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이흥구목사설교 - 이흥구목사이흥구목사http://paulleemoksa.com/rss/get/134힘을 내십시오.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10137<br>고린도전서 16:13-14         힘을 내십시오.<br />  <br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3,14). 이 본문을 표준 새 번역 개정판에는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십시오. 용감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라고 기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새로운 번역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무상하고자 합니다.<br />  <br />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넓히 여시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교훈을 주시고 깊은 깨달음과 실천하고자 하는 결단까지 풍서하게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br />  <br /> 이 서신을 받아보는 고린도 교회는 어떻게 시작된 교회일까요?<br />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주후 50여년 경에 사도 바울의 제 2차 선교 여행 중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원래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복음 선교를 진행하고자 했지만, 예수의 영이 그를 막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 16:9,10).<br />  <br />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나서 즉시 마게도니야로 가서 빌립보에 이르렀고 그 곳에서 강가에 모여 있던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루디야가 주님을 영접함으로 인하여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관원들에게 잡혀서 옥에 갇혔고, 깊은 밤, 깊은 감옥에서 찬미와 기도를 드릴 때에 옥터가 흔들려 모든 죄수의 수감과 차꼬가 풀리는 기적이 일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석방은 되었지만 그 도시에 더 머물 수가 없게 되어서, 떠났습니다. 그 후에 데살로니가, 베뢰아와 더 나아가서 아테네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br />  <br /> 또 그곳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서 아가야 지방의 큰 도시인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뒤에 남겨놓은 동역자들이 그에게 도착할 때까지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추방 될 때에 고린도로 피신한 천막 제조업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동시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유대인들에게 밝히 증언하였지만, 그들이 바울에게 반대하고 비방함으로, 그는 이방 사람들들을 중심으로 하여 증거 하기 시작하였습니다.<br />  <br />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환상 가운데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행전18:10).<br />  <br /> 성도 여러분!<br /> 사도 바울의 선교를 잘 살펴보면 “두려워서, 침묵하는”일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 바울 같은 복음전도의 강력한 일꾼이 두려웠을까요? 왜 침묵하고자 했을까요? 왜 포기하고 싶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그 도시의 영적 환경이 아주 척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악한 사탄의 역사가 불일 듯하여 그의 복음전파의 길을 막아서서 담벼락에 대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런 환경에서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도행전 18장 11절 말씀을 보면,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그렇게 하여 고린도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이 한 패가 되어 그를 잡아 재판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폭동이 있은 후에도 여러 날을 머물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동역자들과 함께 에베소로 갔습니다.<br />  <br />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왕성하게 복음 전파 활동을 하면서도, 두고 온 고린도 교회의 소식이 늘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사도 바울에게 와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이 전해준 교회 소식은 교회가 파당이 있고, 세속화 된 생활 방식 가운데 사는 사람들, 음란의 문제, 잘못된 신앙관에 빠진 사람들, 거짓 교사들의 문제 그리고 성찬식 같은 예식까지 잘못 행하고 있고, 교만함은 물론 사도 바울의 사도성을 부정하며,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음을 알렸습니다. 더욱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장부터 15장까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을 바로잡기 위한 교훈의 말씀을 기록하신 후에 16장 13,14절을 결론적으로 묶어서 주신 말씀입니다.<br />  <br /> 먼저, 사도 바울은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정신을 바짝 차리라 영적으로 긴장하라)는 말씀입니다.<br />  <br /> 베드로 후서 5장 8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br />  <br />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br />  <br /> 예수님께서도 사도들에게 (열처녀의 비유)마태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br />  <br /> 마태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br />  <br /> 예수님은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때때로 밤새워서 기도하셨습니다. 늘 간단없이 하나님과 교통하셨습니다.<br />  <br /> 우리는 깨어 있는가? 교만의 잠, 나태와 무사 안일의 잠, 직무 유기의 잠, 자기 중심의 잠, 죄악의 잠에 빠져 있지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구약의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잠을 잤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자느라고 기름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br />  <br /> 이 시대의 교인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기도에 힘을 쓰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평균적으로 5-7분 정도 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나의 잘됨, 가족의 잘됨, 그리고 원하는 일의 성취가 주종을 이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뜻의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위해서, 잃ㅇ은 영혼을 주님 앞에 인도하기 위한 기도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지는 않습니까?<br /> 미국에서 19세기를 ‘Great Awaking Movement&#39;(영적 대 각성과 부흥운동)에 쓰임 받은 분은 큰 집회가 있고 더 많이 일해야 할 날이면,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긴 시간을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오늘 많은 시간동안 말씀을 증거 하시려면 매우 피곤하실 터인데 너무 일찍 일어나신 것이 아닌가?”라고 물으면 “내가 오늘 주님의 일을 많이 감당해야 할수록 나는 더 많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br />  <br /> 간절한 기도. 집약적인 기도. 끈질긴 기도로 깨어 주님께 나가시는 우리가 될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br />  <br /> 둘째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하셨습니다(뿌리를 주님 안에 굳게 두라).<br />  <br /> 성경 말씀에서의 믿음은 성삼위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대한 계획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믿음은 무수히 많은 악한 세력들과 죄에 대아여 승리하신 주 예수님을 믿는 현재적 믿음을 말합니다. 입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다. 지정의를 총동원한 전 인격적 신뢰를 말합니다.<br />  <br /> 야고보서 1: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br />  <br /> 골로새서 2:7,8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br />  <br /> 고린도 전서 15:2 절 “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br />  <br /> 고린도 전서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br />  <br />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br />  <br /> 요한복음 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br />  <br />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br />  <br /> 데살로니가 전서 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br />  <br /> 고린도 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br />  <br /> 셋째로. 용감하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사도행전에 보면, 성도들과 사도들은 갖은 환란과 핍박과 투옥 가운데서도 용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다가 산헤드린 공의회에 잡혀들어간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 4장 19,20절에서 그들을 심문하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충만해서 이렇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 스데반도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사도행전 7:55,56).<br />  <br />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br />  <br /> 에베소서 6:12절을 보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전쟁인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악한 영인 마귀와의 싸움이 라고 했습니다.<br />  <br /> 에베소서 6:10,11 “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br /> (본문 설명)<br /> 에베소서 6:13-18 이하의 몇 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br />  <br /> (설명 일반적인 명령, 적극적인 명령)<br />  <br />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의 싸움은 승리한 싸움이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우리들이 받을 죄의 형벌을 없애셨다. 십자가의 사건으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죄의 권세에 대항하는 능력을 주셨다. 우리가 주님께로 갈 때에 죄의 존재가 소멸된다.<br />  <br /> 거짓 교리와의 싸움, 거짓 가치관과의 싸움, 교회에 침투하는 악, 교회와 개인의 각종 문제들과 미성숙함을 떨쳐버리고 이겨야한다.<br />  <br /> - 임마누엘의 하나님<br /> -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br /> - 에벤에셀의 하나님.<br />  <br /> 넷째로 힘을 내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인생길에서도 신앙의 여정에서도 힘이 빠지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한 발도 내딛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br />  <br /> 우리들이 믿음으로 인한 시련과 환난이 올 때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br />  <br /> 모세의 생애 / 하나님을 열정으로 섬겼지만, 낙심될 때가 많았다.<br /> 히브리서 12: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br />  <br />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이루리라!”<br /> 누가복음 7장 9절 이하를 보면, 구하라(주실 것이다), 찾아라(찾을 것이다), 두드리라(열어주실 것이다). 1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br /> 사도행전 4: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레마의 말씀을 경험하라. 언약하심을 잡으라!<br />  <br /> 다섯째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br />  <br /> 대 계명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br />  <br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3:34,35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br />  <br />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1:4절 하반- 7절 “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br />  <br /> 성경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형제간에도 화목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들의 믿음의 권속들에게도 사랑을 더하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베드로 전서 4:8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br />  <br /> 요한 1서 4:19-21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br />  <br />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일명 사랑장이라고도 불리는 고린도 전서 13장을 잘 아실 것으로 압니다. 1-3절 / 사랑의 우월성, 필요성(사랑은 받드시 있어야 한다)<br /> 4-7 / 사랑의 본질, 혹은 내용, 8-13 / 사랑이 영원성,<br />  <br /> 4-7절을 읽을 때에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br />  <br /> J.I 패커라는 신학자는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을 잘되게 하려는 지속적인 관심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 사랑은 실천되어야 합니다.<br />  <br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의 자녀 된 우리들도 서로 사랑함이 마땅합니다.<br /> 우리가 갈 천국은 사랑과 화평의 나라입니다. 우리들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순례자의 길을 가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도 서로 우애하며 사랑을 더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br />  <br /> 맺는 말<br /> 깨어 있는가?<br /> 나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가?<br /> 용감한가?<br />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가?너희 인생이 무엇이뇨?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5909<br>          본문 / 야고보서 4:14                    제목 /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br />  <br /> I. 들어 가는 말<br />  <br />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OOO님의 유족에게,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친지들과 조객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br />  <br /> 장례식의 목적은 유족과 친구들이 고인을 잃은 상실감과 죽음이라는 마지막<br /> 순간을 잘 감싸안을 수 있도록 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이러한<br /> 기회가 필요합니다.<br />    <br /> 이 시간 어떤 이에게는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자녀가 되며 아내가 된 분이 고인을 떠나 보내시면서 갖는 솔직한 감정인 슬픔을 나타낼 수 밖에 없습니다.<br />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함께 더 정답게<br /> 나누어야 할 말들과 삶의 아름다움들을 상실한 마음의 안타까움을 가누지<br /> 못한 채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br />  <br /> 장례식에 참석한 우리들의 마음에 일어나는<strong>“인생이란 무엇인가?” </strong>질문이 있습니다. 유사 이래 인간으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물었던 질문일 것입니다<br />  <br /> II. 중심 되는 말.<br />  <br /> 이런 질문에 대하여,<br /> <strong><u>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의 생명은 잠시 지나간다.”고 했습니다.</u></strong><br />  <br /> 예수님의 동생이셨던, 야고보가 기록한 신약 성경 <strong>야고보서</strong><strong> 4:14절에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strong>인생을 아침 해가 나면 이내 없어지는 안개에 비유했습니다.<br />  <br /> - 구약 성경 <strong>이사야서</strong><strong> 40:6-7</strong>절 <strong>“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화는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 것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의 꽃과 같으니”</strong> 인생을 마르는 풀과 그 꽃으로 비유했습니다.<br />  <br /> - 구약 성경 <strong>시편</strong><strong> 102:3절</strong>에 <strong>“대개 나의 사는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도다.”</strong>  <br />   인생을 연기에 비유했습니다.<br />  <br /> 여러분! 우리들이 인생의 육신적인 면을 생각하면, 안개같고, 풀과 그의 꽃과 같고, 연기 같고, 그림자 같다고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에 공감하실 것입니다.<br />  <br />  <br /> <strong><u>2. 그러면 이런 짧은 인생은 무가치한 것일까요?</u></strong><br />  <br />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strong>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 </strong>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무엇으로 바꿀 수없는 가치와 숭고함이 있습니다. 비록 인생이 짧지만 우리들의 삶을 가치있게 보람되게, 영원히 남을 것을 위해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출애굽 당신에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시편 90:12절에서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br />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에 생명을 겁니다.<br />  <br /> <strong>1) 물질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strong> 귀중한 생명을 다 쓰는 분들도 없지 않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것도 다 지나갑니다. 우리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을 갑니다. 벌거숭이로 왔다고 옷 한 벌 입고 갑니다. 열심히 일하고, 생산적인 삶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strong>‘물욕’</strong>에 사로잡혀서 보이는 것에 삶을 거는 태도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strong>. 이것도 잠시입니다.</strong><br />  <br /> <strong>2)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느라고</strong> 인생의 귀중한 생명을 소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위와 권세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지위나 권세를 받아 충성스럽게 섬기다가,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두시면, 또한 감사하게 그것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인생의 힘이라고 생각해서 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의 권세와 명예를 빼앗고자합니다. 유명한 왕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반역해서 구테타를 일으켜서 잠시 권세와 영화를 누렸지만,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명예와 권세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것, <strong>이것도 잠시입니다.</strong><br />  <br /> <strong>3) 어떤 사람은 괘락을 삶의 목적으로 삼기도 합니다</strong>. 제가 더 길게 이런 인생의 결과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strong>이것도 잠시입니다.</strong><br />  <br />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께서 아주 나이 많으셔서 기록한 요한 1서 2장 15-17절을 보면 <strong>“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니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strong>고 하셨습니다.<br />  <br />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하기를 자기의 관에 구멍을 뚫어서 자기 두 손을 밖에 내놓도록 하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br /> 왜 그랬을까요?<br /> 물욕을 채우기 위해서, 명예와 권세의 노예가 되어서 그리고 쾌락의 종이 되어 잠시 지나갈 인생을 살아가기 쉬운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br />  <br /> <strong><u>3. 하나님은 인생의 가치가 ‘순간’이 아닌 ‘영원한’ 것이 되도록 길을 마련하셨습니다.</u></strong><br />  <br /> 하나님께서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을 원하실까요? <strong>결코 아닙니다!</strong><br /> <strong>하나님은 우리들이 소멸하는 인생이 아니라 소생하는 인생이 되는 길을 마련 하셨습니다</strong><strong>!</strong><br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br />  <br /> 예수님께서 <strong>요한복음</strong><strong> 3:16</strong>절에 친히 말씀하시기를 <strong>“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예수님)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strong>고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예수님께서 요한 복은 14:6절에 말씀하시기를 <strong>“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strong>고 하셨습니다.<br /> <strong><u>왜 예수님 외에는 영생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일까요</u></strong><strong><u>?</u></strong>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strong>“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strong>고 하시면서 <strong>“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strong>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마음대로 허비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 내가 하나님이 되어 사는 것이 죄입니다. 어떤 사회적, 도덕적 결함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내 맘대로, 나 중심이 되어,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된 것처럼 살기 쉽습니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죄의 근본입니다!<br />  <br /> 영원한 생명은, 내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려면, <strong>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낸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strong>.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인간은 그 댓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의 용서는 죄 없으신 분을 통하여서만 됩니다. <strong><u>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신 그 분이 우리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u></strong><br />  <br /> 요한 복음 5:24절에 <strong>“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strong> 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함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복을 얻기를 원하십니다.<br />  <br /> 여러분!  이 은혜를 받는 길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br /> <strong>“너희가 회개하라”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어라” 그러면 “성령 즉 하나님의 영을 너희 마음에 부어주리라” </strong>그리고 <strong>“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인생을 살라” 날마다, 날마다….</strong><br />  <br /> 오라버니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하여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strong>요한 복음</strong><strong> 11:25, 25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는냐?”</strong> 하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strong>소멸</strong>을 <strong>소생</strong>으로, <strong>사망</strong>에서 <strong>부활</strong>의 영광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요, 부활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strong>“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strong> 라고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기도하시겠습니다.<br />  <br /> (불신자의 장례식에서)<br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4767<br>요한 복음  11:17-37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br />  <br /> I. 들어가는 말<br />  <br /> <ul> <li> 인생살이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 사랑하는 배우자, 자녀, 부모와 친지 또는 친구들과의 사별이다. / 나사로의 여동생들 / 부모도 세상을 이미 떠남, 가정을 이끌고 생활을 책임지고, 자기들의 미래의 버팀목이 되었던 오라비의 죽음…</li> <li> 왜 그런가? – 나의 존재와 연결되었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즉 나의 한 부분이 소멸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함께 했어도 힘겨운 인생의 풍파를 혼자 지고 가야할 무기력이나 절망감 때문이다.</li> <li> 이런 일을 당했을 때에 어떻게 극복하여야 하는가?</li> </ul> 불신자이든 신자이든 간에, 이런 일을 당할 때에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br /> 읽으신 본문에서 예수님을 진실히 믿었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태도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br /> “주님이 좀 도와 주셨더라면….” “하나님이 꼭 이렇게 하시는 것이 우리에 대한 사랑이시란 말인가?” 등의 반응을 가질 수 있다. 조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더라면…” “다른 의사에게 조언을 받았었더라면 ….<br />  <br /> 전에 병원에서 전도하신 여전도사님의 이야기 / 어려움이 올 때에 신앙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기회도 된다. “위- 위험하다. 기 – 기회가 될 수 있다” 슬픔과 절망이 있을 때에 눈물을 많이 흘린다. 이 눈물이 나를 썩일 수도 있고, 영원을 보는 렌즈가 될 수도 있다.<br />  <br /> II. 중심되는 말<br />  <br /> <strong><u>1. 