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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골로새서 1:1~29
본문: 골로새서 1:1~29
요절: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라 근본이요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나신 자니" (골로새서 1:18)

서론:

골로새서 소개에서 골로새교회의 형편과 골로새서의 저자,저작의 동기와 목적을 살펴 보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골로새서를 공부하는 목적에 대하여서도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번 공부를 통하여 대망의 77년이 이룩됨에 일의를 담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제1과의 제목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입니다.
제목이 예시하는 바와 같이 우리 각자와 교회와 우주 만물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공부는
1)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2) 내가 주님의 자녀요 또한 주님의 일군된 근거는 어디있는가?
3) 열매 맺는 교회의 비결은 무엇인가?
4)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수행해야 하는가?
라는 제목을 중심해서 공부하겠습니다.

I.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세계 역사의 연호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B.C(Before Christ)와 A.D(Ammo Domini)를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국가,개인의 역사에 A.D와 B.C가 됩니다. 그분의 이름이 전하여지는 곳마다 혼돈과 좌절의 역사가 변해서 질서와 감격의 역사로 변하며, 구심점을 잃고 방황하던 인생들이 변하여 주인의식을 가진 중심있는 인물로 변화되는데, 이 예수님은 누구시며, 그의 하신 일이 무엇인지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제자들을 모아 놓으시고 물으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고 물으셨을때 제자들은 각기 자기가 들은 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에래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렇게 대답햇습니다.
그새서 예수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그리스도'란 '메시야' 곧 구주라는 말입니다.
이 대답은 모든 제자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그 당시의 사람들처럼 선지자 중의 하나, 다시 말해서 성자 중의 하나, 혹은 위대한 종교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위대한 도덕적 사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은 과연 성인인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골로새서 1장15절~23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그의 하신일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성서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 (15절)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거짓 스승들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철학이나 천사숭배나 선행등으로(2:8절) 교육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자니" 이 말씀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모습이며 대용물이 아닌, 바로 눈에 보이는 하나님 자신의 형상이요 인격이심을 말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드러내시기 위해 인간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형상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화상이시며 하나님의 인격의 산 모습이십니다.

하나님을 자연인의 눈 만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 이후로 죄와 허물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을 볼 수있는 믿음의 렌즈가 생깁니다. 이상에서 15절 상반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반절에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는 말씀에서 아들이란 육체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계신 분이니까요. 그 말씀은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말해줍니다.(표현해 줍니다) - 하나님께서는 영원전부터 세 인격이 하나로 존재해 계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예수님께서 베들래헴에서 태어나시기 전에 그는 진실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한 위(位)셨습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 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 이전에 있었노라. 내가 죄를 사하여 줄 권세가 있노라" 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기록한 후 이어서 14절에 기록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4절과 요한복음 14장8~11절을 읽어 보십시오.

2.우주의 창조자이신 예수님 (16,17절)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물(모든)의 머리이시며 기원자가 되십니다. 그는 창조 전부터 계셨음을 이미 설명드렸습니다.
그는 영원하시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표현이시며,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많은 종교를 만들어 왔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종교들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를 이론적으로 밝혀 보려고 시도합니다.

우상숭배로 부터 시작하여 지적인 우상, 인간의 우상화, 심지어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부인하는 종교까지 광범위하게 걸쳐있습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하나님없이 우주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사역을 제외하고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열쇠인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배척합니다. 신성과 인성을 믿지 않습니다. "우주는 어디서 생겼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16절에서 분명히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 이시요, 그리스도 안에서라야 유지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은 현상을 밝혀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행위와 분리된 과학은 최초의 원인을 밝혀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로부터 이 세상을 창조 하셨습니다.

현대를 우주시대라고 하는데 성서에는(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은 믿음으로라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히11:3) 우리의 눈에는 산소나 수소를 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 개의 원자가 감지할 수 없는 궤도를 그리며 도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원자에서 태양계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는 그것들을 존재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자연 법칙을 질서있게 하실 뿐만아니라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의 매 순간 순간 구체적인것에까지 관심을 가지십니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인 구원을 성취시키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1:14)
15절~17절을 요약하면
i) 예수님은 모든 창조물의 머리시며 기원자이십니다. (15절, 요1:1)
ii)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 되었는데 (16절, 요1:2)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것 모두다 그를 위하여 그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이요.
iii) 만물의 모든 운행의 법칙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고 (17절,요1:3) 했습니다.

