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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골로새서 3:1~4:1
본문: 골로새서 3:1~4:1
요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 (3:2)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3:16)

서론

제2과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과 그의 하신 일을자세히 살펴 보므로서 거짓스승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를 공부했습니다.
이단 사상에 감염되지 않는 길은
(i)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확신 해야 하며(6절)
(ii) 그 안에서 행하여야 하고
(iii)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공부했습니다.

77년은 무엇 보다도 먼저 말씀 안에 삶의 기반을 두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3과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실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기록한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관염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오늘이 없는 내일 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요, 생활 없는 이상만을 꿈꾸는 공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오늘 하루는 영원을 사는 우리에게 (요3;16) 걸코 값없는 토막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회입니다. 신앙에는 생활이 따라야 완전해 집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I. 위엣 것을 찾으라 (1~11)
II. 시와 찬미를 부르라 (12~17)
III.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 질서 (18~4:1) 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I. 위엣 것을 찾으라 (1~1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함께 부활한 자입니다.

i) 그러므로 (1~4)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옛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깁자가에 돌아가신 것처럼 죽고, 3일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영적으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하는 어떤 초등학문도 (2:8~20) 성도들을 제약하거나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 이 세상의 모든 일과 활동에서 몸을 숨겨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원칙을 따라서 살라는 말입니다.

중생(重生) 이란 말은 “위로 난다” 혹은 “다시 난다”는 뜻입니다.
1절과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 영원한 삶, 즉 부활에 동참했지만 육감으로는 깨닫지 못하게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영구히 감추어져 있는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때에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4절, 요1서3:2)

본문의 “위엣 것”이라는 말은 공간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차원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동물의 생활이 있고 식물 세계에는 식물의 생활이 있듯이 중생한 부활의 세계에는 거기에 해당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2절 하) 유일한 길은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 만을 생각 할 때만 가능합니다. (2절 상)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빌리보서 1:21절에는 ‘내게 사는것은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2:20절에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 고 간증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보는것 같이 성도에게는 가장 주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 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를 위하여 그를 바라보며 그의 뜻에 따라사는 것이 바로 “위엣 것”을 찾는 생활입니다.
이 세상에 귀한 것이 많지만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음악이 내 인생이다”, “운동이 그의 인생이다”라든가 “그의 인생은 일이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음악, 운동, 혹은 일에서 인생의 의미와 삶의 보람을 발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보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염려와 걱정에 휩싸여 살 때가 있습니다. 또한 땅에 속해 사는 생활에 익숙한 신자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해도 어렵고 험한 이 세상에서 세상일만 보고, 듣고 살면 신앙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12장 22절을 보십시오.
나는 하루 하루의 생활 속에서 위엣 것을 찾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ii) 새 사람을 입으라 (5~11)

초대교회 성도들이 세례를 받을 때 낡은 옷을 벗고 물에 내려갔다 올라오면 청결한 흰 옷을 입혔습니다. 그것은 옛 사람(성품)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것을 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들에게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먼저 세상에 속한 모든 악을 제거하는(죽이는) 일부터 시작할 수 밖에없습니다.

◈ 음란과 부정을 죽여야 합니다. ◈

그 당시 이방인들의 성적 질서는 매우 무질서 했다고 합니다. 성적 만족을 위하여 하는 모든 행위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free sex” 란 말에 얼굴하나 붉히지 않는 철면피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세대입니다.
아놀드 런(Arnold lunn) 경은 그의 자서전 ‘회상기 “ 중에서 그와 잘 알던 유명한 철학자 시릴 죠드(Cyril Joad)가 성도가 되기 이전에 그는 철저한 성적 방임주의(쾌락주의) 를 지지하는 사람이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년에 기독교에 귀의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가 성에 대하여 생각하는 매우 엄격한 태도를 받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밟고 건너갈 큰 계단이요, 납득가지 않는 일이기는 하였으나 참으로 정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서가 말하는 성 윤리는 순결과 정절입니다.

◈ 사욕과 악한 정욕을 죽여야 합니다. ◈

사욕이란 말은 격렬한 충동을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는 사욕과 악한 정욕에 빠져 일생을 그릇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신앙 생활을 좀 먹는 제일 무서운 적 중에 하나는 음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열거한 죄목에서 무엇보다 먼저 음란을 지적했습니다. (엡5:3, 갈5:19) 그 이유는 이 죄악에 빠지면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힘으로 하나님을 영구히 떠나기 귀운 까닭입니다. (고전6:15~20)

하나님을 떠나게하는 죄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탐심” 입니다.
탐심은 이 세상것을 가질수록 더 가지고자하는 욕구입니다. 일단 탐심이 마음을 엄습하면 이 세상것들에 애착하며 그것들을 추구하기에 전심 전력하므로 하나님을 떠납니다.
내 삶의 목표가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함이 아닌 모든 나의 물질, 시간, 재능, 계획, 이상들은 나의 우상이 됩니다.