나사로의 죽음을 인하여</u></strong><br />  <br />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에,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br /> 베레아의 베다니에서 이틀을 더 묶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3 키로 떨어진 베다니에서, 말씀을 증거하시던 요단강 건너편 베레아의 베다니라는 마을 까지는 약 32 키로가 되는 거리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와서 소식을 전한 사람이 하루, 예수님이 이틀을 머무시고, 또 하루를 거려서 오셨으시 나흘이 됩니다. 아마도 사람들을 예수님께 급히 보낸 후에 나사로는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br /> 유대 나라의 기후 때문에 죽으지 하루 이내에 무덤에 안치한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 사람들의 생각에는, 죽은 사람의 영이 삼 일간 무던 주위를 배회하다가 떠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나흘이 되었으면 심하게 부패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다시 회생한다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br />  <br /> 마르다와 마리아의 올라버니가 죽은 일에 대하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위로하는 것 뿐입니다. 함께 울어주고 곡을 하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동네 사람도 위로하기 위하여 왔겠지만, 예루살렘에서도 많은 유다 사람이 그 오라버니의 일로 왔다고 했습니다.<br /> 여기에 ‘유대인’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졌던, 바리새인, 율법학자들, 대 제사장들을 칭한 단어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이 가졌던 영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함마슐드는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올 때에, 얼마난 많은 사람이 기뻐했는가 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애도하는 가로 평가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한 그분이 비행기 사고로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온 세계에 평화를 위하여 일하다가 떠난 그분을 수 많은 사람들이 애도했습니다.<br />  <br />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 살 때에 선한 영향력을 나누었다고 해도,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는 남겨 두고 간 사람들을 위로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함께 우는 것 외에는 앞 날을 위해서 염려해주고 보살펴 주는 일 외에는 근본적인 대책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br />  <br />  <br /> 그러나,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하여 슬픈 눈문과 한숨과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곳에 예수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이 예수님만이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인간이면 모두 다 당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하실 분이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소망은 사람들의 위로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값진 향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할렐루야.<br />  <br /> 우리도 그러합니다. 어떤 일이 우리를 슬픔과 좌절로 몰고 갈지라도, 사람들의 위로가 근본적으로 우리의 힘이 되지 못해도,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오셨음을 아시는 것이 중요합니다.<br />  <br />  <br /> <strong><u>2.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u></strong><br />  <br /> 유대인의 전통에는 조문객들이 오면, 가족들이 집 안에서 그분들을 맞아들이고 위로의 말을 듣고 함께 울곤 하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이런 전통을 따라서 많은 조문객들을 맞았을 것입니다.<br />  <br />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두 자매 가운데서 매우 활동적인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br />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한 말은 예수님에 대한 서운함이 배어있는 말이었습니다.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1)이 말은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러 나온 마리아도 똑같이 했습니다(32).<br />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우리도 예수님께 아쉬운 마음을 토로합니다.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사실인가? 하는 의문이들 땍 있습니다.<br />  <br />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마르다는 신학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때에 살아나겠지요.’라고 했습니다. 39절에서 마리아도 무덤 앞에서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br />  <br /> 예수님께서는 지난 2천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 가장 많이 인용된 유명한 말씀인 25, 26절로 마르다에게 대답하시면서,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25, 26절의 말씀은 요한 복음이 제시하는 “나는 …이다.”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즉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본성을 말씀하신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하는 어구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br />  <br />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만 계십 분이 아니십니다. 지름 여기에도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네가 믿느나?”고 질문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압니다. 성경도 공부합니다. 기도도 하지요. 그러나 정말로 전능하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여기에서 나와 마주하시고 계신것을 믿으십니까? 만일 주님의 임재의 현실화를 믿고 그대로 산다면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변할까요?<br />  <br /> 마르다는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자기가 당면한 상황을 다 아시는 주님을 만났을 때에, 나의 상황과 슬픔을 넘어서 전능자 앞에 선 그 순간을 깨달은 마르다가 한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으니 세상에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런 고백이 있어야 우리의 상황에 주님의 빛과 인도가 비추이심을 알게 됩니다.<br />  <br /> 그러므로 우리가 넘지 못할 것 같은 시련과 절망과 슬픔의 벽에 막혔을 때일지라도 나를 만나시려고 서 계시는 주님을 만나십시다. 우리의 아픔과 예수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푸념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고백하는 더 높은 신앙 고백과 성장을 통하여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디 엘 무디가 세상을 떠날 때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신문에서 읽으실 때에 믿지 마십시오. 저는 주 안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br />  <br /> <strong><u>3. 예수님은 비통하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u></strong><br />  <br /> 예수님은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한 마리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지만, 아직도 아쉬운 마음, 섭섭한 마음이 가슴속에 있는 마리아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을 알리고 데리고 오는 것이었습니다.<br /> 마리아가 예수님께 와서 한 말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마르다가 한 말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발 앞에 엎드려서 말씀 드렸습니다.<br />  <br /> 마리아가 나가자 조문하러 왔던 사람들이 따라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우는 것과 따라 나온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말씀은 창자를 짜르는 듯한 괴로움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비통해 하시면서 통곡하실 때의 단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과 아픔을 함께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면서도 우신 분이십니다.<br />  <br /> 더 나아가서, 죄로 인하여 인간이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고, 아끼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죄의 영향력에 사람들이 굴복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면서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죽음을 부활과 영생을 바꾸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의 댓가를 지불하시고, 죽으신 후에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해방하셨습니다. 이 주님을 믿어 온전히 나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부활과 영생의 그리스도의 공로로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br />  <br /> 언젠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분은 죽지 않는 영생의 복락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br />  <br /> 눈물을 흘시시는 예수님을 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셨는가를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신 분이 왜 나사로는 죽게 하였을까를 서로 말했습니다.<br />  <br /> 그렇습니다!<br /> 예수님은 베레아 지방의 베다니에서도 말씀을 병을 고치시거나 죽은 나사로를 일으키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br /> 예수님은 나사로가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편을 통하여 아신 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4).<br />  <br />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을 고치는 일보다 먼저 베레아에서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받으실 일을 위하여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시면 생명이신 것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질 부활의 영광의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써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려 주시고자 하셨습니다.<br /> 예수님의 사역 방법은 복음 증거와 치유를 통해서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신 일을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적을 두고 사역하셨습니다.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시는 일, 치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사역도 이런 원칙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복음 전파를 해서 새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 명령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병들고 헐벗은 사람들. 돈에 팔여와서 몸을 하는 사람들, 압제에 눌린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할 것입니다.<br />  <br />  <br /> III. 맺는 말.<br />  <br /> *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셨습니까?<br /> * 본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무엇을 배우셨습니까?<br /> * 본문을 통하여 나에게 주시는 교훈들은 무엇입니까?<br />  <br />  <br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4766<br>마태복음 16:21-28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br /> <br /> 교회 설립10주년을 맞으신 산프란시스코 선교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시기를 기원합니다.<br />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서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여 말씀 축제를 가지시면서 많은 은혜를 받으신 교우 여러분들과 또한 주 안에서 교제하는 현 목사님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br /> <br />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하늘 문 넓히 여시고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으로 가시면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 이라고 하고, 예레미아냐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태복음 16장 16절을 보면,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아들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백을 들으시고 “네가 복이 있다.” 고 칭찬을 하셨습니다.<br /> <br />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으로 믿는 고백 위에 주님께서 지난 10여년 동안 주님의 몸된 교회인 샌프란시스코 선교 감리교회를 섬기신 여러분들은 많은 복을 받으신 분들이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이 반석(고백)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권세가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선교 감리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가 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가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br /> <br /> 이미 읽으신 하나님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21절을 보면, 예수님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야 하며,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반드시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반드시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즉시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에게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면서 아주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로 돌아서셔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하셨습니다.<br /> <br /> 주님께 기쁨을 드렸고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엄한 질책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가셔서 기도할 때에 사탄이 세 번이나 집요하게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이 비록 예수님을 사랑해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메시야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원하는 정치적 메시야가 되라는 사탄의 유혹과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엄히 꾸짖으셨습니다.<br /> <br />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마음 속 깊이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부탁드린 말을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자기들이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마태 20:20-28). 예수님을 따른 댓가로 부귀영화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가가시는 내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누가 높으냐는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이런 자리 다툼으로 인하여 제자들 가운데 반목과 질시가 있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까지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신앙 고백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로 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내 즉시 인간의 옛 본성, 유대인의 고정 관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 있었습니다.<br /> <br /> 혹시 우리 가운데, 주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있지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성공과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함인 분은 안 계십니까? 혹시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과 하신 일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라고 하는 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안들어 주신다고 강하게 항의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혹시 우리 가운데 누가 높으냐를 생각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믿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식으로 좇는 사람만이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그러므로, 우리가 늘 물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는 것인가?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윈한 것인가? 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영광과 기쁘심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영광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인가?’ 를 물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역사에 걸림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걸림돌’이 아니라 주님이 쓰실 제자들 되는 일에 대하여, 24절 말씀에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이라고 하시면서 다음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져라. 나를 따르라”고 명하셨습니다.<br /> <br /> 헬라어 원문에서 위의 세 가지는 모두 명령형으로 기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주님을 믿어 구원받고 주님을 따라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없습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에서도 “누구든지 나를 믿으면”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탭복음 11장 28절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치뤄야 할 댓가가 있습니다.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br /> <br /> 첫째로,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라”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자기의 죄를 온전히 회개하여 온전히 끊고 돌이켜서 새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 말씀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꼭 죄는 아닐지라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안일, 오락, 무절제한 생활, 세속적인 언행과 습관등 우리를 주님의 성숙한 일꾼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거룩한 성도로 세워가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것들에서 떠나는 것이 중요합니다.<br /> <br />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3절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거나, 헐벗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뜻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거나 주님을 멀리하도록 하는 것들은 내어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br /> <br /> 그리고,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나 자신을 아예 부정해 버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이기적인 욕망, 세상적인 안전과 명예를 따라 살던 것을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활은 한 치도 용납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뜻을 앞세워서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아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사는 것이라.” 선한 일을 할 때에 나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에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br /> <br /> 전도를 해도 나를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감사해서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 된 신앙 생활은 자기를 부인함으로 인하여 자기는 죽고,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주장하시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는 온전히 죽고 그 대신에 그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 나오시지만, 지은 죄를 모두 회개하여 주님이 주시는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신 분은 안 계십니까?<br /> <br /> 주님께 여러분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자기 중심의 생활을 함으로 인하여. 주님의 역사에 쓰임 받지 못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이 시간에 주님께 나아와 여러분의 중심을 드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을 여러분의 구주이실 뿐만 아니라, 생활의 전 영역을 다스리실 왕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복음에 기록 된 같은 내용에는 “날마다”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살 때에 “날마다” 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br /> <br /> 인간으로 이 땅 위에서 살면 자연히’생, 로, 병, 사’에 따르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없는 생명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삶에 따르는 고통이 있습니다. 건강의 어려움,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통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나 안심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대하는 것과 다른 입장에서 우리는 일상의 어려움들을 만나고 이겨냅니다. 사도 바울도 육신의 가시가 있으셨습니다. 즉 병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자로서 교만하지 않게 하여 열매를 맺는데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br /> <br />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가 있으심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져야할 십자가도 있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로서 바로 살려고 하면,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핍박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악은 선을 미워합니다. 불의는 의를 싫어합니다. 그러기에 디모데 후서 3장 12절에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가정에서 핍박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신앙 생활을 바로 하려하면 핍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옛적 선지자들고 다 핍박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의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고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한 청년이 퇴근을 하고 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맥이 빠진 손자를 보신 할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시니 “제가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살려니 왕따를 당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께서 박수를 치시면서 “네가 마침내 왕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기뻐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실 때에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사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 봉사하는 일, 고아와 과부, 가난한 이웃들과 노인, 병약한 분들과 길 잃은 청소년들, 환난을 당하는 분들을 위하여 봉사 할 때에 십자가가 따릅니다.<br /> <br />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가르칠 때에도 십자가가 따릅니다. 기쁨으로 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진실히 따르고자 할 때에 십자가를 집니다.마틴 루터는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내가 과연 참 제자인지, 혹은 떡덩이나 물고기를 얻어 먹으러 다니는지 그것을 분별하는 시금석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자녀로써 마땅히 져야할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까? 불평불만 하시며서 억지로 지시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을 따릅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피하십니까? 마태복음 10장 38절말씀을 보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br /> <br />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이루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시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이런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 그리하며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힘 주시면 능히 지실 수 있는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나를 따라 오라.”고 명하셨습니다.<br /> <br /> 독일의 신학자로서 히틀러에게 처령된 디히트리히 본 훼퍼는 ‘나를 따르라’는 그의 책에서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은 “값싼 은혜에 도취되어 있다.”고 경책하면서 우리는 “값 비싼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님을 따름에 오는 값비싼 댓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날마다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자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에 “나를 따라 오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부르셔서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셨습니다.<br /> <br /> 그러면,우리들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삶일까요? 