3.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18절,19절)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창조물의 머리이심을 공부했습니다. 성경에서 교회를 하나의 유기체, 살아 있는 몸,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한 말씀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롬12:4,5, 고전12:12~27, 엡 14:15,16)

머리와 몸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와 마찬가지 입니다. 머리는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요, 지매하는 부분인 동시에 생명과 의지의 중심이요, 나아가서 이 두 부분이 연결됨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몸은 머리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머리가 없는 몸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인도 하시고 명령하시고 지배하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우리 개인이나 요회나 청년 협의회나 교회의 모든 사업계획과 실천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지배되고 명령되어야 합니다. 그가 없는 교회,단체, 개인은 진리를 생각할 수도 없고 바로 행동할 수도 없으며, 그가 없이는 방향을 정할 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 개인 개인이 77년도를 계획하고 또 실행해 나갈 모든 일에 반드시 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되고 인도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교회를 두심은 그리스도의 지체로(몸으로) 쓰기 위함이신데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머리로 생각하거나 지체로서 안일함에 빠져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경거망동한 행위는 우리의 머리(지도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는데 합당치 않음을 잊지 맙시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창시자 이십니다. 교회의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다가 죽은 보통인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교회가 발생할 수도 없었고 존재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발생의 근원이요 교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고 오늘날도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4. 화햬자이신 예수님 (12~14,21~22)

그 당시 골로새 교회에 침입한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골2:8~9 참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15절) 성육신 하심과(15,19절, 요1:14) 만유의 근원 되심과 (16,17절) 교회의 머리되심과 (18절) 중보자 되심을 (20절) 인정치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수 많은 이단 종파들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구속주가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4장12절을 읽어 보십시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였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 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요1서 4:5~6)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하더라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떤분으로 믿습니까?
13~14절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로 인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개인 개인을 어떤 형편에서 구원하셔서 어떤 기업을 허락 하셨는가를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i) 우리를 암훅에서 광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때 어두운 길을 걸으며, 더듬거리고 비틀거리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의식이 둔화되고 방향감각을 잃습니다. 의심과 공포와 좌절 속에 헤메이던 가련한 나를 옮겨 광명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ii)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옮기셨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공포의 노예, 죄의 노예며 자신의 무력과 허물의 노예입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유가 있고 공포와 좌절을 넘어 은혜와 평강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2절)

iii) 정죄에서 용서로 옮기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같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 이십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롬6:23)
"죄인은 반드시 죽으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습니다.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능히 옳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사람은 정죄함 앞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며, 또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해결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그 사랑으로써 세상에 보내시고 만민의 무거운 죄의 짐을 그의 어께에 지우신 그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많이 지었지만 그 죄의 값을 주님께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18절을 보십시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할 것이요" "아들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으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3: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5:24)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 시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22절)
하나님과 화목한 자의 생활 태도는 성결(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입니다. 또한 23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신앙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 귀한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5. 복음이란 무엇인가? (6~8절)

복음(Gospel)은 문자 그대로 "좋은 소식"입니다.
즉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말씀이며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어야 믿음이 생김니다. (행12:11, 롬10:17) 또한 복음을 통해서 은혜 (하나님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6절)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1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앗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시느니라."
복음이 심기워지는 가슴마다 열매를 맺습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먼저 말씀을 듣고, 깨닫은 그 날부터 온 천하에 말씀을 전파 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도 이미 복음의 씨가 심기워져 있습니다.
나 자신은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나 자신의 구원받은 이 기쁜 소식을, 이 평안을 전하고자 하는 불타는 듯한 심정이 있습니까?
우리 개인 개인은 주님과 불신 세계를 연결해 주는 통로입니다.

II. 내가 주님의 일꾼된 근거는 무엇인가? (왜 부르셨는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1;1)
"사도" 라는 말 자체가 보여 주는 대로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파송"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이 비록 골로새인들과 다른것은 없지만 그는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대사직의 사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주께서 맡기신 일들을 바로 할 수 있을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요, 편지요, 향기로 삽니다.

