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감사, 또 감사!(2)
‘Uncle John’ 목사님!
존 스토트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어제 예쁘고 단정하게 글씨를 쓴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좋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자매님의 부탁을 받고 생각한 끝에 지난 해 말에 나온 ‘나의 감사’라는 한경직 목사님의 구술 자서전을 한 열흘 전에 선물했었다. 그 책을 감명 깊게 다 읽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해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분들을 만나면 참으로 기분이 좋다.

그분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나의 신앙의 요람인 ‘서울 영락교회’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특히 한경직 목사님 기념사업회에 들어가서 최근에 나온 책들이나 설교 말씀을 담은 CD를 찾아 보고자 함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 목사님에 대한 여러 권의 설교집들과 설교 카세트가 있지만 대부분이 내가 미국에 오기 전 것들이기 때문에 더 구입해서 읽고 들음으로 내 영혼을 일깨우고 싶어서였다.

내가 서울 영락교회의 웹 사이트에 들어가면, 청년회 난을 잠시 들려본다. 나의 젊은 시절, 이 청년회는 매우 아름다운 만남과 훈련과 헌신이 있었던 귀한 영적 요람이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23일 올린 이동열 형제의 사진과 글에 눈이 끌려 내용을 읽어 보았다. 자신이 김치선 장로님의 외 손자인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하는 가운데 있는데, 이제는 자신이 가진 바 재능들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함께,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주님의 종이 되고자 한다는 글이었다. 김 장로님은 한경직 목사님이 이북 신의주 제2 교회 담임이셨을 때 한목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분이셨다. 아마도 이동열 형제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한 목사님과 함께 했던 감동적인 신앙 경험들을 누누이 말씀해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 청년이 일생의 사명을 결정할 때, 알게 모르게 듣고 본 것이 큰 영향을 준다. 이 사실은 나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원리였다.

내가 기억하는 김치선 장로님은 서울 대학교 법대에서 노동법을 강의하신 교수님이셨다. 내가 미국으로 온 후에는 숭전 대학교 총장도 지내셨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영락교회 고등부 반사를 하던 때에, 김치선 교수님의 아드님과 따님이 고등부에 다녔다. 매우 쾌할하고 예의 바른 따님이었고, 친근감이 넘쳐나고 따뜻한 인상을 주는 모법생 아드님이셨다. 고등부 학생들의 모임 때문에 영락 기도원에 갔을 때, 이 학생들의 할아버지 묘가 영락 기도원 내에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알려 주었다. 할아버지가 이북에서 내려 오셔서 고생 하여 모으신 돈으로 기도원 부지를 매입하셔서 교회에 기증하셨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말하는 여학생의 눈은 빛났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이동열 형제의 글을 읽을 때 장로님 따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동열 형제가 김치선 장로님의 외 손자라면, 아마도 고등학생 때 신앙심 깊은 여학생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긴 분의 아드님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김 장로님에게는 그 여학생 위로 다른 자녀들이 계셨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어떠하든지, 내가 만난 그 학생들과 연결된 일이었기에 참으로 기뻤다. 그래서 사진과 글을 프린트했다.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하나님이 쓰실 일꾼이 되게 해 달라고 가끔이라도 기도하고 싶어서었다. 이동열 형제가 올린 사진은 한경직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숲을 배경으로 하여 찍으신 생전의 사진 바로 앞에서 찍은 것이다.

프린트가 된 종이를 들고 내게 사무실을 주어 사용하게 하신 이경석 집사님 방으로 가서 이 사진에 얽인 나의 추억을 짧게 설명했다. 이 집사님도 한 웹사이트를 열어 보여 주시면서 자신이 가르친 학생 가운데 미국 침례교에서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자매의 사진과 글을 보여 주었다.
함께 웃으며 흐뭇한 기쁨을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집사님이 정색을 하시더니 “존 스토트 목사님이 돌아가신 소식 들으셨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매우 놀랐다. 바로 조금 전까지 오래 전에 읽었던 ‘존 스토트의 신앙생활 가이드’를 다시 읽고 싶어서 약 반 정도를 읽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쓰신 ‘기독교의 기본진리’라는 귀한 책을 비롯하여 오십 여권의 주옥같은 신앙의 길잡이 책들을 쓰신 분이시다. 나의 신앙 형성에 있어서 책으로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시다.

