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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 타워 57호(3)
가능한 한 간단하게
열쇠를 받았으니 다음은 그 안에 잠 잘 침대며, 책장과 식탁을 들여 놓는 일이 남았다. 뉴 저지의 아파트에 살다가 딸네 집과 합칠 때, 책장 이외의 모든 가구들을 원하는 교인들에게 주었다. 딸네 집에도 가구가 있기 때문에 들어가서 사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사 나가는 우리에게 딸과 사위가 자기들이 갖고 있는 가구 중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지고 가라고 하지만, 무거워서 이동하기도 힘들고 좁은 공간에 큰 가구를 넣을 곳도 마땅치 않아서 사양했다. 내가 쓰던 책장 몇 개 외에는 다른 것들을 구해야 했다. 이제 우리 부부의 마지막 거처가 될지도 모르는 곳이므로 만약 우리가 주님께 가더라도 짐을 치우기 아주 간편한 방법으로 가구를 준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가능한 한 저렴하더라도, 다른 분들이 나중에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침대는 ‘아이키아’에 가서 소파를 펴면 침대가 되는 조립식을 구입했다. 식탁은 ‘코스트코’에 가서 사무용으로 쓰는 접는 책상과 의자를 구입했다. 그리고 신발을 놓기 위해서 ‘타겟’에 가서 신발 몇 개를 놓을 수 있는 9불짜리 조립식을 두 개를 구입했다. 이것이 가구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딸네 집에서 쓰는 프라스틱으로 된 설합이 있는 것 몇 개를 얻어서 필요한 것들을 넣어두는 것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간단해서 좋다. 누군가가 나중에 정리할 때, 쉽게 하고, 부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함 석헌 선생님의 말씀처럼 간단히 살기로 했다. 홀가분하다.

이렇게 살아보니 6.25 사변 후에 한 방에서 온 식구가 살고 가구라고 할 것도 없이도 살아온 것이 생각난다. 인생이 끝나면 가지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목회자로 산 나는 책 외에는 남에게 남길 것이 없다. 나의 유언에 이미 책을 처분해 주실 분을 지정해 놓았기 때문에 무거운 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별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 노인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은 다 이곳에서 일정의 돈을 지불하고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던지, 안 하던지 돈은 지불해야 한다. 5시와 6시 15분 두 번에 걸쳐서 그룹이 지어져 있다. 우리 부부는 저녁 성경공부 인도를 하는 날이 있기 때문에 일찍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5시에 식사하는 그룹을 선택했다. 첫 식사를 하는 날, 새 식구로서 메니저가 기존 입주자들에게 소개해 준 뒤에 식탁으로 안내 해 주었다. 우리 부부가 앉게 된 식탁은 4명이 앉는 곳인데, 이미 남자 두 분이 앉아 있었다. 인사를 나누었지만 표정이 별로 없으셨다. 한 분은 한국 분이신데 이곳에 오신지 여러 해 되셨다고 하셨다. 다른 한 분은 소련 분이신데 영어를 못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아무 표정이 없이, 인사도 없이 열심히 식사만 하고 계셨다. 참으로 처음 당하는 식사 분위기였다. 옆에 앉으신 한국 남자분은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치매기가 있으신지 하신 말씀을 또 하시고 하시는데 수 십 번을 반복하시는 것 같았다. “영어를 할 줄 아느냐?” “식사가 마음에 드느냐?”는 는 등의 질문을 그날 이후에도 수 없이 질문을 하셨다. 처음에는 매우 이상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안 것은, 이곳에 들어오신 후 사람들과 단절되고, 단순한 삶을 사시다 보니 자연히 이런 현상이 생길 것이라고 추측했다. 내 앞에 앉은 분은 아무 표정도 없다. 웃음도 없다. 그냥 식사만 하신다. 실어증을 앓고 계신 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가 앉게 된 식탁 식구 두 분은 정 반대였다. 한 분은 너무 많이 물으시고, 한 분은 아무 말이 없으시다.

식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을 보니 지성인의 느낌이 드는 분들이 많았다. 아주 곱게 늙으신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몸이 약해 지셔서 겨우 걸으시고, 피부는 늘어져 힘을 잃고, 지팡이나 보조용 걷는 기구를 짚어 가시면서 겨우 식당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충격을 받았다. 온종일 혼자 방에 있으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세월이 가고, 자녀들과 친구들은 주위에 점차 없어지고, 건강이 여의치 않으니 걷는 것도 점차 줄어들어 그렇게 되신 것이 아닐까. 이곳에 100 여 개의 방이 있다. 아파트에서 나온 자료를 보니, 부부가 함께 있는 가구는 10가구 정도이다. 대부분은 여자 노인들 혼자 사신다. 혼자 방에서 넘어 지시거나 돌아가시게 되면 시면, 누가 그분들을 도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3월 3일 첫 번으로 아파트에서 잤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남의 일만 같이 생각했던, 노인 아파트 생활의 첫 발을 우리 부부가 딛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이곳이 우리 부부가 이별하는 장소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이 아파트에서 내가 먼저 주님께 가던지, 아니면 집 사람이 먼저 가는 그 때를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저녁 때 본 입주자들의 모습이 눈 앞을 스쳤다. 누군들 말을 잃고, 건강을 잃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살기를 선택 했겠는가? 그러나 가는 세월 속에 그분들의 삶이 조금씩 삭아 내린 것 같이 우리 부부에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우리 부부를 아끼는 분들에게 아파트 입주 소식을 전했다. 대부분 “잘되었다.” “축하한다.”는 좋은 말씀들을 주셨다. 그런데 동부에 사시는 여 집사님이 전화를 받으시더니, 울먹이시는 듯한 목소리로 “목사님, 노인 아파트로 가셨군요!’라고 하셨다. 교회를 섬기시면서 노인 아파트에 사시는 노인들을 교회로 모셔 오고, 모셔 가는 일을 많이 하신 집사님이시다. 그분은 노인 아파트에 들어가면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를 잘 아시는 분이시다. 노인 아파트에서는 대 가족이 함께 사는 것과 비교해서, 노화 현상이 빨리 올 것 같다.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들이 다 노인이기 때문에 자연히 영향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새롭고 긴장되고 흥분되는 삶의 현장이 아닌 정체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상황을 우리 부부는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방법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말씀을 묵상하고,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힘차게 사는 것. 아파트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고 기쁘게 살아야 하겠다는 것, 그리고 많이 걷고 운동을 해서 가능할 때까지 건강을 유지해야 하겠다는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당시 경건의 시간의 본문으로 묵상해오던 데살로니가 전서 4-5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살자!’는 10개의 조항을 만들어 냉장고 문에 붙여서 하루에 한 두 번을 읽는다.

이렇게 살자!

1. 기뻐하며 살자.
2. 기도하며 살자.
3. 감사하며 살자.
4. 조용하게 살자.
5. 성결하게 살자.
6. 나누면서 살자.
7. 묵상하며 살자.
8. 부지런히 살자.
9. 품위있게 살자.
10. 열매맺고 살자.

이 흥구-이 영선

(주후 2011년 4월 13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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