그런데 어떠한 자에게 이런 귀한 사명이 맡겨 집니까?
"영접 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골1;13,14) 주님의 일꾼이 된 내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모든것을 맡긴 중생의 경험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행9장)

둘째, 할 일은 무엇입니까? (7,8,25,28절)
에바브라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골로새에 가서 복음의 역사를 감당 했습니다. (7,8절)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일했습니다. 그는 골로새서 1장25절에 "내가 교회의 일군 된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1:28절) 이상의 말씀을 볼 때 주님의 일쑹된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을 발견 하게 됩니다.

"말씀을 이루는 일" 입니다. 이 일은 먼저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전도) 가르쳐야 합니다.(교육)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교회와 사회를 봉사하는 사람들을 양육해야 하는 큰 사명이 있습니다. (마18:14~20, 요21:15~17)
전도, 교육, 봉사는 영락교회가 지향하는 3대 목표요, 영락 청년 협의회가 시도하는 주간중 요일별 성경연구의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좋은 방법과 도구로 교회가 부흥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하여 교회를 부흥 시키십니다.
이 말은 방법과 도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한 말입니다.
1장8절을 보십시오. 골로새교회를 생각 할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사람 에바브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성령 안에서"사는 분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2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 하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생활과 적극적인 순종이 없이는 한시도 주님의 일을 올바로 감당할 수 없음을 명심합시다. "내게 능력 수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성령님으로 충만한 승리의 생활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명령이요 신자라면 필수적인 생활 방법입니다. (엡5:18)
성령 충만한 생활의 비결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계3:20) 다음으로 실 생활의 죄문제를 잘 처리해야 합니다. 남김 없이 죄를 고백하며 (요1서1:9)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간구하며 사모하여야 합니다. (갈3:14, 요7:37~39)
이것이 바로 영적 호흡 운동입니다.

나 자신이 아직도 주님께 내놓지 않은 죄는 없읍니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으나 신앙 생활을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특성인 불신앙, 불순종, 영적 유산에대한 무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잃고, 기도를 게을리하며 성서공부에 대한 열이 식고, 율법적인 태도와 더러운 생각,시기, 죄책감,근심,걱정,좌절감,무목적 가운데서 헤매이지는 않습니까?
성령 충만한 생활이란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나를 주관하시는 생활입니다. (요15장)
주님을 내 중심에 모실 때 나의 삶은 능력있는 일을 능히 성취 할 수 있을것 입니다. (요7:37~39)

III. 열매 맺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골로새 교회는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은 교회였습니다. (6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헬라인 몇이 예수님을 찾아왔을때 (요12;20~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고 하셨습니다.

어느 역사나 그 배후에는 "밀 한 알의 역사를 감당하는 숨은 봉사자 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교회의 역사에 주가 밀알이 되고 성경 선생이 되었습니까(7절)? 그는 어떤 사람 입니까?
그는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의 사람이요, 사랑릉 전하는 자였습니다. 청년협의회의 임원, 부차장, 조장, 모든 조원들에게 주님께서 에바브라에게 부치신 명예로운 이상의 호칭이 붙여지기를 기도 합시다.

이런 에바브라와 같은 분을 통해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이어 복음의 횃불을 높이들어 복음화의 선봉대가 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 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6절)

우리들 자신의 복음에 대한 자세가 어떻습니까? 듣기만 합니까? 깨닫는 자리에 나아가기 위하여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습니까? 전파하는 자리에 까지 나갑니까?

빌립보서 1장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매일 성장과 능력에 필수적인 그의 지식과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 주시도록 매일 그에게 시간을 드린다는 조건 하에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내적 사람"이 매일 매일 새롭게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경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난 11월 말경에 조사한 설문지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화요모임에서 요회로 누눌 때 조사한것)

이 땅위에 모든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아이들도 삶에 대처하도록 준비시킬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학교에서 여러해를 보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살기위해 하루에 단 20~30분 정도의 시간도 갖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4,5절을 보면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깨닫는데만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이 믿음과 사랑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에 근거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살 때 모든 종류의 손실과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
왜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가? 왜 다른 사름을 위하여 귀중한 시간을 사용하는가? 왜 내가 책임을 맡아 팔자에 없는 고생을 하는가?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룰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 앞에 약속된 말씀을 잊지 맙시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과 지혜인 복음을 받은 자는 생활에서 바른 행위의 열매를 순종으로 낳아야 합니다.