금년 초에 존 스토트 목사님이 쓰신 책 가운데 가장 마지막 책인 ‘제자도’를 읽으면서 저자 자신도 마지막 책이라는 글을 남기셨다. 매우 안타까웠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비롯하여 목사님의 책이 눈에 띠기만 하면 사서 읽어왔다. 글이 쉽지만 내용이 아주 심오한 책들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지식 자랑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드러내려는 열정과 검허함이 드러나는 글을 쓰셨다. 말만이 복음주의 자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이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은 것을 깨우치도록 하신 분이시다. 복음 전도자이시며, 신학자요, 목회자이셨기에 내가 배우고 싶은 분이셨다. 그래서 신앙의 길잡이가 될 책을 찾는 분들이나 새 신자들에게 목사님의 책들을 강력히 추천도 했고, 사서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을 존경했던 것은 이상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하루 첫 시간에 묵상 하는 경건의 시간의 길잡이가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감사, 또 감사!’(1)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나는 한국 성서 유니온 간사로 일했었다. ‘매일 성경’과 함께 성도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출판하는 사역을 하는 ‘한국 성서 유니온’은 세계적인 기구인 ‘국제 성서 유니온’의 한국 지부였다. ‘매일 성경’과 함께 잘 알려진 책은 ‘성경 연구 입문’이었는데, 이 책은 존 스토트 목사님이 쓰신 것이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와 함께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귀한 책이었음을 확신한다. 목사님은 영국 성서유니온 대포로 1965-1974년까지 섬기시기도 하셨다.

목사님이 쓰신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자기가 고등 학교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 하도록 하여 신앙 성장을 도와 주신 에릭 내쉬 (E.J. NASH/영국 성서 유니온 간사)선생님에 대한 대목이 있다. 사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1938년 2월 13일 럭비학교 '브리저 모임'에 강사로 오셔서 복음을 중거하신 에릭 내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 날 밤 회심하셨다. 목사님의 글들이 깊은 성서 묵상과 순종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쉬우면서도 영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 성서 유니온’에서 간사로 있었을 때, 세계 본부는 스위스에 있었다. 이 세계적 성경 묵상의 운동의 초대 대표이셨던 분이 바로‘존 스토트’ 목사님이셨다.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일용할 영적 양식을 섭취하도록 하시는 역사의 기초를 놓는 귀한 일에 쓰임 받으신 분이시다. 내가 매일 묵상하는 ‘경건의 일기’ 노트의 양식은 그 당시에 세계 본부가 추천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내가 매일 이른 아침 묵상하는 말씀들을 정리해 두는 ‘경건의 일기’는 목사님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삼십 여 년 이상 경건의 시간 자료로 사용하고 있는 영어권에서 쓰는 ‘Discovery’도 목사님에 의하여 기초가 놓여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1974년 스위스 ‘로잔 세게 복음화 대회’의 선언을 기초하신 분이 바로 ‘존 스토트’ 목사님이시다.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15개 조항의 ‘로잔 선언’은 지금도 계속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선언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이 대회를 주도하셨고, 한경직 목사님께서도 강사로써 이 대회에서 말씀을 증거하셨다. 또한 목사님은 자신이 쓴 저작으로 얻은 돈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도우신 분이시다, 특히1971년부터는 제 3 세계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들에게 책을 많이 기증 하시고 장학금도 주셨다. 목사님은 가지신 바 신앙적 확신과 지혜만을 나누신 것이 아니라, 가지신 물질도 나누신 분이시다.

아! 한 사람의 헌신된 일꾼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
공교롭게도, 목사님이 소천 하신 날에 어제(7월 27일) L.A 에 있는 기독교 서점에 목사님이 쓰신 책 열 권을 주문했다.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영국 시간으로 수요일 아침에(현지시간 2011년 7월 27일 오전), 한 세기를 통하여 하나님이 쓰셨던 귀한 종을 하나님은 주님의 집으로 부르셨다. 일생 사역하셨던 런던의 ‘All Souls’ 교회에서 약 48 키로 미터 떨어진 성공회 은퇴 교역자들이 기거하시는 곳에서 지인들이 읽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헨델의 ‘메시야’를 들으시면서 - 일생을 독신으로 사셨던 분,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져서 ‘Uncle John’이라 불리우셨던- 목사님은 90세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하셨다.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늘 곁에 계신분 같았던 목사님!
매일 저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망을 불어 넣으셨던 목사님!
사랑스런 손길이 느껴지는 책들을 통하여 우둔한 저를 깨우쳐 주신 목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귀한 종을 이 땅에 두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알게 하셔서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후 2011년 7월 28일 씀)
Number Title Reference
10 왜 안오셨어요? (2) 오클랜드 한인 연합 감리교회를 다녀와서
9 왜 안오셨어요? (1) 오클랜드 한인 연합 감리교회를 다녀와서
8 '이 이흥구가, 그 이흥구냐?" 영락교회 작곡가들의 수고에 감사.
7 제 10 회 '감사와 찬양의 밤'(2) 모임을 위하셔 준비하신 최창경 사모님에 대한 감사의 글
6 제 10 회 '감사와 찬양의 밤'(1) 모임을 위하셔 준비하신 최창경 사모님에 대한 감사의 글
5 군번 외에는. 월남 참전 수당
4 ‘Uncle John’ 목사님! 존 스토트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3 어버이 주일 날에 친 딸처렴 우리 부부를 돌보아 주는 자매님.
2 Double ‘J’ 집사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섬기는 부부.
1 감사, 또 감사!(2)를 쓰면서 2007년 이후에 만난 또, 감사한 분들에 대하여 기록함.
Page: (2/2), Total: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