기차가 가려면 두 레일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두 가지를 꼭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일상 생활에서 ‘대 계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2장 37절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대 계명’을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이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실 생활에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이상과 같이 맺어 가면서 사는 것이 주님을 따라 사는 구체적인 삶입니다.<br /> <br /> 그런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 살고, 교인들끼리도 원수 맺고, 용서하지 않고, 시기질투를 하면서 교회에 오면,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려야 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했던 것을 깨달아 용서함을 받고 주 앞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틴 루터는시편 109편 7절에 “그가 하는 기도는 죄가 되게 하십시오.”라는 말씀을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기도를 드리면 그것이 내게 죄로 변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한 친구가 그에게 말하기를 “그 사람은 내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힘주어 다짐하는 말을 듣고는 “그렇다면, 당신은 앞으로 죄를 한 번도 지어서는 안 된다.”라고 대합했다고 합니다.<br /> <br /> 우리들이 늘 외우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남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나의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뜻도 됩니다. 둘째는, ‘대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명하신 마태복음 28장 19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제자를 삼아 주님의 백성으로 세워가는 일을 하면서, 주님을 따라 날마다 사는 것이 대 사명입니다. 이 명령은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주신 명령입니다. 복음 전도자는 말과 사랑과 행실로 일상 가운데서 살면서 전도합니다.<br /> <br /> 대 사명을 실천하는 제자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는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을 보면 부활승천하시는 주님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이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전도 명령을 받고 둘씩 짝지워 나갔던 일흔 두 명이 돌아와서 기쁨으로 보고할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씀하시면서,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는 일에 매진하며 따르는 성도들은 그 이름이 하늘 나라의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어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의 신조를 받아들이거나 주일을 지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즉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예수님과 같이 행하고, 같이 살며,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br /> <br />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주신 ‘대 계명’과 ‘대 사명’을 삶에서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만은 죽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력의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 지셔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1장8 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br /> <br /> 샌프란시스코 선교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신자들이 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부인할 수 있게 되고,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질 수 있고, 주님을 기쁘게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힘과 능으로는 이상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사도 바울은 당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날마다 계속 성령님으로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몇 가지 지침을 말씀드립니다. 먼저, 신앙 생활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를 막은 죄를 지었을 대에 즉시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들에서 즉시 떠나십시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십시오. 죄를 회개하시고 온전히 돌이키셔야 성령을 선물로 받으십니다.<br /> <br /> 하루 하루를 생명의 말씀과 기도 없이 그냥 그냥 지내는 분들은 새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사시면, 성령님으로 충만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루 를 시작하실 때에 ‘노 바이블, 노 브랙패스트, 노 비지네스’ 라는 결심을 가지고 시작하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 없이는 성령 충만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헌신 하십시오. 순종은 기적을 여는 문입니다. 또한 주님이 기회 주실 때에 뒤로 미루지 마시고 온전히 헌신하십시오.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으시고 힘차게 사십시오. 이렇게 생활하시면서, 늘 성령 충만을 간구하십시오.<br /> <br /> 이렇게 될 때에야. 자신을 부인할 수 있고, 자기 십자가를 능히 질 수 있고, 찬송하면서 주님을 기쁘게 섬기면서 다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찬송가 360장 다 함께 부르기) 마태복음 16장 27절을 보면, 주님께서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으실 줄로 압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3절 이하를 보면 “금과 은과 보석과 같이 주님 앞에 나타날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겨우 구원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성령님으로 충만한 해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아서 많은 열매를 가지고 주님 앞에 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노년기와 신앙생활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4714<br>디도서 2:1-4            노년기와 신앙생활<br />  <br />  <br /> 이 자리에 모이신 성도 여러분!<br /> 요한 3서 2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br />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 하시기를 바랍니다.”<br />  <br /> 임마누엘 장로교회에서 연세 높으신 분들을 위해서 이렇게 수요일 오전 시간을 정해 예배 드리시는 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말씀으로 교제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br />  <br /> 교회에 연령별로 여러 계층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를 보면 장년부, 중고등부, 청년부 등에 많이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노년기에 이른 분들이 중요함에서 제외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미 읽으신 분문은 사도 바울이 그레데라는 섬에서 사역하고 있는 디도라는 동역자에게 보낸 목회서신입니다.<br />  <br /> 사도 바울은 나이 많은 분들이 얼마나 중요한 분들이며, 영향력을 주는 분인지를 디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건전한 교훈에 맞는 진리를 전할 대상으로 제일 먼저 연세 드신 어른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연세 드신 분들이 교회에서 중요하시기 때문입니다.<br />  <br /> 어린 시절을 인생의 새벽과 같습니다. 청년시절은 인생의 아침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중,장년이 한낮과 같아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러면 노년기는 하루 중 어떤 시간이겠습니까? 저녁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아침 햇살이 아름답고 힘찹니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시작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잘 마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채근담’ 이라는 책에는 “인생을 보는 데는 그 전반의 생을 보지 말고 그 후반생을 보라.”고 했습니다.  <br />  <br /> 신,구약 성경이나 교회사를 보면, 꼭 젊은 사람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만이 훌륭한 삶을 산 것이 아닙니다. 한 예로 아브라함을 기억하시지요? 나이 75에 부름 받아서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의 나이가 어떻습니까? 갈렙이 아말렉 족속이 있는 헤브론 성을 치겠다고 할 때,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할 때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br />  <br />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때를 학자들은 주후 64년 경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도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복음 전도자 가운데 한 분이 디.엘 무디라는 분입니다. 그분이 영국에 복음전도 운동을 가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의 나이도 있지만, 그가 생각할 때 영국사람들에게 전도하기에는 자가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분은<br /> 중학교 졸업이 그의 학력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수년에 걸쳐서 병상에 계신 할머니가 디. 엘. 무디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영국에 오셔서 세상을 향하여 가는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자꾸 편지가 옵니다. 거룩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되었고, 큰 결심을 하고 그 당시 세계의 명문 대학인 캠브리지와 옥스포드 대학에 가서 복음 증거를 하여 많은 청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일생을 주님께 드려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영국의 부흥운동과 선교 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일게 사용된 사람이 누구예요. 현재는 그분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한 할머니였습니다!<br />  <br /> 이 자리에 계신 에녹회 여러분!<br /> 여러분은 본 교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매우 중요하신 분들이십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br />  <br /> 누가 본 교회를 위하여 기도 제일 많이 하실까요?<br /> 누가 오늘 본 교회가 있기까지 순종의 발과 섬김의 손과 뜨거운 가슴과 눈물 어린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까? 주님은 아십니다! 연세 높으신 여러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지금도 변치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br />  <br />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이 많은 성도님들이 계속해서 건전한 신앙 생활가운데 있게 하기 위하여 오늘 묵상할 본문을 기록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육체적인 면은 물론, 정신적, 영적으로 안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랄지니 그리스도 예수에게 까지 자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연령과 관계 없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br />  <br /> 사실 인생의 각 연령기에 주님과 가장 많이 동행하며 교제하고 은혜 받을 수 있을 때가 노년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노년기의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br />  <br />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2절을 보면 나이 많으신 남자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br />  <br /> - 절제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br /> 절제란 무엇입니까?<br /> 균형 잡힌 삶을 말합니다. 나이가 드시면 다 이해해 주겠지 하면서 옛날에는 안 하시던 행동이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노여운 감정을 쉽게 표현하기 쉽습니다. 일방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상대편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 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삼가지 않습니다<br />  <br /> - 경건하며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br /> 새로운 번역에서는 위엄이 있고 신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br /> 여기에서 위엄이란 권위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늘 동행함을 통하여 나타나는 삶의 모습에는 연세 드신 분 다운 권위가 있게 됩니다. 경거망동 하지 않습니다. 신중합니다. ‘신중하다’<br /> 는 말의 본문의 뜻은 특별히 욕심과 분노와 말을 잘 살펴서 사려<br /> 깊게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 내 나이 몇인데 욕심이 있겠나?”하고 반문합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발을 무덤에 들여 놓았을 때에 욕심이 제일 많아진다.”. 연세가 들면 정욕이나 허영 등의 욕심은 적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권세, 물질, 명예에 대한 욕심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이집트에서 일어난 사태가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무바락이라는 대통령이 젊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노년이 될수록 권세욕, 물요, 명예욕 등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이름처럼 무턱대고 발악을 했기 때문입니다.<br />  <br /> - 그리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br /> “믿음과 소망 과 사랑”을 일컬어 믿음의 삼 요소라고 합니다.<br /> 믿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다 알사람은 세상 천지에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 뵈올 그날 까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과 함께 건전한 교훈을 배우고 실천하는 믿음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배움에는 연령의 제한이 없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해야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너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경험한 성도들의 삶에 나타나는 덕목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인생의 경륜이 많으신 분들입니다. 현실 앞에서 절망하거나 자포자기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인내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연세 높으신 남자 성도님들이 이런 신앙을 갖고 사실 때 여러분은 물론 후손들은 물론 섬기시는 교회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크게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br />  <br /> 여러분!<br /> 이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br /> 나는 절제하는 신앙 생활을 합니까? 행동과 말이 어떻습니까?<br /> 나는 위엄이 있고 신중한 삶을 추구합니까? 그냥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분별없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까?<br /> 그리고 나의 믿음은 성장해갑니까? 실천되는 사랑입니까? 사랑은 하지 않고 받기만 바라는 것은 아닙니까?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내 포기하거나 절망하고 살지는 않습니까?<br />  <br /> 그러면, 나이 많이 드신 여 성도님 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br />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3절에서 다음 몇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br /> 행실을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br />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행실이 존경 받을만한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참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참소한다는 말은 ‘남을 헐뜯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덕이 되고 상대를 세워주고 힘을 주는 말이 아닙니다. 쏘아 붙이고, 비웃고, 헐뜯어서, 본인은 물론 주위에 해를 끼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디모데 후서 2장 16절을 보면 “속된 잡담’을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그레데 섬에 사는 나이 많은 여자분들이 아마도 술에 인 박힌 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이 교회에 와서 신자가 된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 다 자라고, 시간이 있으니 자연히 사람들과 만나면 옛 날로 돌아가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교인들 흉을 보고 주님의 일꾼들을 흉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술은 끊었지만 그 세상의 습관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br /> 우리들이 교회에서는 천사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집에서나 세상 친구들 만나면, 세상 사람과 별 다르지 않게 옛 본성대로 살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3초의 말로 한 사람의 일생을 황폐하게 하기도 하고 기름지게도 합니다.<br /> 반대로 선한 것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가르치는 일에는 물론 지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민 교육 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신명기 6장을 보면, 먼저 부모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가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br /> 오늘 날에는 모범을 보이는 실제적인 기독교 교육이 그 어느 시대보다 시급한 때입니다. 이런 때에 연세 드신 여 성도님들이 주님 사랑과 삶의 언어와 행실을 보여 줌으로써 다음 세대가 주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br />  <br /> 이 자리에 계신 여성도님 여러분!<br /> 이런 결심을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br /> 나는 주님의 딸로서 행실이 거룩한 삶을 살겠다.<br /> 나는 주님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고, 이웃에 덕을 세우며 힘을 주는 언어 행실을 하겠다. 내게 술처럼 인박힌 습관을 발견하고 옛 것을 벗어 던지겠다. 그리고 나의 언어 행실로 다음 세대에게 본을 보여 주겠다.고 말입니다.<br /> 주여!<br /> 이런 결심을 하시는 성도님들을 도와 주셔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br />  <br /> 나이 많으신 남자 성도님들, 여자 성도님들이 이상의 교훈을 받아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하시면서 하실 일은 무엇입니까?<br />  <br /> 셋째로,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br /> 요즈음 연세 드신 분들이 젊은 남자나 여자 성도님들을 만날 기회가 적습니다. 젊은이들이 연세 드신 분들의 믿음과 정절과 말을 보고 배울 기회가 적습니다 .<br />  <br /> 제가 청년 시절에 청년회 임원을 할 때의 일을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청년회 봉사부장을 할 때인데, 교회 봉사부 모임이 있니 꼭 참석해서 청년들의 의견을 달라는 연락이 옵니다. 참석해서 회의를 진행하시면서 교회의 일을 서로 나누어 감당하시고, 때로는 청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는가를 물으셨습니다. 제가 전도부장을 할 때도 똑같이 전도부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는 교회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을 통해서 신앙 생활의 진면목을 많이 목격하고 옷깃을 여미었습니다. 저가 신학교에 가기 전에 고등분 반사를 하고, 집 사람은 유년부 반사를 했습니다. 사실 지도 목사님 못지 않게 30년 40년을 근속하시면서 가르치시는 머리가 하얀 어르신네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분과 같이 주님을 사랑하면서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많이 다짐했습니다.<br />  <br /> 5,6절을 보면, 이런 어른들을 통해서 젊은 남녀들이 ‘신중한 사람’이 됩니다. 순간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분별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은 전파됩니다.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주 안에서 사랑하도록 훈련하고, 자녀들은 주 안에서 사랑하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름다운 가정, 이런 건강한 가정들이 모인 교회를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중대한 일은 한 목회자만의 사역이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연세 드신 성도님들이 하실 일입니다.<br />  <br /> 왜 그렇습니까?<br /> 5절 하반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들 때문에 영광 받지 못하십니까? 세상사람들이 우리들이 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경멸합니다. “예수 믿는 것들이” “입만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얼마나 더 들어야 합니까?<br />  <br /> 이 시간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도록 마음을 모읍시다. 남자 성도님들은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이 흔들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연세 높으신 여성도님들도 행실이 거룩하기를 바랍니다. 험담이 없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br />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임마누엘 장로교회 에녹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br />  <br /> 시편 71편 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 저자의 소원이 저와 여러분들의 소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시편 92편 12-14절을 읽을 때에 자세히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라.”<br />  <br /> 주 안에 심기신 백향목 같으신 에녹회 여러분!<br /> 주님이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br />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게 됩니다. “어떻게 입니다.”<br /> “주여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기도가 각자마다 이 에녹회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br />  <br />  <br />  <br />  <br />  <br />살았으나 죽은 교회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4712<br>어떤 사냥꾼이 있었는데, 그 사냥꾼이 독수리를 잡으려고 화살을 겨누면서 독수리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br /> 그런데 이 독수리는 자신이 곧 죽을 줄도 모르고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았더니, 독수리는 뱀을 잡아 먹으려고 뱀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냥꾼은 또 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뱀도 어딘가를 노려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꼼짝도 하지 않고 개구리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또 개구리도 마찬 가지로 꿈쩍 않고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데, 개구리는 무당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무당벌레를 노려보았습니다. 무당벌레도 꼼짝 않고 있었는데,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으려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이 먹이 사슬을 보다가 슬그머니 활을 내려놓았습니다.<br /> <br /> 그리고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혹시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노려보는 것이 없을까 살핀 것입니다. 사냥꾼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냥꾼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사도 바울은 인류의 최대의 적을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세상 역사상 예수님을 제외하고 누구나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인간이 영원한 멸망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 죽음은 죄로 인하여 들어왔습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죄를 제하여 버리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데,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권세에서 벋어날 수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죽으시고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으니 주님의 자녀 된 우리들도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의 영광으로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br /> <br /> <br /> <br /> 제자들의 복음전도의 핵심은 고전 15장 3,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것이 우리들이 가진 복음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한 결과 아시아에 대표적인 7교회가 설립된 것을 기초로 기록된 것입니다. 2장 1절 이하를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아시아의 7교회를 불 꽃 같은 눈으로 살펴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돌아보시며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실 줄 압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아시아의 7 교회를 보시면서 칭찬도 하시고 경고도 하셨습니다. 니골라 당이라는 이단과 이세벨을 쫓아 교회의 순수성을 잃는 문제 또는 무기력과 사랑을 잊어버린 교회들로 전락하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사도들이 또는 부활의 증인들과 그들의 전도를 받아서 세워진지 수십 년밖에 안된 교회들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분명한 것은 교회가 늘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의 권능을 강조하지 않으면 어느 사이엔가 변질되어 교회 본연의 자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데 교회는 지금의 터키 지방에 있었습니다. 양털 생산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점령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곽이 견고했습니다. 