IV. 사도바울의 사명 수행방법은 어떠했습니까?

1. 기도했습니다. (9~14절)

기도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기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귀 기울이시게 함보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께 강요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고 계시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가 아니라 실제로는 "당신의 뜻이 변해 지기"를 강요하지는 않습니까?
기도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께 대하여 많은 말을 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듣는 것입니다.

i) 하나님의 뜻을 아는 분별력을 가진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되기위하여 기도 했습니다. (9절)
ii)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열매 맺도록 기도했습니다. (10절)
iii)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능력있는 삶을 살도록 기도했습니다. (11절)
iv)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여러가지 시련과 유혹 속에서도 기쁨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11절)
v)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의 기도에서 보는바와 같이 감사란 기도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들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사랑, 그리고 그의 구원에 대한 감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매일 기도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요, 매일하지 않아요. 어떤 날은 아무것도 원하는것이 없는걸요" 라고 대답한 어린 아이와 같은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원하는것이 있을 때만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축복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보다 그것을 이미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어떤것을 듣고 감사했습니까? (4~8절)

2. 자신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3, 28, 히2;1, 롬10:14)

"내가 복움의 일꾼되었노라" (23절)
골로새교회의 설립자는 에바브라이지만 에바브라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람은 사도 바울 이었습니다.
복음은 전달 통로를 요합니다. 로마서 10장14,15절을 보면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은 소식(복음)을 가진자는 나눌 의무가 있습니다.하나님께 받은 것은 헌신을 요구합니다. (롬1:14~16)
예수님은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들이 복음 전달의 발과 손과 입술이 되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 했습니다.
나는 청년 협의회에서 실시하는 매월 첮 주 '청년 총동원 전도'에 몇번이나 참여하고 있습니까? 각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자기 세대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3. 고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가 있었습니다. (24~29절)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 하고자 할 때 쉽게 저절로 이루워지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댓가와 희생을 치루는 순종의 고난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24절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 때, 존경받는 교수에게서 조롱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릅니다. 동료들에게 "김 목사", "박 전도사"라는 별명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가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믿음으로 인해 비난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니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 같이 핍박 하였느니라" (마5:11,12)

사도바울은 지금 자기가 받고 있는 고통과 투옥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우고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구하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일군이 되어 고난과 고통과 희생을 동반하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은 벌이 아니라 특권과 명예입니다.


결론

우리는 제1과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를 살펴보므로써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만유의 주 이심을 배웠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심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사실을 아는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나의 생활 속에 그리스도를 모시는것과 기독교적인 교리를 믿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의 자녀된 나의 사명과 청년 협의회의 부흥 발전의 길이 어디있는가를 살펴 보았습니다. "1000명 회원 확보". "1000만원 세계 선교 기금 확보"는 구호로만 이루위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각자가 지도와 순종이 수반되어야 열매 맺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일은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본 서신에는 사도바울의 동역자 디모데와 에바브라, 마가, 두기고등 많은 동역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주님의 일을 위하여 진심으로 협력하며, 사상과 의사가 통일된 동역자들이 있으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순결한 피와 생명이 흐르는 거룩한 동역자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역사의 양상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1절)
사도바울이 세계 선교의 역사를 이루고자 할 때 홀로 하지 않았습니다. 영락의 청년들 서로 서로가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 이 땅에 복음화(오천만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기수가 될 수 있도록 기도 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된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절)

Number Title Reference
16 경건의 시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골로새서 4:7~18
15 경건의 시간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사회생활) 골로새서 3:18~4:6
14 경건의 시간 (새 사람, 새 생활) 골로새서 3:1~17
13 경건의 시간 (자라나는 신앙생활) 골로새서 2:16~23
12 경건의 시간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골로새서 2:1~15
11 경건의 시간 (교회의 일군 된것은) 골로새서 1:21~29
10 경건의 시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골로새서1:9~20
9 경건의 시간 (열매맺는 교회) 골로새서 1:1~8
8 제4과 그리스도의 동역자들 골로새서 4:2~18
7 제3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골로새서 3:1~4:1
6 제2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골로새서 2:1~23
5 제1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골로새서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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