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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골로새서 2:1~23
본문: 골로새서 2:1~23
요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7)



서론

제1과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에 대하여 공부한 후 구원 받은 성도로서의 생활 자세에 대하여서도 배웠습니다. 오늘의 공부는 이단의 성격과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대처 방법에 대하여 공부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는

1.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1~7절)
2. 3가지 거짓 교훈 (8절)
3.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9~19절) 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본 강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깨닫지 못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이단이 되고 마는가 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주의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I.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1~7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골로새교회를 위한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몸이 로마 감옥에 있었지만 이단 (거짓교사)들의 침투를 받고 있는 골로새교회의 보고를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골로새에 가 있었습니다.(1절)
그래서 붓을 들어 골로새서를 쓰게 되었고 이 서신을 통하여 이단에 시달리고 지친 뭇 성도들의 마음에 위안과 힘을 주고자 했습니다. (2절)

1장을 공부할 때, 사도 바울의 기도를 배운바 있지만 그는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고 그 애타는 심정은 골로새서를 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2장1절 말씀에 “힘쓴다”는 말은 원어로는 “아곤” 이라는 말로 전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팥 번역성경(Moffatt) 에는 “깊은 관심” 으로 번역했으며 어떤 다른 성경 (Amplified) 에서는 “염려와 갈등”으로 풀이 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자유의 몸이라면 단숨에 골로새교회로 달려가 진리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바로 인도 하고자 했을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 갇히어 있기 때문에 기도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자기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길 밖에는 없었습니다. 시간과 거리와 환경 때문에 갈 수는 없고 그들을 위해 애써 기도하는 바울의 간절한 심정을 알아주기 바랐습니다.

사도바울이 제시한 거짓 스승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i) 힘을 얻어야 합니다.(2절)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위안을 받기 원했습니다. 위안은 “힘”이라고도 번역되기도 하며 새 번역 성경에는 “격려” 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단에 시달리는 골로새교회가 힘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교회는 어떤 사정에서도 대처해 나갈 용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랑 안에서 상호 연합하므로써 힘을 얻습니다. 교회의 조직이나 의식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런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경될 수 있는것이고 참 교회를 특징 짓는 하나의 표시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형제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는 교회는 강건해 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있을 때 거기에 사랑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청년 협의회의 1년 과업중 큰 과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나눌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빌1:5)

ii) 원만한 이해성이 풍부해야 합니다. (2절)

이해는 비판력 또는 구별력으로서 상황을 판단하고 어떤 구체적 행동이 필요한가를 확실히 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진리와 사랑은 좋은 동반자 입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차갑고 딱딱합니다. 진리 없는 사랑은 위험하지만 둘이 합치면 진정한 연합이 일어납니다.

에베소서4장3절을 보십시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가장 우수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지혜, 명백하고 긴 안목으로 보는지혜, 편견과 맹목 없는 지혜를 가질 때 원만한 이해성이 싹틉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3절)

하나님의 가족이 한 목적 한 영으로 연합하고 믿음의 조화를 이루고 한 마음이 된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 연합과 사랑을 통한 원만한 이해성 만큼 사탄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나누고, 불화를 일으키고, 성령을 슬프게 하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지속적인 “하나됨”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그리스도 안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조화를 이룰 때 우리 모두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3절)
그러나 이 보화들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찾아내고, 연구하고, 기도하고,믿고, 항복하고, 순종하고, 증명해 보아야 합니다. 이 지혜를 얻기 위하여 나는 스스로 탐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 이외의 장소에서 그러한 보화을 찾는 일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무 계시도 필요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이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자기 자녀에게 들어내기를 갈망하는 그에 대한 것이 끊임없이 풍요하게, 그러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채 무진장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숨겨진 보화는 그것들을 확보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만 해당 됩니다. 나 자신은 이 일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iii) 유혹적인 가르침에 저항 할 힘을 가져야 합니다. (4절)

참다운 성도는 공교한 말 즉 설득력있고 진실해 보이는 듯한 허울 좋은 말을 듣지 아니하고 진리를 굳게 잡고 흔들림 없이 일합니다 (골1:22). 오늘날 한국에도 이론적인 공교한 말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들이 많습니다. 청년 시절은 유혹이 많은 때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매우 조심할 것들이 많습니다.

iv) 규모 (질서) 가 있어야 합니다. (5절)

본문에서 '규모'와 '굳은 것'이란 그당시 헬라말에서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말로서 규모는 '군대의 대열'을 가리키고 굳은것은 '견고한 전선'을 뜻합니다. 성도들의 질서있는 군대와 같이 각자 가지입장에서 명령을 따를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영락 청년 협의회나 우리 각자나 모두 77년도에는 질서있는 군대와 같이 견고한 신앙 전선을 형성하여 수 많은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곳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청년 협의회의 각 요회 모임이 견고한 신앙 전선을 형성하려면 주님의 명령을 듣고 실행에 옮길 만한 강인한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강인한 군대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에 기쁨이 있는것처럼 내일의 영락 교회와 국가를 짊어질 우리들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면"(엡6:11) 얼마나 소망스런 일입니까?

v) 그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6~7절)

6절에서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어떻게 사는것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이 말씀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생활 속에 영접하고 내 생활에 주인이 되심으로 우리안에 시작된 새 변화의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자의 생활태도는 "그와 연합하여 삽니다" (계3:20). "그 안에서 행합니다(6절).