전쟁이 많은 그 시대에 단 2번만 점령당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조건들이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빈사상태에 이르게 된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예배의 의식은 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있었겠지만 참된 신앙의 열매들이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갈증이나 생동감이 없는 교회였습니다.<br /> <br /> 부활하신 주님은 이 교회가 어떻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br /> <br /> <br /> 1. 깨어있기를 원하셨습니다.<br /> <br /> 2절에서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여기서 ”일깨워라“는 말은 현재형입니다. 즉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즉 그들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깊이 깨닫고 경각심을 가지라는 엄중한 명령의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믿는 자라도 미혹하려고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 기억하십시다. 형식적인 교회 생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면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보실 때 외형적인 신앙은 있었지만 행위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br /> <br /> 사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입으로 만 주여! 주여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앙 생활은 입과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조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신 것처럼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 하시도록 모셔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모셔들여 사는 성도들에게 나타는 2가지 특성이 있습니다.<br /> <br /> 첫째는 대 계명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마태복음 22장 37절 이하의 말씀을 잘 아시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br /> <br />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로 사는 것입니다. 아멘! 사랑은 관심입니다. 사랑은 삶의 의미와 초점을 그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 사명’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언제인가 재림하셔서 이 명령에 대한 우리들의 순종에 대해서 평가하실 것입니다.<br /> <br /> <br /> <br />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얻고, 가르치고 양육하여 세우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준비시켜서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키우는 일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이상의 ‘대 계명’과 ‘대 사명’을 기억하고 삶에 적용해 나가는 분들은 분명히 깨어 행함이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모여야 건강한 교회 비젼이 있는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뉴저지 임마누엘 선교 교회의 꿈이 무엇입니까?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이 어떤 칭찬을 해 주시기를 기대하십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사데 교회가 깨어나기 위해서 할 일은 무엇일까요?<br /> <br /> <br /> 2. 회개해야 합니다(3).<br />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들었는지‘라는 말씀은 어느 한 시점에 명확히 들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언제인가 과거에 구원의 복음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받았으며”라는 말씀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받아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지키어”라는 말씀은 현재 명령형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에 다시 한 번 순종하라는 것입니다.<br /> <br /> “회개하라”는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즉 확실한 회개를 하라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회개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교회 나오는 분들도 점차 그렇게되는 것 같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를 싫어했습니다. 세례 요한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래도 선지자들과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첫 메시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 하셨습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과 같은데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한번 깊이 우리를 살펴보십시다. 우리들이 어느 사이엔가 형식적이고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영혼 구원과 영적 성장의 욕구가 사라져버리지는 않았습니까? 회개 합시다. 어디서부터 그렇게 되었는가를 점검하십시다. 바쁘기 때문입니까? 명예와 부 때문입니까? 아니면 게으름 대문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보시기에 내가 회개할 부분은 어느 것이라고 하실까요?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도적같이 즉 불시에 심판하러 오십니다. 사실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모릅니다.<br /> <br /> 언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지 압니까? 3. 바른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약속은 무엇입니까? 사데 교회와 같은 분위기에 있는 교인들 가운데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데 에서는 그 의보기 더러운 자는 시민 명부에서 삭제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더럽다”는 것은 그 당시 이교도의 생활과 혼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순결성을 잃어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는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살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은 성도들을 말합니다.<br /> <br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성도들이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흰 옷이란 “하나님의 의” ‘생명“ ”승리“ ”영광“을 의미합니다. 이 흰 옷은 순전히 예수님의 피의 공로에 의해 신실한 성도들이 입을 것입니다. 더욱이 흰 옷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새 사람 된 표시입니다(엡 4:24). 흰 옷 입을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감사하며 살고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며 동행한 성도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 번째로 주신 약속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어 영생을 소유한 자는 그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죽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생명으로부터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믿으십니까?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영원한 보증이십니다(출 32:32). 주님의 다른 또 하나의 약속은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시인 한다”는 말은 법정에서 진술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법적 구속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그 천사들 앞에서 우리의 이름은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인정받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들이 시민권 선서를 할 때 우리의 이름을 법원 서기가 부르지 않습니까? 이것은 즉 미국이 나를 시민권자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얼마나 좋은 약속입니까? 누가 약속하셨습니까? 이 세상의 날이 짧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이 주님과 흰 옷을 입고 천국을 거닐 그 날이 있을 것입니다. 생명책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기록된 분들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시인할 영광스런 그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십니까?<br /> <br /> 그러시다면, 몇 가지 점검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지금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합니까? 만일에 아니라면 이 부활절에 영육이 깨어나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마땅히 회개 할 것은 없습니까? 만일에 아니라면 ---. 요한 1서 1장 9절을 기억하시지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대 사명과 대 계명을 머리로만 아니라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생활 가운데 순종하십니까?<br /> <br /> 내가 미워하는 원수진 사람은 없습니까? 돌아보아야 하는 데 무관심한 사람은 없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어느 사이에 희미해 진 분은 안계십니까? 만일에 계시다면 이 부활절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살아나는 가슴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세상의 삶에 유혹과 시험이 많습니다. 마귀의 궤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힘으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br /> <br /> <br />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받아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승리의 생활을 살다가 영광의 하늘나라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영원히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환난과 질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길 수 있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노라.”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임마누엘 교회에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br /> <br /> <br /> <br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4707<br>마태복음 16:21-28          나를 따르라!     <br />  <br /> 교회 설립10주년을 맞으신 산프란시스코 선교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서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여 말씀 축제를 가지시면서 많은 은혜를 받으신 교우 여러분들과 또한 주 안에서 교제하는 현 목사님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br />  <br />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 하늘 문 넓히 여시고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br />  <br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으로 가시면서 <strong>“</strong><strong>세상</strong> <strong>사람들이</strong> <strong>나를</strong> <strong>누구라고</strong> <strong>하느냐</strong><strong>?”</strong>라고 물으셨습니다.  <strong>“</strong><strong>어떤</strong> <strong>사람은</strong> <strong>세례</strong> <strong>요한</strong> <strong>이라고</strong> <strong>하고</strong><strong>, </strong><strong>예레미아냐</strong> <strong>예언자</strong> <strong>가운데</strong> <strong>한</strong> <strong>분이라</strong><strong>”</strong>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strong>“</strong><strong>그러면</strong> <strong>너희들은</strong> <strong>나를</strong> <strong>누구라고</strong> <strong>하느냐</strong><strong>?”</strong>  마태복음 16장 16절을 보면,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strong>“</strong><strong>주는</strong> <strong>그리스도시요</strong> <strong>살아계신</strong> <strong>하나님의아들입니다</strong><strong>.”</strong><br />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백을 들으시고 <strong>“</strong><strong>네가</strong> <strong>복이</strong> <strong>있다</strong><strong>.”</strong> 고 칭찬을 하셨습니다.<br />  <br /> 예수님을 <strong>“</strong><strong>그리스도</strong><strong>’</strong><strong>로</strong><strong>, ‘</strong><strong>살아계신</strong> <strong>하나님의</strong> <strong>아드님</strong><strong>”</strong>으로 믿는 고백 위에 주님께서 지난 10여년 동안 주님의 몸된 교회인 샌프란시스코 선교 감리교회를 섬기신 여러분들은 많은 복을 받으신 분들이십니다.<br /> 마태복음 16장 18절에 <strong>“</strong><strong>이</strong> <strong>반석</strong><strong>(</strong><strong>고백</strong><strong>)</strong><strong>위에다가</strong> <strong>내</strong> <strong>교회를</strong> <strong>세우겠다</strong><strong>. </strong><strong>죽음의</strong> <strong>권세가</strong> <strong>그것을</strong> <strong>이기지</strong> <strong>못할</strong> <strong>것이다</strong><strong>.”</strong>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선교 감리교회는 <strong>‘</strong><strong>주님이</strong> <strong>주인이신</strong> <strong>교회</strong><strong>’ </strong><strong>죽음의</strong> <strong>권세</strong><strong>, </strong><strong>사탄의</strong> <strong>권세가</strong> <strong>이</strong> <strong>교회를</strong> <strong>이기지</strong> <strong>못할</strong> <strong>것</strong><strong>’</strong>이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가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br />  <br /> 이미 읽으신 하나님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21절을 보면, 예수님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야 하며,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반드시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반드시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즉시 <strong>“</strong><strong>주님</strong><strong>, </strong><strong>안</strong> <strong>됩니다</strong><strong>. </strong><strong>절대로</strong> <strong>이런</strong> <strong>일이</strong> <strong>주님에게</strong> <strong>일어나서는</strong> <strong>안</strong> <strong>됩니다</strong><strong>.”</strong>라고 하면서 아주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로 돌아서셔서 <strong>“</strong><strong>사탄아</strong><strong>, </strong><strong>내</strong> <strong>뒤로</strong> <strong>물러가라</strong><strong>. </strong><strong>네가</strong> <strong>나를</strong> <strong>넘어지게</strong> <strong>하는</strong> <strong>자로다</strong><strong>”</strong>라고하셨습니다.  주님께 기쁨을 드렸고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엄한 질책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br />  <br />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strong>“</strong><strong>하나님의</strong> <strong>일을</strong> <strong>생각지</strong> <strong>아니하고</strong> <strong>사람의</strong> <strong>일만</strong> <strong>생각했기</strong> <strong>때문이라</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가셔서 기도할 때에 사탄이 세 번이나 집요하게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이 비록 예수님을 사랑해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메시야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원하는 정치적 메시야가 되라는 사탄의 유혹과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엄히 꾸짖으셨습니다.<br />  <br />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마음 속 깊이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부탁드린 말을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자기들이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마태 20:20-28). 예수님을 따른 댓가로 부귀영화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br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가가시는 내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누가 높으냐는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이런 자리 다툼으로 인하여 제자들 가운데 반목과 질시가  있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까지도 그랬습니다.<br />  <br /> 예수님은 제자들이 <strong>“</strong><strong>하나님의</strong> <strong>일을</strong> <strong>생각하지</strong> <strong>않고</strong><strong>, </strong><strong>사람의</strong> <strong>일만</strong> <strong>생각하는</strong> <strong>것</strong><strong>”</strong>을 꾸짖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신앙 고백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로 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내 즉시 인간의 옛 본성, 유대인의 고정 관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가득차 있었습니다.<br />  <br /> 혹시 우리 가운데, 주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있지만, 예수님으로 인하여 성공과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함인 분은 안 계십니까? 혹시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과 하신 일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라고 하는  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안들어 주신다고 강하게 항의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혹시 우리 가운데 누가 높으냐를 생각하는 분은 안계십니까?<br />  <br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믿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식으로 좇는 사람만이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물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는 것인가?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윈한 것인가? 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영광과 기쁘심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영광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인가?’ 를 물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역사에 걸림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br />  <br /> ‘걸림돌’이 아니라 주님이 쓰실 제자들 되는 일에 대하여, 24절 말씀에 <strong>“</strong><strong>누구든지</strong> <strong>나를</strong> <strong>따르려거든</strong><strong>”</strong>이라고 하시면서 다음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strong>“</strong><strong>자기를</strong> <strong>부인하라</strong><strong>. </strong><strong>자기</strong> <strong>십자가를</strong> <strong>져라</strong><strong>. </strong><strong>나를</strong> <strong>따르라</strong><strong>”</strong>고 명하셨습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위의 세 가지는 모두 <u>명령형</u>으로 기록하셨습니다.<br />  <br /> 예수님은 <strong>‘</strong><strong>누구나</strong><strong>’ </strong>주님을 믿어 구원받고 주님을 따라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없습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에서도 <strong>“</strong><strong>누구든지</strong> <strong>나를</strong> <strong>믿으면</strong><strong>”</strong>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탭복음 11장 28절에도 <strong>“</strong><strong>수고하고</strong> <strong>무거운</strong> <strong>짐을</strong> <strong>진</strong> <strong>사람은</strong> <strong>다</strong> <strong>내게로</strong> <strong>오라</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치뤄야 할 댓가가 있습니다.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br />  <br /> <u>첫째로</u><u>, </u><u>주님을</u> <u>따르려면</u> <strong><u>“</u></strong><strong><u>자기를</u></strong> <strong><u>부인하라</u></strong><strong><u>” </u></strong><u>하셨습니다</u><u>.</u><br />  <br />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자기의 죄를 온전히 회개하여 온전히 끊고  돌이켜서 새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strong>“</strong><strong>회개에</strong> <strong>합당한</strong> <strong>열매를</strong> <strong>맺으라</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 말씀을 보면 <strong>“</strong><strong>땅에</strong> <strong>있는</strong> <strong>지체를</strong> <strong>죽이라</strong><strong>. </strong><strong>곧</strong> <strong>음란과</strong> <strong>부정과</strong> <strong>사욕과</strong> <strong>탐심이니</strong> <strong>탐심은</strong> <strong>우상</strong> <strong>숭배니라</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br />  <br /> 또한, 꼭 죄는 아닐지라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안일, 오락, 무절제한 생활, 세속적인 언행과 습관등  우리를 주님의 성숙한 일꾼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거룩한 성도로 세워가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것들에서 떠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서는 말씀하시기를 <strong>“</strong><strong>악은</strong> <strong>모양이라도</strong> <strong>버리라</strong><strong>."</strong>고 경고하셨습니다. <strong>“</strong><strong>내가</strong> <strong>거룩하니</strong> <strong>너희도</strong> <strong>거룩하라</strong><strong>.” </strong>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3절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이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거나, 헐벗어야 한다는 말이<br />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뜻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거나 주님을 멀리하도록 하는 것들은 내어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br />  <br /> 그리고,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나 자신을 아예 부정해 버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이기적인 욕망, 세상적인 안전과 명예를 따라 살던 것을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활은 한 치도  용납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뜻을 앞세워서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아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br />  <br /> 여러분,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strong>“</strong><strong>내가</strong> <strong>그리스도와</strong> <strong>함께</strong> <strong>십자가에</strong> <strong>못</strong> <strong>박혔나니</strong> <strong>그런즉</strong> <strong>이제는</strong> <strong>내가</strong> <strong>사는</strong> <strong>것이</strong> <strong>아니요</strong><strong>, </strong><strong>오직</strong> <strong>내</strong> <strong>안에</strong> <strong>그리스도께서</strong> <strong>사시는</strong> <strong>것이라</strong><strong>. </strong><strong>이제</strong> <strong>내가</strong> <strong>육체</strong> <strong>가운데</strong> <strong>사는</strong> <strong>것은</strong> <strong>나를</strong> <strong>사랑하사</strong> <strong>나를</strong> <strong>위하여</strong> <strong>자기</strong> <strong>몸을</strong> <strong>버리신</strong> <strong>하나님의</strong> <strong>아들을</strong> <strong>믿는</strong> <strong>믿음</strong> <strong>안에서사는</strong> <strong>것이라</strong><strong>.”</strong><br />  <br /> 선한 일을 할 때에 나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에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해도 나를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감사해서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 된 신앙 생활은 자기를 부인함으로 인하여 자기는 죽고,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주장하시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strong>“</strong><strong>나는</strong> <strong>날마다</strong> <strong>죽는다</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자기는 온전히 죽고 그 대신에 그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br /> 교회에 나오시지만, 지은 죄를 모두 회개하여 주님이 주시는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신 분은 안 계십니까? 