요한1서 2장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사도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5절, 엡5:5, 마6:24) 우상 숭배의 본질은 손에 넣으려는 욕망입니다. 사람들은 신으로 부터 무엇을 얻기 위하여 우상을 세우고 예배합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희생과 봉헌물과 예배에 의해서 자기가 원하고 있는 것을 주도록 신을 설득하고 매수하려는 행위입니다.

C.F.D몰 이라는 사람은 “우상 숭배란 자기를 신에게 봉사로 드리려는 것보다 자기 목적 때문에 신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상 숭배의 본질은 보다 많이 가지고저 하는 욕망입니다.
전 생활을 얻으려는 욕망에 맡기는 자는 하나님이 계실 자리에 물질을 놓습니다. (마6:24)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므로” (곧 하나님을 섬기므로) 물질을 얻습니다. (마6:33)
우리들 가운데 이 귀한 말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보다 물질을 얻기위한 생의 계획을 구체와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탐심을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6절)

◈ 신자들이 벗을 옷 ◈

분과 악의 훼방과 부끄러운 말, 거짓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8,9절)
부끄러운 말이란 추잡하고 음탕한 말을 뜻합니다. 우리들은 거짓말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 사람이 거짓말이라는 외투를 입을 수 없습니다. (계21:8, 27)
사람이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수 없드시 성도들 간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옛 사람을 죽여 새사람이 되면 (고후5:17) 옛 행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더 닮고 그의 생활은 점점더 하나님의 형상을 더 닮아 그릐 생활은 점점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뿐더러 신앙적 지식 곧 영적 통찰력이 생깁니다. (10절)
새 사람이 입을 영적 옷은 야인 (그당시 헬라말을 모느던 사람들을 일컷는말) 이나 스구미아인 (미개인 중에도 가장 미개했던 유럽 산중에 살던 부족) 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당이나 무할례당이나 종이나 자유인에게나 분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11절)

II. 시와 찬미를 부르라 (12~17절)

지금까지는 주로 (5~11절)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소극적인 면을 공부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새사람이 입을 개인적 (12절) 단체적인 (13~17)면을 살펴보겠습니다.

i) 사랑을 더하라 (12~14절)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12절) 이런 특권에는 반드시 거기에 따르는 의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5가지의 덕을 말했습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 (12절)과 용서 (13절) 입니다. 새 사람의 새 생활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요 (옛 사람을 죽이므로), 그 다음에는 그 나라의 시민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것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형제 자매들에게 베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3절) 그러나, 아무리 옷을 잘 입었다 하더라도 입은 옷 위에 띠를 띠지 아니하면 볼품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때를 “사랑” 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성도들을 하나로 결속 시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을 소유한 성도들의 만남에서는 언제나 한 지체로서의 사랑과 평강과 감사가 차고 넘칩니다. (눅2:14, 마10:12, 요14:27)
사랑이 없는 모든 모임은 연속성이 없습니다. 고장나기 쉽습니다. (요13:34)
우리가 협의회 일이나 각 요회나 조별 모임을 할 때 먼저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사랑을 풍성히 받을 때라야 은혜로운 모임이 됩니다. 이것은 먼저 나 자신부터 입니다.

ii) 시와 찬미를 부르라 (15~17절)

예수 그리스도가 주장하는 사람이 모일 때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기쁨입니다. 자연히 노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풍성히 거할 때 아름다운 시와 찬미가 흘러나옵니다. 지혜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자하는 뜨거움이 생깁니다.
시편39: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火)가 발 하여” 묵상할 때에 (풍성히 거할 때에) 뜨거운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노래하면 할 수록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생각이 행동화됩니다.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감미로움과 신선함을 느끼게 합니다. 화창한 봄날 신록의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같은 찬양이 울려퍼집니다.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17절)

각 요회 조장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 중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는 각 요회 책임자들과 임원과 조장님들의 수고를 생각할 때 눈물겹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부탁 드릴 수 밖에 없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조장님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이럴때 “도저히 힘이 들어 못하겠다” 는 푸념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또 무엇을 하던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다른 한 가지는 각 요회에 참여하는 분들의 영적 성숙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조사한 설문지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의 조원이 개인적 경건의 시간을 갖지 않고 있다는것 입니다.
이번 골로새서 공부를 통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성해지지 않는한” 내가 참여하는 조나 요회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는 모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나 자신의 기도가 막히고 시와 찬미가 없는 벙어리 이면서 내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만 이런것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III. 그리스도인의 생활 질서 (18~4:1)

이상에서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홀하여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활 원칙을 공부했습니다. 18절 부터는 가정 생활에 있어서 부부간 (18~19), 부자간 (20~21), 교회 생활에 있어서 주종간 (22~4:1)의 문제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이단 종파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모든 인간의 제도는 파괴해도 좋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골로새교회에 침투한 이단들도 아마 그런식으로 가르쳤을것 같습니다.
신.불신(不信)을 막론하고 사람은 아내, 남편, 부모, 자녀의 가족 관계가 엄연히 존재하며 고용주와 고용인과의 사회관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구조인 만큼 성도들이 땅에 사는 동안 불신자들과 꼭같이 이러한 제도하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새 사람의 가정, 사회의 관계는 매우 판이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i) 부부간 (18~19)

