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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18)
산에 나무를 심자!
산에 나무를 심자!

어느 이른 봄철에 한 경직 목사님께서 주일 설교 말씀을 주시면서 우리나라 산의 황폐함을 말씀하셨다. 외국에 나갈 길이 있으실 때 마다 “고국의 산과 일본의 산 그리고 미국의 산을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나라 산의 헐 벗음을 개탄하시면서 “청년 여러분! 이 나라의 산을 푸르게 하는 일에 헌신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호소 하셨다.

마침 청년 요일 별 모임도 활성화 되어 있고 청년회 임원들도 요일 별 모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때이므로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인적 동원은 일단 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함께 의논한 결과 청년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시는 장로님들에게 묘목을 부탁하기로 했다. 청년 임원들이 취지를 말씀 드리니 쾌히 승낙 하시면서 수 천주의 각 종 묘목을 사 주셨다. 4월 5일 식목일이 휴일이었는데 한 백 여명이 훨씬 넘는 청년 남녀 회원들이 힘을 모았다. 한 해에는 영락 동산(묘지) 울타리를 따라 묘목을 심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한 형제 자매님들의 웃음 속에 자라날 나무들의 뿌리들이 정성껏 땅에 묻혔다. 언젠가는 우리들이 묻힐 이 동산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한 해에는 영락 기도원에 가서 심기도 했다. 그 때는 박 조준 목사님도 가셨다. 식목에 대하여 잘 아시는 분들의 자문을 받아 기도원에는 주로 잣나무를 심었다. 함께 심으면서 이런 말들을 했다. “이 나무가 아람들이 크기로 자라나면 우리들의 손자 손녀들이 이 나무 밑에서 마음껏 뛰어 놀꺼야!” 
한 목사님은 정말로 영혼을 사랑하신 분이시다. 조국을 사랑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고국의 땅을 사랑하신 분이시다. 한 목사님이 은퇴하신 후 남한 산성에 머무실 때, 옷장에는 빛 바랜 애국가 전 절이 인쇄된 종이를 붙여 놓으셨다. 미국에 유학을 하시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가실 때. 하와이를 경유하시게 되었다. 그곳 한인회 회관을 방문하셨는데, 문을 여시니 정면에 태극기가 있었다. 목사님은 태극기를 보시자 마자 그 자리에 앉으셔서 감격의 통곡을 하셨다고 회고하신 글을 읽었다(은퇴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발간된 신동아-월간지-에 실린 ‘나의 교우 반세기’ 에서). 

몇 년 전 읽은 신문 기사에서 유엔의 조사로 세계에 모든 국가 중에서 한국의 식목은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맺은 나라라고 했다. 나의 젊은 시절 한 경직 목사님을 뵈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다. 장로님들과 청년 임원들도 마찬가지이다.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셨고, 우리는 부족하나마 순종하고자 했다. 교회 어른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셨고 박수를 아끼지 않으셨다. 참 아름다운 교회였다!
신앙은 역사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에는 수고가 따르고 자연히 땀과 헌신의 기도를 통한 결단이 요청된다. 우리는 결코 3.1절을 잊을 수 없다. 선언문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분은 남강 이 승훈 선생이시다. 한 목사님은 설교 가운데서 “나라 사랑 없는 신앙은 없다.”는 논지로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영락 청년들은 국가 기념일 중에서 민족 수난의 눈물과 피가 흐른 3.1절. 현충일, 6.25등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3.1절에 기독 청년들이 집에서 딩군다거나 영화나 보러 갈 만한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3.1절 기념 모임을 가졌다. 독립 선언서도 낭독하고 만세 삼창도 외쳤다. 애국가도 불렀다. 그 당시 교회는 신년 예배를 드린 후 애국가를 불렀었다. 그 당시까지는 직접 3.1 운동에 참가해서 만세 삼창을 부르고 옥고를 치르신 연로하신 교회 어른들이 계셨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초청해서 그 때의 상황을 듣고 나라 없는 백성의 비참한 모습을 되 새기곤 하였다. 모여서 성경공부나 하는 청년회가 아니라,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푸르른 조국을 위하여, 통일될 그 날을 위하여 방송으로, 세계 선교를 향한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고자 하는 분명한 순종의 발걸음이 있었다. 

현충일이나 6.25 사변 때는 청년들이 하루 또는 한 두 끼니를 금식하고 그 금액을 전부 모아 상이 용사들이 계신 곳에 가서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할 때, 나는 청년회 지도위원으로 있었지만 청년들처럼 기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함께 일하는 복을 누렸다. 
그 이외에도 가운데 특별한 관심을 청년들이 그룹으로 힘을 모아 윤락여성 보호소, 결핵요양 시설, 넝마 줍는 분들이 모여 사는 텐트 등을 방문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 식사도 하고(김치와 쌀과 반찬을 가지고 감), 리크리에이션을 하는 등 주님께서 주신 사랑을 나누는 실천이 있었다. 그 일에 참석한 청년들의 얼굴에는 감사와 기쁨에 찬 빛이 있었다. 

(2011년 1월 씀)
Number Title Reference
29 감사, 또 감사! (29) 또 다시 산호세로.
28 감사, 또 감사!(28) 이 글에 곡을 붙여 주실 수 있으신지요?
27 감사, 또 감사! (27) 왜 미국에 오셨어요?
26 감사, 또 감사! (26)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25 감사, 또 감사! (25) 죽어도 한이 없다!
24 감사, 또 감사! (24) 거듭난 젊은이들의 대 행진
23 감사, 또 감사! (23) 기도해 주신 어머님과 아버님들.
22 감사, 또 감사! (22) 고 한 경직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21 감사, 또 감사! (21) 열악한 조건에서나, 최상의 조건에서나
20 감사, 또 감사! (20)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19 감사, 또 감사! (19) 계단에 스셔서 손을 흔드시던 목사님
18 감사, 또 감사! (18) 산에 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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