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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회상의 신앙
참고: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주신 한 경직 목사님의 강의
1) 새 교회상의 신앙- 복음 신앙(성경 중심)

교회가 역사적 현실을 벗어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으므로 교회는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처지에 따라서 교회의 사명, 구조, 형식, 고백의 테마를 달리해 왔다.
고대 헬라 사상권 내에서 자라던 교회는 헬라 철학의 일면을 복음 이해와 방어의 한 방편으로 삼고 그 당시 성행했던 이단과 싸웠으며, 중세에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도입하여 교회 신학을 형성하였고, 근대에는 합리주의 이성 철학에 입각하여 기독교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기독교를 도덕화 하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는 실존주의, 현대 과학, 상대주의 등의 영향으로 교회 신학은 주관화 상대화 되는 나머지 신학의 난립 현상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신학은 변하고 교회의 제도나 형식은 그 시대에 적응하여 변천 되지만, 교회 신앙은 언제나 교회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데, 이 교회의 신앙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신앙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접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너는 베드로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하셨다.
바울에게 와서 이미 교회관은 확실하게 되었다. 바울은 교회가 하나인 것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인 것을 들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것은 120 신자가 다락방에 모여 합심하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일이다. 그때의 감격스러운 체험은 교회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기억될 것이다. 교회가 자기 본질에서 멀어져 갈 때마다, 초대 교회를 상기하고 교회가 교회다움을 되찾곤 하였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는 복음신앙은 언제나 변함없이 교회 신앙의 중심이 된다. 이 신앙은 신학의 어떤 구조 속에도 감금되지 않고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로 이끄는 것이다. 현대 교회는 이러한 복음신앙을 가리우는 많은 부수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급급하여 교회 본연의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다.
현대가 조직사회로 되어가고 기계화 되어 갈수록 현대 교회는 복음신앙의 생명을 굳게 소지하고 증거 해 나가야 된다.

2) 새 교회상의 윤리-(절제 근엄한 청교도의 생활 윤리)경건 생활의 연습.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능력과 복음과 믿음을 되찾기를 원한다면, 교회는 복음의 요구에만 귀를 기울이고 복음을 좇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의 소망은 통념을 본받지 않는 훈련을 받은 신자에게 있다.” (마틴 루터 킹)
기독교는 율법에서의 해방을 선포해 준다. 그러나 이것은 방종한 생활의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다. 율법에 준한 생활보다도 더 고차원의 삶으로 이끌어 준다. 여기에 크리스챤의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온다.
크리스챤은 모든 면에서 자유하는 자이다. 그러나 그 자유를 개인의 유익이나 기쁨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이웃을 기회로 삼는다. 신앙으로 출발한 사람은 신앙에 덕을 공급하여 남에게 덕이 되도록 생활하는 성숙한 생활인으로 들어가야 된다.
현대 행동주의 심리학에 근원을 두고 있는 윤리학에서는 인간의 양심의 실재적 의미가 상실되고 있으며 종래의 윤리적 기반이 밑바닥에서부터 흔들려지고 이러한 시대적 징후는 세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문호를 열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새 교회상의 생활 윤리는 복음에 합당하게 하는 것이어야 된다. 절제하고 근엄한 청교도적인 생활인이 되어야 한다.
헨리 바네트가 “현대는 도덕적 위기와 혼돈의 시대”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종잡을 수 없는 시대에서 근엄한 절제 생활을 들고 나온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질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교훈의 의미를 중심으로 할 때, 이 생활이 그리스도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 복음신앙이 자유방임의 생활의 물결을 탈 때, 그 신앙은 퇴식 되고 만다. 현실을 변화시켜 나아갈 교회는 스스로가 경건한 생활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성육 시킨다. 교회 신앙을 생활화에 의하지 않고는 불 신앙인들에게 효과 있게 복음을 증거할 다른 방법을 고안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경건의 능력이다. 경건의 극치는 생활 전폭에서 모든 삶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치는 데서 시작된다. 만약에 교회가 어중간한 생활 형식을 방치하고 지난다면, 불원간에 교회는 세속주의의 연기로 끄슬려 지고 말뿐 아니라 교회가 띄고 있는 사명을 완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바울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세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교회 신앙이 경건한 생활을 토대로 하고 있을 때 흔들림이 없는 강력한 그리스도의 전위대의 구실을 다할 수 있는 활력소로 될 수 있다.

