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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2)
함께 죽자!
다 함께 죽자!
 
       6.25 사변이 일어났을 때,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부모님과 단란하게 살던 우리 집 식구들이 당했던 어려움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 겹다. 사변이 난 그 해 9월에 아버지는 인민군을 폭격하는 미국 비행기의 폭탄 파편에 숨지셨다. 식구들을 먼저 산으로 가라고 보내시고, 폭격으로 인하여 온 동네가 불바다가 되어었고, 불타서 없어지는 집을 못내 아쉬워 바라보시다가 운명하셨다. 그 후 몇 일 되지 않아서 형님 두 분은 군에 입대하여 조국을 위해 싸우셨다. 어머니는 바로 위의 형과 나를 경기도 여주에 있는 외삼촌의 집에 맡기시고, 누나 둘과 함께 피난을 가셨다. 물론 형과 나도 외삼촌의 가족과 함게 피난을 갔다가 돌아 왔다. 어머니와 누나의 생사를 모르는 채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큰 누나를 아시는 집에 식모로 남겨놓고, 작은 누나와 함께 외삼촌네 집으로 우리를 찾아 오셨다. 전쟁으로 인하여 모두 끼니가 어려운 때인지라, 외삼촌께서 주신 조그만 방에서 얹혀 사는 우리 식구는 살 길이 막연했다. 그렇게 생활력이 강하셨던 어머님이셨지만,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을 하시고자 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다 함께 죽자고!”
    
    어느 따뜻한 봄날, 어머님이 그날 따라 흰 옷을 입으시더니 부엌일을 도우며 심부름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있는 누나는 외삼촌 집에 남겨 두시고, 우리 형과 나에게 한강으로 잠시 가자고 하셨다. 어린 우리들은 한강으로 놀러 가는 것으로 알고 기쁘게 따라 나섰다. 그러나 그 곳에 도착하자 어머님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지셨다. 우리들을 앉혀 놓으시더니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우리가 다 함께 죽자!”하고 말씀 하시면서 허리 끈을 풀으셔서 우리를 꼭 잡으시고 묶으려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안고 한 강으로 뛰어 내리시려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앉아 있던 곳은 시퍼런 한강 물이 여울져 흐르는 가파른 물이 바로 눈 앞에 흐르는 낭떠러지 위에 낸 길이었다. 우리는 “안 돼요! 죽고싶지 않아요!”라고 소리 지르면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엉엉울다가 있는 힘을 다해서 어머니를 뿌리치고 도망쳤다. 우리 형제들은 도망치면서 울고, 어머니도 도망가는 우리 뒤를 힘없이 따라 오시면서 눈물을 훔치셨다.
 
     어머님은 서울이 수복된 후에, 불이나서 폐허가 된 집으로 돌아오셔서는 낮밤 없이 막일도 하셨다. 광주리를 이시고 행상도 하셨다. 시장에 나가 장사도 하시면서 우리를 먹이셨다. 어리지만 우리들도 어머니를 돕느라고 함께 야채도 팔고, 찐 고구마며, 떡이며, 빈대떡을 부쳐 팔기도 했다. 그렇게 노력을 했어도 김장철에는 김장을 담글 돈이 없어서, 어두운 밤 사람들이 없을 때에, 시장에 가서 언 손을 불어가며, 김장 쓰레기 더미를 뒤져 모은 것을 소금에 절여 먹었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 고물상이 있어서, 엿을 파시는 분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분들을 상대로 해서 밥 장사를 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밥장사도 해보셨다. 그러나 고생은 고생대로 하시고 돈을 벌지도 못하신 채로 접으셨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그분들의 배곺음을 아시고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푸짐한 음식으로 섬기셨기 때문이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그 때에는 밥을 굶지는 않았다.
 
     수복 된 이후 서울로 돌아왔지만 머물 곳이 없어서, 우리가 살던 집의 건너편 동네에 불타지 않은 빈 집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주인이 돌아와 갈 곳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 식구 모두가 힘을 모아 불탄 집 터에 땅을 파서 잘 곳을 마련하고, 그 위에 미군이 먹는 레이션 박스를 구해다가 지붕을 만든 지하 움막에서 약 두 해 정도 살았다. 그렇게 살다가 우리가 살던 집터가 넓어서 엿을 만드는 공장에 세를 주고, 그 돈과 전세를 들어오실 분의 돈을 모아 작은 집을 남은 터에 지었다.