주님께 여러분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br /> 아직 자기 중심의 생활을 함으로 인하여. 주님의 역사에 쓰임 받지 못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이 시간에 주님께 나아와 여러분의 중심을 드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을 여러분의 구주이실 뿐만 아니라, 생활의 전 영역을 다스리실 왕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br />  <br /> <strong><u>둘째로</u></strong><strong><u>, “</u></strong><strong><u>자기</u></strong> <strong><u>십자가를</u></strong> <strong><u>지고</u></strong> <strong><u>따르라</u></strong><strong><u>.”</u></strong><strong><u>고</u></strong> <strong><u>하셨습니다</u></strong><strong><u>.</u></strong><br />  <br /> 누가 복음에 기록 된 같은 내용에는 <strong>“</strong><strong>날마다</strong><strong>”</strong>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br />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살 때에 <strong>“</strong><strong>날마다</strong><strong>”</strong> 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br />  <br /> 인간으로 이 땅 위에서 살면 자연히<strong>’</strong><strong>생</strong><strong>, </strong><strong>로</strong><strong>, </strong><strong>병</strong><strong>, </strong><strong>사</strong><strong>’</strong>에 따르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strong>‘</strong><strong>고통없는</strong> <strong>생명은</strong> <strong>없다</strong><strong>.’</strong>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삶에 따르는 고통이 있습니다. 건강의 어려움,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통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strong>“</strong><strong>너희가</strong> <strong>세상에서</strong> <strong>환난을</strong> <strong>당할</strong> <strong>것이나</strong> <strong>안심하라</strong><strong>”</strong>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대하는 것과 다른 입장에서 우리는 일상의 어려움들을 만나고 이겨냅니다. 사도 바울도 육신의 가시가 있으셨습니다. 즉 병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자로서 교만하지 않게 하여 열매를 맺는데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처럼 <strong>“</strong><strong>모든</strong> <strong>것이</strong> <strong>합력하여</strong> <strong>선</strong><strong>”</strong>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가 있으심을 믿으십시오.<br />  <br />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져야할 십자가도 있습니다. <br /> 악한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로서 바로 살려고 하면,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핍박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악은 선을 미워합니다. 불의는 의를 싫어합니다. 그러기에 디모데 후서 3장 12절에는 <strong>“</strong><strong>무릇</strong> <strong>그리스도</strong> <strong>예수</strong> <strong>안에서</strong> <strong>경건하게</strong> <strong>살고자</strong> <strong>하는</strong> <strong>자는</strong> <strong>핍박을</strong> <strong>받으리라</strong><strong>.”</strong>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가정에서 핍박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신앙 생활을 바로 하려하면 핍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strong>“</strong><strong>옛적</strong> <strong>선지자들고</strong> <strong>다</strong> <strong>핍박을</strong> <strong>받았다</strong><strong>”</strong>고 하시면서, 오히려 <strong>“</strong><strong>기뻐하고</strong> <strong>즐거워하라</strong> <strong>하늘에서</strong> <strong>너의</strong> <strong>상이</strong> <strong>크다</strong><strong>.”</strong>고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고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한 청년이 퇴근을 하고 힘 없이 집으로<br />      돌아왔습니다. 맥이 빠진 손자를 보신 할머니가 ?왜 그러느냐?”고<br />      물으시니 “제가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살려니 왕따를 당해요.”라고<br />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께서 박수를 치시면서 “네가 마침내 왕을<br />      따르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기뻐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br />  <br /> 또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br />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실 때에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사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 봉사하는 일, 고아와 과부, 가난한 이웃들과 노인, 병약한 분들과 길 잃은 청소년들, 환난을 당하는 분들을 위하여 봉사 할 때에 십자가가 따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가르칠 때에도 십자가가 따릅니다. 기쁨으로 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br /> 그렇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진실히 따르고자 할 때에 십자가를 집니다.마틴 루터는 <strong>“</strong><strong>십자가를</strong> <strong>지는</strong> <strong>것은</strong> <strong>내가</strong> <strong>과연</strong> <strong>참</strong> <strong>제자인지</strong><strong>, </strong><strong>혹은</strong> <strong>떡덩이나</strong> <strong>물고기를</strong> <strong>얻어</strong> <strong>먹으러</strong> <strong>다니는지</strong> <strong>그것을</strong> <strong>분별하는</strong> <strong>시금석이다</strong><strong>.”</strong>라고 했습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br /> 주님의 자녀로써 마땅히 져야할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까?<br /> 불평불만 하시며서 억지로 지시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을 따릅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피하십니까? <br /> 마태복음 10장 38절말씀을 <strong>보면</strong> <strong>“</strong><strong>자기</strong> <strong>십자가를</strong> <strong>지지</strong> <strong>않고</strong> <strong>나를</strong> <strong>따르지</strong> <strong>않는</strong> <strong>사람은</strong> <strong>내게</strong> <strong>적합하지</strong> <strong>않다</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strong>“</strong><strong>선을</strong> <strong>행하다가</strong> <strong>낙심하지</strong> <strong>말지니</strong> <strong>때가</strong> <strong>되면</strong> <strong>이루리라</strong><strong>”</strong>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시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이런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strong>“ </strong><strong>나는</strong> <strong>마음이</strong> <strong>온유하고</strong> <strong>겸손하니</strong> <strong>나의</strong> <strong>멍에를</strong> <strong>메고</strong> <strong>나에게</strong> <strong>배우라</strong><strong>, </strong><strong>그리하며</strong> <strong>너희는</strong> <strong>마음에</strong> <strong>쉼을</strong> <strong>얻을</strong> <strong>것이다</strong><strong>. </strong><strong>내</strong> <strong>멍에는</strong> <strong>편하고</strong><strong>, </strong><strong>내</strong> <strong>짐은</strong> <strong>가볍다</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힘 주시면 능히 지실 수 있는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br />  <br /> <strong><u>셋째는</u></strong><strong><u>, “</u></strong><strong><u>나를</u></strong> <strong><u>따라</u></strong> <strong><u>오라</u></strong><strong><u>.”</u></strong><strong><u>고</u></strong> <strong><u>명하셨습니다</u></strong>.<br />  <br /> 독일의 신학자로서 히틀러에게 처령된 디히트리히 본 훼퍼는 ‘나를 따르라’는 그의 책에서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은 <strong>“</strong><strong>값싼</strong> <strong>은혜에</strong> <strong>도취되어</strong> <strong>있다</strong><strong>.”</strong>고 경책하면서 우리는 <strong>“</strong><strong>값</strong> <strong>비싼</strong> <strong>은혜를</strong> <strong>받아야</strong> <strong>한다</strong><strong>.”</strong>고 강조했습니다. 주님을 따름에 오는 값비싼 댓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날마다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자랍니다.<br />  <br />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에 <strong>“</strong><strong>나를</strong> <strong>따라</strong> <strong>오라</strong><strong>”</strong>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부르셔서 <strong>“</strong><strong>나를</strong> <strong>따라</strong> <strong>오라</strong><strong>.”</strong>고 부르셨습니다.<br />  <br /> 그러면,우리들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삶일까요?<br /> 기차가 가려면 두 레일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두 가지를 꼭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br />  <br /> <u>첫째는</u><u>, </u><u>일상</u> <u>생활에서</u> <u>‘</u><u>대</u> <u>계명</u><u>’</u><u>을</u> <u>수행하는</u> <u>것입니다</u><u>. </u><br />  <br />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2장 37절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대 계명’을 주셨습니다. <strong>“</strong><strong>네</strong> <strong>마음을</strong> <strong>다하고</strong><strong>, </strong><strong>목숨을</strong> <strong>다하고</strong><strong>, </strong><strong>네</strong> <strong>뜻을</strong> <strong>다하여</strong><strong>, </strong><strong>하나님을</strong> <strong>사랑하라</strong><strong>”</strong>고 하셨고 <strong>이어서</strong> <strong>“</strong><strong>네</strong> <strong>이웃을</strong> <strong>네</strong> <strong>몸과</strong> <strong>같이</strong> <strong>사랑하라</strong><strong>.”</strong>고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실 생활에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이상과 같이 맺어 가면서 사는 것이 주님을 따라 사는 구체적인 삶입니다.<br />  <br /> 그런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 살고, 교인들끼리도 원수 맺고, 용서하지 않고, 시기질투를 하면서 교회에 오면,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려야 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했던 것을 깨달아 용서함을 받고 주 앞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틴 루터는시편 109편 7절에 <strong>“</strong><strong>그가</strong> <strong>하는</strong> <strong>기도는</strong> <strong>죄가</strong> <strong>되게</strong> <strong>하십시오</strong><strong>.”</strong>라는 말씀을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기도를 드리면 그것이 내게 죄로 변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한 친구가 그에게 말하기를 “그 사람은 내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힘주어 다짐하는 말을 듣고는 “그렇다면, 당신은 앞으로 죄를 한 번도 지어서는 안 된다.”라고 대합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늘 외우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strong>“</strong><strong>우리가</strong> <strong>우리에게</strong> <strong>죄</strong> <strong>지은자를</strong> <strong>사하여</strong> <strong>준</strong> <strong>것</strong> <strong>같이</strong> <strong>우리</strong> <strong>죄를</strong> <strong>사하여</strong> <strong>주옵소서</strong><strong>.”</strong>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남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나의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뜻도 됩니다.<br />  <br /> <u>둘째는</u><u>, ‘</u><u>대</u> <u>사명</u><u>’</u><u>이</u> <u>있습니다</u><u>. </u><br />  <br /> 그것은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명하신 마태복음 28장 19절의 말씀입니다.<br /> <strong>“</strong><strong>너희는</strong> <strong>가서</strong> <strong>모든</strong> <strong>족속으로</strong> <strong>제자를</strong> <strong>삼아</strong> <strong>아버지와</strong> <strong>아들과</strong> <strong>성령의</strong> <strong>이름으로</strong> <strong>세례를</strong> <strong>주고</strong><strong>, </strong><strong>내가</strong> <strong>너희에게</strong> <strong>분부한</strong> <strong>모든</strong> <strong>것을</strong> <strong>가르쳐</strong> <strong>지키게</strong> <strong>하라</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제자를 삼아 주님의 백성으로 세워가는 일을 하면서, 주님을 따라 날마다 사는 것이 대 사명입니다. 이 명령은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주신 명령입니다.<br />  <br /> 복음 전도자는 말과 사랑과 행실로 일상 가운데서 살면서 전도합니다. 대 사명을 실천하는 제자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는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을 보면 부활승천하시는 주님께서 <strong>“</strong><strong>내가</strong> <strong>너희와</strong> <strong>함께</strong> <strong>세상</strong> <strong>끝날</strong> <strong>까지</strong> <strong>항상</strong> <strong>함께</strong> <strong>있겠다</strong><strong>.”</strong>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strong>“</strong><strong>많은</strong> <strong>사람을</strong> <strong>옳은데로</strong> <strong>돌아오게</strong> <strong>한</strong> <strong>자는</strong> <strong>별과</strong> <strong>같이</strong> <strong>영원토록</strong> <strong>빛나리라</strong><strong>.”</strong>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이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br />  <br /> 누가복음 10장 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전도 명령을 받고 둘씩 짝지워 나갔던 일흔 두명이 돌아와서 기쁨으로 보고할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strong>“</strong><strong>사탄이</strong> <strong>하늘에서</strong> <strong>번갯불처럼</strong> <strong>떨어지는</strong> <strong>것을</strong> <strong>내가</strong> <strong>보았다</strong><strong>”</strong>고 말씀하시면서, <strong>“</strong><strong>귀신들이</strong> <strong>너희에게</strong> <strong>굴복한다고</strong> <strong>해서</strong> <strong>기뻐하지</strong> <strong>말고</strong><strong>, </strong><strong>너희</strong> <strong>이름이</strong> <strong>하늘에</strong> <strong>기록된</strong> <strong>것을</strong> <strong>기뻐하라</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는 일에 매진하며 따르는 성도들은 그 이름이 하늘 나라의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br />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어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의 신조를 받아들이거나 주일을 지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즉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예수님과 같이 행하고, 같이 살며,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주신 ‘대 계명’과 ‘대 사명’을 삶에서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만은 죽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그런데, 이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력의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 지셔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1장8 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strong>“</strong><strong>오직</strong> <strong>성령이</strong> <strong>너희에게</strong> <strong>임하시면</strong><strong>, </strong><strong>너희가</strong> <strong>권능을</strong> <strong>받고</strong><strong>, </strong><strong>온</strong> <strong>유대와</strong> <strong>사마리아와</strong> <strong>땅</strong> <strong>끝까지</strong> <strong>이르러</strong> <strong>내</strong> <strong>증인이</strong> <strong>되리라</strong><strong>.”</strong><br />  <br /> 샌프란시스코 선교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br /> 성령 충만한 신자들이 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부인할 수 있게 되고,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질 수 있고, 주님을 기쁘게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힘과 능으로는 이상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br />  <br /> 에베소서 5장 18절에 사도 바울은 당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strong>성령</strong> <strong>충만을</strong> <strong>받으라</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 날마다 계속 성령님으로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몇 가지 지침을 말씀드립니다.<br />  <br /> 먼저, 신앙 생활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를 막은 죄를 지었을 대에 즉시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들에서 즉시 떠나십시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십시오. 죄를 회개하시고 온전히 돌이키셔야 성령을 선물로 받으십니다.<br />  <br /> 하루 하루를 생명의 말씀과 기도 없이 그냥 그냥 지내는 분들은 새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사시면, 성령님으로 충만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루 를 시작하실 때에 ‘노 바이블, 노 브랙패스트, 노 비지네스’ 라는 결심을 가지고 시작하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 없이는 성령 충만이 지속되지 않습니다.<br />  <br />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헌신 하십시오. 순종은 기적을 여는 문입니다. 또한 주님이 기회 주실 때에 뒤로 미루지 마시고 온전히 헌신하십시오.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으시고 힘차게 사십시오. 이렇게 생활하시면서, 늘 성령 충만을 간구하십시오.<br />  <br /> 이렇게 될 때에야. 자신을 부인할 수 있고, 자기 십자가를 능히 질 수 있고, 찬송하면서 주님을 기쁘게 섬기면서 다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br />  <br /> (찬송가 360장 다 함께 부르기)<br />  <br /> 마태복음 16장 27절을 보면, 주님께서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strong>“</strong><strong>그</strong> <strong>때에</strong> <strong>각</strong> <strong>사람에게</strong><strong>, </strong><strong>그</strong> <strong>‘</strong><strong>행실대로</strong> <strong>갚아</strong> <strong>줄</strong> <strong>것</strong><strong>”</strong>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으실 줄로 압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3절 이하를 보면 <strong>“</strong><strong>금과</strong> <strong>은과</strong> <strong>보석과</strong> <strong>같이</strong> <strong>주님</strong> <strong>앞에</strong> <strong>나타날</strong> <strong>사람도</strong> <strong>있지만</strong><strong>, </strong><strong>어떤</strong> <strong>사람</strong> <strong>불</strong> <strong>속을</strong> <strong>헤치고</strong> <strong>나오듯</strong> <strong>겨우</strong> <strong>구원</strong> <strong>받는</strong> <strong>사람이</strong> <strong>있다</strong><strong>.”</strong>고 하셨습니다.<br />  <br />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성령님으로 충만한 해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아서 많은 열매를 가지고 주님 앞에 서시지 않으시겠습니까?<br />  <br /> 기도하시겠습니다.<br />  <br />  <br />  <br />  <br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영적 책임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4652<br>설교 본문 / 신명기 6:1-9     제목 /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영적 책임.<br />  <br /> 오늘은 세계적으로 지키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 결혼한 부부를 통하여 자녀를 주심은 문자 그대로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읽은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부모가 된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영적 책임과 모범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읍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에서, 부모된 사람은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라고 명하셨습니다.<br />  <br />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잠언 22장 6절 말씀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요즈음 세상적 지식, 과학적 지식을 자녀들에게 많이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중요하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면서 바로 사는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br />  <br />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를 드릴 때 마다 신명기 6장 1-9절을 읽었습니다. 네 살이나 다섯 살 정도의 나이에 암송시켜서 아침과 저녁에 암송하고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라고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원어에는 “들으라, 이스라엘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들으라”라는 말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들으라”라는 말을 히브리어로는 “쉐마” 라고 합니다. “쉐마”는 바로 신명기 6장 1-9절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br />  <br />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br />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1,2절에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br />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br />  <br /> 1절은 부모들이 “지켜야 할 명령과 규례와 법도로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행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들어가서 살 땅은 이방 종교, 도덕적 부패 그리고 색 다른 문화권이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1세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실 제사장 나라를 이룰 후손들을 키워할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키우기를 원하셨습니다.<br />  <br />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의 대상은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물론 아들과 손자들이 포함된 것입니다. 평생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칙과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2절 하반절을 보면, 그렇게 하면 “네 날이 장구하리라”라고 약속 하셨습니다.<br />  <br /> 우리는 고국과는 매우 다른 문화와 풍속을 갖고 사는 미국에 이민왔습니다. 이민 온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자녀 교육 문제를 듭니다. 물론 지식과 과학에 앞서간 미국 교육이 자녀들의 앞 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모두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해입니다. 