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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휄로십 프라자의 겨울 모습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휄로십 프라자의 겨울 모습
 
지난 해 11월부터 금년 1월 25일까지 단 세 차례 비가 왔다. 예년에 비해서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숫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강수량을 비교할 바가 안 된다. 세 번에 걸쳐서 온 비는 그냥 가랑비 수준으로 두세 시간 내리고 멈추고 말았다. 전에는 비록 가뭄으로 고생한 해에도 몇 차례의 장대비가 내렸다. 왼 일일까? 지난 해 초부터 세차게 닥쳐온 COVID-19 여파로 인하여 집에 머물러야 하는 답답함을 시원한 비라도 내리면 좋으련만, 금년 겨울은 그냥 답답함의 연속이다. 이맘때면, 노인 아파트에 물을 주는 잔디밭이 아니라도 맨 땅에 푸른 풀들이 싹이 나고 자라고 먼 산의 누런 풀들이 파란 색 옷으로 갈아입는 때이다.
 
금년 1월 17일 오후 5시 기온은 73도 이였다. 1월 하순에 초여름의 날씨로 살고 있다니 정말로 이상 기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기 예보에는 1월 26일부터 비가 올 것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 부부가 휄로십 프라자에 입주한지가 8년이 조금 지났다. 세월이 실로 광음처럼 빨리 지나갔다. 내가 사는 유닛은 A 동 202호실이다. 주차장으로 가는 분들이나 아파트 단지를 걷는 분들, 또는 단지 밖으로 걸러 나가는 모든 분들이 눈 안에 들어온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좋은 유닛에 산다고 말하기도 한다.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아파트는 많은 나무들이 있고, 주위 동네도 널찍하고 나무를 많이 심은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노인 아파트에 입주한 여러분들이 좋은 환경을 만끽하며 매일 걷는 분들이 많다. 그 중에 매우 특징이 있는 분들에 대하여 적고자 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이 글에 나오는 분들이 대부분은 그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든지 아니면 아주 가끔 볼 수 있지만 매우 연약해진 모습이다.
 
우리 부부가 독수리 할머니라고 부르는 분이 있다. 이분은 미국 할머니인데 약 80여세 되신 분이다. 매일 낮 12시 경에 뙤약볕을 받으시며, 아파트 밖으로 나가서 약 1시간 정도 속보로 걸으시는 분이시다. 매부리코에 흰 머리를 날리시며 상의는 소매가 파진 흰 셔츠를 입고 힘차게 걸어가시는 모습이 독수리를 연상하게 한다. 우리 생각에 이 할머니는 100세 시대를 사시는 분 같았다. 그런데 지난해 8월경부터 독수리 할머니를 뵐 수가 없었다. 할머님이 타시는 차는 빨간색 현대 액센트 인데 그분의 주차장에는 늘 주차 되어 있었다. 그 후 어느 날 오후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보행기를 미시면서 한발 한발 내딛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한두 주 이후에는 그렇게 걸으시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부부가 반바지 아저씨라고 부르는 중국 할아버지가 계셨다. 우리들이 이렇게 부르는 것은 그 분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 부부가 입주할 때에 굽은 허리에 반바지를 입으시고 주로 자전거를 타시는 것으로 운동을 하셨다. 나중에는 힘들고 위험하기 때문인지, 걷기로 운동을 하시었다. 허리가 많이 굽으시고, 발도 많이 휘어서 걸으시는 모습이 어색하셨다. 한 네 달 전에 보행기에 의지하여 억지로, 억지로 발걸음을 떼시면서 걸으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 후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분이 사시는 아파트에 불이 꺼져있을 때가 많아서 매우 염려가 되었다. 나중에 들리는 소식은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요사이는 그 부인 되는 분이 아주 외로운 모습으로 혼자 수심에 차서 동네 주위를 걷는다.
 
겨우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으시는 80대 중반 되는 중국 할머니가 있다. 우리 부부는 아침 7시 30분경에 걷고, 오후에는 4시 반 경에 또 한 번 걷는다. 이 노인 단지에는 여러 종류의 주거 시설들이 있다. 양로병원, 노인들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시설 좋은 아파트, 혼자 생활할 수 없어서 식사와 의료를 제공하는 값비싼 요양원 그리고 연립 주택에서 사시는 분들이 있다. 건물마다 집마다 예쁜 꽃들이 사시사철 만발한다. 오후에 걸을 때에 한 중국 할머니를 만날 때면, 아파트 단지를 도시면서 꺾은 예쁘고 탐스런 꽃 한 송이를 꼭 들고 행복한 모습으로 걸어오신다. 남의 정원이나 건물 주위에 있는 꽃을 꺾으면 안 되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날 집사람이 그 할머니에게 “꽃을 꺾으시면 안돼요.” 라고 말했지만, 할머니가 잘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았다. 이 할머니도 한 여섯 달 정도 못 만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방에만 계시기 때문인지, 아니면 편찮으신지 모르겠다.
 
