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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의 갖은 실패와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제 삶의 뿌리를 자신의 뿌리에 얽어매어 지탱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간의 만남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도록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신 분들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을 인내로 참아내며 두려움에 싸여 떠는 사람들을 감싸주는 자기 희생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셨음을 새삼 느낍니다.

저의 짦은 삶이 얼룩짐과 넘어짐과 죄 많은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셔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 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기억나는 모든 분을을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감사, 또 감사함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부담감을 연말에 강하게 느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삶에 생수처럼 다가오신 분들, 별 빛처럼 영롱한 빛을 남기신 분들 그리고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충고해 주시며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呼泉(호천) 李興九(이 흥구)
감사, 또 감사! (3)
구사일생
구사일생

초등학교 시절 잊지 못하는 추억 세 가지가 있다. 두 가지는 죽을 뻔 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아마도 지체 부자유자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여름날 아이들과 함께 한강 물에 직접 연결되는 냇가에 놀러 갔다가 깊이 파인 곳을 모르고 걸어서 건너다가 수영을 못했기 때문에 물을 많이 먹고 허우적거릴 때 누군가 같이 간 아이가 도와 주어서 살아났다. 지금이나 그 때나 나는 몸이 건강한 편에 속하지 못했다. 한 겨울이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 운동시간이 되어 마땅한 놀이 기구가 없었던 전쟁 후 초등학교에서 하는 것은 달리기나 눈싸움 줄 다리기 등인데 그런 운동은 늘 부담이 되어서 한 곳에 서 있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한 사건은 겨울 학교 우물 옆에 서 있다가 생긴 일이다. 겨울이라 우물 곁에 얼음이 얼어서 바닥이 많이 높아져 있었다. 나이든 형들이(그 당시에 어느 학생은 적령기를 훨씬 넘은 사람도 여럿 있었음) 도루레 두레박으로 물을 깃는 것을 보기 위해 서 있다가 바닥에 놓였던 두레박을 올리기 위해서 줄을 잡아 다닌 것이 내 가랑이에 걸린 채 일본시대에 판 깊은 우물로 쏜살같이 내려갔다. 그래도 두레박 위에 앉아 있었고 줄을 꼭 잡아서 상급생들이 다시 두레박을 힘껏 올려서 살았다. 그 다음날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전교 학생들 앞에 나를 세우시고 “어제 학교에 큰 사고가 날 뻔 했는데 우물에 빠졌다가 산 아이가 이 학생이라.”고 하시면서 우물가에서는 조심하라는 훈시를 하셨다.

수복 된 서울에 어머님과 군대를 간 형들을 제외한 식구들이 올라왔지만, 집은 불타고 먹거리는 없고 해서 참 힘들었다. 그러니 자연히 영양실조에 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겨울이 되면 손 발에 연례적으로 동상이 걸려서 붇고 손 발 색갈이 파랗게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느 날 일어나서 얼굴이 매우 가려워서 심하게 긁었더니 코 옆에 있는 부분의 살점이 손톱에 묻어 나왔다. 그 흉터가 지금도 남아있다. 무악재 고개 옆에 있는 안산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몹시 추운 날이었다. 그 당시에는 복도에 유자 물을 들이고 초를 먹여서 반들반들하게 길을 들였다. 등교하여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교실로 갈 때 갑자기 누가 발을 세게 걸어서 공중에 떴다가 몇 발걸음 되는 거리에 떨어졌다. 심히 아팠지만 겨우 일어나서 교실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부탁이 공부는 잘 못하더라도 개근상은 받아오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참고 학과를 마치고 어떻게 갔는지는 몰라도 집까지 갔다.

어머니는 노동판을 전전하시면서 일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저녁 늦게 돌아 오셨기에 아침 일찍에나 뵐 수 있었다. 어머님이 학교에 가라고 깨우셔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나를 업고 학교에 가셔서 자리에 앉혀 놓으시고 교장실로 달려 가셨다. 인자하신 교장 선생님의 존함은 문 용태 님이셨다. 어머님이 같은 남평 문씨셨고, 가난한 학생에 대한 배려가 많으셨던 교장 선생님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신 후 급히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한 장을 써 주셨다. 아마도 두 다리 뼈에 큰 이상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셨는지, 서대문에 있는 접골원이었습니다. 어머님은 나를 업으시고 광화문 근처에 있는 접골소로 달리셨다. 교장 선생님의 생각대로 진단을 하신 분은 두 다리 뼈가 골반에서 탈골 되어 조금 늦게 왔으면 앉은뱅이가 되었을 것이라며 즉시 뼈를 넣는 시술을 해 주셨다. 그때 도와주신 문 용태 교장 선생님을 이곳 산호세에서 수 십 년이 지난 후 뵈올 기회가 있어서, 제게 베풀어 주셨던 고마웠던 일을 말씀 드리고 식사를 대접한 일이 있다. 이 넓은 세상에 교장 선생님을 뵈올 수 있었음이 얼마나 감사한가! 