미국의 문화가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이 아닌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통하여 지식을 바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녀들이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평생에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들을 순종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보면서 배우기 때문입니다.<br />  <br /> 우리들의 자녀들이 이 미국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후손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부모되신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다.<br />  <br /> 둘재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3절에 “듣고 삼가 성심껏 행하라”고 명하셨습니다.<br />  <br />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심껐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까?<br />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에게 주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입장에서 보면, 특히 부모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br />  <br />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배우기 위해서는, 행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건성으로나, 형식적으로 순종하지 말고 성심껏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행동의 진정성을 언젠가는 알게 됩니다.<br />  <br /> 에베소서 6장 3절에도 부모를 공경한 자녀들에게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는 약속의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형식적인 신앙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실제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써 지켜야 할 명령과 규례와 법도들에 순종해서 사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서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니 나도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위의 성경 말씀에서도 나오지만, 본문 말씀에서도 “내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이 번성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br />  <br /> 우리는 이 땅에 이민 와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후손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자손들이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하여 가장 먼저 사용하실 분들이 누구입니까? 부모된 우리들입니다. 부모된 우리들이 자녀들이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누리며 이 땅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후손이 되는 일에<br /> 우리 모두가 쓰임 받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성심껏 행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br />  <br />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 4-9절에는 어떻게 자녀들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의 말씀이 있습니다.<br />  <br /> 5,6절 말씀을 보면 조금 전에 우리가 묵상한 말씀과 같이 부모님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매우 구체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br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내가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한 만남이나 기도를 게을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br />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br />  <br /> 우리 자녀들에 대한 미래의 문제에 우리 부모들이 정말로 기초를 잘 놓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서는 말하기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경고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br />  <br /> 7,8절 말씀을 보면, 모든 기회를 다 사용하여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br /> 집에서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즉 어디서나 언제나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8,9절 말씀을 보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br />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며,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br />  <br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얻은 후에 그 민족의 미래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부모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br />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12 지파에게 분배한 후에, 여호수아가 죽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죽은 후에 그들은 이방 민족에게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br />  <br />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이유는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영적 책임을 잃고, 하나님 사랑하고 경외하기를 떠난 부모들에게 큰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br />  <br /> 교육학자들은 부모가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 신체적 성숙은 물론 다음의 네 가지를 골고루 자라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적 성숙, 정서적 성숙, 사회적 성숙 그리고 도덕적 성숙입니다. 저는 이상의 것들 위에 영적 성숙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br />  <br />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위대한 부모가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br />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에게는 한나라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요한 웨슬레와 촬스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레는 많은 자녀들을 두었지마, 자녀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기도를 가르쳤고, 성경 말씀을 암송하도록 가르쳤습니다.<br /> 북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서 복음을 전한 교부 오리겐 같은 분은 너 댓살 부터 시편을 암송했다고 합니다. 제가 유명한 찬송가 작사가들의 전기를 보니,  어린 시절에 신앙의 감화를 받고, 성경을 읽고 암송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br /> 인생에 여러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책임은 하나님이 맡기신 생명의 선물인 자녀들에 대한 종교적인 책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br /> 이 책임을 잘 감당하면, 다른 면이 좀 부족해도 보충할 길이 있습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br /> 어떤 부모가 되시겠습니까?<br /> 자녀들이 하나님이 쓰실 일꾼이 되도록 성장하는 일을 위하여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시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명령대로,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서<br /> 자녀들이 본을 받고 자라나는 일들이 여러분과 저에게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br />에벤에셀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3943<br><strong>주후</strong><strong> 2013</strong><strong>년</strong><strong> 1</strong><strong>월</strong><strong> 13</strong><strong>일</strong><strong>(</strong><strong>주일</strong><strong>)     </strong><strong>에벤에셀</strong> 교회<br />  <br />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2절)<br />  <br /> <strong>I.</strong> <strong>들어</strong> <strong>가는</strong> <strong>말</strong><strong>.</strong><br />  <br /> 여러분과 제가 교독한 말씀 가운데서 12절 말씀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br /> 2013년을 맞이하신 에벤에셀 교회 여러분들을 요한 3서 2절에 있는 말씀으로 축복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 같이 여러분의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br />  <br /> 제가 에벤에셀 교회 설립 예배를 드릴 때에 참석했었습니다.  위성민 선생님 사업장에서 제 차를 손보러 갔을 때에 본 교회 개척에 관한 신문 광고의 문안을 가지고 위 선생님과 김환중 목사님이 말씀을 하실 때에 들었습니다. 일이 다 끝나서 가려고 하는데, 위 선생님 사모님께서 “개척 예배 때에 오실 수 있으시죠?”라고 물으셨습니다. “글쎄요”라고 답을 드렸습니다. 괜히 간다고 답을 하고나서 못 참석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저도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에벤에셀 교회 설립 예배에 참석하는 기쁨을 가졌었습니다. 그 때에, 감독님께서 교회 개척하시는 분들을 앞으로 나오시게 했을 때에 지금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몇 분이 앞에 나가셨습니다. 위 선생님도 멋적어 하시면서 나오셔서 서 계섰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나님께서 채 일년도 안 된 에벤에셀 교회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을 보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을 주신 하나님과 수고하신 여러분들을 치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을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는 것 처럼, 겨자씨가 비록 작지만 싹이나고 자라면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들이고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는 큰 나무가 되는 것 처럼, 에벤에셀 교회가 성장하여 많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간정히 바랍니다.<br />  <br /> 김환중 목사님께서 출타하시면서 말씀을 증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에벤에셀’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넓히 여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br />  <br /> 하나님께서 사백 여년간 에집트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하여 해방시키셨습니다. 사십 여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선택 된 민족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들을 시내 산에서 선포하셨습니다. 계명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이 십 계명입니다. 출애급기 20장을 보면 십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중요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잊어서는 안 되는 계명이기에 하나님께서 손수 쓰셔서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얼마 전에, 모압 땅에서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에게도 똑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전해 주었습니다.<br />  <br />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면서 점차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도 잊어 버리고, 신앙심도 식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도 식어 갔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백성들에게 찾아온 것은 번영과 부 그리고 안전이 아닌 압제와 가난과 불안의 먹구름이었습니다.<br />  <br />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십계명의 제 일 계명은, “내 앞에(즉,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입니다. 제 이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에 물 속에 있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 그 땅 사람들이나 그들의 주위에 사는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알이나 아스다롯이 그 당시의 대표적인 우상들이었습니다. 바알은 천둥과 비를 내리는 풍요의 신입니다. 바알이라는 뜻은 ‘주’ 또는 ‘주인’ ‘소유자’라는 뜻을 가진 남자 신입니다. 사람들은 남자의 형상을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아스다롯은 여신입니다. 풍요와 사랑과 전쟁의 신입니다. 여인상을 만들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인격적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신을 섬기는 곳에는 부도덕한 일들이 하나의 예배 행위로 인정 받는 패역한 종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 하셨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동기가 물질적 풍요, 잘못된 쾌락을 정당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자연히 사람들이 이기주의자가 되어 하나님 사랑은커녕 이웃 사랑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했는지는 사사기를 읽어 보신 분들은 이미 잘 아실 줄로 압니다. 구약 성경의 암흑기가 사사시대입니다. 그들은 이방 민족의 압제 아래 들어갔고 신음하면서 나날을 연명을 하게 되었습니다.<br />  <br />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사사 즉 재판관들을 세우셔서 외적들의 횡포로부터 그들을 건져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고통 당하면 사사 즉 재판관을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베풀어 구원해 주시면 잠시 감사하다가 조금 지나면 또 죄를 짖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또 외적에게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구원해 주십니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일곱 번이나 한 것이 사사기의 내용입니다.<br />  <br />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웃니엘, 삼갈, 드로라, 기드온 등등의 사사들이 나오는데, 사사들 가운데 제일 마지막 사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유명한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로 얻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사장 엘리 및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엘리의 아들들이 다 전사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죽었습니다. 법궤도 빼앗겼다가 성막이 아닌 기럇여아림이라는 마을의 아미나답이라는 사람의 개인 집에 있었습니다. 이런 민족적 비극아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십여 년 간을 불레셋의 압제 아래에 있었습니다.<br />  <br /> 이런 상황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에벤에셀’이라는 역사적인 기념비를 울 수 있었을까요?<br />  <br /> II. 중심 되는 말<br />  <br /> <u>첯째로</u><u>, </u><u>그들에게</u> <u>마음의</u> <u>변화가</u> <u>일어났기</u> <u>때문입니다</u><u>.</u><br />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십 여년 동안 불레셋의 압제 아래 있고, 법궤도 바로 모시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에 그들이 “여호와를 사모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원래 뜻은 그들이 “슬퍼하면서, 또는 울부짖으면서 하나님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오랫 동안 고통가운데 있으면서 슬퍼졌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던 행복은 오간 곳 없어진 것을 보고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슬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얻으려던 번영은 오갖 곳 없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된 것을 보고 비록 늦기는 하였지만, 울부짖으면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br />  <br /> 그렇습니다. 그들이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려면 죄에 대하여 통회하고 아파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일생에 ‘에벤에셀’ 즉 “하나님이 여기까지 함께 하셨다.”는 간증이 나오는 성도가 되시려면, 지금까지 하나님을 떠나 자행자지 했던 죄의 결과들에 대하여 비통해 하며 아파하는 중심의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을 우리들의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우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에, 주님을 믿지 않고 죄의 삶을 사신 분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삶에서 하나님 없이 이 세상의 물질, 향락, 육신의 자랑을 따르면서 사신 결과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시는 분이 계시면, 이 시간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경고하실 때에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경고하셨습니다.<br />  <br /> 기억하십시오. 자기의 잘못을 뉘우쳐 돌이키는 사람들이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섬기시는 에벤에셀 교회는 이런 분들이 모여서 역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빛낼 에벤에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br />  <br /> <u>둘째로</u><u>, </u><u>이스라엘</u> <u>백성들은</u> <u>자신들의</u> <u>죄와</u> <u>고통에</u> <u>대하여</u> <u>울부짖을</u> <u>뿐만</u> <u>아니라</u><u>, </u><u>애지중지</u> <u>섬기던</u> <u>우상들을</u> <u>아주</u> <u>없애</u> <u>버렸습니다</u><u>!  </u><br />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선지자요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한 말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 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 섬기라.”고 했습니다.<br />  <br /> 물론 우리들이 죄와 고통에 대하여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이귀합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되는 것을 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를 죄 짖게 하는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김유신 장군이 왜 자기가 사랑하는 말의 목을 베어 버린 이유에 대하여 제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줄로 압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눈이 너로 죄를 짖게 하거든 빼어 버리라. 네 손이 범죄하게 하거든 잘라 버리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말씀입니다.<br />  <br />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떠나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 앞으로 돌아와서 살 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사무엘이 약속했는지 아십니까?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라고 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가 ‘에벤에셀’의 기념비, 즉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간증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헛된 우상과 거짓을 버리고 돌이켜야 합니다.<br />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나 에베소 같은 도시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은 그들이 점을 치던 서적이나 우상을 섬기는데 썼던 것들을 다 불태워 버렸습니다.<br /> 고린도 후허 5장 17절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1서 1장 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죄에 대하여 슬퍼하고 통회 자복할 뿐만 아니라 우상을 버리고 주님의 품으로 와야 하나님이 자녀가 되어 새 사람 새 생활을 하게 됩니다.<br />  <br />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정말로 다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듣고서, 그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스다롯 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만을 섬겼습니다.” 할렐루야!  <br /> 우리들 가운데에, 아직도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 여러분들을 얽어매는 것들을 가차없이 던져 버리고, 그런 습관들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삶으로 돌아 오시기를 간절이 바랍니다. 이럴 때에야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여기 계시는 한분 한분과 가정과 본 교회가 세우게 될 것입니다.<br /> 그렇게 믿으십니까? 그러면 지금, 오늘 주님 앞에서 약속하시고 버리십시오. 던져 깨처 버리십시오. 회개라는 말은일 순간의 후회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을 온전히 바른 길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br /> 로마서 12장 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u>셋째로</u><u>, </u><u>그들은</u> <u>각자가</u> <u>우상숭배를</u> <u>떠나서</u> <u>하나님</u> <u>앞으로</u> <u>돌아온</u> <u>사실을</u> <u>공적으로</u> <u>입증했습니다</u><u>.</u> 예수님을 마음 속으로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라는 곳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를 다 모여서 회개하는 일종의 민족적 회개운동이요, 정결 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씻는 정결을 상징하는 물을 제물로 하나님 앞에 붓고 , 종일 금식하면서 “우리가 주님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민족 앞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br /> 그렇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워 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깨어 기도하시를 항상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함께 모였을 때에 “서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공개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면서, 새 결심을 한 새 사람됨을 간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br /> 요사이 말로하면 함께 모일 수 있는 교회에 함께 다 모여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지은 죄를 통회 자복하여 하나님 앞에서 온 공동체가 정결함과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 대부흥의 역사는 1097년 장대현 교회에 모인 성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큰 은혜를 받아서 각자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br /> 성도 여러분!  개인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교회와 국가를 위하여 특별히 모일 때에 힘써 모여 함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럴 때에 ‘에벤에셀’ 곧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함께 하심에 대한 기념비를 세우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br />  <br /> 그러나, 에벤에셀 즉 하나님이 여기까지 함께 하셨다는 기념비를 세우는 일에 한 가지가 단계가 더 있음을 기억하십시오.<br />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온전히 회개 하고자 할 때에 악한 사탄의 집요한 공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류 구원을 위하여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고자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로 나가셨을 때에, 사탄이 세 번이나 집요하게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탄이 시험할 때마다 “기록되었으되” 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br />  <br />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려고 할 때에, 새 사람, 새 생활을 하고자 할 때에 악한 사탄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너는 결코 악에서 떠날 수 없다고 비웃습니다.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회개의 기도를 드릴 때에 불레셋 통치자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올라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우 두려웠습니다. 일시에 다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의 먹구름이 그들을 뒤덮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br />  <br />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웠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서도 그들의 믿음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무엘에게 부탁했습니다. “ 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 주시도록,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물론 백성들도 합심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br />  <br />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주님께 온전한 번제물로 비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온전히 생명을 다 드려 헌신하겠다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한 헌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도망가기 쉽습니다.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그렇게 하지 맙시다.<br /> 비록 두렵더라도.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겠다는 말씀의 약속을 잊지 마시십시오. 합심하여 기도하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다” 라는 결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시고 온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배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교인, 가정이 모여 함께 거룩한 산 제사의예배를 드릴 때에 ‘에벤에셀’ 즉 하나님이 여기까지 함께 하셨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임재하셔서 은혜 주시고 계신다는 간증을 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br />  <br /> ‘에벤에셀’교회 성도 여러분!