우리 부부가 공주와 머슴이라고 부르는 부부가 있다. 중국분이신데 우리 부부 나이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부부가 매우 조용한 성격이라서 중국 사람과 만나도 별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에 두 분이 걸으시는데, 특징은 부인이 몸을 곧게 세우시고 앞장서서 걸으면, 남편은 훤칠한 키에 허리를 조금 수그리고 땅을 보면서 더운 여름에도 엷은 자켓을 한 손에 들고 두세 발자국 정도 뒤를 따라서 걷는다. 그래서 공주님의 뒤를 따르는 머슴 같은 느낌이 드는 분들이다. 몇 달 전부터는 남편 되시는 분이 건강상의 이유에서인지 걷지 않더니 요즈음 지팡이를 짚고서 혼자서 천천히 걷는다. 부인 또한 한참 동안 안 보이다가 혼자서 천천히 걷는다. 참으로 외로워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에 방에 오래 있게 되고 서로의 사귐이 단절된 상태가 장기화 되면서 노인 아파트 입주자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많이 나빠지는 것이 눈에 뜨인다.
 
늘 손을 상의 호주머니에 넣고 땅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 중국 아저씨가 있다. 잘 웃지를 않으신다. 또한 중국 분들과 만나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늘 사색하는 듯한 표정을 짖고 살기에 철학자라고 부른다. 이분의 부인은 자그마한 키에 날렵한 체형을 가진 분이다. 두 분이 함께 걷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부인 되는 분은 걸음걸이가 빠르고 혼자서 멀리 다닌다. 앞으로만 걷는 것이 아니라 뒤로도 걷고 때로는 발을 왼발과 오른 발을 옆으로 교차해서 걷기도하는 부지런한 분이다. 그러나 약 3개월 전부터 철학자의 부인을 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자녀 집에 가서 머무는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철학자 아저씨께서 가끔 짧은 시간 혼자 천천히 외롭게 수심에 찬 모습으로 힘겹게 걷는다.
 
러시아 사람으로서 8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삼총사 할아버지들이 있다. 우리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온 8년 전, 이른 아침이면 세 분이 서로 아파트 밖으로 나가서 약 한 시간을 걷고 들어 왔다. 한 삼년 간 지속되다가 세 분 가운데 한 분이 건강이 좋지 않아 빠지게 되었다. 이분은 지금도 아파트 밖을 거의 나오지 않고 사신다. 그래서 삼총사 할아버지들의 결속은 와해되어 다른 두 분은 따로 따로 아침마다 꾸준히 걸으셨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몸이 야윈 한 분은 약 2 개월 전부터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 후 얼마간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다가 요즈음은 볼 수 가 없다. 세 분 가운데서 가장 크고 몸집이 좋은 할아버지는 아파트 밖으로 나가서 걷는 것을 중지하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천천히 한 바퀴 정도를 걷고는 들어가신다. 세 분의 건강 상태가 코로나 사태 이후에 많이 나빠졌음이 눈에 확연하게 띈다.
 
우리 부부가 사는 A 동 202호실 바로 앞에 있는 201호에는 80대 후반의 이란 할아버지가 홀로 살고 있다. 시간이 무료해서인지 가끔 작은 개를 데리고 와서 지내곤 한다. 이 할아버지는 약 한 시간 이상을 이 아파트 단지를 돌고 또 도신다. 몸집이 매우 좋고 건강하신 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걷던 분이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한 6개월 정도는 두문불출 하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할아버지가 나와서 걷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지 않아도 배가 많이 나온 분이셨는데, 걷는 것을 아예 중단하고 방에만 오래 계시다가 체중이 많이 늘었음이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동시에 말하기를 임신 10개월을 넘어서 11개월이 된 분 같다고 하면서 심히 놀랐다. 그러나 한 3주 정도 열심히 운동의 하시더니 다시 두문불출하고 계신다. 가끔 큰 기침 소리가 들려서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주 부지런한 80대 후반의 중국 할아버지가 같은 건물 3층에 사신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전에는 아침이면 가방을 메고서 체육관을 다니시며 부지런히 건강을 관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체육 시설이 문을 닫게 된 이후에는 이른 새벽이면 혼자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약 한 시간을 속보로 다녀오셨다. 얼마나 빨리 걸으시려고 노력하시는지 상체가 앞으로 많이 나오게 되니 자연히 엉덩이는 뒤로 하여 달리듯이 걸으신다. 공기를 가르는 자세로 땀 흘리며 걷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급히 화장실 가는 할아버지’라고 부르곤 한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도 약 3개월 전부터 볼 수 가 없다. 건강이 좋지 않으시던지, 아니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 하느라고 아파트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이상에 기록한 분들 이외에도 다른 여러분이 계신다. 실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노인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음을 본다. 감염의 두려움으로 인한 격리, 그로 인한 운동 부족과 영양상태의 빈약함 또한 오랫동안 이웃과도 소통하지 못한 채 약 1년을 살아오면서 갖는 고독감 등 여러 요인들이 노쇠 현상을 더 앞당기고 있음을 본다. 지금까지 강우량이 아주 작은 이 겨울 날씨로 인한 환경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이곳 노인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의 건강 상태는 지난 8년간 경험하지 못한 매우 서글픈 모습이다. 이 긴 어두움의 터널을 지나가면서, 언젠가 다가올 광명한 출구가 있음을 믿고 인내하며 살아가야 하리라.
 
(2021. 01.25)
 
 
Number Title Reference
80 내가 겪은COVID-19으로 인한 변화
79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뜻 깊은 생일
78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휄로십 프라자의 겨울 모습
77 Name Label
76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성탄절 풍경
75 고 박창환 학장님을 추모하며
74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배 진행
73 네이튼 헤일(Nathan Hale /1755.6,6-1776.9.22)
72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국 독립 기념일’ 풍경
71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4)
70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3)
69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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