해질녘에 도시락을 가지고 오신 선생님

불탄 집의 땅을 파고 움막을 짓기 전에, 아직 수복하지 못한 분들이 살던 길
건너 동네에 아직 남아있는 집들이 있어서 그곳에 들어가 살았다. 폐허가 된 동네에 뒹구는 나무들을 모아다가 불을 때고 추운 겨울을 지내야 했다. 
어머니는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해질녘까지 배고픈 것도 잊고 동네 아이들과 놀고난 이후, 먹을 것도 없는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정확히 몇 번인가를 기억하지는 못해도 여러 번 형님의 담임이셨던 김 명범 선생님이 웅크리고 있는 우리들을 찾아 오셨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공주 사범을 나오신 선생님이시다. 매우 인자하신 분이셨는데, 오셔서는 별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싸오신 도시락을 펴 놓으시고 먹으라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는 모르나 고맙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형제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쌀밥에 멸치 복음을 입안 가득히 넣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때 배고픔에 함께 참여해 주시고 손을 잡아 주셨던 선생님에 대한 감사 때문에 눈물이 고인다.

김장 철에는 영천 시장이 다 마감하고 야채 찌꺼기를 한데 모은 곳에 가서 그래도 쓸만한 것들을 골라 부대 자루에 넣고 와서 김장거리를 하기도 했고, 다 뽑은 김장 밭에 가서 너무 실하지 않아 그냥 놔둔 언 무나 배추를 모으려고 지금의 응암동일 것 같은 곳에 가서 고추 밭에 아직 간신히 붙어 남아있는
찌꺼기 고추를 따다 갈아서 김장을 해서 맛있게 먹곤 했다. 6.25를 넘긴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먹고 불을 때는 일을 해결하는 일은 참으로 힘들기 그지 없었다. 우리 가족은 방앗간에서 정미한 쌀이나 보리 겨를 싼 값이 사다가 체에 쳐서 그것에 사카린(화학 당료)을 넣어 개떡을 만들어 먹었다. 사실 생명을 유지할 영양이라고는 별로 섭취하지 못하고도 이어진 끈질긴 생명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학교와 동네의 잔치인 대운동회이었다.
약해서 뛰기에 1등을 할 수도 없고, 형과 누나 외에는 누구도 보아줄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는 대 운동회 날에도 점심으로 싸 주실 것이 없으셔서 보통 날 과 똑같이 개떡을 싸 주셨다. 그것을 싸주실 수 밖에 없으셨던 어머님의 마음이 얼마나 저리셨을까?
문제는 점심 시간 모든 급우들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할 때이다. 도저히 개떡을 펴놓고 먹을 자신이 없어서, 형과 미리 약속한 장소로 가기 위해 슬쩍 빠져 나와 뛰었다. 그 당시 학교 주위에는 계곡도 있고 나무도 있어서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기 위해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담임 선생님이 점심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숨어 있는 곳으로 찾아 오셨다. 어린 나이이지만 너무나 미안하고 창피해서, 먹던 것을 주섬주섬 들고 도망을 가곤 했다.
결국 선생님께 잡혔고 엉엉 울어버리곤 했다. 선생님도 우시고.... .

그리고 같이 내려가자고 하셔도 고집을 부리고 안 가면 빨리 가셔서 맛있는 먹을 것을 싸다 주셨다. 나의 삶에 이런 선생님들이 계셨음은, 어린 나이에 힘들어 하는 작은 나무에 눈물을 뿌려 키우신 분들이 계셨음에 감사 드린다.
지금은 다 고인이 되셨겠지만, 나의 가슴에 흙이 떨어져도 가슴에 품고 가야
할 귀한 분들이다. 

(주후 2011년 1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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