<br /> 10절과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고 있을 때에, 불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하나님께서 천둥소리를 일으키셔서 불레셋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여 패주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정결해 지고,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군대가 되어서 강력한 불레셋 군대를 뒤쫓으면서 무찔렀습니다.<br />  <br /> 이렇게 승전한 후에,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 하나를 가져다가 놓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지었습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br />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죄악 된 생활을 깊이 뉘우치고 울부짖으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br />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섬겼던 우상들을 다 버리고 온전히 주님만을 섬겼습니다.<br />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모여서 “우리가 주님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민족적 회개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물을 하나님 앞에 붓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br />  <br /> 이런 사람들이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br /> 뿐만 아니라, 대적들이 처들어 왔을 때에 “우리 주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성들, 함께 기도하며 번제의 제물처럼 자기는 온전히 죽어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갖고 위기에 대처한 백성들을 통하여 에벤에셀의 기념비, 곧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감사의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사람으로 사용하여 주셨습니다.<br />  <br /> 선지자 사무엘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비를 세우셨을 까요?<br /> 첫째로,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세웠을 것입니다. 시편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구절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다 죽을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세상의 종되어 하나님 이외의 다른 순간적인 것들에서 만족을 얻고자 했던 죄인들입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통회 자복하게 하시고,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분들은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시는 분들입니다.<br />  <br /> 둘째로, 승리의 기쁨을 기억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무엘 상 4장 1절을 보면 이 기념비를 세운 곳이 바로 20년 전에 불레셋 군대에게 크게 패해서 많은 사람이 죽고, 법궤도 빼앗기고, 불레셋의 종살이를 하게 된 치욕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에벤에셀’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온전히 회개하고 기도하고 헌신하면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가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실패가 변하여 승리가 될 것입니다. 눈물이 변하여 환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십니까?<br /> 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님의 손이 불레셋 사람을 막아 주셨습니다. 15절 말씀에는 빼앗긴 여러 성읍을 찾아 왔습니다. 평화가 계속되었습니다.<br />  <br /> 셋째로, 소망의 기념비일 것입니다.<br />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하니님께서, 여기까지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장래에도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 끝 날까지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앞 날에서 영적 싸움이 있을 것입니다. 시험과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질병과 환난도 있을 것입니다. 떼로는 태산준령이 가로 막힌 것 같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전진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물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꼿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br />  <br /> 우리가 온전히 회개하고 기도로 뭉치고, 온전히 헌신하여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할 때에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승리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다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br />  <br /> III. 맺는 말<br />  <br />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시는 ‘에벤에셀’교회 성도 여러분!<br /> 온전히 회개하셨습니까? 이전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피조물이되셨습니까?<br /> 아니시면, 오늘 이 이 시간 주님께 나오십시오. 죄 용서를 구하십시오.<br />  <br />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함께 모여 기도하고 모든 우상들을 아주 버려 성결함을 회복하셨습니까?<br /> 아니면, 이 시간 주님 앞에서 모든 우상을 떨쳐 버리십시오. 돌이키십시오.<br /> 하나님께 이 세상의 풍조를 본 받지 않고, 우리 모두가 산 제물이 되어 온전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사십니까? 아니시면, 오늘 이 시간 온전히 회개하시고 마음과 뜯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께 온 몸과 마음을 드려 헌신하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드리십시오.<br />  <br /> 오늘 여러분의 생애에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시는 날이 되기시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교회에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는 주일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br />  <br />  <br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3632<br>­­설교 본문 / 마태복음 6:5-15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br />  <br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br />  <br /> 1. 들어가는 말<br />  <br />                 신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경남 진주에서 신학을 공부하러 오신 급우가 있었습니다. 언느 날 고향에서 그 전도사님을 좋아하는 따님을 두신 연세 드신 여 집사님이 결혼 문제를 상의 하시기 위해서 올리오셨습니다. 결론을 말씀 드리면 좋은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 쓸쓸히 돌아가시는 집사닙이 제게 하시는 말씀이 결혼이 이루어 지도록 하루에 200번씩 ‘주 기도’를 외었는데 응답이 안되었다고 난감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200번씩이라니요? 얼마나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한것입이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드린 것입니까? 그런데, 그 때 저의 마음에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결혼 성사를 위하여 주문처럼 외우라고 주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br />  <br />                 우리들은 기도의 중요성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승리의 신앙 생활을 하신 선배들과 성자들의 기도 생활에 대하여 들을 때 마다 감동도 많이 받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기도생활을 돌아보며 많은 갈등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긴 시간 기도해야 하는가? 어떤 태도로, 어떤 내용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br />  <br />                 누가복음 11장을 2절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떄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고 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도 기도에 대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기대했습니다.<br />                <br />                 우리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무었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스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이 두 가지에 대하여 명백한 가르침을 주십니다.<br />  <br />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를 윤 명호 모사님이 귀국하실 때까지, 두 번의 주일과 두 본의 수요일 설교를 통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br />  <br /> 2. 중심 되는 말.<br />  <br />                 이미 읽으신 본문 가운데서 5~8절을 보명, 기도할 때에 특별히 주의 해야 할 것에 대해서 경고해 주셨습니다.<br />  <br />                 주님은 본문 5절에서, 기도할 때 위선자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바리새 인들은 자기들이 기도 많이 한 경험한 자임을 나타내고자 애썼습니다. 예스님께서는 8절에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기도응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때로는 우리의 경건한 삶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쉬운 면이 있습니다. 모인 사람들을 의식하며 미사여구와 긴 시간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br />  <br />                 주님은 6절에서 기도할 때 남이 볼 수 없는 “골방어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여 나아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사람들이 이목을 피해서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공중 기도가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기도하는 태도에 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나타내려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께 정직하게 아뢰라는 것입니다.<br />  <br />                 주님은 본문 7절에서, “이방 사람들 처럼 중언 부언 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이방종교에서는 주문을 계속 외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기진 맥진 해져서 넘어지면 신적 경험을 한 것으로 차각했습니다. 자신의 고백이나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냥 말의 연속일 뿐인 것이었습니다. 간단한 문장을 긴 시각 반복해서 외우고 또 외운다고 해서 경건한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중언 부언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br />  <br />                 주님은 기도에 주의 할 것만을 날쓴하시지 않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가장 모범적인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기도를 우리가 종종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또는 줄여서 ‘주 기도’라고 합니다.<br />                <br />                 이 기도문은 간단합니다. 외우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깊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크게 구분하면,<br />  <br />                 먼저, 하나님께 대한 간구가 있습니다.<br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희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하나님의 뜻).<br />  <br />                 이 세가지는 하나님께 대한 간구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뜻 이루어 지도록 먼저 기도합니까?<br />                 우리들이 기도할 때 먼저 내 중심, 내 필요를 먼저 구하기에 급급 하지는 않습니까? 나의 부귀 영화, 성공, 내 가정,  내 사업 등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드리기 쉽습니다. 좀더 나아가면, 교회와 선교사, 국가 정도입니다.<br />  <br />                 기억합시다! 먼저 구할 것 은 나의 필요 나의 소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필요보다 먼저 구하여야 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여 주시겠다.”고 우리의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br />  <br />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먼저 소원하는 것입니다. 기도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도록 그분에게 나의 삶을 열어 드리는 것입니다.<br />  <br />                 다음으로, 인간 생활에 실제로 필요한 간구 세가지가 있습니다. ‘일용한 양식을 위하여 기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현제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죄 사함 받기위해서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기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원 받기를 위해서 기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디한 기도입니다. 성령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br />                <br />                 이 시간에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첫 마디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는 부분을 가지고 묵상하고자 합니다.<br />  <br />                 이 부분을 보면,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하나님은 하을에 계시는 아버지이시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br />  <br />  <br /> 1)  하나님은 “아버지” 이십니다.<br />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br />  <br />                 -보편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창조자이시기에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십니다. 이사야 64장 8절에는 “주는 우리 아버지이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응 토기 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은 것이니이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br />  <br /> -그러나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br />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응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서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를 온전히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에 가르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말씀은 이상의 두 가지 가운데 어느 부류의 사람이 고백하는 말이겠습니까?<br />  <br />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에는 틀림 없지만, 모든 인간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용서함을 받은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드리응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br />  <br />                 또한, 하나님을 ‘아보지’라고 부르라고 하신 말씀의 배후에는,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의 성품을 가지신 분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흔히 하나님을 먼저 계신 어떤 지적인 절대자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 정, 의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먼데서 우리를 관찰한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처럼 우리를 훈계하시기도 하시고 우리늬 약함을 도우시기도 하시며, 우리의 호소를 들으시는 살아계신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와 교제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03편 8절 이하를 보면,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함이 풍부 하시도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주님께 나온 죄인들을 물이치지 않으셨습니다. 실패한자, 약한 자, 가난한 자를 물리치지 않으시는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br />  <br />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br />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할 때 양을 예비해 두시는 하나님니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산상 수훈인 마태복음 7장 25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나느 새를 보라, 들의 피는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이상의 사실을 살펴 볼 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의 자녀들을 만나 주시며,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접하시며, 필요를 채워 주시는 아버지 같으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br />  <br />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도와 주시고 인도하시고 복 주실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건강이 어러운 성도들도 사랑하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할렐루야!<br />  <br />  <br /> 2)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br />                 본문에서 ‘하늘’이라는 단어가 본문 원어에서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새가 날고 비행기가 나는 공중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해와 달과 은하계가 있는 하늘이 있습니다. 그이로 고린도 후서 12장 2절을 보면 그 하늘을 넘어서에 있는 ‘삼층천’에 대하여 기록되오 있습니다.<br />  <br />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하늘 어디에 가만히 앉아계시는 하나님을 알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시간과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선 것입니다.<br />  <br />                 미국과 소련이 우주선 경쟁을 할 때 소련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귀환 한 후에 “하늘에 올라가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안으로 확인하려는 어리석은짓입니다.<br />  <br />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말씀의 하나님의 존엄성과 초월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계신 분이십니다.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내 숨결보다 가까이 계십니다.<br />  <br />                 인간적인 아버지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아보지가 세상을 떠날 날이 있습니다. 힘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버지는 지혜와 권능과 사랑이 완전 하십니다. 10계명의 다섯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가 아닙니까? 성경은 인간적인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을 높이고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이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br />  <br /> 3)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br />                 하나님은 아버지니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고, 특별히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주기도문에 ‘우리’라는 대명사가 6번 나옵니다. 이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만이 아니라 믿는 모든 성도들이 다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라는 것입니다.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부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지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피부의 희고 검음을 막론하고 다 우리가 아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 기도는 이기적인 나 만을 위하여 기도하고자 하는 생각이 끼어 들 틈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에 누군가를 포함시켜야 함을 봅니다.<br />  <br />                 그러면, 이 기도를 드리는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었이겠습니까?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나누고 섬기는 사랑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애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해야 세상사람들이 너희를 나의 제자인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기도를 하면서도 서로 시기 질투를 하고 분쟁하고 싸우며 하나님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br />  <br />                 ‘가화 만사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이 서로 화옥하면 안사를 이루게 되는 것처러럼, 제가 젊은 시절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교회 만사성’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교회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 주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들의 가정이, 동산 교회와 이 땅 위의 교회들이  한 아버지를 모신 거룩한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는 역사가 불일 듯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br />  <br />                 기억하십시다! 주님은 너희들이 기도할 때 이미 받은 줄로 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 아버지” 라고 진정으로 고백 할 수있는 신앙이라면 우리들의 기도는 “이미 응답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님은 “네가 구한 것을 받을것” 이라고도 약속하셨습니다.<br />  <br /> 3. 맺는 말<br />                 여러분 가운데 영적, 육적, 사회적,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갖고 계신 분운 안계십니까?<br />  <br />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실 때, 신앙의 눈을 높이 드십시오. 이 우주는 하나님의 우주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맙시다! 낙심하지 맙시다! 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 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믈로 거저 주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우리들의 기도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머저 구했습니까? 아니면 나의 것, 나의 필요들을 먼저 구하지는 않았습니까? 다윗의 시편을 보면 그가 위기에 있어도, 곤고해도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앞세웠습니다. 전쟁이 있어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구했습니다. 주기도문을 할 때처럼, 우리들의 기도생활이 그렇기를 바랍니다.<br />  <br /> 우리가 연악해도, 부족해도, 때로는 잘못이 있을 지라도 우리를 끊으시지 않느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십시다. 하나님은 집을 나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모든 것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를 뛰어가셔서 얼싸 안으시며 영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운데 혹시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 멀리간 분은 안계십니까? 하늘 아버지, 전능하신 아버지,우리 아버지께 이 시간 돌아 오시지 않으시겠습니까?<br />  <br /> 여러분께 묻습니다.<br />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주의 고아가 아닌가 하는 거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나의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까? 아직도 이 문제에 확신이 없는 분에게 이 시간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크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br /> <br />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반항하며 하나님 없이 살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온전히<br />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여 내 영혼과 몸을 주님께 드릴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br />  <br /> 주님을 알지만 멀리 세상으로 가셨던 분들이 없습니까? 혹시 주님의 자녀가 되지 않으신 채 오른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은 안계십니까?<br />  <br />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아버지 품에 안기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뒤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5분 후의 우리를 알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가도하겠습니다.<br />주님의 부활, 우리의 변화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3593<br> <br /> 현대에 정신적 질환이 많습니다. 특히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메이요 크리닉 연구팀은 최근 우울증 증상을 치료하는 볍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br />  <br /> <ul> <li> 신체 활동을 왕성히 하라.</li> <li> 잘 먹어라(특히 콩과 야채를 많이 먹어라.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라. 참치같이 찬 물에서 나는 생선을 먹어라)</li> <li> 충분한 수면을 취하라(하루 8시간 정도를 자라)</li> <li> 스트레스를 조절하라(휴식이 필요하면, 하루가 됐건 일주일이 됐건 여행을 떠나라)</li> <li> 살람들과의 대인 관계를 잘 유지하라(사람들에게 주는 습관을 들이며 인간 관계를 깰 수 있는 건강하지 못한 부정적인 관계를 피하라)</li> </ul>  <br /> 그 러나 이상의 제안이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따를 만한 생활 환경과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이 심화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상의 것들이 우울 증세의 근본을 해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신경 쇠약에 걸릴 것 같습니다.