기독교는 상호윤리의 종교입니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입니다. 대부분의 동양윤리는 하향식 윤리입니다. 사도바울이 살던 그 새대는 여자는 하나의 물건 취급을 받던 때였습니다. 모든 특권은 다 남편의 것이고 모든 의무는 부인의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완전 자유인이요 부인은 부자유인이었습니다. 남편의 방종으ㄴ 법에 저촉되지 않아도 부인에게는 수 많은 굴레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배경앞에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될 때 기독교가 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리라고는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멸사와 천대를 당하던 여성사회에 기독교는 아마도 매력적인 종교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게된 부녀자들 중 지각없는 방종이 생겨 가정을 돌보지 않고 파괴하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사도 바울은 가정의 질서를 말할때 먼저 아내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엡5:21~25)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녀가 동등합니다. 그러나 질서는 있습니다. 아니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이 자기보다 좀 부족한것 같고, 못난것 같더라도 자기의 생각이나 경험을 버리고 남편의 뜻을 앞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반면 남편은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남편들은 아내를 학대하고 멸시하는 무슨 권세나 받은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라’는 이 말은 순종보다 더 무거운 명령이요 의무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계명의 종합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 ‘상호권리’보다 ‘상호의무’를 앞세울 때 질서있는 아름다운 가정이 이룩됩니다.

ii) 부자간 (20~21)

사회제도중 제일 먼저요, 제일 중요한 것은 부부관계요, 다음단계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말할 때 예수님은 흔히 부자의 관계를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10계명중 제5계명은 부자간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부모를 섬기는 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의 일면입니다. (훈련, 연습)

사도 바울 당시나 오래전 우리나라의 가정에서는 자녀에게는 의무만 있었습니다. 자녀에게는 어떤것이든 강요 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팔아버리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이지만 성서는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은 격노합니다. 반발합니다. 가출합니다. 소극적일 때는 열등의식이나 자포자기에 빠집니다. 우리가 부모이든지 부모가 될 때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을 맡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쓰실만한 그릇이 되도록 튼튼히, 아름답게, 성실하게 양육할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iii) 주종간 (22~4:1)

그 당시의 가정질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아마도 주종간의 곤계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혀 혈친(血親)의 관계가 없는 남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마지못해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의 노예제도가 극히 성하여 노예는 집집마다 있었습니다. 노예는 대개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들을 때 무비판하게 자유를 부르짓고 주인에게 대항하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탈선 행위를 했을것입니다. 옛날에 비하여 그 용어가 달라졌고 그 발에 대한 관념과 의식이 변하였지만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사회속에서는 고용주와 고용인과의 관계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회사원으로 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어떻게 우리의 직장에서 일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을 자유인이면서도 종이라고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했습니다. 22~24절 말씀은 우리들에게 매우 유익한 권면입니다.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반면에 고용주는 어떻게 부하 사원을 대접해야 합니까?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음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추하심이 없느니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찌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3:25~4:1)
그렇습니다. 고용주나 고용인이나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 왕이시요 주권자 입니다. 이 사살을 망각할 때 부하 직원의 인권을 박탈하고 하나님처럼 군림하고저 합니다.
젊은 우리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이런 인격적인 질서가 없어서 고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벵겔은 “젊은이의 가장 치명적인 병을 실망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4절)

결론

제3과를 통해서 새 사람의 새 생활이란 위엣 것을 찾으며 생각하고 땅에 속한 지체를 죽이는 삶이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이 세상만을 바라보며 염려와 근심 가운데 계속 거하면 결국 옛 옷을 다시 입는것과 다름없음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시와 찬미를 부르는 새사람의 풍성한 감사의 생활과 성도들의 모임의 원리를 주옥같은 말씀을 통해서 깨닫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속한 조와 요회와 청년 협의회와 온 영락교회의 분위기가 이렇게 되기를 기도 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새 사람의 사회, 가정생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임금을 받기 위한 목적만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고, 그리스도를 위하는 생각 때문에 일 하는 것입니다. 종이나 주인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종일 수 밖에 없음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나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고 할 수 있는 차원 높은(위엣 것을 생각)생각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3:2절)






Number Title Reference
16 경건의 시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골로새서 4:7~18
15 경건의 시간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사회생활) 골로새서 3:18~4:6
14 경건의 시간 (새 사람, 새 생활) 골로새서 3:1~17
13 경건의 시간 (자라나는 신앙생활) 골로새서 2:16~23
12 경건의 시간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골로새서 2:1~15
11 경건의 시간 (교회의 일군 된것은) 골로새서 1:21~29
10 경건의 시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골로새서1:9~20
9 경건의 시간 (열매맺는 교회) 골로새서 1:1~8
8 제4과 그리스도의 동역자들 골로새서 4:2~18
7 제3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골로새서 3:1~4:1
6 제2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골로새서 2:1~23
5 제1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골로새서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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