신 곳을 알게 되었다.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부득이 아이들과 함께 오신 분이나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하여 여러 곳에 TV를 설치하여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 중에서 교회 본당 지하실에 있는 분들이 나오는 곳에 서서 인사하시고 계셨다. 예배 여건이 본당보다는 좋지 않은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성도들을 위해서 그 곳에 계시면서 은퇴하신 후에도 섬기신 것이다.

목사님이 교회 일꾼들을 세우시기 위하여 일 년에 한 두 차례 평신도 지도자 수련회’를 여셨다. 사실 매번 강의 내용을 같았다. 
반복의 원리를 사용하셔서 아주 머리에 남도록 하신 것이다. 나는 그 모임에 여러 번 참석했었다. 똑 같은 말씀이지만, 늘 새롭게 다가 왔기 때문이다. 처음 모임에 참석했을 때 받은 강의 내용 용지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새노랗게 변색된 종이가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이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새 교회상의 신앙 - 복음 신앙(성경 중심)
2. 새 교회상의 윤리 - (절제 근엄한 청교도의 생활 윤리) 경건 생활의 연습.
3. 새 교회상의 교회론적 관계 - 연합운동에 협력 (에큐메니칼 정신에 의한)
4. 새 교회상의 사회적 관계 – 사회 정의의 구현.

한 제목마다 강의 하신 내용이 다 쓰여진 것을 주셨다. 영락교회가 어떤 기초 위에 세워졌는가를 일목요연 하게 볼 수 있었다. 
영락 교회의 3대 목표는 ‘전도’ ‘교육’ ‘봉사’ 이었다. 비록 간단하지만 주님이 주신 지상 명령이 함축 된 것이다. 내가 전임 사역자가 되어서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강의와 목표를 통해서 사역을 점검할 수 있었음에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목사님이 은퇴 하신 후, 서울시 변두리 서울의 인분을 다 모으는 곳이 있었다. 그 주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이 철거된 분들이 오갈 데 없어서 모여든 판자촌이 형성된 곳이었다. 정말로 열악한 환경가운데서 사는 분들이었다. 입만 열면 날아 다니는 똥파리가 입으로 들오올 지경인 곳이다. 그 곳에 장신대 신대원을 다니시는 분이 교회를 개척하여 전도하고 있었다. 장마가 지면 온 동네가 똥물에 잠기곤 하는 곳이었다. 그 전도사님이 은퇴하신 한 목사님을 초청하여 전도집회를 마을에서 갖고자 하셨다. 소식을 듣고 뜻을 모은 몇 분과 그곳에 가서 축호전도를 하면서 목사님의 전도 집회에 꼭 나오실 것을 부탁 드리는 일을 했다. 물론 자발적인 것이다. 말씀을 증거 하실 강대상은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무궤짝 같은 것을 쌓아서 담요를 덮었다. 장대에 단 전기 불 두 개가 덩그러니 달려 있을 뿐이다. 한 목사님은 은퇴 하신 후 영락교회의 규모 있는 강단이 아닌 곳에서 전등불로 모여드는 파리 떼의 방해와 악취를 맡으시면서 천국 복음을 증거하셨다. 

“충청북도를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주제로 충북 청주에서 열렸던 복음 전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주일 오후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에 가서 공설운동장에 가서 전도집회에 참석했다. 물론 은퇴 하신 후의 일이다. 수 많은 군중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시는 담대함을 보았다. 목사님은 사람이 많건 적건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는 은퇴 후에도 계속 달려갈 길을 달려 가셨다.

은퇴하신 후 처음 맞는 신정 때 신년 예배를 마치고 첫 아들 삼열이와(생후 1개월 반이 되었을 때) 집 사람과 함께 교회 한 편에 있던 목사님 사택에 세배를 드리러 갔다. "식사 중이시라."고 하시는 사모님의 말씀을 듣고 잠시 기다리니 목사님이 나오시면서 반가이 맞아 주셨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목사님은 사람들을 늘 정성껏 만나 주시는 분이셨다. 세배를 드리고 나니 목사님께서 “아이를 안아도 되느냐.”고 하셨다. 삼열이의 이름은 당시 부목사님이셨다가 담임 목사님이 되신 박 조준 목사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이를 안으시더니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물으셔서 삼열이라고 말씀 드렸다. “제가 삼열이를 위해서 기도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어린 삼열이이 일생을 주님이 인도하시고 도와 주시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다.

삼열이가 한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집사람의 친구가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가족이 이북에 있을 때부터 목사님이 섬기시던 신의주 제 2 교회에 다니셨기 때문에 특별히 한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한 것 같다. 초 여름 날 칠십 중반을 넘기시는 연세라 피곤하신지 신랑 신부와 함께 하객들에게 인사를 나누신 후 의자에 잠시 앉아 계셔서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 때 삼열이가 “아빠!”하고 부르며 나에게 달려 왔다. 내가 놀란 것은 목사님이 아들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신 것이다. “삼열아, 이리오너라.”라고 부르시니 아들아이가 주섬주섬 다가갔다. 그 때 목사님이 삼열이의 두 손을 잡으시더니 또 간절히 기도를 드려 주셨다. ‘아! 목회는 예수님을 닮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눈으로 본 것이다. 지금도 삼열이는 한 목사님 이야기를 하면 고마워 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던 예수님, 예수님께 나온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예수님을 몸소 따르시는 목사님이셨기에 늘 감사 하고 있다. 

(2011년 1월 씀)
Number Title Reference
29 감사, 또 감사! (29) 또 다시 산호세로.
28 감사, 또 감사!(28) 이 글에 곡을 붙여 주실 수 있으신지요?
27 감사, 또 감사! (27) 왜 미국에 오셨어요?
26 감사, 또 감사! (26)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25 감사, 또 감사! (25) 죽어도 한이 없다!
24 감사, 또 감사! (24) 거듭난 젊은이들의 대 행진
23 감사, 또 감사! (23) 기도해 주신 어머님과 아버님들.
22 감사, 또 감사! (22) 고 한 경직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21 감사, 또 감사! (21) 열악한 조건에서나, 최상의 조건에서나
20 감사, 또 감사! (20)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19 감사, 또 감사! (19) 계단에 스셔서 손을 흔드시던 목사님
18 감사, 또 감사! (18) 산에 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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