신앙 고백은 그럴듯 하게 하지만 실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따르지도 않고 그를 따라 살지도 않으면 사실 병든 신자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일은 순간적이지만 그 안에서의 생활은 계속적이어야 합니다. 신앙 고백만으로 완전해지지 않고 생활화하고 실천화 함으로 완전에 이룹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생명을 가진자는 어떻게 삽니까?
7절을 읽어 보십시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면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것은 제가지 비유로 바울은 권면했습니다.
첫째, 식물의 비유로, 둘째, 건물의 비유로, 셋째, 교육의 비유로, 넷째, 강물의 비유입니다.

땅속에 뿌리를 깊게내린 식물은 건강합니다. (시편1편)
뿌리는 줄기가 흔들리지 않게하며 수분과 영양을 공급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넓게,깊게 뿌리를 내려 우리를 위해 피 훌려주신 우리의 영원한 생명 샘인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살과 피와 일체를 이루는가에 비례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뿌리를 내리는 아픔) 열매도 없습니다. (요한12:24~26)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신앙이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야 합니다.
세우되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훈을 받은대로 실생활에 옮겨야 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적인 어떤 힘 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으지해야 합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교회는 가르치는 사명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많은 성서반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은 신앙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하여서는 반복된 교육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감사는 신앙 생활의 척도입니다. 감사는 생각나는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흘러 넘치는것 같이 언제나 해야 합니다. 원망과 불만에 살면 신앙이 자라지 못하지만 감사가 넘쳐 살면 신앙이 성장합니다. 모든 생물이 태양을 쪼이고 공기를 호흡해야 자라듯이 신앙생활은 감사 항 때 뿌리가 박히고 기운차게 자랍니다.

참 성도는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하신 일을 통해서 감사를 나타내며 삽니다. 1977년은 내일을 향한 청년 협의회의 뿌리를 내리는 해라고 생각합니다. 임원,조장,조원 모두가 큰 뿌리가 되고 중간 뿌리가 되고 작은 뿌리가 되어 생명의 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급받아 지대하고 풍성한 복음의 나무가 자라기를 바랍니다.

꼭 기억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돕는자 정도만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는 우리의 (협의회) 대장이요 주인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우리가 그를 위해 일하기를 (우리의 힘 만으로)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허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를 통해서 임원,조장,조원들을 섬기도록 허용할 때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요회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봉사 (섬김)은 우리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열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이루워집니다. 임원,조장,조원이 원망과 불만에 싸여 있다면 그 모임은 어떤 모습일까요? 상상하기조차 두렵습니다.

II. 세가지 거짓 교훈 (8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이 세상에 악의 세력이 유발시키는 비 성경적인 가르침이 우리를 사로잡아 노예로 만들고저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5장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느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적인 철학이나 전통적인 가르침이나 인간이 만든 종교들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해 볼 때 얼마나 형편 없는 것들입니까?

i) 철학과 헛된 속임수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 만으로는 구원이 충분치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위적인 것들을 덧 붙이고자 했습니다. 그 첫번째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 입니다. 철학이란 철인 피타고라스 (582~492BC) 가 “나는 지혜를 사랑함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비롯된 말로서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철학을 악한 의미로 공격한 것은 그가 모든 철학을 적대시 한다기 보다는 소위 철학이라는 명목하에 아무런 진리의 내용도 갖지 않고 공교한 말로 헛된 속임수만 나열하는 자들에 대한 공격입니다.

사실 철학이란 아무리 귀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있어서 사람의 이성으로부터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철학이 예수님의 하신 일 위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폴 틸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위 실존주의의 예술이나 문학이나 철학은 인간 내심의 공허서, 무의미성, 초조성, 야심분열증 등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지성을 동원해도 성령의 조명 없이는 구원의 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ii) 유전 (사람들의 전통)

인간 사회에는 전통이 있습니다. 조상때 부터 내려오는 의식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유전에 골수 분자들이었습니다.(마15:1~25) 어떤 제도나 형식은 시대적,공간적 성격을 자연히 내포하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난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꼭 진리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유전이란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시와 비교할 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6~19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혼동시키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교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아무도 그런것들을 지키는 일로 다른 사람들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규칙을 지키는 그것만으로 하나님께 가는 길이 아닙니다.(14절)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길입니다. (마12:1~8, 요14:6)

이말은 의식을 지키는 일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징이나 의식은 생각을 자극하고 믿음을 강화시키며 하나님의 진리를 설명 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것들은 목적을 수행하고 난 뒤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것이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위치에 놓인다면 위험하며 독이 됩니다. 먹는 일이나 특별한 날에 대한 유대인의 규칙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 하실 하나님의 계시 방법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것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는 그림자를 실제적인 것에 대치 시켜서는 안됩니다.