3) 새 교회상의 교회론적 관계- 연합운동에 협력(에큐메니칼 정신에 의한)

누구나 성서를 읽고 자기의 신앙을 고백할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동일한 신앙고백을 충심으로 모여진 공동체는 다른 내용을 신앙 고백으로 하고 있는 공동체의 신앙 양심도 존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신앙 경험과 교회 신앙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이런 것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남을 배척하는 배타주의나 독선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현대는 전 세계 교회의 하나됨을 촉구하고 있는 시대인 만큼 교회와 교회, 교파와 교파간의 신앙신조를 혼합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면서 세계의 구원과 봉사를 위하여 공통한 일에는 필요 한 필요한대로 연합하고 협조하자는 것이다. 이질적인 것들의 대화의 면에서도 현대는 급격히 변화해 가고 있는 거대한 대화의 광장에 나선 현대 교회는 몇 줄기의 경구에 신경을 돋구고 분열을 거듭하던 자세에서 뛰쳐나와 전 세계를 교구로 하는 주님의 범 교회운동으로 연합과 협조, 기수가 되어야겠다.
이러한 연합과 협조정신은 에큐메니칼 정신과 일치한다. 온 세계까지 가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을 전파하고, 온 세계 교인들이 어떻든 연합해서 하나가 되자는 에큐메니칼 정신에 따라 나가야 된다.

4) 새 교회상의 사회적 관계 – 사회 정의의 구현

교회 여기저기서에서 사회정의 실현의 구호가 나돌던 것이 생각난다. 그런데 사회 정의 문제는 유행에 그칠 수 없는 사회적 과제의 하나이다. 교회는 본질상 사회 속에 있으면서 사회를 항하여 찾아나간다. 교회의 사회 참여는 이미 여러 신학자들이 주장해 온 바인지만, 이러한 것이 문제 된 것은 교회가 어느새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잊은 채 교회 자체의 운영에만 급급한 때문에 사회를 등진 현상을 빚어내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사회 속에 있는 더러움과 불의와 무기력함을 일소하고 깨끗함과 정의와 능력을 심어야 된다. 교회는 정확한 선포에 의하여 사회에 참여한다. 적절한 시간에 바른 방법으로 바른 말을 해야 한다.
본 훼퍼는 역사적 정치적 형태로서의 서양 세계는 교회의 신앙에 의하여 간접적으로만 정당화 되고 갱신되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사회 정의의 실현을 주정하면서도 진전을 보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올바른 복음이해와 사랑과 경건의 생활 바탕의 결핍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비록 적은 소수의 무리라도 세계를 흔들어 놓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교회가 복음신앙과 경건한 신앙생활의 충실이라는 지상 과제를 완수하는 날, 사회 정의 실현과, 사회 참여를 성취할 능력을 확보할 것이다. 실제적인 문제는 교회가 언제까지 충실히 기다려야 되느냐 인데, 기다린다는 관념 자체가 교회 생활을 진리에서 격리시켜 놓는 것이다. 교회 생활의 경건의 빛이 빛나는 시간마다, 사회정의의 빛이 빛나는 시간이 된다. 교회가 위임 받은 구원의 과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영혼과 몸 즉 인간 전체를 포함하므로 교회의 사회 참여에의 걸음거리는 못가진 자, 병든 자, 약한 자에게도 향해져야 된다. 바로 이러한 새 교회상을 이룩할 멤버는 지금 여기 있는 우리 자신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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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실전에 임하기 전에 참고: 여호수아 5:10-15
126 미스바로 올라오라. 참고: 사무엘 상 7:1-17
125 새 교회상의 신앙 참고: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주신 한 경직 목사님의 강의
124 구원의 개념 참고: 출애급기 19:5
123 성숙한 신앙인이 됨에 야고보서가 주는 핵심 말씀은 무엇인가?
122 어떻게 신앙의 성숙을 이룰 수 있는가?
121 정말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가?
120 예수님은 누구시며 왜 오셨는가?
119 회의에서 회개로
118 회의에서 믿음으로
117 불가능에서 가능으로<내부적인 문제를 극복함 참고: 느헤미야서 5:1-13
116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참고: 느혜미야 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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