내가 11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다른 방은 세를 주고 우리 식구는 단칸 방에서 살았다. 밤에 자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 희미한 등잔불을 켜시고 돌아 앉으셔서 무엇인가를 하시고 계셨다. 매우 궁금하여 가까이 가 보니, 어머니는 한 쪽 유방에 마른 쑥으로 뜸을 뜨고 계셨다. 유방의 한 부분이 딱딱해지고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 부분을 마른 쑥으로 매일 밤마다 태우시고 또 태우셨다. 나중에는 어머님의 엄지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훵한이 구멍이 뻥 뚫려 불에 짖어진 뻘건 살이 보이는데도 계속 태우시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집념은 대단하셨다.

아마도 유방암이 아니었을까 짐작 된다. 드디어 단단 했던 모든 부분이 다 타서 없어졌다. 맨 살에 불을 놓으셔서…. 그 후에 불로 짖어져 쓰라린 상처에 선인장을 짓이겨서 뻥 뚤린 상처에 바르셨다. 그렇게 하시기를 약 삼년을 하셔서 드디어 부드러운 새 살이 다 살아 났다.“다 함께 죽자!”고 하셨던 어머니가‘다 함께 살자!’로 방향을 바꾸시고는 뼈속까지도 저릴 만큼 괴로운 고통의 기나긴 날들을 감내하셨다.
 
      여러 해가 지나서 내가 중학교 시절에 어머님이 그리스도인이 되셨다. 부흥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신 어머님은 시장 바닥에 좌판을 깔아놓으시고 장사를 해서 버신 돈 가운데서 가장 새 돈을 모아서 십일조를 드리셨다. 그 후에 남은 것으로 양식을 사셨다. 주님에 대한 산 믿음을 몸소 실천하신 어머니셨다. 

     어머니 혼자서 자녀들을 돌보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머니는 한 번도 우리들을 고아원에 보낼 생각을 안 하신 것 같다. 그런 운을 띄신 적도 없으시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한계를 경험하셨을까? 배운 것도 없으시고, 가진 재산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셨을까!

    그렇게 고생하시면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키워주신 어머님의 은혜가 고마워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여러 해 전에 한 편의 시를 썼다. 작곡가 고 권 길상 장로님께서 곡을 붙여 주셔서, 요즈음은 여러 교회에서 어머니 주일에 부른다.  2절 가운데 한 소절인 ‘패인 가슴 쓰라린 상처’라는 표현은 바로 어머님이 불로 유방의 단단한 부분을 태우시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어머님은 만 96세 까지 건강하게 사셨고, 편안히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어머니처럼

1. 
가진 생명 모두 아낌없이 주시고
땀과 눈물로 자라게 하신 어머니
고우셨던 손 돌보시느라 간 곳 없고
야위신 손을 애써 감추시던 어머니
그 두 손 모아 기도하심 내 안에 심겨 자라나
주의 사람 되어 순종하며 삽니다.
내게 오늘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니
험한 세상 살아갈 때 믿음으로 살리라

(후렴) 
어머니처럼, 어머니처럼, 어머니처럼 살리라!
어머니처럼, 어머니처럼, 어머니처럼 살리라!

2.
반항하며 홀로 이리저리 다닐 때
하나님께 도우심 구한 어머니 
패인 가슴 쓰라린 상처 아파도 웃으시며
차가운 마음 따뜻이 녹여 주시던 어머니
그 고생 수고 넘은 의지 내 안에 심겨 자라나
주의 말씀 따라 제자 되어 삽니다.
내게 오늘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니
흑암 절망 다가와도 소망 안에 살리라

3. 
갈 길 몰라 그저 허송세월 보낼 때
가슴 태우며 타일러 주신 어머니
생명 바쳐 키우시느라 삭아지고
낮아지신 모습 오히려 기뻐하시던 어머니
그 바다같이 넓은 사랑 내 안에 심겨 자라나
주의 크신 사랑 배우면서 삽니다.
내게 오늘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니
고난 시련 속에서도 사랑하며 살리라

( 2002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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