iii) 세상의 초등학문 (원시 종교)

점성술은 그 당시 과학의 왕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의 별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거짓교사들은 온 세상의 만물에도 수호천사가 있다고 했고 그렇게 때문데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보다 어떤 특별한 것을 천체나 천사들에게서 찾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이들 거짓교사들의 이론이 매우 진보적인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리 좋아도 인간의 지식이기 때문에 초보적인것에 불과 하다고 했습니다. 18절에서 우리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선포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애받지 말라” (새번역 성경)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남보다 더 종교적으로 만드는 특별한 지식을 받게되는 어떤 습관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공격한 그 당시 거짓교사들은 천사의 존재를 그리스도에게 올려 좋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격하시켰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위치에 다른것을 놓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젹하시킵니다. 환상이나 천사들이나 악령들이 채워진 마음은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영적 생활과 건강과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이루는 머리가 되십니다. 우리가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거나 채워지고저 할 때 우리의 성장은 방해를 받거나 지장을 가져옵니다.

성도들은 성경이 말하는 바에 따라 그 힘과 영양을 그리스도로 부터 받는 것이지 소위 새로운 계시로 부터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만이 힘과 성장의 유일한 근원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제시 하시는데,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족한 것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그리스도 한분 만으로 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요,구세주요,만물의 보존자로서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위치를 가지신 분입니다.

III.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9~19절)

i) 주님의 성품 (9,10절)

골로새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것이 미혹되면 마음이 공허해짐은 이상에서 공부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좇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충만”(9절) 이 성도들에게 임한다고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위에서 말한바 있지만 천사 숭배파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천사보다 밑에 놓고 모았으나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정사와 권세” (그당시 천사 숭배자들이 이름 붙힌 천사장의 명칭) 의 머리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의 창조자임을 대변하고자 함입니다.
예수님은 “보이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창조자” (골1:16) 이십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6)

ii) 세례의 참 뜻 (11~15절)

할례는 아브라함 때 시작된 것으로 (창17:10~14) 육체의 일부를 자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할례는 이런 형식만이 아니라 그 심중이 중요한 것입니다. 할례 그 자체를 명하신 뜻은 내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외적 표시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같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들 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허락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란 우리가 썩어져가는 모든 육의 모든 정욕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옷 입듯하며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의 생활을 하는것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2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갈2:20)

그렇습니다. 세례는 죄에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표시입니다. 세례의 참 뜻도 모르고 회개도 없이 기독교를 단순히 시인한다는 미지근한 생각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사실 자기를 속이는 행위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의 자녀가 된 자들의 복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조문들이 적힌 증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치워버리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셨습니다. (새번역 14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우리를 율법의 저주 아래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15절),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 주님(14절),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들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 합시다.

iii) 머리를 붙잡으라 (16~23절)

율법에는 여러가지 규례가 있습니다. (렘11장) 규례나 규칙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곧 복음은 아닙니다. 각종 규례와 규범은 실체에 대한 그림자 입니다. 그림자는 실체의 존재를 가리키는 뜻이 있을 뿐 그 자체가 아닙니다. (17절)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그 자체 입니다. (요14:6) 선지자는 준비요 부분이요 그림자이나 그리스도는 본체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드는 대신에 지엽적인 일로 인해서 그리스도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율법주의에 빠집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떠난 의식이 아무리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신앙이 자랄 수 없습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고 의식과 규정만을 찾는 자는 교만해 지기 쉽습니다. (18절)

19절을 읽어봅시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세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개인,단체,교회가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잡아야 힘을 공급 받고 성장합니다. 성장이 없는 개인,단체는 그 운명이 거련합니다. 머리가 없으면 방향을 설정할 수가 없습니다. 머리를 붙잡는 다는 말은 모든 일을 할 때 자기의 의지나 감정보다 주님의 지시와 인도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결론

제2과를 통하여 이단(거짓교사)들은 어떤 주장을 하는자들이며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성도와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형식과 모든것의 실체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구속과 세례의 의미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듣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는 아픔을 싫어 합니다.

시편1:3을 읽어 봅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1977년도에 목표를 설정한 1000명 회원들이 주님의 말씀 안에 뿌리를 박아 민족을 살리는 귀한 역군들이 수 없이 많이 양육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2:7)





Number Title Reference
16 경건의 시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골로새서 4:7~18
15 경건의 시간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사회생활) 골로새서 3:18~4:6
14 경건의 시간 (새 사람, 새 생활) 골로새서 3:1~17
13 경건의 시간 (자라나는 신앙생활) 골로새서 2:16~23
12 경건의 시간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골로새서 2:1~15
11 경건의 시간 (교회의 일군 된것은) 골로새서 1:21~29
10 경건의 시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골로새서1:9~20
9 경건의 시간 (열매맺는 교회) 골로새서 1:1~8
8 제4과 그리스도의 동역자들 골로새서 4:2~18
7 제3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골로새서 3:1~4:1
6 제2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골로새서 2:1~23
5 제1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골로새서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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