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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십시오.
고린도전서 16:13-14         힘을 내십시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3,14). 이 본문을 표준 새 번역 개정판에는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십시오. 용감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라고 기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새로운 번역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무상하고자 합니다.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넓히 여시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교훈을 주시고 깊은 깨달음과 실천하고자 하는 결단까지 풍서하게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서신을 받아보는 고린도 교회는 어떻게 시작된 교회일까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주후 50여년 경에 사도 바울의 제 2차 선교 여행 중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원래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복음 선교를 진행하고자 했지만, 예수의 영이 그를 막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 16:9,10).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나서 즉시 마게도니야로 가서 빌립보에 이르렀고 그 곳에서 강가에 모여 있던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루디야가 주님을 영접함으로 인하여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관원들에게 잡혀서 옥에 갇혔고, 깊은 밤, 깊은 감옥에서 찬미와 기도를 드릴 때에 옥터가 흔들려 모든 죄수의 수감과 차꼬가 풀리는 기적이 일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석방은 되었지만 그 도시에 더 머물 수가 없게 되어서, 떠났습니다. 그 후에 데살로니가, 베뢰아와 더 나아가서 아테네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그곳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서 아가야 지방의 큰 도시인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뒤에 남겨놓은 동역자들이 그에게 도착할 때까지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추방 될 때에 고린도로 피신한 천막 제조업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동시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유대인들에게 밝히 증언하였지만, 그들이 바울에게 반대하고 비방함으로, 그는 이방 사람들들을 중심으로 하여 증거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환상 가운데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행전18:10).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의 선교를 잘 살펴보면 “두려워서, 침묵하는”일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 바울 같은 복음전도의 강력한 일꾼이 두려웠을까요? 왜 침묵하고자 했을까요? 왜 포기하고 싶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그 도시의 영적 환경이 아주 척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악한 사탄의 역사가 불일 듯하여 그의 복음전파의 길을 막아서서 담벼락에 대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런 환경에서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도행전 18장 11절 말씀을 보면,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그렇게 하여 고린도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이 한 패가 되어 그를 잡아 재판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폭동이 있은 후에도 여러 날을 머물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동역자들과 함께 에베소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왕성하게 복음 전파 활동을 하면서도, 두고 온 고린도 교회의 소식이 늘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사도 바울에게 와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이 전해준 교회 소식은 교회가 파당이 있고, 세속화 된 생활 방식 가운데 사는 사람들, 음란의 문제, 잘못된 신앙관에 빠진 사람들, 거짓 교사들의 문제 그리고 성찬식 같은 예식까지 잘못 행하고 있고, 교만함은 물론 사도 바울의 사도성을 부정하며,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음을 알렸습니다. 더욱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장부터 15장까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을 바로잡기 위한 교훈의 말씀을 기록하신 후에 16장 13,14절을 결론적으로 묶어서 주신 말씀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정신을 바짝 차리라 영적으로 긴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후서 5장 8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예수님께서도 사도들에게 (열처녀의 비유)마태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때때로 밤새워서 기도하셨습니다. 늘 간단없이 하나님과 교통하셨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는가? 교만의 잠, 나태와 무사 안일의 잠, 직무 유기의 잠, 자기 중심의 잠, 죄악의 잠에 빠져 있지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구약의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잠을 잤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자느라고 기름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대의 교인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기도에 힘을 쓰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평균적으로 5-7분 정도 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나의 잘됨, 가족의 잘됨, 그리고 원하는 일의 성취가 주종을 이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뜻의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위해서, 잃ㅇ은 영혼을 주님 앞에 인도하기 위한 기도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국에서 19세기를 ‘Great Awaking Movement'(영적 대 각성과 부흥운동)에 쓰임 받은 분은 큰 집회가 있고 더 많이 일해야 할 날이면,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긴 시간을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오늘 많은 시간동안 말씀을 증거 하시려면 매우 피곤하실 터인데 너무 일찍 일어나신 것이 아닌가?”라고 물으면 “내가 오늘 주님의 일을 많이 감당해야 할수록 나는 더 많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 집약적인 기도. 끈질긴 기도로 깨어 주님께 나가시는 우리가 될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둘째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하셨습니다(뿌리를 주님 안에 굳게 두라).
 
성경 말씀에서의 믿음은 성삼위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대한 계획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믿음은 무수히 많은 악한 세력들과 죄에 대아여 승리하신 주 예수님을 믿는 현재적 믿음을 말합니다. 입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다. 지정의를 총동원한 전 인격적 신뢰를 말합니다.
 
야고보서 1: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골로새서 2:7,8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고린도 전서 15:2 절 “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 전서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고린도 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셋째로. 용감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도들과 사도들은 갖은 환란과 핍박과 투옥 가운데서도 용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다가 산헤드린 공의회에 잡혀들어간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 4장 19,20절에서 그들을 심문하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충만해서 이렇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 스데반도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사도행전 7:55,56).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에베소서 6:12절을 보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전쟁인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악한 영인 마귀와의 싸움이 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10,11 “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본문 설명)
에베소서 6:13-18 이하의 몇 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설명 일반적인 명령, 적극적인 명령)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의 싸움은 승리한 싸움이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우리들이 받을 죄의 형벌을 없애셨다. 십자가의 사건으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죄의 권세에 대항하는 능력을 주셨다. 우리가 주님께로 갈 때에 죄의 존재가 소멸된다.
 
거짓 교리와의 싸움, 거짓 가치관과의 싸움, 교회에 침투하는 악, 교회와 개인의 각종 문제들과 미성숙함을 떨쳐버리고 이겨야한다.
 
- 임마누엘의 하나님
-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 에벤에셀의 하나님.
 
넷째로 힘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길에서도 신앙의 여정에서도 힘이 빠지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한 발도 내딛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인한 시련과 환난이 올 때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세의 생애 / 하나님을 열정으로 섬겼지만, 낙심될 때가 많았다.
히브리서 12: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이루리라!”
누가복음 7장 9절 이하를 보면, 구하라(주실 것이다), 찾아라(찾을 것이다), 두드리라(열어주실 것이다). 1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사도행전 4: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레마의 말씀을 경험하라. 언약하심을 잡으라!
 
다섯째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
 
대 계명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3:34,35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1:4절 하반- 7절 “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성경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형제간에도 화목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들의 믿음의 권속들에게도 사랑을 더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4:8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요한 1서 4:19-21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일명 사랑장이라고도 불리는 고린도 전서 13장을 잘 아실 것으로 압니다. 1-3절 / 사랑의 우월성, 필요성(사랑은 받드시 있어야 한다)
4-7 / 사랑의 본질, 혹은 내용, 8-13 / 사랑이 영원성,
 
4-7절을 읽을 때에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J.I 패커라는 신학자는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을 잘되게 하려는 지속적인 관심을 뜻한다.”라고 하였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 사랑은 실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의 자녀 된 우리들도 서로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갈 천국은 사랑과 화평의 나라입니다. 우리들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순례자의 길을 가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도 서로 우애하며 사랑을 더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맺는 말
깨어 있는가?
나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가?
용감한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가?
Number Title Reference
225 힘을 내십시오.
234 너희 인생이 무엇이뇨? 야고보서 4:14
233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11:17-37
232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6:21-28
231 노년기와 신앙생활 디도서 2:1-4
230 살았으나 죽은 교회 요한 계시록 3:1-6
229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 마태복음 16:21-28
228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영적 책임 신명기 65:1-9
227 에벤에셀 사무엘 상 7:2-14
22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태복음 6:5-15
225 주님의 부활, 우리의 변화 요한복음 20:19-23
224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3) 에베소서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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