<br />  <br /> 이 세상에서 알려진 탁월한 연구팀의 제안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적용한다면, 온갖 웃음을 자아낼 제인들이 아닐가합니다. 3년간 따라 다녔던 주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레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의 정서적 불안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br />  <br /> <ul> <li> 그들이 갖고 있는 주님에 대한 죄책감이 얼마나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을까요?</li> <li> 그 들에게는 죽음의 덫이 언제 덮칠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은 조금 전에 읽으신 말씀 가운데 21절 말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모두 문을 닫아 거는 것”이 그들이 안전을 보장할 수 잇는 최상의 방법이었습니다.</li> </ul>  <br /> 부활하신 주님은 공포감, 방향을 상실한 절망감, 주님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에 처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계실 때에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셨던 주님은 부활 하신 후에도 한결같으셨습니다.<br />  <br />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찾아 오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br />  <br /> 첫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이 변화되기 위하여 찾아 오셨습니다.<br />  <br /> 제자들이 처한 외부적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냥 머물고 있는 그들에게는 체포와 고문과 죽음의 공포가 있었을 것입니다.<br />  <br /> 제자들의 내적 마음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br /> 주님이 죽으심으로 인하여, 그들이 걸었던 모든 기대들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부활에 대한 불신,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짖누루고 있었을 것입니다.<br />  <br /> 이 런 상태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과 불신을 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슬픔으로 가득찬 그들에게 참 기쁨을, 불신에 찬 그들에게 참 확신을, 불안에 떠는 그들에게 참 평안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br />  <br /> 마음은 우리들의 지성, 감정, 의지를 포함안 총체적 인격이 담긴 곳입니다. 모든 동기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평안’으로 가득치고 넘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보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처난다.”고 했습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br /> 우리드이 처한 이민 생활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온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도 산산히 부서져 버린지가 오래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br /> 그 렇더라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제자들처럼, 믿기는 믿어도 연약한 상태에 있어도, 절망할지라도, 비록 낙심과 불안 가운데 있어도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 원하셔서 지금도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즉 어떤 상활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br />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는 역사적 사실이 나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br /> 주님은 과거 이천 여년 전에 부활하신 분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계셔서 나의 삶의 중심에 오셔서 ‘참 평안’을 주심을 경험하고, 기뻐하는 신자가 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br />  <br />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 마음의 번민과 절망과 한숨 가운데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들의 굳게 닫힌 마음, 어두운 마음을 뚫고 우리 중싱에 오셔서 희망과 용기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br />  <br />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더 나아가서 우리들이 변화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변화일까요?<br />  <br /> 둘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삶의 목적이 분명하게 변하기를 원하셨습니다.<br />  <br /> 삶 의 목적은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목적하신 바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멸망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위에서 일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낙심하여 모여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하던 간에, 환경이 어떻하던간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명하셨습니다.<br /> 그들의 마음 눈을 떠서 사명을 보고, 그것을 목표로하여 전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천하 만만이 듣고, 깨달아 회개함으로 구원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입니다.<br />  <br /> 여러분!<br /> 마태복음 28장 19절 말씀을 잘 아시지요?<br /> “너 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시각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목적으로 하여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원대하신 구원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의 변화를 명하셨습니다.<br />  <br /> 부활 주일을 지키는 성도 여러분!<br /> 제자들에게 귀한 사명을 명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br /> 부 활하신 주님이 원하시는 서은 우리들의 삶의 긍극적인 목표와 관점이 변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존재 의미와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이 주님이 우리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음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시민권은 하늘 나라에 있습니다. 잠시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대사와 편지와 향기로서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을 전해야 하겠습니다.<br />  <br />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을 모르시는 분들, 아직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신 분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신 분들은 복음을 전하시는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부활주일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대사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신자가 되려면, 인간적인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영혼이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숨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예루살렘과 온 유댇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br />  <br /> 오늘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가 전파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수 있읍니까? 어떻게 성령님으로 충만한 신자가 됩니까?<br /> <ul> <li> 먼저 숨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부터 돌이키셔야 합니다.</li> <li>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무시로 기도함으로써 주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해야 합니다.</li> <li>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li> <li> 성령 충만을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구한 바를 주심을 확신하십시오.</li> </ul>  <br /> 이렇게 할 때에야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br />  <br />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 오심으로 인하여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변화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br />  <br /> 셋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이웃과의 관계가 성숙하게 변화 되기를 워하셨습니다.<br />  <br /> 함 께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용서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또한 많은 상처를 주고 살아 온 것도 사실입니다. 부모와 형제에게 받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받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무시와 경멸등 쓰디쓴 경험들이 되살아 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시하면 무시해 버릴 수 있지만, 아내에게 무시를 당하면 무시무시하다.’ 이 말은 일생 함께 하는 부부간에서 갈등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들 간에도 갈등과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br />  <br /> 한 번은 사도 베드로가 주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잘못하면 몇 번이냐 용서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용서가 습관이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br />  <br /> 마 태복음 18장 21절 이하를 보면, 어떤 왕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신하가 탕감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1달란트는 그 당시 노동자의 약 15년간의 임금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빛을 탕감받은 종이 나가다가. 일백 데나리온. 즉 노동자의 100일 정도의 임금이 되는 돈을 안 갚았다고 멱살을 잡고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이 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br />  <br />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진 빚은 일만 달란트 정도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준 아픔과 상처를 일백 데니리온 정도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에 그것 보다도 더 많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 말씀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br />  <br />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주님은 지금도 두려워하는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오셔서 우리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br /> 부 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들의 삶이 세상을 향하여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대사와 편지와 향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귀한 직분을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함을 묵상했습니다.<br /> 그리고,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용서는 상대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유익한 것입니다.<br />  <br /> 기억하십시오!<br /> 어 느날 부활하신 주님이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들의 전 존재가 부활하신 주님의 형상처럼 변화할 것입니다. 썩어질 육체가 썩지 아니할 형상으로 변할 것입니다. 눈물도 고통고 아픔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영원히 사는 그날이 있을 것입니다.<br /> 기도하시겠습니다.<br />  <br />  <br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3)http://paulleemoksa.com/bbs/pid/134/detail/id/3539<br><br /> 요사이 일본에서는 평균 수명의 연장문제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65세에 정년 퇴직을 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퇴직자들의 연금 지급문제만이 아니라 퇴직자들 가운데서 아직 일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은데 정년이라는 제도에 묶여서 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년 연령을 70세로 높이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건강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복인지 모릅니다.<br /> <br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일에는 연령의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생명이 다하는 때까지 은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민족 구원의 사역에 부름 받았습니다. 시편 저자는 늙어도 결실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12제자를 부르셔서 함께 하나님나라를 넓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하나님께 “<u>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주십시오.”</u>라고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마태 9:37).<br /> <br />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 성의 여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 두고 <u>“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u>고하며 동네에 가서 소리지르자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보시며 <u>“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u>(요한 4:3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천국의 일군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오늘이야 어떻겠습니까?<br /> <br />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났을 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히 아셨습니다. 이 목적을 이루는 일에는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받겠다는 굳은 각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명이 끝나는 때까지 하늘에서 보이신 비전을 바라보며 방향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인생의 목적을 얻을 수 있었든 것은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그는 <u>“오직 주님의 은혜로”</u> <u>“오직 주님을 믿음으로”</u> 구원 얻는 다는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br /> <br /> 가령 집을 짓는다고 합시다. 좋은 일군들이 있어야 됩니다. 설계도로만 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심포니를 연주하려고 한다고 합시다. 지휘자로 만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훈련받은 좋은 단원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만나서 삶의 방향을 결정한 일군들, 주님을 사랑하는 일군들, 주님의 뜻을 이루기를 열망하는 충성스러운 일군들, 생명을 헌신하는 일군들이, 즉 새 사람, 새 꿈, 새 비전, 그리고 새 결심을 성령님 안에서 행하는 일군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br /> <br /> 지난주일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사역자로서 이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룩한 열정을 갖게된 이유가운데 다른 한 가지를 묵상했습니다.<br /> - 그는 인간 구원의 길이 예수님 안에 있음을 특별 계시인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했습니다.<br /> - 이 구원은 유대인이 아닌 죄 많은 이방 사람에게도 열려있다는 사실 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br /> - 그리고 이 진리는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하나님의 셩령님의 인도를 받으므로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br /> <br /> 오늘은 본문 가운데서 7-1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일군 된 사도 바울의 다른 고백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필요한 교훈과 은혜을 풍성히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br /> <br /> 사도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을까요?<br /> <br />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학식이 많아서일까요?<br /> <u>1)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u><br /> 그는 자기가 일군이 된 것에 대해서 7절에서 “그의 능력이 역사 하시는 대로” 일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부르심이 나에게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이 경험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성령님으로 감화 감동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잘 아시지요? 어떻게 사도들이 복음의 증인들이 될 수 있습니까? <u>“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u>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권능은 곧 능력입니다.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야 전신 갑주로 무장해야 영적 싸움을 하는 일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골로새서 1장 29절을 보십시오. <u>“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u>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움직인 것은 그의 지성, 이성 그리고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의 거룩한 불이 그를 인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u>“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u>고 고백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일군들은 그 능력으로 인하여 부름 받았고 그 능력으로 인하여 일해야하는 것입니다.<br /> <br /> <u>2) 사도 바울이 일군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u><br /> 같은 7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하나님의 일군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도 <u>“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u>”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구원얻은 것이 우리들의 선함이나 똑똑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의 힘과 지성으로 구원을 깨달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br /> 우리들이 다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르는 영광의 길을 막았습니다. 이 길을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열어주셨습니다.<br /> 그렇습니다. 구원도 은혜로 받았지만, 주님이 주신 복스러운 사역도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한 예로 사도 베드로가 그 시대에 가장 언변이 뛰어난 분이었을까요? 가장 똑똑한 분이었을까요? 가장 알려진 명사였습니까? 아닙니다.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어부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제자로 부르시자 주님 앞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u>“주님!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u>(누가 5:8)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인데 거룩하신 주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 너무나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br /> <br />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의 충성스러운 집사였든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 중에서도 괴수’와 같은 나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다 은혜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나중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u>“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니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u>(고전 15:10)라고 했습니다.<br /> <br /> 우리들도 다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들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u>“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u>는(마태 28:19) 대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천사들도 부러워할 만한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은 천사들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죄 많은 우리들을 용서해 주시고 변화시켜 주심으로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들을 구원하심도, 우리들을 일군으로 삼으심도 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감사하십니까?<br /> <br /> <u>3) 그의 사역이 영원한 경륜이 있는 것임을 익히 알았습니다.</u><br /> 우리들이 세상에서 하는 일들은 시작할 때가 있고 끝낼 때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으로서는 영원한 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주안에서 주님의 나라를 넓혀 가는 것은 영원한 생명 운동입니다. 천국 복음의 전파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며,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br /> <br /> 성도 여러분! 인생이 짧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성서학자이신 박 창환 목사님께서 “자네들도 50이 넘으면 인생이 얼마나 짧다는 것을 실감할 것일세.”라는 말씀을 하실 때 그 의미를 다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름 알만 합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먹고 마실 것만을 위하여 살지 말라고! 육신의 소욕을 얻는 것만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말라고. 그런 것들만을 위해서 인생을 다 쓰지 말라고.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 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여러분은 영원을 어디서 보내시기를 원하십니까?<br /> <br /> 사도 바울 선생님은 자신의 사역이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들이 영원한 경륜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이 완성하시고자 하시는 인간 구원을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주님이 맡기신 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사역에 부름을 받다니! 얼마나 감동된 것입니까? 우리들이 주님 앞에서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손에서 열매를 찾으실 날이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4장 2절을 보십시오. <u>“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u>입니다. 신실성입니다. 우리가 전해도 다 구원받는 사람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 선생님의 말씀대로 “<u>전도의 미련한 것”</u>을 통해서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를 부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주님을 전하고 가르치는일이 작은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에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사로운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일하고 사는 것이 영원과 관계된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어떤 일이든지 주안에서 하면 그 일에 영원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한 모든 일들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현재를 오늘을 주안에서 바르게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는 신자의 표지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br /> <br />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 바울 선생님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일군이 된 것, 그리고 그가 일군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을 선물이었음을, 그리고 그의 사역이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귀한 일임을 묵상했습니다.<br /> 성도 여러분!<br /> 우리는 성령님의 권능를 받고 삽니까? 성령님의 강권하시는 사랑 때문에 감사해서 힘차게 하나님의 자녀요 일군으로 사십니까? 만일에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br /> 성도 여러분!<br />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주님이 부탁하신 은혜의 사역이 있음을 깨달으셨습니까? 나만의 구원이 아닌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군이 되시지 않겠습니까?<br /> 성도 여러분!<br /> 짧은 인생을 삽니다. 누구나 육신으로 한번은 죽습니다. 그후에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그곳을 주님은 예비하시러 가셨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된 분들은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면서 사실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녀는 어디에 있을까요? 내 형제, 내 남편이나 내 아내는 어디에 있을까요? 복음 전도는 영원을 위하여 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입니다. 이 일에는 계속 발전하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가치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br /> 기도하시겠습니다.<br /> <br /> <br /> <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